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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여름에 엄청 덥고, 겨울에 엄청 춥다. 후술하겠지만 일교차가 심한 곳이다.

강원특별자치도행정구역
자치시 파일:강릉시로고.gif강릉시 파일:동해시로고.gif동해시 파일:삼척시로고.gif삼척시 파일:속초시로고.gif속초시
파일:원주시로고.gif원주시 파일:춘천시로고.gif춘천시 파일:태백시로고.gif태백시
자치군 파일:강원고성군로고.gif고성군 파일:양구군로고.gif양구군 파일:양양군로고.gif양양군
파일:영월군로고.gif영월군 파일:인제군로고.gif인제군 파일:정선군로고.gif정선군 파일:철원군로고.gif철원군
파일:평창군로고.gif평창군 파일:홍천군로고.gif홍천군 파일:화천군로고.gif화천군 파일:횡성군로고.gif횡성군
미수복지역 김화군 이천군 통천군 평강군 회양군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강원도에 위치한 군이다. 면적은 8만 8943 헥타르. 강원도에 소속되어 있지만 생활권은 포천시의정부권이다. 지리상으로도 경기도 연천군과 바로 붙어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군청, 강원도청 가는 일 빼고 일상생활은 포천시나 의정부시 심하면 동서울권으로 나가서 해결하는게 보통이다. 군바리가 아닌데도 말이다. 감자나 캐먹을 것 같은 이미지의 강원도지만 사실 철원 지역은 철원 평야가 넓게 드리워 있어 벼농사에 딱 좋은 땅이었다. 실제로 고대부터 생활권은 경기북부에 해당되서 신라 경덕왕때 한산주에 편입되었지만 면적문제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강원도에 편입시킨 것이다. 만약 멸공통일에 성공했거나 휴전선이 39도선 이북으로 올라갔다면 행정개편문제로 존나 시끄러웠을듯하다.

일본 쌔끼들이 지들 꼴리는 대로 삭녕군을 폐지해서 북동쪽은 철원군에 붙이고 남서쪽은 경기도 연천군에 붙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개판이 되고 철원군에 속한 옛 삭녕군은 철원읍 독검리만 유일하게 남한에 귀속되고 나머지는 싹 북한 땅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경기도 삭녕군 중에서 남한 영토가 된 거의 대부분의 땅이 경기도 연천군이다.

원래 철원군이 휴전선으로 갈라져서 현재 남한과 북한 각각에 철원군이 있다. 근데 북괴 철원군이 이천군의 舊 안협지역과 스까 마개조되었고 군청도 안협면 소재지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북괴령 철원이 짭이고 대한민국령 철원이 오리지널이다.

모을동비[1], 쇠둘레, 철라디 보스토크, 철원그라드 등 명칭이 다양하다.

임꺽정이 잉어로 변신했다는 구라도 있는데 그게 사실이겠냐. 임꺽정은 참고로 양주군 출신에 메인 활동지는 황해도였다. 바로 나가는 버스가 없다 뿐 생각보다 가깝다.

철원에서 군인을 제외한 젊은사람은 토박이들, 군인가족 자식들, 포천/의정부/춘천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 두 종류 뿐이다.

평야는 개뿔 어르신들 화전하다가 심심하면 산불내는 동네다. 비료도 좋은거 안쓰는가 어딜가도 파리가 존나게 많다.

철원오대쌀이 유명하다는데 마트에서 사먹어보니 박원순서울시쌀이나 쓰레기 일본산 쌀이랑 별반 차이 없더라. 우리 집에서도 먹었었는데 얼마전에 집에 들러보니 최고급 중국산 쌀을 먹고 있더라

└금수저다! 죽창을 가져와라!

최근 박정희 전역 기념 공원을 60억 들여 만들었다. 이중 19억은 중앙정부의 지원. 누구 아버지 기념인데 조금 팍팍 쓰지...는 503번 구속. ^오^ 1963년에 대통령 나오려고 전역식을 여기서 했다.

철원 갈말권과 김화권이 미묘하게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민도는 전반적으로 사나운 편.

