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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우라 가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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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인물은 지바 롯데 마린스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지바 현에서는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쥐도 새도 모르게 집이 사라져 노숙자 신세가 될 것입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이 틀의 대상은 골든글러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인물은 명구회 회원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NPB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후쿠우라 가즈야
福浦和也

Kazuya "Pride of Chiba" Fukuura

지바 롯데 마린스 2군 수석/타격코치
No.70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5년 12월 14일
출생지 지바 현 나라시노 시
국적 일본 일본
학력 나라시노시립 나라시노고등학교
신장 183 cm
체중 88 kg
선수 정보
입단 1993년 드래프트 7순위
투타 좌투좌타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1]
선수경력 지바 롯데 마린스 (1994~2019)

소개[편집]

지바의 긍지


지바 롯데 마린스의 레전드이자 지바 롯데 그 자체, 지바 롯데가 지바로 이전해온 27년의 세월중 25년을 같이 보낸데다가 지바출신이다.

한국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지바 롯데의 박용택.


경력[편집]

1993년 7순위로 지바 롯데에 뽑혔는데 이게 전체 꼴지픽이였다. 등번호도 70으로 사실상 신고선수 취급을 받았다.

원래 투수로 입단하였으나 부상 등으로 2군에서 썩어있다가 당시 2군 타격코치였던 야마모토 고지[2] 에게서 타자 전향을 권유 받아 타자로 전향했다. 그리고 이게 엄청난 신의 한수가 되었다.

1997년에 처음 1군으로 승격되었는데 승격하자마자 단박에 주전 1루수 자리를 차지했고, 1998년엔 등번호를 9로 바꾸고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넘기며 타율 .284를 기록했다. 이후 지바 롯데의 주전 1루수로 활약하면서 장타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뛰어난 교타력과 나름 출중한 1루 수비력을 앞세워 2001~2006년동안 6년 연속 타율 3할을 기록했고 2001년엔 닛폰햄의 강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누르고 타율 .346으로 수위타자(타격왕)를 차지했다. 2003/05/07년에 3차례 1루수 골글을 수상했으며 2005년엔 5번타자로 활약하며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리는 등의 맹활약으로 지바 롯데 최초의 퍼시픽리그 우승[3] 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07~2008년에는 타율 2할 5푼대를 기록했지만 2009년엔 타율이 0.278으로 회복하고 2010년에는 지명타자로 뛰면서 규타는 미달이지만 타율 0.298를 기록한데 이어 2004년 이래 6년만에 두자릿수 홈런을 까면서 처음으로 베스트나인을 수상했고 5년만에 또 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4]

2011년 이후[편집]

2011년에 저반발력 공인구 도입 때문인지 타율 0.223으로 좆망하더니 안 그래도 부족하던 장타력마저 아예 없어져 버리면서 이후로는 대타로만 나왔다. 그리 잘치는 건 아니었지만 은근 찬스에 강한 성향 탓에 계속해서 대타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말년엔 팀에서 어떻게든 2천안타 치고 명구회 들어가게 해줄려고 대타로 꾸준히 내보냈다.

결국 2018년 9월 22일 드디어 2천안타를 달성했다. 달성하자마자 바로 명구회에 가입했다.

이듬해인 2019년엔 본인의 은퇴시합 1시합만 나오고 그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시합에선 안타를 못 깠지만 9회말 투아웃에서 다이빙 캐치로 경기를 끝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선수생활의 막을 내렸다. 여담으로 NPB 최초로 정확히 2천안타를 까고 은퇴한 사례다.

응원가[편집]

이 문서는 갓응원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남녀노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응원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를 빨리 똥응원가나 마구 찍어내는 주작룡 응원단장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응원가가 여러개가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건 MVP[5] 시절에 쓴 '해변으로 가요'와 지금 쓰는 버전이 있다.

MVP 시절 응원가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가사 我らは叫ぶ 打て福浦 

우리들은 외친다 쳐라 후쿠우라

声援受けて 打て福浦  

성원을 받아서 쳐라 후쿠우라

勝利を掴め

승리를 잡아라


원래 여름 한정으로만 쓰는 응원가였는데(가사도 이번 여름은 너의 것이다 뭐 이런 내용) 아예 정식응원가가 되었다. MVP사태 이후 2010년엔 가사만 바꿨다.

후쿠우라 전용 히트 콜이 있는데 두산 베어스의 그것이다. 응원단장이 한국으로 유학한적이 있어서 한국 곡들을 많이 가져다 썻다.


현 응원가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가사 オオ... (福浦!)

오오... (후쿠우라!)

俺たちの福浦 一打にすべて込めて

우리들의 후쿠우라 이 한방에 모든걸 담아서

不屈の闘志を見せてくれ 千葉の誇り胸に

불굴의 투지를 보여줘라 지바의 긍지를 가슴에


2011년부터 쓰는 응원가, 원래부터 성량이 큰 지바 롯데 팬들의 성량을 두배로 키워준다.

짤방[편집]

타격도 몸개그도 예술적이다.

  1. 젊을 적에 외야수도 몇번 겸업했는데 외야 수비가 똥이어서 결국 2003년부턴 외야수를 포기했다.
  2. 나중에 99~03년 동안 감독도 했다, 매년 B클래스였지만 5할 가까이 간적도 있고 리빌딩을 잘해놔서 평판은 나쁘지 않은편. 히로시마 카프의 레전드와는 이름 부분의 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이다.
  3. 정규시즌 순위는 2위였는데 플레이오프(당시엔 플옵 우승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제도였다)에서 정규시즌 1위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4. 이 해엔 원래 3위를 기록했으나 하위팀이 극도로 불리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 2위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를 다 발라버리고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도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이겼다. 덕분에 이해 지바 롯데는 희대의 하극상팀으로 주목받았다.
  5. 우리가 아는 그 MVP가 아니라 개포터 같은 서포터즈인데 Marines Victory Production의 줄임말이다. 응원 잘하기로 유명했지만 2009년에 당시 감독이자 지바 롯데 최초(구단 최초 말고)의 우승 감독이었던 바비 발렌타인과 프런트와의 불화가 폭발하여 시즌 전에 프런트가 발렌타인에게 재계약 불가통보를 때리자 노리타같이 감독 짜르지 말라고 롯데 프런트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외야에 달아놨는데 문제는 그 현수막에 프런트 전원 사형 같은 과격한 글이 적혀 있어서 그걸 본 니시오카 츠요시가 "야구 소년의 꿈을 빼앗지 말아달라. 정말 롯데를 사랑한다면 현수막을 내려달라" 라며 갓침을 날렸으나 MVP는 오히려 다음날 대놓고 니시오카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달고 니시오카가 타석에 서면 응원가는 커녕 야유를 날려대는 개짓거리를 했다. 이 때문에 화가 난 일반 팬들과 MVP 간에 싸움이 벌어져 결국 다음해에 MVP는 해체되고 응원가도 싹 갈렸다. 사스가 개포터, 근데 MVP 시절 응원가가 좋다는 이유 등으로 MVP의 부활을 바라는 미개한 일본인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