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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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반란진압하다 전사한 군경들, 죄없이 희생당한 무고한 민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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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새끼들, 민간인 빨갱이로 몰아서 학살하던 김종원같은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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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48년 10월 19일~27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었던 14연대가 진행한 반란 사건을 가리킨다. 진압 과정 중에서 좌익 성향 군인과 이를 진압하러 내려온 우익 성향 군인들에게 반동이다! 빨갱이다! 하면서 사망한 민간인 숫자가 대략 6,000명 정도 된다. (이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추정이라서 정확할지 모르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치안유지법이 국보법으로 강화되었고,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반공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배경[편집]

현재 법률에 따르면 모든 군인은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킨다고 강조하는 만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미군정은 상당히 free했다. 당에 가입한 상태였던 사람들도 선서 한 번만 하면 전부 군인으로 모집했기 때문에 당에 가입한 상태의 군인이 꽤 있었다. 정부 수립된 지 2개월밖에 안 되었던 당시에 그래도 천조국 흉내를 내고 싶었던 건지 이걸 그냥 방치해두다시피 했다.

당시 가장 핫한 정치적 쟁점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찬반 의견이었다. 우익에서는 "북조선이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했으니 우리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 통일정부는 북조선을 밀어버린 뒤에 세우면 된다."라는 입장이었고 좌익에서는 "이대로 가면 영구분단이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 가지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많았지, 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시기에 신분을 숨기고 좌익 활동하던 군인인 김지회라는 작자는 전남 광주에 있었던 4연대에 전속되었는데, 한편 4연대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기던 불온사상자들을 여수에서 신설될 14연대로 전부 보내기로 결정해버렸다. 이승만과 박헌영 중에서 누가 더 낫냐는 질문에 박헌영이라고 대답한 놈들만 추려서 재편성했다 카더라.

덕분에 1948년 5월 초에 신설된 14연대의 요직에는 당연히 김지회 등 좌익 남로당 계열의 인물들이 들어차게 된다. 이들은 새롭게 모집할 신병을 전남 동부 지방에서 주로 찾았는데 인원이 부족했던 탓에 그냥 건강해보이고 "이승만 개새끼!"만 외치면 전부 받아줬다. 덕분에 경찰에게 쫓기던 좌익운동가(쑻) 청년들과 경범죄자들이 대량으로 입대하게 된다.

설명[편집]

4.3 사건 진압에 반대하던 군인들이 일으켰다고는 하는데, 이건 당시 14연대의 상태를 보았을 때 그냥 자기들의 반란을 정당화하려는 핑계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연대급 병력이 일으킨 반란이라서 전라도 남부(특히 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중앙에서 군이 내려오자 파사삭하게 깨지고 남은 반란군은 지리산으로 도망쳐서 빨치산에 합류한다.

소설 『태백산맥』으로 처음 다뤄졌지만 이 소설은 주작이 많이 들어있으니까 재미로만 보자. 진짜 자세히 알고 싶다면 구례에서 살면서 이 사건을 목격하고 공작원이 되어서 공산당에 잠입했던 적이 있는 이기봉의 저서를 보는 게 좋다.

이후[편집]

군대 내부에선 좌익 계열에 대해 숙군이 진행되었다. 남로당은 군 내부 세력까지 사라지면서 이미 망하던 당이 더 좆망했고 사실상 소멸했다. 결국 전부 지리산으로 튀어서 빨치산 짓거리를 계속하거나 월북을 해서 북조선에서 남로당파를 새롭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남로당파는 8월 종파사건 때 제일 먼저 숙청당했다. ^&^

남로당의 거두 중 한 명이었던 반인반신은 발 빠르게 전향하였고 모든 정보를 불어버리고 찌그러지게 된다.[1] 그의 남로당 행적은 친일 행적과 함께 초기 정치 생활에 어마어마한 걸림돌이 되었고[2] 자기가 머통이 되면서 이 경력 세탁을 위해 런승만 뺨싸다구 후리는 수준으로 강려크한 반공 정책을 밀어붙이게 된다.

만약 이사건으로 인한 숙군작업이 없었으면 6.25때 대한민국은 남베트남꼴이 났을 확률이 100%다. 안그래도 낙동강까지 밀렸는데 국군이 총부리를 돌려 부산으로 인민군이 들어오게끔 게이트를 열어줬으면 핼게이트가 펼쳐지고 공산당에 속아넘어간 빨갱이 군인들에 의해 몇몇 선동당한 조종사들이 부산임시본청에 폭격을 가했을지도모른다. 다행히도 남로당이 6.25발발 2년전에 이런 소동을 일으킨 덕분에 국군에 조금이나마 경각심을 심어주게 되었으며 이후 빨갱이들을 색출해내는데 필요한 국가보안법이 철저히 유지되게 되는 계기가된다.

박헌영은 이걸 모르고 혹부리우스에게 "지금 우리가 남조선으로 가면 남로당 20만이 환영할꼬얌!"하면서 사탕 발린 개소리를 하고 혹부리우스는 국토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는 헌영이의 사실상 자폭 스위치가 되었다. 혹부리우스는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든 정적인 헌영이를 조질라고 개지랄을 다했기때문에 결국 여순사건은 혹부리우스가 헌영이를 조질 좋은 명분을 만들어주게 된다.

각주

  1. 사실 런승만이 형처럼 벌집핏자로 만들려고 했지만 백선엽이 도와주고 혹부리가 침공하면서 겨우 살아났다.
  2. 곽영주는 "각하 이 빨갱이 새끼 절대 진급시켜선 안 됩니다!"라면서 반인반신의 진급을 막았고 백의사 등 우익계 정치 깡패 출신이 많았던 60년대 민주당계 인사들에게 '남로당 빨갱이'라는 비난을 존나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