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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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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영국이 사랑하는 영국 최고의 팝밴드

영국 싱글차트 1위곡 12개 영국 앨범차트 1위 앨범 7개

하루 만에 약 160만 장의 공연 티켓을 팔아치운 기네스 세계 기록 보유[1]

공연 티켓 예매 시작 4시간 만에 64만장 판매 매진[2] 24시간 만에 134만장 판매 매진[3]라는, 영국 역대 투어 사상 가장 빠른 매진 기록



로비 윌리엄스가 테이크댓 출신이다

현실은 미국에서 인지도 시망이라 한국에서도 인지도 시망인 보이밴드

유럽에선 먹어준다

참고로 투어 관중수와 수익 세계 1,2위 기록이 얘네꺼다

90년대 시절[편집]


미국에 뉴 키즈 온 더 블락이 있다면 영국엔 테이크 댓이 있다

UK 음악 역사상 비틀즈 이후 가장 성공적이며 남녀 노소 불문하고 사랑 받고있는 밴드.

 
1996년 영국 BBC 방송국


팀의 결성은 팀의 리더인 게리 발로우가 영국 방송사 BBC주최 콘테스트에서 출전했는데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London 's West Health Studios과 인연을 맺고

Northern club circuit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선보이면서 이 때 당시 유명한 매니저였던 마틴 스미스가 "지금의 UK차트에는 새로운 밴드가 필요하다.""라고 한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이 후 밴드 멤버를 뽑기 위하여 마틴 스미스와 게리 발로우 2명이서 오디션을 열었는데

축구하다 부상 당해서 은행에서 업무 보다가 넥타이 매고온 호빗이 마크 오웬이고 어떤 아줌마 새끼가 애새끼를 데려와서 오디션을 치루었는데 그 오디션으로 합격한 놈이 바로 로비 윌리엄스[4]

당시 Streetbeat라는 화가로써 실내 장식 디자인과 DJ일을 하던놈과 맨체스터 클럽의 댄서로 구성된 댄스 듀오를 데려와서 오디션치루고 멤버 영입을 한 놈들이 바로 하워드 도널드제이슨 오렌지다.



멤버는 다 모았고 보컬과 댄스 작곡가는 다 모았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좀 불안불안 하니까 성공 할 그릇인지 아닌지 찔러보기 위해서 초기에는 게이 클럽을 전전하면서 돈과 인지도를 조금씩 끌어모았는데

게리 발로우만 봐도 와꾸 ㅆㅅㅌㅊ고 마크 오웬은 이때 당시 왕자님같은 느끼한 외모였고 하워드 도날드와 제이슨 오렌지는 춤이 ㅆㅅㅌㅊ 로비 윌리엄스는 앳된 와꾸로 게이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돈이랑 인지도가 좀 모이기 시작하자 1991년에 DO WHAT U LIKE라는 싱글 음반을 출시했는데 이새끼들이 아직 게이 클럽에서 하던 짓을 버리지 못 해서인지 뮤직 비디오를 거의 벗다싶이 하고서 자지 흔들면서

춤을 추는 영상으로 찍어놨으니 똥꼬충 그룹이 등장했다 라는 작은 관심만 받았고[5] 틴 팝 보이밴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10대 여성층에게는 인기가 없고 게이들에게 인기가 더 높았으며

사람들도 Take That을 게이 밴드로 인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시 게이 클럽으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중 소니 뮤직의 대표 음반 레이블인 RCA 레코드에서 게이 클럽에서 빼와서 계약을 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2년에 1975년 디스코 그룹 Tavares가 만든 It Only Takes A Minute의 리메이크 버젼을 출시했는데 이게 UK차트 7위에 오르는 성공을 하면서부터 황금기를 맞기 시작한다.

이 후 발표한 A Million Love Songs과 I Found Heaven가 차트 상위권에 등극하는 등 내는 곡 마다 히트를 치게 되어 결성 당시 컨셉으로 잡았던 뉴 키즈 온 더 블락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게 되며

영국 사람중에 Take That을 모르는 새끼는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하여 명실공히 영국 최고의 보이밴드 그룹으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영국 말고 다른 곳 좀 진출해 볼까 하는 마음에 팀의 리더인 게리 발로우가 10분만에 싸놓은 노래가 바로 Back For Good이었는데

이게 조오오온나게 히트를 쳐서 유럽 조까고 미국까지 빗물을 싸질러주며[6]영국을 제외하고는 비틀즈 급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건 아니지만 그룹 이름은 알아줄 정도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으면서 승승장구를 하나 싶었는데.....