동송읍 철원읍 갈말읍의 바가지 상술에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운 태도는 가히 갑 of 갑. 그래서 장병들은 대부분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의정부로 나가버린다. 백마고지역 신설 전에는 39-2번이 대광리에서 철원읍 동송까지 왔다갔다 했고, 신탄리역에서는 마을버스도 있었는데 2014년 8월 15일부로 다 죽었다. 결국 장병들은 고속버스와 의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

기후[편집]

철원은 계절이 3개뿐이다. 존나게 더운 여름, 모친출타한 겨울 그리고 빙하기. 쉽게 말해서 연교차가 심하다.

여름이면 존나게 덥고 겨울이면 좆빠지게 춥다. 괜히 불타는 틀과 얼어붙은 틀이 같이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군대를 철원으로 가면 좆된다.

여름에는 리얼 얼굴이 익을정도로 햇볕이 내리쬐고 겨울에는 영하 10도 위로 올라가면 따듯해진거다... 리얼 헬이다.

특히 겨울이 매우 추운것으로 유명하다. 동토의왕국.

2018년 1월 27일에는 영하 26.9도라는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

남한에서는 극한지로 여겨지며 한파 시즌마다 최저기록을 갈아치운다. 한반도 전체에서도 개마고원, 대관령과 함께 극한지에 해당한다. 1월 평균기온은 생각보다 낮은 편은 아니나 한번 오는 한파가 매우 매서운 특징을 보여주며 가끔 대관령보다 낮은 기온을 보여주기도 한다.

쾨펜의 기후구분으로는 Dwa이다.

교통[편집]

행정구역상 감자랜드이다. 근데 같은 감자랜드보다 경기, 서울 쪽으로 교통이 잘 뚫려있다. 신철원 기준으로 차타고 5분만에 행정구역이 바껴 연천이 나오고 20분가면 포천, 40분가면 의정부 1시간 20분 가면 서울이다. 그런데 바로 밑에 춘천에 가려하면 1시간 20분이 걸린다. 게다가 도로도 꼬부랑길 앰생이라 앞차 천천히 가면 추월도 제대로 못하고 닥치고 따라가야한다.

버스를 타려해도 같은 서울행 버스는 20분마다 배차되어 있는 반면 강원권은 춘천/원주도 거의 없고 영동은 포기해라. 왜냐하면 군바리들이 휴가나오면 닥치고 서울로 쏘니까 그런거다. 또 철원이 평야지만 경기쪽을 빼고는 위아래로 다 산이라 교통이 앰창이다. 당장 춘천/화천만 넘어가려해도 어휴 토나온다. 구불구불하다. 진짜다. 아니면 아예 북쪽 끝까지 올라가 민통선 지나야 한다. 그래서 예전에 경기로 통합한다는 카더라가 있었는데 아직도 심심찮게 있다. 근데 받아주겠냐? ㅋ 여기를? ㅋ

그런데 버스교통편이 영 아니다. 신철원 갈말 버스터미널에 포천시를 거쳐서 의정부동서울, 남양주 등으로 나가는 고속버스들 있는게 전부.

고속도로가 포천까지 이어져있어서 예전보다 숨통이 트이는 편이다. 철도는 경원선으로 백마고지역에서 끊겼다. 그 후 철원, 월정리역으로 연장한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ㄹ혜정부에서 추진한것이기 때문에 탄핵당하고 계획이 흐물흐물해졌다.

군머[편집]

사실상 군머를 위해 존재하는 도시다.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다.

15사단 3사단 6사단 이 여기 걸쳐있다. GOP 동쪽 끝으로 7사단도 한다리 걸치고 있다.

특히 3사단 해골성애자 새키들이 곳곳에다가 해골빠가지를 세워놨다.

악명높은 와수리도 여기에 있다.

덤으로 지뢰도 있다.

사건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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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무시하다 정신병이나 트라우마가 생기더라도 디시위키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9월26일 군부대 사격 훈련 중 도탄에 맞아 군인이 사망했다. 사격장을 사용하던 부대도 사격장을 관리하던 부대도 사격연습중에 주위를 지나가던 부대도 삼위일체로 병신짓을 해서 실탄을 머리에 맞고 군인이 죽는다면 욕이 절로 나온다 ㅅㅂ 군대 개병신 ㅅㄲ들

후에 이 사건은 유탄이라고 결론났다. 물론 도탄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니 더더욱 군머가 병신임을 알게 해준다.

