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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나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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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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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기원전 1353년 ~ 기원전 13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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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다신교였던 이집트에서 아톤신 원툴을 외치며 빠돌이 행적을 많이 보여줬다

주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의 모습은 천사와 악마처럼,
혹은 대상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개요[편집]

이집트 제18왕조의 제10대 파라오.

즉위 당시 이름은 '아멘호테프'로, 아멘호테프 4세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아톤 짱임!을 외친 뒤로부터 이름을 아케나톤으로 개명했다. 아크나텐, 아케나텐이라고도 부른다.

치세[편집]

기원전 1353년 아버지인 아멘호테프 3세가 죽으면서 파라오로 즉위했다. 원래는 형인 투트모세가 황태자로서 다음 파라오가 되었어야 했지만 아멘호테프 3세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둘째아들인 아멘호테프가 파라오가 되었다.

기원전 1350년대 후반에는 이집트 신화 다신교 신앙을 계속 유지하고 신관들을 딱히 갈구지도 않았다.

근데 기원전 1349년에 갑자기 신관들에게 빅 통수를 치면서 아톤만을 유일한 신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아문이라든지 세트, 아누비스, 오시리스 같은 신들은 '그게 뭔 듣도보도 못한 거임?'을 시전하며 운지시켜버린 것

이름도 '아톤이 이롭게 여기는 자'라는 뜻으로 아케나톤이라고 개명했다. 그렇게 역사상 최초의 일신교인 아톤교가 창시되었다.

수도도 기존의 다신교 신관들이 설치던 테베(현재 이집트 룩소르 주)에서 텃세 부리는 신관들이 한 놈도 없는 크-린 그 자체의 신도시 아마르나로 천도했다.

수도가 아마르나이던 시절에 쓰인 외교 문서로 '아마르나 문서'라는 게 있는데, 이집트 신왕국 시대, 특히 기원전 14세기의 중동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이 아마르나 문서에 따르면 히타이트가 갑자기 개씹떡상하면서 미탄니를 무너뜨리고 지중해 근처에 있는 듣보잡 도시국가들도 복속시키는 등 무섭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근데 아케나톤은 종교 개혁 하겠답시고 히타이트가 북쪽에서 지랄 염병을 떨며 설치고 다니는데도 바보 병신 노무현마냥 아무것도 못했고 이집트 내에서도 전염병이 터지면서 왕권도 같이 운지했다. 이후 기원전 1336년에 뒤지고 다음 파라오가 2명 정도 더 있었다가 그 다음에 아들이 파라오가 되었는데 그게 바로 황금 마스크로 유명한 투탕카멘이었다.

한편 출애굽기의 배경이 아케나톤 때라는 설이 있다. 다른 설로는 투트모세 3세~아멘호테프 2세 때라는 전기설과 람세스 2세 때라는 후기설이 존재한다.

아케나톤에 대한 평가[편집]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롤코를 타고 있습니다.

잘할 땐 신들린 실력이 나오지만 못할 땐 또 존나게 못합니다. 떡상과 떡락을 반복하고 있으니 무작정 빨지도 까지도 말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져봅시다.
???: 파아악 올라갔다 했다가 화아악 내려갔다 했다가..

아케나톤이 뒤지고 나서 권력을 잡은 신관들은 아케나톤이 벌인 아톤교 개혁을 없었던 것처럼 전부 빠꾸시켰다. 그리고 새 파라오가 된 급식충 투탕카멘가스라이팅해서 너네 아빠는 개새끼야 하면서 아케나톤의 모든 행적을 부정하게 시켰다.

이집트 제19왕조가 생긴 뒤에는 거의 악의 축 그 자체로 취급받았고, 볼드모트마냥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집트 말기 왕조를 겪으면서 이집트 문명이 역사 속으로 운지한 뒤에는 걍 없었던 사람처럼 잊혀졌다가,

19세기에 유럽 새끼들이 이집트를 따먹고 아케나톤의 존재를 밝혀냈다. 그리고 계몽사상에 입각해서 아케나톤은 사회를 개혁하려던 숨겨진 영웅이었음! 이라며 미화하는 사조가 강했다.

근데 이집트학이 발전하면서 아케나톤의 종교개혁이 민생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고종새끼 같이 자기 안위만을 위해서 벌인 삽질이었음이 드러나면서 다시금 욕먹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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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기원전 14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