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오자양장

조무위키

요약

이 캐릭터는 진짜 개씹사기라 게임을 노잼으로 만듭니다!
이 문서는 심하게 사기 포스를 풍기는 미친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에서 이걸 골랐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고르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촉한의 오호대장군마냥 위나라에서 인기 있는 다섯명장...이라고 쓰고 싶지만 인기도에는 차이가 있다. 장료, 장합, 서황은 삼국지팬들이 좋아하는 인기도 높은 장수지만 우금은 마지막에 관우에게 포로로 잡힌것 때문에, 악진은 그냥 인지도가 떨어져서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설명[편집]

삼국지 위나라의 명장 다섯명을 뜻하는 말. 각각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뜻하며 조조의 친인척을 제외하고 조조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 다섯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친인척을 포함했다면 조인이 끼어있어야 한다. 정사엔 장악우장서전으로 표기되는데 촉나라에선 관장마황조가 여기에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정사에서부터 '조조가 무공을 세울 때 양장으로는 이 다섯 명이 으뜸이었다.'라고 진수가 명칭하고 있어서 연의 설정인 오호대장군과 달리 당대부터 이렇게 알려진 장수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료 자 문원, 병주자사 정원이 그의 용력을 듣고 등용했으며 이후 동탁을 섬기게 된다. 동탁이 패망하자 군을 이끌고 여포에 속했고 이각에게 패하자 여포를 좇아 서주로 달아났다. 이후 하비에서 조조의 부하가 되었으며 관도대전 이후 답돈을 참하고 업을 격파하고 별도로 기주의 여러지역을 공략하고 여러 산적들과 흑산적 손경을 불러 투항하게 했다. 조조를 따라 원담을 격파하고 별도로 해안 지대를 공략하고 요동적 유의를 참했으며 진란, 매성의 반란을 제압했다. 이후 합비에 주둔하여 800명을 가지고 오나라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공으로 가장 이름이 높다. 이 공로로 조조 생전에 식읍 1600호를 하사 받아 조조 생전에 오자양장 중 가장 많은 식읍을 받았다.

ㄴ 안면인식 장애가 있었다

ㄴ 팔건장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팔건장이라는 꼬라지가... 장료는 괜찮은데 나머지가 시궁창이다. 송헌, 후성, 위속, 장패, 성렴, 학맹, 조성 이렇게인데 장료 빼고 전부 쓰레기다.


악진 자 문겸, 조조를 오랜기간 모신 숙장으로 진류에서 거병할 때 부터 휘하에 있었다. 체구는 작았으나 담력이 뛰어났으며 용맹했다.관도대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오소를 수비하던 순우경을 참했다. 원담, 원상을 여양에서 공격해 그 대장인 엄경을 죽이고 행 유격장군에 임명되었다. 그후엔 업성 포위전에 참가하였고 업성이 함락되자 남피의 원담을 공격하여 동문으로 제일 먼저 도착하여 돌입하였고 원담의 패배 후에는 별동대를 인솔하여 옹노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형주 진수 당시 관우와 소비의 침공을 막아냈고 장료와 함께 합비에서 오나라를 막은 공이 있었다. 조조 생전에 받은 식읍은 1200호였다


우금 자 문칙, 조조의 서주 공격에 동행해 광위를 함락하는 공을 세우고, 복양 전투에서도 고아, 장초를 격파, 이후 황건적 황소, 유벽을 격파, 원술의 교유를 비롯한 4명의 장수를 참수했다. 장수가 항복했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청주병들이 약탈을 일삼자 이를 토벌하고 적을 막을 영채를 쌓았다. 영채를 안돈시킨 후에야 비로소 조조를 만나 그간의 정황을 진술했다. 이때 기뻐하는 조조에게 옛 명장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조조를 따라서 장수를 공격하고, 하비에서 여포와 싸우는 데도 종군했다. 사환, 조인 등과 함께, 수고를 공격해 죽였다.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러 떠났을 때 오직 2천의 군사만으로 연진을 지켜 원소군을 막아냈고, 오히려 5천을 이끌고 북상하여 황하 강변 원소군의 수많은 별영을 격파하는 등 맹활약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관우에게 포로로 잡힌 실책으로 고통받았다. 조조 생전에 받은 식읍은 1200호였다.

ㄴ 이놈이 다른 의미로 관우의 죽음에 일조했는데 이놈과 그 병력들이 먹은 군량으로 관우는 결국 오나라에 가서 군량 탈취를 하게 된다.


장합 자 준예, 원래는 원소의 부하였으나 관도대전원소군의 진영에 불을 지르고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독자적으로 청주로 진격해 동래군의 관승을 쳤고 장료와 함께 진란, 매성을 토벌했다. 마초와의 전쟁에서도 조조 휘하에서 활약하여 마초와 한수를 물리쳤고 이후 마초 휘하 양흥, 저족을 물리치며 마초의 끊임없는 공격을 격파하면서 장안과 양주 일대를 평정했다. 한중공방전에서는 장비에게 대패했으나, 하후연 전사 이후 위군의 동요를 안정시켰으며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마속을 박살내고 진창을 구원하는 등 대활약했다. 이 당시 유독 왕평한테 약했다는게 약점. 오자양장 중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장수이며 사마의가 제갈량이 퇴각할때 추격하도록 명했으나 추격중 촉나라군이 오히려 역습하여 전사했다. 조예시기까지 활약했기에 식읍만으로는 4300호로 오자양장 중 가장 많다.

ㄴ 사실 원소군 최강의 양대산맥 장수는 장합과 국의였다.


서황 자 공명, 원래는 이각의 부하 양봉의 부하였으나 이후 조조 휘하로 들어온다. 여포 토벌에서도 큰 공을 세웠으며, 하내에서 수고를, 정진에서 문추를 격파했다. 역양에서 한범을 토벌하였고 모성을 정벌하였으며, 남피에서 원담을 무찌르고 답돈과의 싸움에도 참가하였다. 태원의 반란군인 상요를 참수하였다. 관도대전 때도 크게 활약하였는데, 원소군의 군량을 탈취하고 오소를 급습했을 때에도 활약했으며, 마초, 한수와의 결전에서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12영의 군사로 관우의 5천병사를 격파하고 번성 내부의 만총과 협공하여 번성포위를 푼 공으로 이름이 높다. 이후 하후상, 맹달과 함께 상용의 유봉을 격파했으며 양양에서 사마의와 함께 제갈근을 막았다. 맹달에게 죽은 연의에서와 달리 정사에선 병사로 추정. 식읍은 조비때까지 활약했기에 3100호를 받았다.

한섬 양봉 일당들 중 장수들은 양봉유비에게 살해당했고 한섬은 반란나 뒤졌지만 서황만은 조조에게 중용되었다. 원래 한섬 양봉 이놈들은 천하의 잡장들이나 헌제를 보호해서 살아남게 해줬다는 이유로 로또를 맞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노략질을 하고 다녀서 인심을 잃고 결국 조조에 의해 현상수배 되었다가 유비에 의해 토벌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