그전에도 K9이 터져서 단체로 실려가고 군부대가 많은 많큼 군인들 많이 죽어나가는 동네다. 지들끼리 사고 많이치지만 부대에서 쉬쉬해서 묻어버린거 진짜 많다.

길 옆에 지뢰라고 쓰인 것은 건드리지 않는게 좋다. 실제 유실된 지뢰를 못찾는 케이스도 많으니까.

역사[편집]

분단이전[편집]

신생대 제4기중 하나인 홍적세때 지하에서 오줌을 지리듯 조용히 분출된 용암이 200~500m높이를 가진 용암대지인 철원평야를 만들었다.

신석기 시대 유물과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모을동비(毛乙冬非), 쇠둘레라고 불렸다가 삼국통일이후 경덕왕이 철성군(鐵城郡)으로 부르게 되었다.

후삼국시대닉 퓨리송악, 패서의 호족들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업글시키기 위해 자신의 기반이던 강원도 북부, 동부와 가까운 이곳에 태봉의 수도를 두면서 국도(國都)가 되었다. 하지만 개같은 제설, 닉 퓨리가 관심법으로 엄한 사람을 마구니로 몰아 철퇴로 때려죽이는 독재에 빡친 왕건휘하 패서지역의 군바리들이 눈다치운 여름에 궁예에게 발터를 쏴제끼고 궁예는 몰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고려가 송악으로 수도를 옮긴뒤 동주(東州)가 되었다.

995년부터 1005년까지 단련사가 행정관으로 파견되었다가 1018년부터 지동주사(知東州事)가 파견되었다. 이때는 김화군, 삭녕현, 평강현, 장주현, 승령현, 이천현, 안협현, 동음현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1254년 동주현(東州縣)으로 강등당했다가 뒤에 목으로 승격되었고 1276년 모든 목을 폐지할 때 지금의 이름인 철원으로 바뀌고 부로 개편되었고 1390년 경기가 확장되면서 교주도에서 경기좌도로 이속되었다.

조선건국이후 1412년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434년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관되었다. 1746년 춘천부에 있었던 강원도병마방어사의 소재지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강원도의 대도시가 되었는데 이 병마방어사는 금성, 김화, 낭천, 양구, 평강, 안협의 6개 행정구역을 진관했다. 1895년 춘천부 철원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년뒤 강원도 철원군이 되었고 1906년 관인면을 연천군에 내줬다.

부군면 통폐합시기 삭녕군의 동부 3개면(인목면, 내문면, 마장면)이 편입되었고 경원선금강산선이 분기되기에 강원도에서 춘천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931년 철원군 철원면이 조치원면, 강경면과 함께 한국 최초의 읍으로 승격되었다.

분단이후[편집]

38선을 따라 남북이 분단되었을 때, 군전역이 38선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전지역이 소련군정북괴에 소속되었다. 1946년 12월 원산으로 도청이 옮겨지기 전까지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였는데, 이때 쏘오련 빨갱이들이 세운 노동당사가 지금은 외형만 남아있다. 6.25 전쟁이후 국군이 조사했을 때 빨갱이들에게 고문당했던 사람들의 유해와 고문도구, 고문시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4 후퇴이전에는 큰 비중은 없었지만 1.4 후퇴이후 유엔군용문산 전투에서의 대승과 함께 동부전선에서 철의 삼각지대까지 북진함에 따라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터가 되었다. 광대한 철원평야를 지키기 위해 공산군은 수괴가 현지에서 직접 지휘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백마고지 전투에서 유엔군에게 개쳐발렸고 대한민국은 철원, 갈말, 동송, 신서, 묘장, 어운, 인목남부, 북면 유정리, 홍원리, 내문면 독검리를 수복했다. 하지만 38선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군정이 실시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강원도로 행정권이 이양되었고 1963년 1월 1일 舊 김화군 지역이 편입, 신서면이 연천군으로 넘어간 것이 지금에 이른다.

