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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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 수나라 멸망 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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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대 왕
24대 25대 26대 27대 28대
양원왕 평원왕 영양왕 영류왕 보장왕
재위기간
618년 ~ 642년

본명은 고건무.

고구려의 27대 왕이자 영양왕의 동생.

고수전쟁 당시 을지문덕, 요동성주와 함께 수나라를 막아낸 명장이다.

612년,수나라의 황제인 수양제는 전투병력 113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오는데, 요동성에서 요동성주의 무적수성에 막히자 결국 장군 내호아에게 수군 4만을 줘서 평양으로 직공하게 한다. 이 작전이 잘 먹혔는지,초반엔 고구려군이 수나라군의 상륙을 저지하다가 패배하였고, 결국 후퇴한다.

이렇게 되니 내호아는 약탈을 할 생각에 존나좋군을 시전하며 평양성을 쳐들어갔고,열심히 약탈을 하지만,우리의 고건무 센세께서는 단 500명의 결사대만 이끌고 수나라 군대를 기습,500명만 데리고 4만명을 요리해버리는 미친활약을 하게된다. 결국 내호아는 겨우 수천명만 이끌고 퇴각. 캬 고구려뽕에 취한다!

하지만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자 더이상 전쟁도 하기 싫겠다 중국에 대한 대응도 강경책에서 유화정책으로 바꾸고, 겸사겸사 왕권도 강화시킬겸 당시 귀족세력 톱인 연개소문을 족치려고 했으나, 군사적 직책을 맡고있던 연개소문이 낌새를 채 먼저 발터질을 해 처형당하고 시체는 토막나서 조리돌림 당한다.

ㄴ최후.. 토막 살해설에 관해서는 당나라에서 얘기가 나온것만이 전부인지라 어느정도 걸러봐야 한다.

당나라와 화친을 추구하긴 했어도 완전히 걔들을 믿은건 아니라 천리장성등 방어체계를 정비했는데, 연개소문이 이거 맡으면서 안 그래도 컸던 개소문 세력을 더욱 공고히 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ㄴ 먼 개소리냐 천리장성 공사 시작할 때는 연씨 애들 전혀 손도 못 대던 시절임. 대놓고 말해서 영류왕이 죽은건 연개소문을 천리장성 건설 책임자로 임명하고 부임지로 보내려고 하던 행사에 참석했는데, 행사장에서 연개소문이 반란을 일으켜서 영류왕이랑 귀족들이 죽은거다. 언더스탠? 대놓고 아무것도 못하고 전쟁영웅 영류왕이 죽은게 행사장에서 죽었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