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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일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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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쳐라 미련한 중생들이여

The Nonidentity Problem

비동일성 문제 또는 미래 개인의 역설은 태어날 자녀나 후손이 겪을 장애나 환경 오염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부모와 현재 세대의 선택이, 원래 존재했어야 할 자녀나 후손 대신 다른 동일성(정체성)을 지닌 자녀나 후손을 존재시키는 것으로 보인다는 윤리적 역설 문제다.

영국철학자 데릭 파핏이 위 문제를 제기한 이래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미래 세대에 대한 도덕책임의 근거와 기준에 대해 논쟁 중에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전하고 자원을 아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운다. 당장 우리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근데 정말 자원을 낭비하는 게 미래 세대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일일까?

만약 기성 세대가 자원을 흥청망청 써버려서 미래 세대는 조상들보다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됐다고 치자.

근데 이 미래 세대는 조상들이 환경을 보호했다면 태어나지 못했던 거 아닌가? 환경을 보호했을 때의 미래 세대를 A라고 하고 환경을 보호하지 않았을 때의 세대를 B라고 했을 때, A와 B는 다른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미래 세대는 알 바 아니고 당장 우리가 즐기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이번엔 전쟁과 학살 사례로 보자. 일반적으로 전쟁과 학살은 후손을 위해서도 나쁘다는 인식이 있다. 근데 세계대전이라든가 한국전쟁이라든가 이런 게 없었다면 지금 우리들이, 각자의 (자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같은 남녀가 같은 날 아이를 만든다 해도 사정 시간에 따라 다른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다른 존재가 태어날 거란 걸 고려했을 때, 과거가 저렇게 달랐다면 나비 효과로 인해 우리 역시 존재하지 못했을 거고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따라서 위 사례도 2020년의 우리들 A와 과거가 달랐을 때 2020년의 사람들 B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선택이나 사건에 따라 가능세계(possible world) 분기가 발생하면 우리의 후손은 정체성 또는 동일성(둘 다 identity)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동일성은 다른 존재와 나를 구분하면서 과거-현재-미래의 나는 전부 동일한 나로 인식하는 걸 말한다. 사실 자의식도 기억도 뇌에 기반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은 테세우스의 배처럼 구성 원자가 계속 교체되고 있지만 아무튼 시공간 좌표에 상관 없이 나는 나라고 다들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

즉 앞서 말한 A와 B의 자아는 동일하지 않기에 비동일성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이번엔 개인의 임신출산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보자.

  • 한 여성이 심한 여드름 때문에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 말에 따르면 여드름 치료제에는 태아의 뇌손상을 야기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사실 곧 임신할 계획이었는데, 치료가 끝난 후에 임신하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14세의 출산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는 그것이 어린 엄마에게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아기에게도 그리 좋은 인생 시작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따라서 어른들은 성인이 된 후 결혼하고 낳으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 사드 후작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사이코가 있다. 그는 남녀에게 아기를 만들어 태어나면 자신에게 노예로 넘길 것을 큰 돈을 대가로 제안한다. 원래는 아이를 만들 생각이 없던 남녀지만 결국 제안을 수락하고 10달 후에 아기를 사이코에게 넘기기로 한다. 물론 사이코에게 아기가 넘어간다면 노예로 살면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걸 알게 된 사람들은 저 남녀를 비난한다.

위 사례들에 대한 일반인의 태도를 볼 때, 우리는 직관적으로 아이한테 중대한 해를 끼칠 것 같을 경우 낳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앞서 설명한 비동일성을 떠올리는 순간, 다른 직관이 작용하고 생각이 꼬이게 된다.

  • 피해라는 건 무언가 악화되는 거고, 악화될 현재 또는 미래의 사람(인격체)이 없다면 피해도 성립하지 않는다.[1]
  • 존재하는 게 아예 존재하지 못한 것보다는 가치롭고, 존재하는데 꼭 필요한 행위는 그것에 결함이 있더라도 정당화된다.

물론 위 직관들에 따라 후손이 사용할 자원을 고갈시켜도, 자녀에게 일부러 장애를 줘도 사실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이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고 무책임하게 보이기 때문에, 윤리학자들은 위 직관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잘못한 것처럼 보이는 부모가 잘못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데릭 파핏이 제안한 공리주의에 입각한 해결책이다. 공리주의는 간단히 말해 결과만 좋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상으로, 이 좋은 결과라는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쾌락)"을 말한다. 따라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효용(보람)이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그건 나쁘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 해결책은 공리주의에 기대는 만큼 공리주의가 욕 먹는 이유인 여러 비상식적인 역설이 여기에도 적용이 된다는 약점이 있다.

