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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주[편집]

州 / Canton, State, Prefecture(영어)

천조국독일을 비롯한 연방국가에서 쓰이는 지방행정구역단위를 한중일에선 주로 번역한다.

한중일에서도 주를 쓴적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죄다 폐지되었다.

중국의 주[편집]

태고시대인 삼황오제때 양주(梁州, 지금의 사천지방), 옹주(雍州, 지금의 관중지방)등의 주가 언급된다.

중국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주는 주나라가 2500개의 마을을 주로 묶은것에서 시작된다.

근데 주나라는 진작에 운지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바람에 별로 의미가없고 한나라 한무제가 대외원정이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대륙에 13개주를 설치한 것으로 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후한에서도 그대로 13주를 세웠다. 삼국시대때도 오나라가 광주, 서진이 진주를 신설하기 전까진 분열된 형주와 양주를 제외하면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에서 주의 대빵인 자사는 말이 좋아 대빵이지 군 태수보다 의전서열, 대우등 모든것이 떨어지는 병신에 불과했다. 이에 대한 시정을 위해 잠깐 어느정도 군권을 가진 주목(州牧)이 파견되긴 했지만 바로 황건적의 난터져서 좆망크리 ㅅㄱ

주가 군보다 높은 최상위 행정구역이 된 분기점은 역설적이게도 전 중국의 행정이 완전히 붕괴되었던 후한말 군웅할거시대와 삼국시대였다. 왜냐하면 원소, 조조, 유비, 손권같은 3개이상의 군을 통치하는 대군벌들이 당시 일상에 가까웠던 좆소군벌, 지방에 보내진 장군들의 빤쓰런, 뒤통수를[1] 막기 위해 주의 권한을 벌크업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군단위 좆소군벌들의 밥그릇을 족치기 위해 기존의 군현에서 새로운 현이 신설되고 그곳에 교위가 파견되고 결국 260년경 새로운 군으로 독립했다.

예를 들어서 남양군이 있던 자리에 관중지방의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하니까 남양군일대에 양양군추가해서 옹주(雍州)가 설치되고 진강지역에 중원의 이주민 수백만이 정착하니까 진강시만한 넓이에 남연주,남예주등의 주들이 설치되었다.

북조의 경우 전체인구가 수십만이었던 오랑캐들이 바퀴벌레급 물량을 자랑하던 짱깨들을 갑자기 먹어서 행정력이 딸린건지 주를 난발해댔다.

대표적으로 북위대에 병주에는 5개의 주가 신설되었을 정도였다.

때문에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한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륙에는 무려 241개의 주가 설치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주가 기존의 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의 지방행정제도를 주현제라고 하는것.

암튼 그렇게 쭉 살아오다가 어떤이유로 부로 승격되면 그 이름그대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명대에는 그런거 없고 주이름 그대로 부로 승격되었다. (e.g 매주부(梅州府))

중화민국시기에는 주가 너무 많다고 수많은 주자돌립의 행정구역들을 현자돌림으로 격하시켰다. 이게 지명으로만 전해지게 된다.(e.g 울주(蔚州)가 중화민국때 울현(蔚縣)으로 강등당한게 지금까지 이어짐)

한국의 주[편집]

백제는 알려진 것이 없고 신라고구려의 주는 지역맹주급 대형 성과 그 근처 작은 성들, 성내 군대를 지휘하는 지역 사령부로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 신라는 고위 군관인 군주(軍主)에게 주의 행정을 맡겼고 고구려는 주요 성인 오골성, 요동성, 개모성, 건안성, 책성, 부여성등에 주를 설치, 인근 성들을 군이나 현으로 삼았다. 고구려의 주는 고구려가 망하면서 같이 없어졌고 삼국통일에 성공한 신라의 주만 남았다. 이 신라의 주는 신문왕이 9주 5소경을 설치했을 때도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지만 통일신라 중기로 넘어가면서 일반 민정행정구역으로 변했다. 때문에 주의 머튽이 총관(661년에 채택)이나 도독(785년에 채택)으로 바뀌었다. 신라의 도독은 초창기 한나라의 주자사와 달리 자기가 맡은 주에선 왕과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요직이었다.

발해도 5경 15부 62주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주는 신라의 군과 같은 급이었고 62개주 휘하에 103개현을 설치, 통치했다. 하지만 거란에게 망하고 103성이 작살나면서 다 없어짐 ㅎ

신라가 운지하고 시작된 후삼국시대때는 자칭 천주절도사였던 의령태수 왕봉규처럼 태수새끼들이 군벌이 되서 광해주, 청주, 신주, 죽주등 각종 주가 대거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어째 수습하고 등장한 고려황주, 진주같은 어째 자신들이 관리할만한 주만 주답게 냅두고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하다시피했다. 물론 여몽전쟁이후 공양왕때 전국에 감무, 목등 중앙관료를 파견하여 국가재건을 하면서 어째수습이 된다만.

군벌들로 인해 떼거지로 등장한 주는 조선 태종이 주를 모두 산(山), 천(川), 성(城)등으로 갈아치우면서 정리되었다.

이후엔 중국, 좆본처럼 지명으로만 남게된다.

일본의 주[편집]

율령국 한두개를 묶어서 주라고 불렀다. 큐슈도 이렇게 9개 율령국을 9주로 불렀기때문에 큐슈가 된 것.

물론 짱깨, 좆선과 함께 좆본에서도 지명으로만 전락한다.

각주

  1. 정치적인 이유로 상용을 들고 튀었던 맹달이 대표적.

주나라[편집]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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