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감자국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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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원산 근처에있던 강원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던 바다를 낀 동네. 원래 북쪽에 흡곡이란 동네가 따로 있었는데, 1908년 통폐합 됐다.

현대그룹 창립자 정주영의 고향(송전면 아산리)으로 그의 고향이 있던 아산리를 따라 정주영의 호와, 현대 아산, 아산병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주영의 아들 정몽구도 여기사람이라 카더라. 근데 그 아산리는 군면리 대폐합때 없어졌다.

1998년 핵볕정책의 효시가 된 정주영의 소떼방북도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몰고 자기 고향 통천으로 가면서 이뤄졌다.

리춘희도 여기 출신이다.

6.25때 수복할 뻔했는데, 실패해서 안타깝다고 백선엽장군이 회고한 적이 있다.

관동팔경중 하나이던 총석정이 여기 있으며,90년대 정주영이 소 수천마리를 이끌고 자기 고향이라면서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핵돼지와 아들의 자살로 끝났다..

연혁[편집]

지금의 송산면 발산에서 간석기와 청동화살촉을 만드는 거푸집등이 발견되었다. 이후 금뇌(金惱)라고 불렸는데 고구려시기 휴양군(休壤郡)이 설치되었고 경덕왕시기 금양군(金壤郡)으로 개편되었다. 995년 삭방도에 편입되면서 현령이 파견되었다. 1285년 통주(通州)로 승격되 방어사가 파견되었다. 1413년 군으로 개칭되었다.

1762년 어떤 미친놈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 현으로 강등당했다가 1771년 군으로 복구되었다. 1910년 흡곡군이 통천군에 흡수되었다. 8.15 광복이후 소련군정에 속했다가 인천상륙작전이후 국군이 수복했다가 1.4 후퇴때 공산치하로 넘어갔다. 6.25 전쟁막바지에 맹조의 발톱 작전을 통해 수복하고자 했지만 작전이 폐기되면서 그대로 북괴땅이 되었다.

행정구역[편집]

통천면[편집]

通川面

면적 40.54㎢. 면 소재지는 중리.

중(中), 동(東), 서(西), 정(正), 태(兌), 방포(芳浦), 평(坪), 방동(芳洞), 하방동(下芳洞), 금란(金蘭), 마암(馬巖), 동정(東亭), 서정(西亭), 어은(漁隱), 송산(松山), 신평(新坪), 주대(蛛垈), 후금란(後金蘭)의 18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통천군 군내면이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용수면(龍首面), 용치면(龍峙面)이 흡수되었고 1939년 통천면으로 개명되었다. 통천평야의 한중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지가 거의없다. 중앙부에 구신단(九神端)이라는 급애가 있었다.

이외 금란리에 금란굴과 금란산성, 송산리에 발산성터, 동리, 서리에 있던 통천읍성, 태리 관음산에 관음사등이 있었다. 무울론 6.25 전쟁으로 인해 금란굴말고 나머진 다 작살났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태리에서 상태리(上兌里), 방포리에서 서흥리(西興里)가 신설되었고 군면리 대폐합때 구읍리(서리 + 동리 + 중리 + 어은리 + 송산리 + 고저면 신리), 용수리(하방동리 + 마암리 + 서정리 + 방동리 + 평리 + 동정리), 신대리 일부(신평리 + 벽양면 신대리 + 동대리 + 아간리 + 계곡리), 신흥리(태리 + 상태리 + 정리 + 벽양면 지장리), 금란리(주대리 + 후금란리 + 전금란리 + 금란리 + 벽양면 가평리)로 개편되었다.

고저읍[편집]

庫底邑

면적 90.07㎢. 읍 소재지는 하고저리.

하고저(下庫底), 상고저(上庫底), 어운(魚雲), 삼계(三溪), 구항(龜項), 포항(蒲項), 반월(半月), 사호(沙湖), 흥운(興雲), 백종(栢種), 보통(寶通), 신(新), 신월(新月), 오류(五柳), 전산(錢山), 도일(道一), 전천(前川), 총석(叢石), 통수동(通水洞)의 19개리를 관할했다.

