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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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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갓 갓갓갓

Roger Eugene Maris

뉴욕 양키스 No.9(영구 결번)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34년 9월 10일 ~ 1985년 12월 14일 (51세)
출생지 미네소타주 히블링
국적 미국
신장 182 cm
체중 86 kg
선수 정보
입단 195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자유 계약
투타 우투좌타
포지션 우익수
경력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57~1958)
캔자스시티 로열스 (1958~1959)
뉴욕 양키스 (1960~196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7~1968)


소개[편집]

베이브 루스의 60홈런 기록을 34년만에 깬 전설의 사나이

하지만 팬들의 야유와 비난, 그의 기록을 인정 안하려는 "뉴욕내 기자들"이 망친 비운의 선수

2021년 현재까지 진정한 단일시즌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진짜 홈런왕

야구선수로써 치명적인 손 부상을 안고도 욕 안먹을려고 뛰다가 선수생명을 잃은 인물

양키스 흑역사중 한 사건의 주인공('적자'미키 맨틀과 '서자' 매리스의 MVP 및 홈런 기록대결)

매리스는 1960년대 뉴욕내 기자새끼들과 팬들이 평생을 사죄해야 할 선수로써 사실상 이 두 병신집단들이 위대한 타자를 망친거와 다름없다.

매리스는 클리블랜드와 1952년 2만 5천달러(계약금 1만달러+메이저리그 데뷔시 1만 5천달러)를 받고 자유계약을 하게 된다. 원래 매리스는 미식축구 선수였으나 동생의 병원비때문에 프로야구로 뛰어들었다.

클리블랜드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교타력과 장타력을 팍팍 보여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증명하였고 1957년 신인부터 교타력은 부족한 모습(0.235)을 보여줬지만 일발장타의 모습(14홈런)을 보여줬다.

그 후 저조한 모습을 보이며 캔자스시티로 이적했고 거기서 전반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전반기 .225 9홈런 27타점/중후반기 .247 19홈런 53타점)

그 후 1959년 첫 올스타 선정이 되고 바로 양키스로 트레이드가 된다.

이 트레이드는 매리스에게 행운과 불행을 같이 가져다 준다.

일단 양키스에 와서 전과 다른 팀 라인업 수준을 토대로 데뷔 4년만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으며 간발의 차로 매리스가 팀내 메이트 맨틀을 제치고 첫 MVP를 탄다.(0.283 39홈런 112타점)

그런데 여기서부터 불행이 같이 시작된다. 뉴욕내 기자들중 MVP 투표를 하는 미국기자단협회인 기자들은 모두 맨틀에 1위표를 몰빵해버렸다.

미키 맨틀 또한 MVP 자격이 있었지만 홈런에 비해 낮은 타점기록, 높은 삼진기록이 문제였다.

그러나 매리스가 MVP가 되자 양키스 팬과 언론은 그를 까고 짓밟았다.

그리고 1961년 MLB의 전설로 남은 사건이 발생한다.

1961년 맨틀와 매리스의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경쟁과 거기서 나타난 양키스 커뮤니티들의 인성논란[편집]

앞에서 언급했듯이 맨틀과 매리스는 1961년 베이브 루스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60홈런)을 깨는 레이스경쟁을 펼쳤다.

일단 양키스 커뮤니티들(팬,언론등등)은 베이브 루스의 기록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맨틀과 매리스가 시즌 중반에 50홈런 언저리까지 오자 언론과 팬들은 팀의 적자인 맨틀을 응원함과 동시에 이적해온지 2년밖에 안된 서자인 매리스를 까고 비난하는 인종차별급 차별을 받는다. 결국 승리자는 매리스였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맨틀의 부상과 매리스가 갑자기 앞서나가기 시작하니까 단체로 눈깔이 휙 돌아가서 루스가 뛰었을때는 154경기밖에 안됐으니까 매리스도 154경기안에 61홈런을 쳐야 기록이 깨지는 거라고 천하의 개병신같고 졸렬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다른 팀 선수도 아닌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4번 타자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매리스는 154경기안에는 못했지만 157경기만에 60홈런을 쳤고 마지막 162경기에서 61호 홈런을 쏘며 기록을 세우지만 팬들의 환영을 못 받으며 설움만 잔뜩 얻어간다.

