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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고대 이집트𓆎𓅓𓏏𓊖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개씹사기캐 문명인 고대 이집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호루스, , 오시리스, 아누비스, 세트와 같은 신들 그리고 쿠푸, 람세스 2세, 투탕카멘, 클레오파트라 7세 같은 존나 세거나 똑똑하거나 유명한 파라오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문서입니다. 이 장중하고 근엄하며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서에서 신성모독은 자제해 주십시오.
▲△ 수싀 시 숫서슷 세소삿시사? ▲△
◀◁ 삿삿시 세소사서 사싯 시 숫서세 사사섯섯 사시 싰서싯시사? ▷▶
◀◁ 숫시 세소사샷 숫서사서사소 시시쉬시세섯 샛싯시시 샀슷시사? ▷▶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설명[편집]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세계 최대 피라미드인 이집트 쿠푸아재의 피라미드는 2.5톤 무게의 사각돌이 300만개가 사용됐다고 한다... 씨발 그런 꼬추 새끼 하나를 위해서 10만 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고 여겨진다 - 근데 이건 요즘 개소리로 밝혀졌고 똑똑한 이집트 사람들이 경사로를 일찌감치 활용해 4000명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댄다. 여담으로 돌 조달해 오는 건 석재 생산지에서 돌 틈에 나무쐐기 박아넣고 물 부어서 쐐기를 팽창시키는 간단한 방법으로 절개해 와서(양놈들이 실제 실험으로 인증) 나일강으로 실어왔다고 한다.

ㄴ4천명이면 존나 대단한거다. 한 학교 총 인원이 약 800~1000명 정도인데 저 정도 크기를 학교 4~5개분 정도만 갈아 넣는걸로 만들 수 있었다면 ㅎㄷㄷ 심지어 현대에 돌 옮기는 방법과 절개 방법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외계인이 지었다며 온갖 흑색선전들이 나돌았는데 4000년 전 닝겐들이 이 꼬라지를 봤다면 부탁을 랄! 칠 노릇이다.

하지만 당시 지구 전체인구[1] 대비 막대한 예산을 꼬라박은 덕분에 경제 좆망 ㅅㄱ

피라미드를 지을 때 노예노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나갔을 거라 생각하기 십상인데, 의외로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임금도 잘 받고 대우도 좋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피라미드 건축이 뉴딜 사업과 같은 거라고도 한다. 노동조건 안 맞으면 파업하고 고발도 가능했다.

ㅡㅡ피라미드를 노예들이 지었다는 썰은 지네 나와바리에 선진 고대문명이 없어 열폭하던 양놈들의 흑색선전 비스무리한거다.

실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집트 노예의 모습, 특히 개독 영화 등에 자주 나오는 채찍질 같은 것도 사람을 뚜까뚜가 하는게 아니라 휘칙! 휘칙! 거리는 찰진 소리로 기합이나 박자를 맞추기 위한 도구로 썼다는 말도 있다. (실사영화 '아스테릭스 2'에서는 이 설을 채택) 물론 채찍 자체는 상황에 따라 패죽이는 목적으로 썼을 가능성도 크다만...

아직 내부 구조를 100%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피라미드로봇탐사영상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파라오의 방과 파라오 마누라의 방이 한 피라미드 안에 같이 존재했다. 그리고 도굴꾼들을 영접하기 위해 함정도 구비되어 있다. 피라미드 내부에서 조금만 어설프게 돌아다니면 바로 함정행이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누비아(오늘날의 수단 북부 지역, 이들이 하류 이집트를 점령해 25왕조를 구축했다)왕국에서도 피라미드를 많이 건설했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사용했는데, 철 성분이 함유된 석재를 사용해서 어두운 검정색을 띈다.

놀랍게도 경남의 모 시골마을에는 21세기에 지어진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이렇게 눈에 띄게 떡하니 지어놔서, 신과 같은 파라오고 지랄이고 부장품을 노린 도굴꾼들이 득시글댔다고 한다[2]. 심지어 현재 쿠푸의 피라미드 입구는 정식 입구가 아니라 좆슬람 칼리프가 보물있다고 도굴꾼 보내 털려고 일부러 만든 입구다. 원래 입구는 그새끼들때문에 막혀서 출입불가가 되었다.

