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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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련하겠지만 람조선레서 북괴롬덜를 찬량하른 것른 명백한 불법립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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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릴성, 김정릴, 김정른 개돼지씹새끼!!! 김정른 래미래비 처뒤진 개씨발새끼!!!

홍천군(1,820㎢)보다 약간 더 넓은 군이었다. 양구군의 수입면도 원래는 회양군의 면들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감자국의 행정구역
특별시 춘천특별시
광역시 원주광역시 · 강릉광역시
일반 도시 태백시 · 삼척시 · 동해시 · 속초시
미개척 지역 고성군 · 양구군 · 양양군 · 영월군 · 인제군 · 정선군 · 철원군
평창군 · 홍천군 · 화천군 · 횡성군
북괴령 김화군 · 이천군 · 통천군 · 평강군 · 회양군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강원특별자치도행정구역
자치시 파일:강릉시로고.gif강릉시 파일:동해시로고.gif동해시 파일:삼척시로고.gif삼척시 파일:속초시로고.gif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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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군 파일:강원고성군로고.gif고성군 파일:양구군로고.gif양구군 파일:양양군로고.gif양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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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평창군로고.gif평창군 파일:홍천군로고.gif홍천군 파일:화천군로고.gif화천군 파일:횡성군로고.gif횡성군
미수복지역 김화군 이천군 통천군 평강군 회양군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미수복 강원도의 5개군중 하나. 이천군과 함께 미수복 강원도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군으로 꼽힌다. 하지만 면적은 1,899.81㎢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수입면을 합하면 무려 2,000㎢에 달한다...

연혁[편집]

회양면 읍내리에서 신석기유적이 발견되었고 사동면 하사동리, 하지석리에서 탁자식 고인돌이 1기씩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엔 가혜아(加兮牙)로 불렸다가 고구려치하에서 각련성군(各連城郡)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각련성군에서 각(各)이 객(客)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진흥왕의 북진정책때 신라의 땅이 되었는데 철령을 통해 한반도 북부에서 중부로 들어올 수 있는 요지였다보니 나당전쟁당시 임진강못지않게 신라와 당간의 전쟁이 치열했다.

전쟁이후 경덕왕때 연성군(連城郡)으로 개명되고 단송현, 희령현, 질운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 잠깐 이물성(伊勿城)이라 불렸다가 995년 교주(交州)로 승격, 단련사가 파견되었고 1018년 방어사가 파견되었고 지금의 김화군회양군전역의 장양군, 금성군, 남곡현, 통구현, 기성현, 화천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1308년 철령이 중북부지방 최대 군사요충지로 주목되고 적을 파수하여 끊은 데 공이 있다 하여 회주목(淮州牧)으로 승격됬지만 1310년 목이 폐지되면서 회양부(淮陽府)로 강등되었다.

조선때도 철령은 함경도와 그 이남을 잇는 중요한 관문이었기 때문에 가원도 북부 최대 군사도시가 되어 1413년 도호부, 세조시기 진관도호부, 1618년 방어사, 1695년 토포사가 파견되었고 인근의 금성군, 흡곡군, 통천군, 고성군, 간성군, 안협현, 이천현, 평강현, 김화현, 난청현등을 통관했다. 하지만 1746년 진관도호부가 철원으로 옮겨지면서 망테크를 탔다.

이후 38선이북에 있어 소련군정에 이어 북괴치하로 넘어갔는데, 군사적으론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린 평강군, 김화군, 철원군이 푸시를 많이 받아서 버려졌으나 백마고지 전투, 저격능선 전투, 금성 전투등으로 인해 舊 금성군을 제외한 철원과 김화의 대부분을 상실, 평강군이 전방이 되면서 지금은 북괴군 동부전선의 핵심 요충지가 되었다. 그래도 과거 회양군의 면들중 하나인 수입면 남부의 일부분은 차지했으니 회양군의 일부는 수복한 셈이다.