부군면 통폐합때 통천군 영외면(嶺外面)과 순달면(順達面)이 통폐합되어 순령면(順嶺面)이 되었는데 1936년 고저면으로 개명되고 읍으로 승격되었다.

태백산맥서부에서 뻗어내린 산악지대가 가득한데 이중 십이현천이 동류하다 동해로 유입되면서 넓은 통천평야가 형성되었다. 본면에 소속된 고저항은 인근 황금어장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들의 어업기지로 통했다.

관동팔경중 하나인 총석정과 환선정이 있었고 상고저리에 어수산성, 도일리에 쌍학산성이 있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면으로 강등되었고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군의 중심지가 고저읍으로 옮겨지면서 통천읍(포항리 + 총석리 + 전산리 + 하고저리 + 상고저리 + 흥운리), 보탄리(삼계리 + 보통리 + 어운리 + 구항리 + 백종리), 미평리(반월리 + 신월리 + 오류리 + 전천리), 구읍리 일부(신리 + 통천면 서리 + 동리 + 중리 + 어은리 + 송산리), 봉호리(통수리 + 사호리 + 도일리)로 개편되었다.

벽양면[편집]

碧養面

면적 128.85㎢. 면 소재지는 신아간리.

신아간(新阿干), 회산(回山), 초성(初城), 차성(次城), 장현(長峴), 곤암(昆巖), 용암(龍巖), 염내(剡內), 지장(地藏), 안도(安道), 고림(古林), 신점(新店), 만교(萬橋), 지곡(芝谷), 향천(香泉), 신일(新日), 중대(中臺), 서운암(瑞雲巖), 백운암(白雲巖), 신대(新垈), 아간(阿干), 가평(佳坪), 동대(東垈), 계곡(桂谷), 가신(佳新), 신흥(新興), 외야(外也)의 27개리를 거느렸다.

본래 벽양면 서운암리에 고구려 토상현(吐上縣)이 있었다. 이 토상현은 신라 경덕왕 때 제상현(隄上縣)으로 개명,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벽산현(碧山縣)으로 개명되고 그대로 금양군의 속현이 되면서 금양군을 따라 통천의 속현이 되었다.

태백산맨이동 해안지역답게 서쪽은 남쪽 고윤산부터 북쪽 우동산까지 산이 이어져있고 동쪽은 통천평야에 해당한다.

백운암리에 쌍룡폭포, 계곡리에 석불과 초석, 대량의 와편이 발견된 정체모를 절터, 초성리 성터, 백운암리 용공사, 신일리 은적사등이 있었다.

광복직후 신아간리가 아간리에 통폐합되었고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외야리가 신흥리, 용암리가 곤암리, 백운암리가 신일리, 안도리가 고림리에 통폐합되었으며 서운암리가 벽산리(碧山里)와 광포리(廣浦里)로 분리되어 회산, 초성, 차성, 장현, 곤암, 염내, 지장, 고림, 신점, 만교, 지곡, 향천, 신일, 중대, 벽산, 광포, 신대, 아간, 가평, 동대, 계곡, 가신, 신흥의 23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때 방포리 일부(회산리 + 통천면 방포리 + 서흥리), 가흥리(가신리 + 신흥리), 중천리(중대리 + 향천리 + 지곡리), 벽암리(곤암리 + 벽산리), 신림리(신일리 + 만교리 + 신점리 + 고림리), 신흥리 일부(지장리 + 통천면 태리 + 상태리 + 정리), 금란리 일부(가평리 + 광포리 + 통천면 주대리 + 후금란리 + 전금란리 + 금란리), 신대리 대부분(신대리 + 동대리 + 아간리 + 계곡리 + 통천면 신평리)로 개편되었고 나머지 리는 육시랄 북괴새끼들때문인지 몰라도 안보인다. 씌바꺼

송전면[편집]

松田面

면적 59.00㎢. 면 소재지는 송전리.