1995년 승승장구 하던 Take That에서 막내였던 로비 윌리엄스(당시 21세)가 급식충 때부터 그룹 내의 규칙과 매니저의 완장질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급식 때부터 돈의 맛에 너무 들여지다 못해 절여져서 코카인 빨고 여자들과 뒹굴 거리며 섹스만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자 보다못한 형님들과 매니저들이 막내의 멘탈 케어에 참가하는데

급식충 때 부터 제대로 된 교육받지 못하고 돈과 명성에 맛 들린 놈이 제정신으로 받아들일리가 있나?

그렇게 그룹 내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에 막내와 형님들의 신경전을 치루다보니 그룹 분위기는 항상 어두웠고 당연히 그룹 활동 또한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그룹 내에서도 수많은 러 논쟁이 많았지만 특히나 리더인 게리 발로우와의 격한 논쟁으로 빡칠만큼 빡친 로비는 기어코 그룹 활동을 안 하기 시작하다

결국 1996년에 로비의 22살 생일 날에 그룹이 해체가 된다.


탈퇴 이후[편집]

우리가 쉬는 10년 동안, 나는 롭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뒤통수를 친 것보다 나빴다.

 
제이슨 오렌지. 2006년 Q매거진 인터뷰에서...


영국 최정상 그룹이었던 테이크 댓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굳이 알기쉽게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당시의 영향이 한국보다 몇 배는 더 큰 국토 면적을 가진 영국에서 수십 수백 배가 넘는 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혹은 그 이상일수도.


영향은 팬들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는데.

Take That이라는 그룹이 출발 할 당시 다들 어린 나이에 서로 동거동락 하면서 말 그대로 가족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서로를 진짜 형제처럼 생각하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 새끼가 안 좋은 길로 빠져서 가족이 붕괴가 된 것인데. 첫 째로 가족이 붕괴 된 것에 대한 충격도 있지만

형들이 되서 막내를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지게 했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써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이 당시 상황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팬들의 잇따른 자살 시도가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자 이들을 위한 전화 상담 서비스까지 마련이 될 정도였고,

심지어 그룹 멤버였던 하워드 도널드는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었다.


해체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먼저 팀의 리더였던 게리 발로우는 우수한 작사, 작곡 실력[7] 과 노래 실력 그리고 ㅆㅅㅌㅊ는 외모로 모두가 예상했듯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예상하였다.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데뷔 싱글인 Forever Love과 데뷔 앨범인 Open Road 둘 다 UK 차트 1위에 등극 하였고 2번째 싱글은 마돈나가 작곡 한 Love Will not Wait도 차트 1위를 달성하였고 So Help Me Girl는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하는 듯 싶었으나......2번째 앨범인 Twelve Months, Eleven Days의 처참한 실패[8]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로비 윌리엄스의 유명한 사건 이었던 엔젤 대폭발[9]로 압살 당한데다

팀을 뛰쳐나간 막내와 팀의 리더의 대결 구도를 재미있게 보고있던 영국 언론들의 참전까지 더해져 영국은 팀의 막내인 로비 윌리엄스에게 주목하게 되었고 팀의 리더였던 게리 발로우는 관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째로 마크 오웬은 그룹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마크 오웬은 당시 왕자님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신사적인 외모와 게리 발로우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준높은 보컬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솔로 활동에도 기대를 가질 수 있었고 출발 또한 청신호였다.

첫 데뷔 싱글인 Child와 두 번째 싱글인 Clementine은 UK차트 3위를 기록하며 솔로 활동의 순조로운 출발을 하나 싶었으나... 첫 데뷔 앨범인 Green Man은 3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 후 두 번째 앨범인 I Am What I Am은 29위의 성적에 그치면서 계약사인 BMG 레코드와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고 역시 관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팀 내에서 춤만 잘 추던 하워드 도널드와 제이슨 오렌지 2인조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하워드 도널드는 다시 클럽으로 돌아가 그룹 참가 전부터 해왔던 DJ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성공했다. 실력은 좋은 편인지 아직도 영국 클럽에서 DJ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제이슨 오렌지는 음악계를 떠나 배우로써 무대에 오르며 활동했지만 성공에 실패하여 오디션에 오르는 일도 뜸해지게 되는 등 솔로 활동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대학교에서 심리학 생물학등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며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팀의 해체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막내 새끼인 로비 윌리엄스는 어떻게 되었느냐?