특히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워낙 거대하고 임팩트가 크다보니 수천년동안 도굴꾼들의 심심하면 털러오는 그야말로 청와갤같은곳이라 그 거대한 피라미드를 남겼음에도 관련 유물이 ㄹㅇ 좆만한 인형 하나밖에 안남았다. 나머지는 싹 다 털렸다.

원래 피라미드는 저 위에 그림만큼 거지같게 만든게 아니고 겉에 대리석을 두르고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꼭지를 올렸다. 물론 이 재료들이 매우 값지고 사람들에게 아주 잘 보였으므로 황금꼭지가 1빠따로 털리고 그다음 대리석까지 모조리 다 털리면서 지금의 병신같은 벌거숭이모습이 된거다

그래서 나중엔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과 같이 어디 으슥한 계곡 같은 데에 몰래 묻는 방식이 사용됐지만 털릴 무덤은 털렸다. 거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게 투탕카멘이다. 투탕카멘은 치세가 워낙 짧았기 때문에 유명세가 덜했고, 무덤도 자신을 위한 무덤이 아니라 다른 귀족을 위한 무덤을 재활용한데다가, 무덤이 완성된 후 입구에 람세스 6세의 무덤을 짓는 노동자들의 숙소가 들어서서 도굴을 피할 수 있었다. 한 번 털리긴 했으나 가벼운 장신구와 연고 정도만 들고 가서 피해는 덜했고 두번째 도굴시도는 경비대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으며 아야라는 관리가 무덤을 수습한 뒤 다시 입구를 봉했다.

근데 이 건축이 ㅈ밥이라고 주장한 인간이 있었다 에드워드 리즈칼릭 이라는 사람인데 이 건축방법이 너무 ㅈ밥이라 혼자서도 할수있다고 한다 물론 저 토 나오는 규모를 혼자선 못하겠지...

산호성을 만들었는데 돌들이 조오온나 무거운것들 이면서 5000파운드가 넘는것도 있다 심지어 밀면 열리는 문도 있음

그 조온나 무거운 돌을 인부도 없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혼자서 들어올렸다 심지어 멸치몸이였다 그래서 어캐 했누 를 시전하였는데 이거 기밀임 하면서 ㅈ까라고하면서 공개안함.

방법을 딱 하나 공개했는데 자기장 전기 중력을 이용했다고 한다.

피라미드에 낙서된 노동자들의 삶[편집]

아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힘..
파라오님아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은 쉽니다.
파라오님아 저 전갈한테 물려서 아프니까 일주일 쉬다오겠음
저는 형이 죽어서 미라로 만들어야하니까 쉼 ㅅㄱ

위 처럼과 같이 감독관과 싸워서 며칠동안 안나갔다가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고 술먹어서 꽐라가 되는 등 예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먹어서 가되는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고 미래 되어도 똑같을 듯.

아무튼 피라미드를 지은건 노예들이 아니라 엄연히 돈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보면 최초의 노동조합이 존재했음을 추측할수도 있다.

그리고 저렇게 써서 지 꼴리는 대로 휴가를 가는 걸로 미뤄보면 피라미드 노동자는 오늘날의 인력소와 똑같은 형태의 노동 구조를 지녔다고 추측할 수 있다. 회사원 같으면 저렇게 못하기 때문이다.

뭐 저런 방식으로 일하는 거 보면 오늘날의 노가다와 사실상 많이 비슷하다.일은 딱 시키는 거만 하고 일하면 돈 주고 일 안하면 돈 안주는 게 딱 연대의 노가다와 똑같다.

피라미드의 기원과 역사[편집]

피라미드 이전의 무덤양식[편집]

피라미드 이전 고대 이집트 왕족은 죽으면 마스타바라는 무덤에 묻혔다. 마스타바는 진흙벽돌로 건물을 짓고 밑에 매장실과 제사실이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최초의 피라미드의 탄생[편집]

그러다가 고왕국 시대가 열리고 3왕조가 시작되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였던 조세르가 취임하자 조세르는 이전 파라오들처럼 관례적으로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무덤인 마스타바를 축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파라오의 무덤은 파라오가 취임하면서부터 임종할때까지 짓는게 관례였다. 단, 조세르는 이전 파라오들과 달리 자신의 위엄과 공덕을 과시하기위해 이전 마스타바들처럼 진흙 벽돌이 아닌 석조 마스타바를 지을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조세르는 무려 20년을 통치하며 장수했다. 보통 이전 파라오들은 끽해야 9년 10년하고 뒤졌는데 조세르는 좀 오래 살았다. 그래서 이미 마스타바는 다 지어가는데 조세르가 생각보다 안뒤지니까 당시 수상이자 제사장이며 수학자이며 건축총괄자였던 임호테프(이모텝)가 남는시간동안 마스타바 위로 한층을 더 쌓고 또 쌓고 하다가 그래도 파라오가 안뒤지니까 폭도 넓혀보는 둥 계속 증축공사를 하였다. 그렇게 탄생한것이 최초의 피라미드였던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완벽한 피라미드 형태의 탄생[편집]

