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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남송 최후의 전투. 광동 인근의 애산에서 23일간 벌여진 혈전으로, 이 전투로 남송은 완전히 멸망했고, 몽골 제국의 44년 간의 중국대륙 전역이 마무리되며 중꿔통일이 완수된다.

전투가 벌어진 시대에는 해안이었으나 현재는 내륙지역이다.

참고로 몽골-송 전쟁은 1235년에 시작하여 1279년까지 이른다. 이 기간 동안 몽골은 동유럽아랍, 그리고 고려영혼까지 탈곡하고 있었다.

남송이 존나 버텨준 덕분에 고려가 상대적으로 덜 탈곡된거다. 고려 침공군의 몇배나 되는 병력을 남송의 양양성 공략전에 들이부었기 때문, 남송이 일찍 털렸다면 이 병력이 다 어디갔을까?

망국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낭만을 다 보여준 전투다.

전개[편집]

"검을 갈아 돌로 만든 정이 갈라지고, 말이 장강을 마셔 장강이 말라버렸다. 우리왕조의 백만전포는 붉게 물들었는데, 모조리 강남 남녀들의 피로구나."

 
— 장홍범의 회양집 中. [1]

남송 최후의 방어선인 양양성이 6년에 걸친 공성전 끝에 함락된 후, 쿠빌라이 칸의 몽골군은 포풍처럼 남송 전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실 이 시점에서 남송 정부가 항복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도 않을 상황. 그러나 최후의 순간이 눈 앞에 바로 보이는 시점에서도 남송 정부는 최후까지 항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20만 명의 의병들이 모였다. 여기에 조광윤에게 선양한 전대 왕조인 후주의 시씨 가문도 함께 했다.

남송군이 마지막 영끌로 모은 천여척의 함대는 몽골 함대의 격렬한 공격을 수 차례 막아냈다. 그러나 고립되어 식수와 식량마저 차단당한 상태로 계속 분전하기란 누가봐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남송의 함대는 전멸에 이르게 된다. 남송 함대는 전투를 위해 선박끼리 결속을 해놓았는데, 전투 최종국면에 이르러 오히려 몽골 수군이 더 쉽게 남송의 선박에 침입하여 공격하는데 유리하게 작용되었다. 이미 굶주림과 기갈에 시달리던 남송 수군은 몽골 군과의 백병전을 베겨내질 못하고 떼죽음을 당했다.

중국 통일 왕조중에 가장 군사력 약한걸로 후대에 맨날 까이고 지금도 까이는 송나라지만 남송멸망 시기의 항전은 절대 깔 수 없다. 당장 그 양양성에서 무려 6년을 버텼다. 몽골은 양양성 함락에만 수십만을 쏟아부었으며, 6년이나 걸려서 겨우 함락시켰다. 그렇다고 남송이 양양성을 내다버린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물자 수송 하고 지원군 보내려고 사력을 다했다. 양양 뚫리자마자 남은 병력을 다 끌고 모아 황궁을 다 불태우고 최후의 함대를 만들어서 버텼다는건 진짜 대단한거다.

결과[편집]

전투는 몽골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소식을 들은 남송 최후의 재상인 육수부가 어린 황제, 소제를 엎고 바다로 투신했으며, 황태후 양씨도 바다로 투신하여 자결했다. 남송군 수뇌부도 대부분 전사하거나 자결했다. 애산에 있던 10만에 이르던 남송인들도 대부분 바다에 투신했다. 남송 함대를 지휘하던 장세걸은 잔존병력을 이끌고 대월로 가 저항을 지속하려 했으나 폭풍으로 그를 포함한 함대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최후의 최후까지, 한줌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저항한 셈. 황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황족과, 정부를 운영하던 관료들과 궁인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 모인 일반 남송 백성들까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평가[편집]

13세기에 몽고의 기병이 폭풍처럼 유라시아를 석권할때, 그들은 오직 남송에서 가장 격렬하고 지속적인 저항을 받았다. 1235년 원나라 군대가 처음 송을 공격했을 때부터 1279년 광동 애산崖山 전투에서 승상 육수부가 어린 황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을 때 까지, 장장 40여 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여 몽고의 몽케 칸도 남송의 합주성에서 전사하였다. 장원 출신의 재상 문천상을 중심으로 한 남송의 사대부들이 최후의 궁지에서도 혈전을 벌이며 송 황실을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은 송 왕조가 3백 년간 사대부들을 우대한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었고, 송대 문관정치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것이기도 했다.

