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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南越(Nam Việt)
(기원전 204년 ~ 기원전 111년)

초한지 읽어보면 나오는 조무제 조타가 구락을 족치고 세운 나라. 한국사로 치면 위만조선 포지션이다 야기분 조타

당시 구락은 청동기였고 조타 군대들은 철기 써서 멸망했다고 한다.

짱깨새끼들이 세운 나라라서 베트남인들은 지네 역사로 인정 안한다고 한다. 사실상 북속기 시즌 1의 개막.

근데 베트남의 유래가 여기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풉[1]

하여튼 짱깨들과 짱깨 문화랑 짱깨식 제도가 많이 유입됐다. 심지어 짱깨처럼 승상직도 뒀다.

원래 조타는 베트남으로 파견온 남해군위였지만, 베트남을 따먹은 뒤 진나라가 개판인 틈을 타서 독립했고, 훗날 유방이 천하통일하면서 남월왕으로 인정해줬다.

한동안 유방이 천하통일시킨 짱깨들은 한나라가 되면서 남월이랑 우호적으로 지냈다. 유방이 뒤지고 유방 마누라 여후가 실권을 잡을때도 전반 4년간은 잘 지냈었다.

그러나 기원전 183년 봄에 여후가 남월에다 농기구, 철제 수출을 중단하면서 사이가 틀어진다. 이에 빡친 조타는 지 혼자 황제 자리에 오르며 장사군을 시작으로 한나라의 후장을 지속적으로 털어댔다. 설상가상으로 짱깨대륙 남부와 베트남은 애미뒤지게 더운데다 풍토병이 창궐해서 한나라에서 군대를 보내봤자 대다수가 더위먹고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노이로제 걸린 한나라는 결국 남월이랑 딜을 주고받으며 전쟁을 끝냈다. 위대하신 중화민족에게 쳐죽여 마땅할 똥나마 새끼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각인된건지 훗날 한나라랑 좆도 관련없는 만주국가 갓-다이칭 구룬은 한족 선배님들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아 똥나마 새끼들이 다시는 자기네들 후장을 털어버릴 일이 없도록 완씨 왕조가 들어선 베트남에게 국명을 월남으로 정하라고 선비질을 시전한다.

이후 남은 인생을 외왕내제로 살아가다가 새로 등극한 한나라 7대 황제 한무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족쳐서 멸망한다. 원인은 승상인 여가를 필두로 한 현지 베트남인들과 마지막 황제 조건덕을 필두로 한 화교 짱깨새끼들간의 내분이라고 한다.

한편, 동쪽 건너편에서 살던 고조선도 남월 외롭지 말라고 세트로 한나라한테 멸망당해줬다.

오늘날 베트남 관광가면 짱깨 2중대스러움이 펄펄 풍겨나는것도 조타새끼 때문이다. 물론 니가 현지 베트남인보고 짱깨라고 지랄떨면 불교 윤회사상에 입각한 윾쾌한 물리치료를 시술받을 것이다.

짱깨들 후장을 털어버릴 정도로 베트남땅 왕조들 중 강력한 축에 드는 나라다보니 짱깨대륙 남부도 따먹어본 적이 있다. 수도부터가 번우, 오늘날의 광둥 성 광저우 시에 있는 판위 구이다.

이분들이 광동성한족의 유전적인 조상이다. 그래서 여기 애들 사투리인 광동어가 보통화하고 엄청 차이나는건가?

팩트[편집]

동북아가 아니라 동아시아로 치면 한중일월로 베트남 북부가 포함된다. 같은 문화권이니까 비슷한 점이 있다.

그리고 조타는 현지문화와 동화해서 사절한테 예의없다고 까이니까[2] 베트남예절인데 니가 왜 까냐면서 반박을 하는 등 중화사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이란 이름도 한족이랑 맞짱뜨던 전성기 시절이라 남비엣해주세요라고 징징거렸는데 꺼림칙하니까 순서바꿔서 비엣남으로 짓게 허락되었다.

둘러보기[편집]

틀:기원전 3세기 틀:기원전 2세기

  1. 남월을 거꾸로 읽으면 월남, 즉 베트남이 된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베트남에서는 조타가 황제를 칭하며 한과 맞섰다고 대중항쟁의 기원이라며 칭송했다. 조타를 중국인 군주로 보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닌데 주류는 아니었다. 더불어 남월이 멸망하고 세워진 9군의 중심지 교지군이 베트남 북부에 있었음. 베트남에서 남월을 자기들 역사로 보지 않는 시각이 주류가 된 건 1970년대부터다.
  2. 한나라 사신이 왔을 때 현지 방식으로 상투 틀고 두 다리 쭉 뻗은 자세로 맞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