그러다가 이집트 제4왕조가 시작되고 스네프루가 파라오로 취임했다. 그런데 이 스네프루는 욕심이 많은 파라오였는지 당시까지만 해도 이집트인들에게 신과 동일시되며 찬양받던 조세르를 뛰어넘고 싶어했다. 그래서 조세르보다 더 위대한 건축물을 지으려했다.

제일 처음 시도한것이 메이둠의 피라미드이다. 그런데 건축 재료로 단단한 암석이 아닌 모래벽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횡력에 취약해서 금방 무너져버렸다.

이 피라미드가 실패하자 스네프루는 또다른 피라미드를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번에는 다슈르 지역으로 공사 위치를 옮기고 재료도 암석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사 도중에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돌에 금이 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유는 돌의 크기가 너무 작았고 바닥 면적에 비해 경사가 급했던 게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건축가들은 바닥 면적을 늘리고 피라미드 높이의 절반 정도에서 경사를 크게 낮추어서 마무리했다.

결국에는 더 큰 석재를 사용하고 처음부터 안정된 각도를 추구해 보편적인 피라미드의 형태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내부에 걸리는 엄청난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천장을 역 계단식으로 쌓아서 최상부의 하중을 벽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를 도입했다. 스네프루는 이에 만족했을 것이고 이 안에 묻혔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내부에서 미라가 발견되지 않아 알 수 없다.

하나만 지어도 나라 국고가 바닥날정도로 빡센 공사인 피라미드 건설을 이새끼는 무려 3대나 지었던것이다! 이정도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만도 한데 스네프루는 성공했던것이다. 이는 그 당시 그만큼 왕권이 강력했음을 보여주며 또한 스네프루는 당시 농부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항상 자신을 낮췄으며 자신의 원래 이름인 스네프루를 파라오 이름으로 사용할정도로 백성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고 신하들이 굴절 피라미드를 지을때 각도를 바꾸자는 조언을 흔쾌히 승낙할정도로 주변사람들의 말을 잘 귀담아듣고 수용할 정도로 성군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먹고 사는 데에 지장만 없으면 그만인지라 스네프루는 그걸 간파해서 피라미드 짓는 노동자들에게 아주 후한 대우를 해줬고 그래서 노동자들은 되려 피라미드를 또 짓기를 바랬다. 비싼 일당을 주는 노가다인데 당연히 계속 일하길 바랄 것이다. 문선명이, 마치 수도꼭지 크게 틀어놓은 것 마냥 돈을 마구 뿌려대가며 찍은 영화인 오! 인천에서 보조출연자들의 심정도 이와 같았다. 알다시피 배우 이영후는 오! 인천에 3분 출연하고 받은 출연료로 집 샀다.

그리고 우리에게 제일 유명한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스네프루의 다음 파라오들에 의해 지어졌다.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제일 유명하다.

미궁[편집]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클로킹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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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옆에는 ㅈㄴ거대한 미궁이 있다고 했다 근데 피라미드 비밀도 ㅈ도 안풀리는데 미궁까지 풀려면 ㅈㄴ오래걸리지

피라미드보다 더 큰 미궁이다

층도 2층에 방도 3000개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넓어도 조오오온나 넓어서 잘못 들이면 지박령되야한다.

심지어 위에처럼 피라미드가 도굴로 다 털렸다고 하는데 이 미궁은 은신을 너무 잘해서 도굴꾼 조차도 찾지 못하였다 찾으면 거긴 피라미드를 능가하는 도굴 맛집이다 못해 뷔페가 될께 뻔하다 지금도 발굴된적이 없다고 한다.

  1.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고왕국 시대의 헬지구 전체인구는 2천만~3천만으로 추정된다.
  2. 실제로 이집트 때에도 피라미드를 털려던 도굴범들이 잡힌 기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