송전(松田), 치궁(致弓), 거록(巨鹿), 문치(文峙), 옥마(玉馬), 석성(石城), 만양(晩陽), 장동(長洞), 수천(水川), 산론(山論), 포항(浦項), 아산(峨山), 신흥(新興), 황석(黃石), 오매(梧梅), 석도(石島), 정덕(貞德), 갈평(葛坪), 구읍(舊邑)의 19개리를 관할했다.

현대그룹의 창시자 정주영의 고향인 아산리가 이 면소속이다. 본래 답전면이라 불렸는데 송전면으로 개명되었다.

본래 습비곡현(習比谷縣)/습비탄현(習比呑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때 습계현(習磎縣)으로 개명되어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흡곡현(歙谷縣)으로 개명되었다.

한교천(寒橋川)을 따라 평지가 형성되있고 해안지역엔 석호인 강동포가 있다. 북괴수립이전 이름있는 관광지였던 송전해수욕장이 여기에 있었고 유적으론 구읍리 박산성, 정덕리 역장산성, 갈평리 화장사등이 있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구읍리에서 망월리(望月里)가 신설되었는데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이후 송전리(오매리 + 망월리 + 정덕리 + 송전리 + 황석리 + 구읍리 + 석도리), 거성리(문치리 + 거록리 + 치궁리 + 석성리), 노상리(신흥리 + 포항리 + 옥마리 + 아산리 + 갈평리), 강동리 일부(수천리 + 산론리 + 학일면 마차리 + 괴화리 + 강동리), 장대리 대부분(장동리 + 만양리 + 학일면 삼대리)로 개편되었다.

임남면[편집]

臨南面

면적 255.11㎢. 면 소재지는 외렴성리.

외렴성(外濂城), 내렴성(內濂城), 동자원(童子院), 오류(梧柳), 둔대(屯垈), 신남(新南), 명문암(明文巖), 다동(茶洞), 판막동(板幕洞), 능월(陵月), 유동(柳洞), 송방(松坊), 복동(福洞), 장림(長林), 외호(外湖), 두백(荳白), 장룡포(長龍浦), 상다전(上多田), 하다전(下多田), 운암(雲巖), 두암(斗巖), 말구(末九)의 22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조을포(助乙浦)였는데 고구려때 도림현(道臨縣)이 설치되었다. 신라 경덕왕시기 임도현(臨道縣)으로 개명되어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에서 그대로 적용하면서 통천군의 속현이 되었다.

그리고 운암리지역엔 천현(遷縣)이 있었는데 고구려때 이곳에 평진현(平珍縣)이 설치되었고 신라때 편험현(偏險縣)으로 개명되어 고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운암현(雲岩縣)으로 개명되어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임도면(臨道面)과 산남면(山南面)이 통폐합되면서 임남면이 만들어졌다. 1927년경 사호리, 장전리, 주험리, 남애리가 고성군 신북면으로 넘어갔고 말구리는 외렴성리에 통폐합되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운암리에서 예륜리(曳輪里), 외렴성리에서 말구리(末九里)가 신설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염성리(동자원리 + 외렴성리 + 내렴성리), 능동리(능월리 + 유동리 + 다동리), 두포리(두백리 + 장룡포리), 복송리(장림리 + 말구리 + 복동리 + 송방리), 신봉리(둔대리 + 문명암리 + 신남리 + 오류리), 운전리(상다전리 + 운암리 + 예륜리 + 두암리)로 개편, 전지역이 고성군에 편입되었다.

학일면[편집]

鶴一面

면적 160.61㎢. 면 소재지는 패천리.

패천(沛川), 칠보(七寶), 연호(蓮湖), 석대(石臺), 풍패(豊沛), 항평(項坪), 상이목(上梨木), 하이목(下梨木), 백산(栢山), 신탄(新炭), 대대(大垈)·하화(下花), 상화(上花), 삼태(三台), 강동(江洞), 마채(磨釵), 운수(雲水)·마전(麻田), 흥곡(興谷), 괴화(槐花)의 20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기연현(岐淵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파천현(派川縣)으로 개명되어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다. 1019년 안변도호부의 속현이 되어 그대로 안변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이후 흡곡군으로 넘어왔다. 1914년 상패천리와 하패천리가 패천리로 통폐합되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상이목리에서 가산리(佳山里), 황무지를 개간하여 황포리(黃浦里)가 신설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풍산리(신탄리 + 백산리 + 풍패리 + 향평리), 마전리(마전리 + 운수리), 보호리(연호리 + 석대리 + 칠보리), 이목리(가산리 + 하이목리 + 상이목리), 대곡리(대대리 + 황포리 + 흥곡리), 패천리(패천리 + 상화리 + 하화리), 장대리(삼대리 + 송전면 장동리 + 만양리), 강동리(마차리 + 괴화리 + 강동리 + 송전면 수천리 + 산론리)로 개편되었다.

