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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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들도 죽창과 발터에는 한방이무니다. 죽창...죽창을 가져와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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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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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앞에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주욱창을 가져와라...
대한민국 부통령
대수 재임 기간 이름 정당
제1대 1948년 7월 24일 ~ 1951년 5월 9일 이시영 무소속
제2대 1951년 5월 17일 ~ 1952년 5월 29일 김성수 민주국민당
제3대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함태영 무소속
제4대 1956년 8월 15일 ~ 1960년 4월 25일 장면 민주당
야인시대 정치인들 (제1공화국)
정부/자유당 이승만 이기붕 곽영주 장경근 장택상 신성모 최인규 신도환
야당 조병옥 신익희 유진산 장면 전진한 조봉암 김영삼 김성수

1891년 ~ 1955년

김성수(金成洙)의 이름은 물가에서 금을 이룬다는 뜻이다. 즉 댐이 될 운명이다.

전라도 만석꾼 출신의 금수저. 경성방직 및 동아일보 설립자. 중앙고를 세우고,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광복 후 고려대학교로 바꿨다.

말년엔 한국민주당을 세우기도 했다. 반독재 운동에 몸담기도 했는데. 친일파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 독립운동가인 이승만의 독재 정권에 항거한 건 좀 아이러니하다.

ㄴ 아이러니한 게 아니라 이승만이 "너 친일파네? 죽어!" 하면 죽을 수밖에 없어서 민주주의를 팔 수밖에 없었다. 생계형 민주주의자라고 해야 한다.

ㄴㄴ 승먼'더 하와이' 리은 오히려 친일파를 적극 등용했다. 김원봉이 왜 월북했겠냐. 매국노 런승만이 노덕술 등용했고, 김원봉이 독립이 됐는데도 노덕술한테 빨갱이라면서 고문받으니까 빡쳐서 간거임. 승만이는 오히려 반민특위(친일파 조사하는 단체)를 해체하고, 반민특위 단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갔음.

돈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당시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면 저절로 면상이 찌푸러진다. 근데 뭔가 친일파라고도 하긴 좀 그런 인물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김성수 이 사람만큼은 친일파가 아니라고 빼애액하셨는데 김수환 스승이 장면, 장면 역시 친일파로 김성수와 같은 한민당이라서 김성수를 친일파라고 까면 지 스승에게까지 화살이 날아와서 진영 논리로 실드 쳤으니 무시하도록 하자. 물론 초창기엔 독립운동에 지원했으나 결국 후기엔 독립 가능성 없다고 철저하게 일제에 충성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철저한 친일을 하든지 아예 반일을 하든지. 이래서 사람은 외길을 걸어야 한다.

결국 2018년 2월 13일자 국무회의를 통해서 1962년에 받았던 서훈이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