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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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복지역 김화군 이천군 통천군 평강군 회양군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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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부군면 통폐합 당시 김화(金化)군과 금성군을 통폐합해서 만든 행정구역. 해방직후 모든 땅을 뷱괴가 통치했으나, 6.25전쟁때 구김화권을 대부분, 구 금성권의 극히 일부를 머한민국이 수복했다. 근데 접경지대라서인지 비효율적이라고 철원이랑 통폐합했더니, 철원권하고 또 지역감정 일어났다고 한다.

북괴들은 대부분의 금성권을 창도군으로 승격시키고, 후에 금성면 근처에 김화군을 분리시킨다.

상당한 군사요충지였는데, 6.25때 철원, 평강과 더불어 철의 삼각지대라 불렸다 칸다. 실제로 전쟁막바지 당시 이지역은 얄쨜없이 가장 치열했다. 구 금성지역은 짱깨군이 금성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북괴령으로 넘어갔다.(대략 190㎢ 정도를 뺏겼다. 만약 이 지역이 먹히지 않았으면 철원으로 합병되지 않을수도 있었다)

(일부지역은 민통선에 있으나 남한지역에 행정권이 드는곳이므로 표기)

이남 지역에 (구)김화군 면적은 334.85㎢ 이며 작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월래 (구)김화군 면적은 492.6㎢이다

현재 이남의 구 김화군과 금성군 면적은 490.71㎢, 인구는 12,609명이다.

본래 1908년에 김화군을 금성군에 합병했으나, 이후 1914년 다시 분리 후 합치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김화군으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인구가 김화군이 더 많긴 했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만약 다시 행정권이 돌아온다면 근동면 근북면을 합치고 1읍3면이거나 남한령 구 금성군지역(원남면 77.99 ㎢,원동면 61.08 ㎢,원남면 16.79 ㎢ )합치던가

읍면[편집]

전체수복[편집]

김화읍[편집]

1944년 기준 면적 48.02㎢ , 인구 1만 1887명.

2017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87.95 ㎢, 인구 3,865명

읍소재지는 와수리이다.

김화군의 중심지로 1917년 군내면에서 김화면으로 개명되었고 1941년 김화읍으로 승격되었다. 6.25 전쟁이후 전지역을 수복했으며 1961년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읍의 중심지고 읍내리에서 학사리로 옮겨졌다.

고려 고종시기 몽골군을 막기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산성이 있다.

1973년 7월 1일 서면의 청양리, 도창리를 흡수하면서 면적이 넓어졌다.

근남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23.79㎢, 인구 6,892명.

2016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129,13㎢, 인구 2,331명

광복당시 관할했던 6개리 전체를 대한민국이 수복했다.

서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21.93㎢, 인구 6,280명.

2016년 12월 31일 기준 74.33㎢, 인구 6,313명.

상기한 대로 1973년 7월 1일 4개리중 청양리, 도창리를 김화읍에게 나눠주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면소재지는 과거 청양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인구의 30%와 면적의 85%를 차지하는 자등리, 통칭 신수리 일대로 옮겨졌고 와수리에는 서면 와수출장소가 생겼다.

부분수복[편집]

100%수복은 못하고 일부를 북괴에 넘겨주고 말았던 읍면들이다. 후술할 미수복지역과 부분수복모두 금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수복에 실패하고 그렇게 끝났다. 그나마 부분수복이라 불릴만 한건 근동면과 근북면이다. 원남, 원동, 임남면은 부분수복이라 부르기는 어려운데 이 지역들은 민간인 출입금지지역으로 부동산 토지거래가 제한되는 국내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곳들이다.

민통선 이북에 있기 때문에 모두 무주다. 근북, 근동면은 철원 소재 3사단15사단 예하 부대에게 신분증을 건네주면 들어갈 수 있고, 원남, 원동, 임남면은 주소상 철원이지만 굳이 꼭 들어가고 싶으면 화천 7사단 예하 부대의 부대원 몇명을 동행시켜야만 들어갈수 있다.

근동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94.80㎢, 인구 6,811명.

1914년 초동면과 이동면을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본래 교전리, 광삼리, 방통리, 하소리, 아침리, 수태리의 6개리를 관할했는데 이중 광삼리와 방통리 대부분의 19.71㎢만을 수복했다. 민통선이북에 있어서 아무도 살지않는다.

북괴로 넘어간 나머지 4개리는 북괴치하에서 구봉리(북괴령 방통리), 수태리(수태리 + 아침리), 근동리(하소리 + 교전리 + 북괴령 광삼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수태리와 근동리는 북괴령 평강군으로 이관되었다.

근북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98.72㎢, 인구 9,992명.

2016년 기준 109명이 유곡리에 거주하고 있다.

