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흰색 배경은 비례대표제 실시 선거, 연회색 배경은 비례대표제 미실시 선거, 검은색 배경은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 연두색 배경은 의원내각제 선거이다.
제1공화국 제헌
1948년
2대
1950년
3대
1954년
4대
1958년
제2공화국 5대
1960년
제3공화국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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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제4공화국 9대
1973년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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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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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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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81년 3월 25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투표율은 77.7%다. 잭팟 ㅅㅌㅊ

후보라고 나왔던 정당들[편집]

특징이 있다면, 기존의 정당들은 5.17 내란 정국 속에서 모두 해체되었고, 여야 정당 모두 국군보안사령부가 새롭게 만들어준 것이라는 것이다. 당뿐만 아니라 이후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 후보 배분도 각 당이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위에서 조정해주는 방식이었다.

보안사의 후신이 기무사라는 건 알고 있지?

선거제[편집]

이걸 굳이 따로 문단까지 파가면서 설명하는 이유는 베충이들이 이때 전라도에서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많이 나온 걸 두고 "팡주 홍어도 폭동이라고 인정하놐ㅋㅋ" ㅇㅈㄹ 떠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선거 방식이 현재와 달랐기 때문에 당시 호남에서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많이 당선된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단 당시 의석은 총 276석으로, 이중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184석은 지역구(現 선거구)에서, 나머지 3분의 1은 전국구(現 비례대표)로 선출했다. 선거구는 총 92개 있었으며 하나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 두 명이 당선되는 중선거구제였다. 지역구 결과(읶백)

한 정당이 한 선거구에 후보를 여러 명 내는 일은 없다. 그러니까 양당 간의 대결 구도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날 같았으면 그 중에서 한 명만 당선될 게 두 명 모두 당선되어버렸다.

6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재의 소선거구제로, 유신 정국 이래로 약 16년 만에 돌아오게 된다. 소선거구제가 도입 되면서 우리가 흔히 보는 민주당의 호남 싹쓸이, 보수당의 영남 싹쓸이를 보게 된다.

뭣보다 삼김 인사가 모두 정치 활동 금지 처분 당한 상태였어서 유권자들이 니미 씨발 하면서 막 투표하던 당시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전국구 의석은 투표가 아니라 지역구 의석 확보한 만큼에 따라 배분했다. 다음의 알고리즘을 거쳐서 전국구 의석 수가 각 정당들에게 나눠졌다.

  1. 지역구 의석을 제일 많이 차지한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 즉 61석을 먼저 가져간다.
  2. 나머지 31석은 지역구에서 5석 이상 배출한 정당들이 득표율에 따라서 가져간다.

결과[편집]

1 / 민주정의당
151석
2 / 민주한국당
81석
3 / 한국국민당
25석
4 / 민권당
2석
4 / 신정당
2석
4 / 민주사회당
2석
4 / 무소속
2석

무소속 2자리는 제주도선거구에서 나왔다.

주요 3개 정당 통계[편집]

민주정의당 151석(지역 90+비례 61), 5,776,624표(35.6%)

민주한국당 81석(지역 57+비례 24), 3,495,829표(21.6%)

한국국민당 25석(지역 18+비례 7), 2,147,293표(13.3%)

  1. 핵심 인물 양김은 정치 금지 조치 먹고 출마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