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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코 코뮤니즘 사상가이면서도 과학자인 인물이었다. 생물학자이면서도 지질학자 였고 시베리아 탐사와 당시 사회 "진화론"에 반대하는 상호부조론을 만들면서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시회 "진화론" 에 반대하는 이론인 상호부조론(mutual aid)의 창시자 이고 다른 진화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상호부조론은 협동이 진화론과 뗄 수 없다는 이론이다. 무정부주의를 단순한 테러에서 더 복잡한 사회 운동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크케 미쳤고 스페인과 우크라이나에서 아나키스트 혁명이 일어나는데 크게 기여했다.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인성이 나쁘거나 언행이 불일치하지 않은 보기 드문 인물이다.

미하일 바쿠닌,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과 같은 인물들과 함께 19세기 아나키즘 운동을 대표 했던 인물로 19세기 서유럽에서 널리 인정 받던 제국주의에서 파생된 적자생존의 반기를 들고 "모든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상호부조론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한국에서는 20세기 초반 독립운동가 신채호를 통해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널리 알려 졌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은 경쟁이 목표가 아닌 상호부조하며 함께 발전 할수 있다는것 이였고 일종의 노동조합 형태의 보험제도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사적재산과 권위주의를 부정 했으며 중앙집권적 정치 형태가 아닌 자발적 참여에 기인한 지역공동체적인 사회 구조를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 발생후 러시아에 돌아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 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자 전체주의적 볼셰비키를 비난 하며 "이것은 혁명의 매장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의 주도권을 탈취한 볼셰비키가 권위주의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맹렬히 비판하였으며, 특히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 중심으로 아나키스트 밑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같은 다른 정파에 대한 박해를 두고 "동서고금을 들어 참 레닌만한 혁명가도 없다. 다른 혁명가들은 어떠한 도덕적 이상을 위해 싸우는 반면 레닌은 그런걸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통열한 비난을 가했다. 한편 그러면서도 외국의 친구와 동지들에게 "혁명이란건 원래 결코 깨끗할 수 없고, 무질서는 변화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라며 볼셰비키 정권을 초월한 러시아 민중의 자유를 향한 순수한 열정 자체는 수호하려 했다. 이 시점에서는 크로포트킨 본인은 당파적 분열과 현대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깔았으며, 이에 기반하여 동시대 네스토르 마흐노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훗날 스페인 내전기 CNT의 혁명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이론적 비중으로만 본다면 국제 공산주의의 역사가 레닌 전후로 나뉘듯 현대 아나키즘의 역사는 크로포트킨 전후로 나누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로포트킨을 유럽에 널리 알린 상호부조(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1902)는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며 다윈주의에서 파생된 적자생존을 비판하며 인간은 상호부조를 통해 발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적재산을 부정하고 4~5시간의 필요노동만을 하고 필요한 만큼 창고에서 꺼내가는 무상분배를 주장했다.박해를 넘어 19세기 브나로드 운동과 닫아있는 러시아 혁명적 인텔리 전통의 살아있는 거두이며, 특히 개인적으로 제정 러시아의 좌파/자유주의 세력 전체의 적이 없는 큰아버지 뻘 인물이라 볼셰비키 정권의 직접적인 박해는 받지 않았으나 말년에 소련 정권의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좌파 내에서 처음부터 통찰한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에는 아나코 코뮤니즘(무정부 공산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크로포트킨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마르크스가 프루동의 주장을 철학의 빈곤이란 저서를 통해 반박한 것 처럼 아나키즘은 특히 마르크스주의 계열에 비해 이론적, 사상적 기반이 약하다고 평가 받고, 충동적인 테러리즘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프랑스의 엘리제 레클뤼와 엘리 레클뤼 형제의 지질학적 연구와 함께 본격적으로 인간의 노동, 사회적 관계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하부 구조로부터 자발적인 조직화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대안 권력 구조 형성이란 노선을 주장하면서 국제 아나키즘 운동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 이런 크로포트킨의 생태주의적 수평적 자유 연대 노선은 훗날 스페인 내전 당시 카탈루냐와 아라곤 중심으로 사회 혁명을 주도했던 CNT의 기본적인 조직적 방침이 되었으며, 현대까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혁명과 미국의 생태운동가이자 사회학자 머레이 북친의 영향력을 통해 작금 시리아 쿠르디스탄의 인민민주당이 추구하고 있는 민주적 공동체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크로포트킨의 생태주의적 아나키즘은 19세기 말 까지만 하더라도 유행하던 테러리즘 중심의 아나키즘에 종지부를 찍고 하부 구조로 부터의 체계적이고 치밀한 노동자, 농민, 시민 사회의 자발적, 수평적 연대와 조직화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인식 혁명과 정치적 혁명을 향한 역량 축적이라는

공산주의와 얼핏 비슷해 보이나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가 군대와 정부, 국가가 사라진 노동자 중심의 이상사회로 귀결될 것이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중앙집권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아나키즘 입장에서는 권위주의적 공산주의는 철학적으로 모순 그 자체이며,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공산주의는 권력의 자기 보존 본능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영구적 봉건제의 실현을 초래할 수 밖에 없으므로 애초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철학적 사기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순간부터 마르크스식 공산주의는 사이비종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강하게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혁명에 대한 방법론 이외에는 공산주의의 어떤 것도 아나키즘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유에 따르는 책임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군대, 종교, 계급, 감옥(처벌방법), 화폐의 가치와 사적소유 또한 부정함과 동시에 관념론적인 모든 구질서를 부정하였고 범죄자 자체도 사회적, 정신적, 교육적 치료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유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가치에 기반한 절도 범죄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그는 유물론적 자연법칙을 통해서 인간중심의 세상을 실현하고,사적재산을 부정함으로서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급진적인 유물철학사상을 가진 인물이였다.

서적[편집]

  • 상호부조론
  • 빵의 쟁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