이 막내 새끼의 솔로 활동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도 길지만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탈퇴 이후 초기에는 아직 방탕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언론에서는 "보이밴드 출신의 뚱땡이 댄서" 라고 조롱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그룹 활동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살도 찌는 등 그냥 돈에 찌들린 전형적인 추락하는 졸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또 당시 인기있던 락밴드 오아시스와도 기묘한 인연이 있는데 로비 윌리엄스가 록큰롤을 배우려고 리암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며

더욱 재밌는 사실은 이 당시 로비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로비와 같이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기회를 노리던 리암 갤러거가 로비의 여자친구를 빼앗았고 후에 결혼까지 했는데

이 여자가 바로 리암의 전처였던 니콜 애플턴이다.

이 사건으로 로비 윌리엄스와 갤러거 형제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으며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 솔로 활동 하더니 자기보다 더 인기를 얻게되면서 시상식에서 서로 디스를 하는 등 사이가 진전 될 확률은 없어보인다...

솔로 활동에 대해 자세히 적기에는 너무 길어서 적기 힘들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뭐 이런 저런 사건이 많았지만 어쨋든 정신차리고 제대로 솔로 활동을 하고 영국 최고의 락스타에 등극하면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하게됫다는 것이다.

전설의 귀환[편집]

해산하고 다시 결성 해 여기까지 성공하는 아티스트는 지금까지 아니라 앞으로도 없을 것.

 
브릿 어워드 수상 당시.


그러던 중 2005년 팀 해산 후 10년 뒤 각자의 삶에 대한 주제로 다큐멘터리 Take That : For the Record을 방영하면서 복귀에 대한 밑밥을 깔기 시작하고 같은 해에 Never Forget을 재발매 했는데 이게 영국에서 존나게 잘 팔리자

Polydor Record와 거액의 계약을 치른 후 2006년 5월 게리 발로우가 "전례없는 최고의 앨범을 만든다"라고 언급하며 10년만의 Take That이 다시 뭉쳐서 재녹음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로비 윌리엄스에게는 복귀 의사에 대한 의견을 보냈지만 로비는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로비가 없는 4명이서 Take That을 재결성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대 UK 음악의 정점을 차지하였지만 오랜시간 동안 활동을 접었던지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에 10년이란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었고

Take That을 모르는 신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하는 등 복귀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실패에 대한 우려도 많았으며 여론또한 퇴물의 귀환이라는 분위기로 몰고가는 듯 하여 좋지않은 시선 속에서 재결성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재결성 후 첫 싱글 앨범인 Patience를 출시하자 예상은 완전히 뒤짚어졌다. 출시 후 2주만에 UK차트 1위를 기록. 두 번째 싱글인 Shine또한 UK차트 1위를 달성하였고

이후 첫 앨범인 Beautiful World는 발매 1주일만에 UK차트 1위를 달성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무려 6주동안 UK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유례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복귀를 시작하였다.

이후에는 딱히 이렇다 할 말이 없을만큼 꾸준히 성공가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문단에서는 이제 딱히 적을 말 없으니까 투어 공연에 대한 소개나 할란다.


The Ultimate Tour[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2006년 Take That - The Ultimate Tour 공연중 일부인데 축구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이 Take That의 10년만의 복귀 공연 하나를 보기위해 몰려든 것이다.

Take That의 성공가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재결성 후 첫 앨범 Beautiful World 출시 하루 전인 11월 26일부터 2개월간 Take That의 재결성 투어인 The Ultimate Tour를 하기로 발표하였는데
이 소식이 퍼지고 투어 공연 티켓의 판매가 시작한지 단 30분만에 전석 매진 나머지 공연 일정에 대한 티켓 또한 단 3시간만에 매진[10]하면서 이때까지 복귀에 대해 좋지못했던 여론들에게
제대로 빅-엿을 먹이면서 세계적으로 손 꼽을 정도로 매우 성공적인 복귀를 하였다.


Beatiful World Tour[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1. 2006년 The Ultimate Tour 세계투어 공연 당시
  2. 2009년 The Circus Live 투어 당시
  3. 2010년 로비 윌리엄스의 복귀 기념 Progress Live 투어 당시
  4. 이 당시 로비 윌리엄스는 16살로 Take That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급식충이었다.
  5. 당시에 찍었던 화보 ※살색 혐짤 주의※[1]
  6. 이 때 당시 미국 빌보드 차트 7위에 올랐다.
  7. 90년대 당시 Take That의 모든 노래중 단 2곡을 제외하곤 전부 게리 발로우의 작품이다.
  8. 최고 성적 35위였고 이후 84위로 떨어지다가 그리고 차트 아웃 이 모든 일이 앨범 출시 후 단 3주만에 벌어진 일이다.
  9. 1997년 로비 윌리엄스가 발표한 4번째 싱글 Angel로 전세계 2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성공으로 로비 윌리엄스를 단숨에 영국 최고의 락스타로 부상하게 해준 사건.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