1954년 마전리가 이목리에 통폐합되었고 1967년 풍산리 일부가 이목리에 편입되었다.

흡곡면[편집]

歙谷面

면적 128.65㎢. 면 소재지는 화통리.

화통(貨通), 반계(盤溪), 신흥(新興), 사재(思梓), 율동(栗洞), 신율동(新栗洞), 신기(新基), 신장(新場), 명고(鳴皐), 서왕(西旺), 용천(龍川), 용연(龍淵), 용흥(龍興), 송현(松峴), 동산(東山), 전당(錢塘), 하수(河水), 양지(陽址), 풍호(豊湖), 성현(星峴), 연화(蓮花), 압룡(鴨龍), 학고(鶴皐), 내군(內君), 군산(君山), 구계(九溪), 입석(立石), 서역(瑞域), 화등(和登), 자산(慈山)의 36개리를 관할했다.

흡곡군의 중심지이긴 한데... 오리지널 흡곡은 아니다. 오리지널 흡곡은 송전면에 있었고 흡곡면, 그중에도 학고리엔 곡포현(鵠浦縣)이 있었다. 이 곡포현은 신라 때 학포현(鶴浦縣)으로 개명되어 금양군의 속현이 되었고 1019년 안변도호부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에 어찌어찌 하다가 흡곡으로 넘어왔다.

상음리에 있던 상음현(霜陰縣)은 본래 살한현(薩寒縣)으로 불렸다가 신라 경덕왕 때 상음현으로 개명, 삭정군의 속현이 되었다.

1914년 학이면, 학삼면이 흡곡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석호인 소동정, 천학포등이 있었다. 성현리에 봉수대, 흡곡읍성, 흡곡남산성, 흡곡구읍산성등이 있었다.

1943년 학이면과 학삼면으로 분리되었고 풍호리가 연동리(淵洞里)로 개명되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흡곡면이 원상복귀되면서 연동리가 풍호리로 개명되었다. 또 1949년 10월 내군리와 학고리가 내학리(內鶴里)로 통폐합되었고 연동리에서 하동리(下洞里), 신곡리(新谷里), 서왕리에서 상서왕리(上西旺里)가 신설되었다. 또 신기리가 신장리, 신율동리가 율동리에 통폐합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화통리(사재리 + 신흥리 + 율동리 + 동산리 + 화통리 + 반계리 + 명고리 + 신장리 + 송현리), 하수리(양지리 + 성현리 + 풍호리 + 하수리 + 전다리), 군산리(압룡리 + 연화리 + 군산리 + 내학리 + 구계리), 자산리(서역리 + 입석리 + 자산리 + 화등리), 용천리(용흥리 + 상서왕리 + 용천리 + 용연리 + 서왕리), 장진리(하장진리 + 웅진리 + 송양리), 상음리(상음리 + 신양리 + 합진리 + 연동리 + 신곡리 + 하동리)로 개편, 안변군으로 넘어간 상음리를 제외한 전역이 통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54년 화통리와 용천리에서 명고리가 다른지역을 포함한 상태로 복구되었다.

아웃풋[편집]

  • 정주영
  • 리춘희
  • 박용학 : 대농그룹 창업주이다.
  • 리영호 : 북괴군 총참모장이었지만 돼정은이 개방쇼를 펼칠 때 "자기 아버지는 바깥 세상을 몰라서 개방을 안 한 줄 아느냐. 우리 현실에서 개방하면 공화국이 어떻게 될 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이빨을 깠다가 벌집핏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