 
— 진정(金諍), 중국 과거 문화사 中


"역대 이래 몸을 던지며 나라에 순국한 자는 유독 송 말에 많았다. 패망을 구하진 못했다고 해도, 요컨대 나라가 사대부를 양성한 보람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 청나라의 고증학자 조익趙翼. 이십이사차기에 송을 평가하기를.

북송과 남송을 합하여 송대는 중국사 통틀어 최약체로 평가를 받는다. 황조의 성립과정도 군벌들을 제어하는게 제 1목표일 정도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관이 우대받고, 지방군이 약화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산 전투에서 보여준 남송 정부의 결정과 행동은, 비록 그 결과가 비극이긴 하나 송의 허약한 군사력과는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 중국사를 떠나 세계사 전체를 보아 살펴도 한 나라가 망할 때 그 국가를 이끈 지도부가 이 정도의 결기와 각오를 가지고 행동한 사례는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선양을 받았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왕조를 멸망시킨 전대의 황족까지도 국가와 운명을 함께한 사례는 더더욱 말이다.

ㄴ 세계사 뒤져보면 이렇게 끝까지 항전하다 멸망한 사례 하나 더 나옴. 비잔틴 제국이라고.

애초에 세계를 털어먹고 다니던 몽골군에게 이렇게 끝까지 개겨가며 악착같이 한족의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한거 자체가 진짜 대단한거다. 당장 서하랑 호라즘은 몽골의 침략에 그대로 짓밟히며 개털려나갔고 러시아도 신나게 밟혔다. 중앙아시아로 진출한 몽골군은 셀주크 튀르크, 아바스 왕조와 맞다이를 까며 칼리프의 모가지를 따고 당시만 해도 세계적인 도시였던 바그다드를 개박살내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근데 남송은 무려 44년을 뻐겼다. 서하는 칭기즈 칸이 직접 유언으로 서하인을 지구에서 삭제하라고 한 덕분에 칭기즈 칸에게 한번 밟히고 칭기즈 칸 사후에 더 밟히며 서하인이라는 존재가 말살당했고 호라즘 왕조는 몽골과 접촉한지 2년만에 제국이 박살났다. 폴란드도 몇번 깨졌고 러시아의 크고 작은 공국들도 몽골에게 박살났으며 헝가리도 간신히 버텨서 몽골이 정복 포기하고 돌아가서 살아남았지 안 그랬음 끝끝내 박살날 위기였다. 그런데 남송은 동맹국도 없이(이때 고려도 쳐맞고 몽골에게 기는 중이라 누굴 도와줄 형편이 안 됐음) 44년을 버텼고, 대부분의 중신들이 항복하지 않고 남송의 신하로써 죽음을 맞이했다.

항복하지 않고 끝끝내 남송과 운명을 함께한 남송 최후의 군대와 신하들. 송태조 조광윤에게 선양한 이후 송 멸망까지 충성을 바치며 남송과 운명을 함께한 후주의 시씨 가문. 패배하고 사로잡혔지만 쿠빌라이의 설득을 거부한 뒤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문천상(양양성 전투 이후 몽골군에 사로잡혔다. 이 사람의 운명도 기구한데, 애산에서 자신이 충성을 다하던 황조와 백성들이 스스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걸 몽골군의 진영에서 보고 있었다. 이후 4년 뒤 수많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남송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고 순국한다.) 어린 황제에게 최후까지 교육을 마무리 지은 뒤 가족들에게 나라와 함께 죽을것을 명하고 황제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육수부. 다시는 왕후장상의 씨로 태어나지 않겠다는 처절한 유언을 남긴 송소제, 황궁과 거처를 모조리 불사른 뒤 남아있는 배를 모두 묶어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던 남송의 마지막 군대. 그 남송의 마지막 군대를 끝까지 이끌며 어떻게든 포위망을 돌파하여 해릉산까지 나아간 후 후일을 기약하며 빠져나가려 했으나 폭풍우를 만나 전멸하며 하늘이 정녕 대송을 망하게 하려면 우리 군대를 모조리 바다 속에 가라앉게 하라는 눈물겨운 유언과 함께 바다에 수장된 장세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장세걸 휘하에서 종군하였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식들과 손자를 남긴 주씨 성의 한 노인까지.

이 주씨 성의 막내 외손자. 주중팔, 다른 이름으로는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 주원장은, 애산 전투 이후 90년이 지났을 무렵, 오랑캐의 나라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한족의 국가 명나라를 다시 세우게 된다.

각주

  1. 최후의 저항을 이끌던 장세걸과는 친척지간이다.지 손으로 동포들을 결정적으로 도륙낸 새끼가 지은 시라고 하기엔 앗쌀하다. 싸패새끼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