읍면[편집]

이 지도를 따라 완전수복, 부분수복, 미수복으로 나눠서 서술한다. 김화군에서 편입된 지역은 김화군으로 갈 것.

신서면[편집]

新西面

면적 147.79㎢. 면소재지는 도신리.

도신(道新), 대광(大光), 내산(內山), 신현(薪峴), 갈현(葛峴), 덕산(德山), 도밀(道密), 승양(承陽), 마전(馬田), 답곡(沓谷)의 10개리를 관할하는데 이중 마전리와 답곡리에는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다. 1963년 1월 1일 인목면의 미수복지구와 함께 연천군으로 넘어갔다.

1914년 5개리로 개편되고 1940년 대광면(大光面)으로 개칭되었다가 8.15 광복이후 다시 신서면이 되었다. 북쪽 중앙에 천덕산(天德山, 477m), 동쪽 경계에 고대산(高臺山, 832m), 지장봉(地藏峰, 877m)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있으며 면중앙을 종류하는 차탄천을 중심으로 답곡천, 마전천유역에 경작지, 취락이 발달되었다.

내산리에 심원사지 부도군(漣川郡 深源寺址 浮屠群)이, 답곡리에 조선 중종시기 무신인 김우서의 묘가 있다. 또한 대광리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이 달린 경원선의 종착점(휴전선으로부터 9.5km거리)이 있다.

동송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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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松邑

면적 128.82㎢

1954년 11월 17일 어운면 지역을 흡수하였다.

이평(二坪), 오덕(五德), 대위(大位), 장흥(長興), 오지(梧池), 상노(上路), 양지(陽地), 이길(二吉), 관우(觀雨), 하갈(下葛), 강산(江山), 중강(中江)의 12개리를 관할한다. 관우리, 하갈리, 강산리, 중강리는 무주지이다.

1914년 철원읍내의 동쪽이라고 했던 동변면과 송내면(松內面)이 합병되면서 만들어졌다. 6.25 전쟁직후 전방이 되었던 수복한 어운면을 통폐합했다. 1980년 12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철원에서 가장 크고 핫한 동네지만 철원의 현실때문에 이름대로 똥송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어운면[편집]

於雲面

면적 65.19㎢. 면 소재지는 하갈리.

하갈리(下葛里), 양지리(陽地里), 이길리(二吉里), 강산리(江山里), 중강리(中江里)의 5개리를 관할했다.

추가령구조곡내 용암대지에 속해서 전지역이 평야였다. 물론 6.25 전쟁때 전선이 북상하면서 좆망했는데 국군은 강산리와 중강리의 일부를 빼면 전지역을 수복했다. 하지만 전방이라 무주지가 되었고 결국 동송읍에 통폐합되었다.

북괴로 넘어간 미수복 강산리, 미수복 중간리는 각각 북괴치하에서 강산리, 중강리가 되어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갈말읍[편집]

葛末邑

면적 면적 173.17㎢. 읍소재지는 신철원리.

신철원(新鐵原), 지포(芝浦), 강포(江浦), 군탄(軍炭), 문혜(文惠), 내대(內垈), 상사(上絲), 지경(地境), 토성(土城), 정연(亭淵), 동막(東幕)의 11개리를 관할한다.

6.25 전쟁으로 인해 옛 철원시가지가 있던 철원읍이 초토화되었고 철원읍보다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지역을 중심으로 철원이 재건되었기 때문에 군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여기에 몰려있다. 부군면 통폐합시기 마을이 이래저래 마개조되었는데 1956년 지금의 11개리로 개편되었다.

1972년 12월 28일 평강군의 유일한 수복지였던 정연리를 흡수했다.

문화재로는 문혜리의 유명악신도비, 유척기행적비, 정연리의 창랑정, 군탄리의 순담, 육군대장박정희전역비, 익영대, 신철원리의 삼부연폭포, 마그루드장군송덕탑, 토성리의 고인돌이 있다.

철원읍[편집]

鐵原邑

면적 99.21㎢. 읍 소재지는 화지리.