1914년 초북면과 원북면을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본래 관할했던 두촌리, 금곡리, 백덕리, 유곡리, 율목리, 건천리, 성암리, 산현리의 8개리중 유곡리, 율목리, 백덕리, 금곡리의 23.73㎢를 수복했다.

미수복지역은 성산리(성암리 + 산현리), 건천리(건천리 + 두촌리)로 개편되어 창도군으로 들어갔다가 북괴령 평강군으로 이관되었다.

원남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63.76㎢, 인구 8,349명.

1914년 금성군 남면에서 김화군 원남면으로 개편되었다.

본래 관할했던 개야리, 경상리, 주파리, 죽대리, 남둔리, 노동리, 풍동리, 진현리, 월봉리, 백양리, 구룡리의 11개리중 노동리, 주파리, 죽대리, 진현리의 77.99㎢ 수복했다.

미수복지역은 1953년 휴전이후 원남리(경상리 + 개야리 + 남둔리 + 미수복 노동리 + 미수복 죽대리), 구봉리(구룡리 + 월봉리)로 개편되어 김화군에 속하게 되었고 백양리는 평강군 수태리의 일부가 되엇다.

원동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55.71㎢, 인구 7,060명.

1914년 금성군 동면을 1914년 김화군 원동면으로 개편했다.

본래 관할했던 장연리, 방평리, 용연리, 율사리, 송실리, 세현리, 등대리의 7개리중 등대리, 세현리의 2개리인 61.08 ㎢를 수복했다.

미수복지역은 김화읍(장연리), 용현리(용연리 + 송실리 + 미수복 세현리 + 미수복 등대리), 원동리(방평리 + 율사리)로 개편되어 김화군으로 들어갔다.

임남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97.39㎢, 인구 8,852명.

1914년 금성군에서 김화군으로 편입되었다.

본래 관할했던 사천리, 노남리, 봉잔리, 좌패리, 면천리, 두목리, 상판리, 달전리, 과호리, 어운리, 수동리의 11개리중 수동리의 16.79㎢만을 수복했다.

미수복지역은 상판리(달전리 + 상판리 + 좌패리 + 두목리 + 노남리 + 사천리), 어호리(어운리 + 과호리 + 미수복 수동리), 오천리(봉잔리 + 면천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상판리와 어호리는 김화군, 오천리는 금강군에 편입되었다.

미수복[편집]

금성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패배하면서 모두 공산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금성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12.24㎢, 인구 7,945명

1914년 금성군 군내면과 서면을 김화군 금성면으로 통폐합했다.

북괴치하에서 김화읍(경파리 + 방충리 + 상리 + 후천리 + 원동리), 초서리(초서리 + 별양리 + 어천리), 탑거리(탑거리 + 매회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탑거리는 평강군으로 편입되었다.

원북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80.55㎢, 인구 8,843명

1914년 금성군 북면에서 김화군 원북면으로 개편되었다.

신풍리와 법수리(추의리 + 법수현리), 신창리(고대리 + 탄감리), 당현리(당현리 + 감천리 일부), 원북리(고직리 + 감천리 일부)로 개편되었고 모두 북괴령 김화군에 편입되었다.

창도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31.90㎢, 인구 1만 6708명.

1914년 금성군 기성면[1]과 오산면이 김화군 기오면으로 개편되었고 1938년 창도면으로 개명되었다. 1952년 신설된 창도군의 중심지가 될뻔했지만 2년만에 중심지가 어딘가로 옮겨졌다.

창도읍(유창리 + 창도리 + 득사리), 학방리, 송포리(성현리 일부), 성도리(도성리 + 성현리 일부 + 기성리 일부), 판교리(대백리 일부 + 방성리), 대백리(대백리 일부 + 회현리 + 성현리 일부), 신성리(기성리 일부)로 개편되었지만 창도읍은 창도리로 격하되었다.

통구면[편집]

1944년 기준 면적 124.61㎢, 인구 8,513명.

1914년 통구면이 그대로 금성군에서 김화군으로 흡수되었다.

고구려때까지 수입(水入)이라 불리다가 신라때부터 개명되었던 통구현(通溝縣)이 있던 곳이다.

장현리(통현리 + 장안리 + 화평리 일부), 당산리(당평리 + 보막리 + 삼태리), (화평리 일부 + 화사리 일부 + 도파리), 통구리(현리 + 화사리 일부 + 북둔리),로 개편되어 창도군으로 편입되었으며 통구리로 창도군의 중심지가 옮겨지면서 통구리는 창도읍으로 승격되었고 1958년 장현리는 도화리의 일부를 흡수했다. 창도읍은 2000년 11월 당산리와 성도리에 편입되면서 폐지,

  1. 고구려 동사홀(冬斯忽)에 설치된 신라의 행정구역 기성(岐城)이 있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