뉴욕외 타 언론은 새로운 신기록 그 것도 같은 팀의 전설적인 선수의 기록을 또 다른 전설적인 선수가 깼다는 것에 찬양을 시작했지만 뉴욕 언론은 매리스의 신기록을 부정하고 지랄염병을 했다.

얼마나 지랄염병을 해댔냐면 루스의 154경기 60홈런이 162경기 61홈런보다 가치가 있다고 하지를 않나, 기록을 둘 다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에 맨틀이 162경기 61홈런을 쳤으면 인정할거냐고 물어보니 팬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당-연"

정말 이 사건은 양키스 팬과 언론들의 흑역사이다.


그 이후[편집]

그리고 1961년도 마찬가지로 맨틀이 압도적인 기록을 냈으나 매리스가 역대 한시즌 최다 홈런(61)과 동시에 시즌 타점/득점 1위(141/132)를 기록하며 MVP를 먹었다.

솔직히 61년은 누가 봐도 MVP는 맨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임팩트에서 밀려 MVP 2핏 달성을 한다.

그 후 매리스는 역적이 되었고 결국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과 1963년 29살에 당한 손 부상을 제대로 완치 못하고 욕 먹을까봐 계속 뛰다보니 더 심해지고 치명적인 기량저하의 원인이 되어 선수생활을 많이 이어나가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했을 때 나이는 고작 34살이었다. 그 후 맥주회사에서 일을 하며 초라하게 사라진다.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지만 선수생활이 너무 짧았기에 명예의 전당 15턴 43.1%라는 부족한 득표율로 탈락하게 된다.

차라리 양키스가 아니었다면 기록은 못 세울 망정 커리어는 좋았을 거고 명전에도 올라갔을 것이다.

은퇴 이후 그는 양키스와 인연을 거의 끊었고 양키스의 접촉을 거의 거부했다.

그러다가 양키스그 로저 매리스 재단을 세우는데 원조하겠다는 전제 하에 양키스와 접촉을 하는데, 이게 1981년경이다.

결국 49세의 젊은 나이에 호지킨 임프종에 걸리게 되며 그 당시 양키스가 암흑기와 함께 매리스에게 한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바로 영구결번 처리를 해준다.

그리고 바로 1년뒤 사망하게 된다.




빌리 마틴
2루수, 감독
1986년 8월 10일
결번 처리.
파일:영구결번2.PNG
데릭 지터
유격수
2017년 5월 14일
결번 처리.

베이브 루스
우익수
1948년 6월 13일
결번 처리.

루 게릭
1루수
1939년 7월 4일
결번 처리.

조 디마지오
중견수
1952년 4월 18일
결번 처리.

조 토리
감독
2014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미키 맨틀
중견수, 1루수
1969년 6월 8일
결번 처리.

빌 디키
포수, 감독, 코치
1972년 7월 22일
결번 처리.

요기 베라
포수, 좌익수, 감독, 코치
1972년 7월 22일
결번 처리.

로저 메리스
우익수
1984년 7월 21일
결번 처리.

필 리주토
유격수
1985년 8월 4일
결번 처리.

서먼 먼슨
포수
1979년 8월 3일
결번 처리.

화이티 포드
선발투수, 코치
1974년 8월 3일
결번 처리.

호르헤 포사다
포수
2015년 8월 22일
결번 처리.

폴 오닐
우익수
미정
비공식 영구결번.

돈 매팅리
1루수, 코치
1997년 8월 31일
결번 처리.

엘스턴 하워드
포수, 좌익수, 코치
1984년 7월 21일
결번 처리.

케이시 스텡걸
감독
1970년 8월 8일
결번 처리.

마리아노 리베라
구원 투수
2013년 9월 22일
결번 처리.

레지 잭슨
우익수
1993년 8월 14일
결번 처리.

앤디 페티트
선발투수
2015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론 기드리
선발투수, 코치
2003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버니 윌리엄스
중견수
2015년 5월 24일
결번 처리.

재키 로빈슨
2루수
1997년 4월 15일
전 구단 공통 결번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