읍면[편집]

회양면[편집]

淮陽面

면적 169.68㎢. 면 소재지는 읍내리.

읍내(邑內), 상만(上萬), 대유(大有), 소풍(素豊), 강돈(江敦), 아현(峨峴), 하교동(下橋洞), 상교동(上橋洞), 금태일(金台日), 광석(廣石), 전항(箭項), 장벽동(長碧洞), 마룡(馬龍), 두전동(豆田洞), 고대(高垈), 갈화(葛花), 봉현(蓬峴), 하토기점(下土器店), 외강돈(外江敦), 지석(支石), 추방(秋芳), 신안상(新安上), 신안중(新安中), 오동(梧洞), 이동(二東), 간동동(間洞), 관(館), 고재(高才), 노동(盧洞), 부로지(扶老只), 심포(深浦), 송치(松峙), 연포송(延浦送), 곡돌(曲乭), 포촌(浦村) 의 37개리를 관할했다.

회양군의 중심지로 본래 부내면(府內面)이라 불렸는데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이동면(二東面)이 통폐합되었고 1938년 회양면으로 개명되었다.

면 동부에 병풍산(屛風山, 927m), 남부 백아산, 촉조봉(蜀鳥峰, 661m), 북부 철마령등이 솟아 있고 중앙에도 마룡산(馬龍山, 891m)이 가로놓여 있으며, 산세는 남서족으로 점차 완경사가 되어 남서부 읍내에 평지가 만들어진다. 북한강이 서부면계를 흐르고 북한강의 지류가 북한강쪽으로 남류한다.

광복직후 곡돌리, 송치리, 심포리, 연송포리, 관리, 고재리, 신안중리, 신안상리, 노동리, 추방리, 오동리, 이동리, 부로리, 지석리가 신안면(新安面)으로 분리되었고 하교동리가 1, 2리로 분리되었다. 또한 금태일리와 상교동리가 금교리(金橋里)로 통폐합되었고 아현리, 장벽동리가 폐지되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엔 강돈리가 내, 외강돈리로 분리되었다.

신안면에선 와포리가 신설되었고 신안중리와 신안상리가 신안리(新安里)로 통폐합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회양읍(읍내리 + 하북면 초일리 일부), 광전리(고대리 + 갈화리 + 광석리 + 두전동리), 전항리(마룡리 + 전항리), 하교리(하교동일리 + 하교동이리 + 금교리 + 신흥리), 소풍리(대유리 + 소풍리), 강돈리(외강돈리 + 내강돈리 + 상만리), 교주리(봉현리 + 지석리 + 이동리 + 부로지리), 신동리(오동리 + 추방리), 신안리(관리 + 노동리 + 신안리), 구룡리(심포리 + 고재리), 송포리(연송포리 + 와포리 + 송치리 + 창도면 성현리 일부), 추전리 일부(곡돌리 + 난곡면 추전리)로 개편, 전지역이 회양군으로 편입되었다.

1987년 교주리, 신동리, 신안리, 구룡리, 송포리, 추전리가 안풍면에서 신설된 명우리와 함께 창도군으로 이관되었다. 이중 신안리는 2000년 11월 창도읍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난곡면[편집]

蘭谷面

면적 341.92㎢. 면 소재지는 현리.

현(縣), 수천동(水泉洞), 봉통포(蜂桶浦), 천읍(泉邑), 조동(槽洞)ㅡ 이포(泥浦), 귀락(貴洛), 유읍(楡邑), 추전(楸田), 봉일(鳳逸), 직포(直浦), 오동(梧洞), 동사동(東沙洞), 토동(土洞), 신평(新坪), 공동(公洞), 상송관(上松館), 하송관(下松館), 낭하(浪下)의 19개리를 관할했다.

