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조준

조무위키

사전적인 뜻[편집]

Aim

총이나 활 등 원거리로 쏠 수 있는 무기를 겨누는 것을 말한다.

고려말~조선 초기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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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얘가 누군데 씹덕새끼야

ㄴ이양반 자체가 최근에야 이름값이 높아졌지 과거엔 그런사람이 있었나?수준으로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조준(趙浚)
이명 자 명중(明仲), 호 우재(吁齋) 혹은 송당(松堂)
출생 1346년 서북면 서경
본관 평양 조씨
사망 1405년 11월 한성부 사저
학력 1374년 고려 함과에 급제
국적 고려, 조선
작위 충의군(忠義君),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가족 증조부 시중 조인규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제 死대 영의정.

본래 그의 집안은 토산현 흙수저집안이었지만 증조부 조인규가 몽골어통역관으로 출세하여 권문세족이 되었기 때문에 평양의 금수저집안에서 존나 잘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증조부빽을 통해 정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과거급제자들이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자 엄마 제가 과거급제할게요ㅠㅠ 하면서 빡공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이후 우왕시기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로서 강릉도 안렴사(按廉使)로 부임했다. 거기서 정치는 잘했다는듯? 이후 개성에서 사헌장령으로 임명되었다가 감문위대호군지제교로 전입되었다.

1382년 최영의 천거로 경상도로 내려가 왜구를 토벌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또 1383년 밀직제학찌고 상의회의도감사찍고 강릉도검찰사가 되었을 때 강원도에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여 선위좌명공신(宣威佐命功臣)으로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권신의 발호에 실망, 4년간 은둔생활을 하면서 윤소종, 허금, 조인옥, 유원정, 정지, 백군녕등과 친목을 다지면서 우왕축출을 기도했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조정을 장악하자 이성계에 의해 지밀직사사 겸 대사헌(知密直司事兼大司憲)로 발탁되어 주요 정치사안의 자문을 하게 되었다.

신진사대부가 토지개혁문제로 정도전파와 반정도전파로 갈렸을 때 정도전파의 네임드로 활동했다. 이어 정도전, 이성계의 핵심 측근이 되어 조민수, 이인임. 창왕, 공양왕까지 제끼는데 참여해 중흥공신에 서훈되었고 1391년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하지만 정몽주가 급진파 사대부들을 대거 투옥시킬 때 같이 엮여서 투옥되어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정몽주가 대낮에 이방원한테 철퇴맞고 죽으니까 석방되었고 조선건국에 참여, 1등 개국공신이 되어 평양백으로 봉해지고 문하우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조선건국까지 정도전과 정치적 우군이었지만 건국이후 국정운영문제로 이래저래 싸우기 시작하더니 정도전이 이방석을 세자로 삼자고 하고 요동정벌드립을 치자 손절하고 이방원의 심복으로 활동했고 이후 칼방원과 랄부친구가 될 정도로 친해지면서 존나 잘나가며 천수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