본래 철원읍내가 서쪽가에 있었기에 서변면이라고 불렸다. 1778년기준 9개동리를, 1895년 5월 26일기준 16개 동리를 관할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관전리(관동리 + 궁전리 + 내포리), 내포리(중내선리 + 상포리), 외촌리(하외선리 + 간촌리), 사요리(사방지 + 상미요), 율리리(율지리 + 리현리), 중리, 월하리(월음리 + 하리), 화지리(화전리 + 천황지)로 개편되었고 1931년 4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송읍과의 경계지역인 화지리에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본래 외촌리, 사요리지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시가지가 완전파괴되고 외촌리, 사요리가 민통선이북에 놓임에 따라 좆망해버렸다. 1954년 북면(유정리, 홍원리), 묘장면(가단리, 대마리, 산명리, 중세리)과 내문면(독검리)의 수복지구를 편입했다. 독검리는 철원에 속한 옛 삭녕군 중 유일하게 남한의 손아귀로 들어온 지역이다.

전철

* 경원선 백마고지역

* 경원선 철원역

* 경원선 월정리역

인목면[편집]

寅目面

면적 73.29㎢. 면 소재지는 도밀리.

도밀리(道密里), 검사리(檢寺里), 승양리(承陽里), 신현리(新峴里), 덕산리(德山里), 갈현리(葛峴里)의 6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비물(非勿)이라 불렸다가 고구려때 승량현(僧梁縣)이 설치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동량현(㠉梁縣)으로 개명되어 철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승령현(僧嶺縣)으로 개명되고 1018년 동주(東州)의 속현이 되었다. 예종시기 승령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는데 삭녕현이 속현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삭녕군에 속했다가 1914년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이 때 버러지같은 일본 쌔끼들이 삭녕군을 폐지해버렸고 그러면서 삭녕군을 둘로 쪼개서 인목면 부분을 철원군에 붙이고 서쪽은 경기도 연천군엗 붙여버렸다.

동남쪽은 야월산, 서쪽은 추가령단층, 남쪽은 천덕산등의 산지가 솟아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에 미치지만 중북부지역은 대체로 평지를 이룬다. 역곡천이 면북부를 서류하다 남쪽으로 곡류하며 하천유역에 대규모 평야가 형성되었다. 궁예때 만들어진 산성이 본면 승양리에 있었고 이름미상의 절터, 고려총, 검사터(檢寺址), 신현리에 이름미상의 절터가 있었다.

8.15 광복이후 소련군정시기 북부지역에 내복리(內福里), 가탑리(佳塔里), 석현리(石峴里), 송현리(松峴里)가 신설되었다. 6.25 전쟁이후 검사리를 제외한 전지역을 부분수복했는데 수복지역이 모두 신서면에 편입되었다. 북괴로 넘어간 지역은 송현리(미수복 송현리 + 내복리), 갈현리(미수복 덕산리 + 석현리 + 갈현리 + 신현리), 가승리(가탑리 + 승양리)로 개편되었다.

묘장면[편집]

畝長面

면적 62.59㎢. 면 소재지는 중세리.

중세리(中細里), 대마리(大馬里), 가단리(加丹里), 산명리(山明里)의 4개리를 관할했다.

중앙부 지구대를 사이에 두고 남쪽은 야월산(夜月山, 487m), 북쪽은 효성산등의 산지가 솟아있다. 이 산들은 용암분출로 형성되었으며 이 산지사이를 역곡천, 산명호에서 발원하는 계류가 동서로 흐른다.

6.25 전쟁이후 산명리와 가단리의 일부를 수복했다. 수복지역은 각각 독검리, 삼사리에 편입된듯 하지만 전방이라 GP에 근무하는 장병들만 있고 동물밖에 없다. 북괴로 넘어간 지역은 대마리, 중세리, 산명리, 가단리 그대로 남았다.

북면[편집]

北面

면적 102.77㎢. 면 소재지는 회산리.

회산리(回山里), 유정리(楡井里), 홍원리(洪元里), 외학리(外鶴里), 보막리(洑幕里), 용학리(龍鶴里)의 6개리를 관할했다.