사비근을(沙非斤乙)이라 불렸다가 고구려가 이 지역에 적목진(赤木鎭)ㅇ을 두었다. 나당전쟁시기 거란, 말갈로 구성된 당군의 침공을 받은 곳이기도 한데 나당전쟁이후 경덕왕때 단송현(丹松縣)으로 개편되어 연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현종시대에 남곡현(嵐谷縣)으로 개명되었는데 이후 남(嵐)에서 난(蘭)으로 바뀌어 난곡면이 되었다.

8.15 광복이후 수천동리, 추전리, 조동리, 오동리, 현리, 유읍리, 공동리, 하송관리, 천읍리가 1,2리로 분리되었고 귀락리, 신평리가 1,2,3리로 분리되었다.

6.25 전쟁도중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포천리(이포리 + 천읍리), 봉포리(수천동리 + 조동2리 + 봉통포리), 오봉리(봉일리 + 오동리), 귀락리, 유읍리(조동1리 + 유읍리), 추전리(신안면 곡돌리 + 난곡면 추전리), 상송관리(상송관리 + 공동1리 + 공동2리), 하송리(하송관1리 + 하송관2리 + 평강군 현내면 낭하리), 현리(직포리 + 현1리 + 현2리), 신평리(신평1리 + 신평2리 + 신평3리 + 속사동리)로 개편, 포천리, 봉포리, 오봉리, 귀락리, 유읍리, 추전리는 회양군으로 편입되었고 상송관리와 하송리는 평강군에, 신평리와 현리는 세포군에 편입되었다.

귀락리, 오봉리, 유읍리는 1958년 세포군으로 이관되었고 1967년 봉포리의 일부가 강돈리에 편입되었다. 1987년 추전리가 창도군으로 이관되었고 2001년 1월 27일, 1958년 세포군으로 넘어간 3개리가 회양군으로 돌아왔다. 2000년 1월 27일 세포군에 속했던 현리와 신평리가 회양군으로 돌아왔다.

내금강면[편집]

內金剛面

면적 501.42㎢. 면 소재지는 말휘리.

말휘(末輝), 병이무지(竝伊武只), 상신원(上新院), 금강원(金剛院), 정양동(正陽洞), 장연(長淵), 온정동(溫井洞), 하신원(下新院), 상북점(上北占), 상현(上縣), 하북점(下北占), 하현(下縣), 삼덕동(三德洞), 하소곤(下小坤), 하회이(下檜耳耳), 순갑(順甲), 신풍(新豊), 유동(柳洞), 봉현(蓬峴)·상회이(上檜耳), 상소곤(上小坤), 추동(楸洞), 동사동(東沙洞)의 23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마근압(馬斤押)이었는데 고구려가 이곳에 대양관군(大楊管郡)을 설치했고 이 때문에 대양성(大楊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덕왕때 대양군(大楊郡)으로 개명되었다가 고려때 장양현(長楊縣)으로 격하, 회양의 속현이 되었다. 이 때문에 본래 장양면이라 불렸으나 부군면 통폐합때 내금강면으로 개명되었다.

이름에서 센타 깔 수 있듯 금강산으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리기 때문에 금강천, 동금강천이 남류하여 북한강으로 들어가는 지역을 빼면 전지역이 산악지대이다. 8.15 광복이후 말휘리, 순갑리, 신풍리, 상소곤리, 속사동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6.25 전쟁당시 전선인 양구, 인제아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격전지가 되었다. 국군미군맹조의 발톱 작전을 통해 이지역부터 시작하여 강원도 전역을 수복, 원산까지 진격코자 했지만 확전을 꺼려했던 트루먼 행정부의 반대때문에 GG치고 전지역이 북괴땅으로 넘어갔다.

북괴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면을 금강읍(말휘리 + 유동리), 속사리(속사동리), 현리(상현리 + 하현리 + 하소곤리), 하회리(양구군 수입면 분지수리 + 상이리 + 하회이리), 소곤리(상소곤리), 북점리(상북점리 + 하북점리 일부), 순갑리(순갑리 + 하북점리 일부), 현동리(봉현리 + 추동리), 신풍리(신풍리 + 정동리 일부), 금천리(금강원리 + 온정동리 일부), 내강리(삼억동리 + 정양동리 + 장연리), 병무리(병이무지리 + 중산리), 신원리(하신원리 + 상신원리)로 개편, 전지역과 미수복 인제군이 금강군으로 편입되었다.

