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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ttle of Valmy.gif

Battle of Valmy

개요[편집]

1792년 9월 20일에 벌어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프랑스 혁명정부 간의 전투.

배경[편집]

때는 프랑스 혁명 초기. 루이 16세찐따 새끼가 가만히 있으면 온건파가 쉴드라도 쳐줬을텐데 도망치다 걸린다. 이게 바렌느 사건[1] 째다 걸린 루이 16세 일가는 유폐되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무지랭이들이 을 끌어내린것도 맘에 안들었는데 유폐까지 했다는 사실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불쾌해 한다. 혁명의 영향이 자국 내에도 올까봐 걱정된 것. 결국 양국은 1791년 8월에 이른바 '필니츠 선언'을 한다. 선언의 내용은 왕에게 털 끝이라도 손 대면 파리를 불 태워버리겠다는, 한마디로 프랑스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게 골자였다.

씨발 이쯤이면 지렸겠지라고 생각한 프로이센과는 달리 프랑스인들은 빡이 단단히 쳤고, 한편으로 혁명정부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할 상황에 처했다고 인식한다. 혁명정부는 의용군을 소집하고, 다음해 92년 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개[편집]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국에 선전포고를 날린건 좋았는데... 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의 지휘 아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오는 7만의 프-오 연합군을 상대로 파죽지세로 개발살 나는 쪽은 프랑스 군이었다. 이럴 수 밖에 없었던건 당시 군사 교육을 받고 지휘를 하던 장교들을 귀족이라는 이유로 머가리죽창을 꽂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러니 남은건 혁명에 찬성했던 소수의 귀족 장교+군대완 관계도 없는 씹초보들. 군사령관 자리에 이발사가 앉는 꼬라지가 벌어지던게 당시 혁명군의 상황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아무튼 파리 근교까지 들이닥친 상태로 그야말로 절체절명, 풍전등화의 위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레알 기적이 벌어진다. 혁명군이 이겨버렸다.

프랑스 승리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혁명정부가 소집한 의용군들은 사기가 높았다. 조국이 위기에 쳐해있습니다 라는 멘트가 약빨이 잘 먹혔고, 고등한 군사훈련은 못받았지만 닥돌은 잘했던게 승리의 요인.

아무튼 연합군이 물러감으로 전투는 혁명 정부의 승리로 돌아갔다.

평가[편집]

그야말로 혁명을 구한 전투.

전체 피해는 프랑스측이 300여명, 오프 연합군은 100여명으로 사실 크게 박터진 전투도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승리했고, 혁명의 가치를 온존할 수 있었다는게 가장 큰 영향. 발미에서 패배했다면 파리가 함락되었을 거고, 루이 16세가 복권되면 공화국이 성립이나 됐을까? 잘해봐야 입헌군주제로 퉁쳤을 확률이 높다.

이후[편집]

바렌느 사건과 더불어 프-오 연합군의 침공으로 루이 16세 일가는 미운털이 잔뜩 박혔다. 국왕이 외국의 군대와 손잡고 자국민을 죽이려했다는게 이유. 안그래도 위태위태하던 루이16세는 침공 과정에서 탑에 유폐되었고, 발미 전투 승리 후 혁명 정부의 왕정 폐지 선언과 더불어 머가리가 날아가게 된다. 공화국이 성립된 것이다.

혁명 정부는 이 전투의 승리로 자신감을 회복한다. 특히 의용병이 주축이 된 시민군이 훈련된 타국군, 용병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안그래도 바게뜨들 DNA에 전통적으로 흐르는 국뽕을 치사량까지 축적시켰다.

결국 왕 머가리 날리며 성립된 신생 프랑스 공화국은 대외적으로도 '우리처럼 왕 머가리 날리고 정부 뒤엎을 색휘들아, 횽이 휫자쏜다' 라고 선언했고, 사보이와 니스, 벨지움을 합병한다. 그리고 이어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한다. 바야흐로 혁명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여담[편집]

현재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이때 소집된 남 프랑스 마르세예즈 지역의 의용군들이 부른 노래다. 노래 가사가 살벌한데, 가사에 외국의 용병들이 어쩌구 나오는건 이 전투가 배경이기 때문.


각주

  1. 바렌느 도주 또는 바렌느 배신 사건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