대부분지역이 철원평야에 속했는데 서남쪽에 효성산, 서북쪽에 고암산이 있었다. 봉래지의 물이 역곡천이 되어 남류하는데 이강을 따라 경작지가 형성되었지만 6.25 전쟁때 작살났다.

용학리에 이름미상의 절터, 홍원리와 회산리에 있는 궁예도성의 터, 홍원리에 팔각형오층석등등이 있었다.

공산치하에선 유정리, 용학리가 1, 2리로, 외학리와 보막리가 1, 2, 3리로, 화산리가 1,2,3,4리로 분리되었고 국군은 홍원리와 유정리의 일부를 수복했다. 미수복지역은 회산리(미수복 회산1리 + 미수복 회산2리), 삼사리(미수복 회산3리 + 미수복 회산4리), 외학리(원상복귀), 용학리(원상복귀), 유정리(미수복 유정리에서 원상복귀), 보막리(원상복귀)로 개편되었다.

내문면[편집]

乃文面

면적 73.17㎢. 면 소재지는 창동리.

창동리(倉洞里), 독검리(篤儉里), 오동리(梧桐里), 반석리(班石里), 내문리(乃文里), 마방리(馬放里)의 6개리를 관할했다.

추가령구조곡내 용암대지로 동쪽에 효성산(曉聲山, 596m)이 솟아 있다.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이 면 남부를 서류하며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소지류들이 합류했다. 오동리에 사효각(四孝閣), 반석리에 나한암(羅漢庵), 석불 10체, 마방리에 말무덤이라 불리는 호리병모양의 고분 2기가 있었다.

광복이후 소련군정에서 오동리, 반석리, 마방리, 내문리가 1, 2리로 분리되었다. 이후 6.25 전쟁국군이 독검리 일부를 수복, 대한민국은 수복한 독검리 일부를 철원읍에 편입시켰다. 북괴군은 내문리(내문리 + 창동리), 반석리(원상복귀), 오동리(원상복귀), 마방리(원상복귀), 독검리(미수복 독검리)로 개편되었다.

마장면[편집]

馬場面

면적 73.46㎢. 면 소재지는 장포리.

장포리(長浦里), 남원리(南院里), 대전리(大田里), 왕피리(往避里), 입석리(立石里), 밀암리(密巖里)의 6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삭녕군에 속했는데 1914년 철원군으로 옮겨졌다. 철원군지역중 유일하게 국군이 완전수복하는데 실패한 면이다.

마식령산맥의 여맥이 뻗어내려 서북부는 산지를 이루는데, 북쪽은 영영산(靈影山, 583m), 서쪽은 부압산(浮鴨山, 442m), 추가령(楸哥嶺, 425m)등이 솟아 있으며, 그 외 대부분지역은 역곡천일대의 평지에 해당했다.

대전리에 가실현성터, 왕피리에 최사유부처의 묘등이 있었다.

광복이후 왕피리 일부가 남원리에 편입되었고 장포리가 1,2,3,4리, 왕피리, 대전리, 입석리가 1, 2리로, 밀암리가 1, 2, 3리로 개편되었다. 북괴치하에서 입석리(원상복귀), 밀암리(원상복귀), 왕피리(남원리 + 왕피리), 마장읍(장포리), 대전리(원상복귀)로 개편되었다.

1954년 왕피리 일부가 입석리에, 마장읍 일부가 왕피리에 흡수되었다. 1961년 마장읍이 마장리로 강등되었다. 1991년 왕피리가 신진리(新進里)로 개명되었다.

통일 후 전망[편집]

6.25 전쟁이 안나서 분단이 안되었으면 시로 승격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지리적 요건은 괜찮은 동네였다.

그래서 통일 후 전망은 괜찮은 편이다. 통일 후 수도를 이전할 경우 수도 이전 후보로 떠오르는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통일되면 마장면과 인목면이 잘려나갈 거고 경기도 연천군 일부와 합쳐져 경기도 삭녕군으로 예토전생할 가능성도 높다.

아웃풋[편집]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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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구려에서 부른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