1961년 금천리 일부가 풍미리, 병무리 일부가 북점리로 편입되었고 1977년 신풍리가 단풍리로 개명되었다. 1999년 병무리, 내강리가 내금강리로 통폐합되었고 금강산 관광이 이뤄지던 2000년 11월 경에 미수복 양구군대부분지역이 금강군으로 이관되었다.

사동면[편집]

泗東面

現 북괴령 강원도 금강군 신교리, 신읍리, 창도군 사동리, 신성리, 지석리, 금산리, 산월리, 곡산리.

면적 157.13㎢. 면 소재지는 하사동리.

하사동(下泗東), 상구만(上九萬), 상지석(上支石), 하지석(下支石), 금곡(金谷), 회동(淮洞), 상사동(上泗東), 사동(沙洞), 간점방(間占方), 상점방(上占方), 하구만(下九萬), 동사동(東寺洞), 양수암(兩水庵), 만도(晩到), 산월(山月), 능동(菱洞), 이교(泥橋), 쌍계평(雙鷄坪), 신읍(新邑), 마전동(麻田洞), 사기점(沙器店), 광동(廣洞), 하양(下陽), 신흥(新興)의 24개리를 관할했다.

면 북쪽 백암산(白庵山, 1,241m), 동남쪽 구학산(九鶴山, 930m) 서남쪽 촉초봉등이 높이 솟아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 남서방향으로 경사져있다. 북한강의 지류인 사동천(泗東川)이 면 중앙을 넘서류 하여 면경계에 흐르는 북한강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문에 좁지만 괜찮은 경작지가 형성되었다. 또한 신읍리, 쌍계평리, 상점방리, 은계리, 신흥리등이 있는 북동부지역은 북한강의 발원지에 해당한다.

하지석리, 하사동리에 북방식 지석묘, 상구만리와 사동리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와 사층, 육층석탑이 남아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신교리(이교리 + 쌍계평리)[1], 신읍리(마전동리 + 신읍리 + 광동리), 곡산리(상구만리 + 금곡리), 산월리(상점방리 + 산월리 + 사동리 + 간점방리), 사동리(하양리 + 상사동리 + 회동리 + 하사동리), 신성리(만도리 + 능동리 + 양수암리), 지석리(상지석리 + 하지석리), 금산리(속사동리 + 하구만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신교리, 신읍리, 곡산리, 산월리는 금강군, 사동리, 신성리, 지석리, 금산리는 창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987년 산월리와 곡산리가 창도군으로 이관되었다. 2000년 11월 기성리 일부가 신성리에 편입되었다.

상북면[편집]

上北面

現 북괴령 강원도 회양군 전곡리, 용포리, 오랑리, 신명리, 도납리, 기정리.

면적 283.11㎢. 면 소재지는 목곡리.

목곡(木谷), 상전탄(上田灘), 두허동(斗虛洞), 하진평(下津坪), 신명(新明), 용연(龍淵)·송포(松浦), 모덕(慕德), 하전탄(下田灘), 오랑(五郎), 중중신정(中新正), 도납(道納), 판기(板機), 상신정(上新正)의 14개리를 관할했다.

1938년 상초북면(上初北面)으로 개명되었다. 면 동부에 우동산, 서부 수암봉(秀巖峰, 831m), 남부 철마령(鐵馬嶺, 1,047m), 북부 망마암산(望馬巖山, 1,091m), 장사봉(將師峰, 971m)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내려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뤄져있다. 여러 산지에서 발원한 개울들이 북한강으로 들어가고 이 합류지점마다 평지가 조금씩 형성되있다.