예컨대 죽지 못해 겨우 사는 사람들(행복이 0은 아닌 사람들)만 수없이 많은 거대 규모의 사회는 그보다 행복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작은 사회보다 물량빨로 행복 총합 수치가 더 크다. 즉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후자보다 전자를 택하란 말이 되어버린단 거다. 데릭 파핏은 이를 "당혹스러운 결론(repugnant conclusion)"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는 정언적 의무론에 입각한 해결책이 있다. 아무튼 우리는 아이를 낳을 때 뭔가 최소한의 자격이 있어야 하고, 후손을 배려하지 않는 듯한 태도 그 자체가 그냥 나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약점이 있다. 일단 현대 의무론의 정수인 계약론을 미래 세대에게 적용하는 것(세대 간 계약론)은 상호 간의 합의를 통한 계약이 아니라 그냥 현재 세대의 독단에 불과하다. 근데 그것도 모자라 경제 폭망과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고령화로 인한 국민연금 빵꾸처럼 미래 세대 부담만 잔뜩 커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 세대가 "우린 하던 대로 한 거고 이 정도면 할 도리는 다 했지?"라고 우겨도 미래 세대 입장에선 손해 보는 계약이고 현재 세대를 부양할 이유가 없다.

또한 최소한의 의무란 게, 그 기준이 너무나도 모호하다. 누군 낳아도 되고 누군 안 되는 기준이 도대체 뭘까?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르다. 여기서 의무론의 고질병인 의무 간 충돌시 의무론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한다.

상식인이라면 애를 고문하다 잡아먹으려고 낳는 건 악이라는 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럼 애가 굶어 죽을 것을 알면서 끔찍한 위생 환경에서 낳거나, 노동착취 성착취 인신매매 구호선전용으로 낳는 건? 이번엔 애를 만들면 사산되거나 심각한 유전 질환이 거의 확정인 걸 알면서도 기어이 낳거나,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불황에 10명 넘게 낳는 건? 저 정도는 아닌데 정말 못생기거나 성격이 나쁘거나 무식하거나 가난한 부모는 어떨까?

이런 식으로 묻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부유하다고 꼭 아이가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결국 부모가 아무리 쓰레기 같이 보이고 애가 불행할 것 같아도 각자의 가치관과 양심에 맡기는 결과가 돼 버린다는 것이다. 고아를 입양할 때도 최소한의 자격을 검토하고 선진국에선 애완동물 키울 때도 조건을 따지는데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비동일성 문제에 있어서 이론적으로 가장 깔끔한 윤리적 해결책은,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태어날 아이에 대해 걱정할 필요 자체가 없다.

이건 출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대다수 사람들의 직관과 충돌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의 없이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괜찮지만 동의 없이 고통을 주는 건 잘못이라는 일반적인 인식, 부모 세대의 이기적인 욕구 충족과 이익 문제가 아니라면 삶에 내재된 고통 가능성을 알고도 아이 인생으로 도박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 설령 삶이 행복해도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야 하고 죽음에 의해 행복이 박탈당할 것이란 점, 불행하면 태어난 이상 도로 물릴 수 없고 자살조차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점, 임신과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란 인식이 있으며 낳지 않거나 입양하는 사람들도 많고 이는 윤리적으로 문제될 게 없거나 오히려 칭송되기도 한다는 점 등 나름대로 여러 직관적 논리적 근거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구체화한 사상을 반출생주의(antinatalism)라고 한다.

믈론 일반적인 공리주의자는 행복의 생산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생각에 반대할 것이다. 희생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단 "모두의 최소 고통"을 말하는 소극적 공리주의자는 위에 동의할 수 있다.

  1. 이는 태어나지 않은 모든 비존재가 겪을 상황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비존재에 대한 사고실험을 끊임없이 행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지적인 동물보다 우선된다고 주장하더라도 동물을 학대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은 부도덕이며 이걸 옹호하는 것 역시 떳떳한 일은 아닌 것처럼, 이미 태어난 우리가 태어날 아이보다 우선된다고 주장하더라도 뭐든 해도 된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이것도 파고들면 살아있는 동물과 태어날 인간 중 누가 우선인지, 뇌사자는 어떤지 등 문제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