광복직전 모덕리가 막덕리(莫德里)로 개명되었고 광복직후 오랑리, 신명리, 도납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이후 군면리 대폐합 때 전곡리(하전탄리 + 상전탄리 +두허동리 + 목곡리), 용포리(하진평리 + 송포리 + 막덕리 + 용연리), 오랑리(신명일리 일부 + 오랑일리 + 오랑이리), 신명리(신명일리 나머지 + 신명이리 + 상신정리 일부), 도납리(도납일리 + 도납이리 일부 + 상신정리 나머지), 기정리(도납이리 나머지 + 중신정리 + 판기리)로 개편, 전지역이 회양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용포리 일부지역이 회양군 소풍리로 이관되었다.

안풍면[편집]

安豊面

면적 251.22㎢. 면 소재지는 신창리.

신창(新昌), 흥인동(興仁洞), 가동(佳洞), 본(本), 화산(花山), 방목((方目), 명우(鳴牛), 안미(安美), 추동(楸洞), 용암(龍巖), 판유(板踰), 백후(栢后), 판맥(判陌), 중세동(中細洞), 상세동(上細洞), 풍미(豊美), 성동(城洞), 화천(化川), 장치동(長峙洞)의 19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수성천현(藪狌川縣)이라 불렸는데 경덕왕시기 수천현(藪川縣)으로 개명되어 대양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초 화천현(和川縣)으로 개명되어 회양의 속현이 되었고 이후 화천리가 되었다.

면 동쪽은 응산(鷹山, 1,231m), 북서부는 철마령, 남부는 백암산(白庵山), 북부는 고윤산(古尹山, 1,225m) 등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그 여맥이 면 전역에 미쳐 대부분 산지로 이뤄져있다.

광복직후 백후리가 백석리(栢石里)로 개명되었고 명우리가 판유리를 통폐합했으며 명우리, 풍미리, 방목리가 1, 2리로 분리되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장치동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명우리(명우일리 + 명우이리 + 백석리), 화천리(화천리 + 가동리 + 본리), 방목리(흥인동리 + 방목일리 + 방목이리), 풍미리(풍미일리 + 풍미이리 + 성동리 + 장치동일리), 금풍리(장치동이리), 안미리(안미리 + 화산리 + 추동리), 용암리(신창리 + 용암리), 세동리(상세동리 + 중세동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명우리는 회양군에, 화천리, 안미리, 용암리, 세동리, 방목리, 풍미리, 금풍리는 금강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 명우리가 화천리 일부를 흡수하고 명우리로 이관되었다.

하북면[편집]

下北面

現 북괴령 강원도 회양군 금철리, 금곡리, 선대리, 신계리, 마전리.

면적 195.34㎢. 면 소재지는 지탄리.

지탄(只呑), 상평(上坪), 초일(初一), 초남(初南), 마산(麻山), 은계(銀溪), 문내동(文內洞), 선암(仙巖), 대일(台日), 금곡(金谷), 철령(鐵嶺), 하정신(下正新)의 12개리를 관할했다.

1938년 하초북면(下初北面)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면 동부 수암봉, 서부에 연대봉(淵臺峰, 1,207m), 남부에 풍대령, 북부에 풍류산, 철령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그 여맥을 따라 면전역이 산지로 구성되있다. 북한강의 지류가 중앙을 남류한다.

광복이후 지탄리, 마산리, 대일리, 철령리, 금곡리, 하신정리가 1, 2리로 분리되었다. 이후 군면리 대폐합 때 금철리(지탄리 + 철령리), 금곡리(금곡리 + 하정신리 + 선암리 일부), 선대리(대일리 + 선암리 일부), 신계리(문내동리 + 마산일리 + 상평리 + 은계리), 마전리(초일리 일부 + 초남리 + 마산이리), 회양읍 일부(초일리 일부)로 개편되어 전지역이 회양군에 편입되었다.

  1. 토교리의 어원이 된 흙다리를 헐고 콘크리트다리를 새로 놓았다 하여 신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