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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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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2003년 12월 19일, 동작대교에서 1979년생(현재 42세) 미친 이진우가 6살 아들과 5살 딸을 한강으로 내던진 끔찍한 살인 사건. 가해자가 현장 검증 도중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라는 개소리를 내뱉은 것으로도 유명한 사건이다. 이후 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되었으며 2021년 현재 만기출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K법 참 위대하다 씨발...

사건 경위[편집]

2003년 12월 19일 금요일 오후 4시경 살인범 이진우(24·무직)는 서울특별시 동작대교에서 남쪽으로 검은색 현대 트라제 XG를 몰고 가다 다리 중간 지점에서 내려 자신의 아들(6)과 딸(5)을 다리 아래 한강으로 내던지고 달아났다. 이게 사람이냐?

목격자 중에는 소설 '배후'의 작가 서현우가 있었다. 그는 19일 오전 J.TANK 집 앞에서 KAL 858기 진상규명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심재환 변호사의 사무실로 이동중이었다. 그는 이때 다리 한가운데서 트라제 XG 1대가 비상등을 켠 채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서 씨는 이때 범인이 차에서 나와 커다란 물체를 강으로 휙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한 서 씨는 차를 급히 세웠고 범인에게 다가갔으나 이 씨는 급히 차를 타고 도주했다. 서 씨는 "아이를 던진 것을 확신하고 도망치는 이 씨의 차량 번호를 급히 적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다른 목격자 박영창 씨(36, 전기공)는 "처음 아이를 던질 때는 사람인지 확신이 안 섰으나, 2번째는 아이임을 확신했다"며 "아이가 축 처져 있지 않아 살아있는 상태로 보였으나, 던지는 순간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생각만 해도 아이가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을지 상상이 안간다...

범인의 신상과 범행 과정[편집]

이 씨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1997년, 같은 학교 여학생이던 지금의 부인과 동거에 들어간 뒤 이듬해 아들을 낳고 정식 결혼을 했다. 그 뒤로 직업 없이 부모에게 얹혀 살면서 월 50만 원씩 용돈을 타서 살아왔다. 고교를 졸업하고 1998년부터 과천시의 경마공원과 부천의 TV 경륜장을 출입했다. 1999년부터 부천에 있는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으며 2003년에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2000년경부터는 5개의 카드를 발급 받아 사용하다가 3,000여만 원의 카드 빚을 지게 돼 2000년 7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 씨의 부모는 아들의 카드 빚을 갚아주다가 이 씨가 경마 등으로 자꾸 빚을 지자 도움을 주지 않았다. 부인과의 불화도 있었는데 도박을 하기 위해 범행 7일 전에도 부인의 카드를 훔쳐 500만 원 가량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 심하게 다퉜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을 키울 여력이 없어 범행 2주 전부터 동작대교 인근의 물 깊이를 재기 위해 답사를 하고, 인터넷으로 "한강에 투신했을 때 살아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조사했다고 한다.

19일 오전 이 씨는 부인이 자신의 승합차를 허락 없이 타고 나갔다며 부부싸움을 벌였다. 이 씨의 부인은 "남편은 '당신이 산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이 너무 비싸다'고 한 뒤, 선물을 바꿔 오겠다며 나갔다"고 말했다. 그 승합차를 타고 가서 인근 H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들을 "놀이공원에 가자"면서 데리고 나왔으며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면서 아이들에게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1알씩 먹인 다음 몽롱한 상태의 아이들을 한강에 집어던졌다.

범인 이 씨는 범행을 저지른 다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천모 씨(55)에게 "아이들을 한강에 던져버렸다. 부인도 죽이러 간다"고 말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을 죽여도 돼냐? 이 미친놈아.

체포와 시신발견[편집]

경찰은 차량의 뒤를 따르던 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차량번호를 추적해서 이 씨의 신원을 알아냈다. 이씨의 집으로 경찰을 급파, 오후 6시 15분경 귀가하는 이씨를 체포해서 서울 용산경찰서로 압송했다. 검거 당시 이 씨는 "지적장애 3급이라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장애인 신분증을 경찰에 제시했다. 역시 이런 것도 정상참작해주는 K헌법 대단해! 미쳤구나. 경찰은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119 구조대와 함께 4대의 배와 잠수부 15명을 동원해 한강을 수색했으나 물결이 높고 장비가 얼어붙자 당일에는 어린이들을 찾지 못하고 5시 반경에 수색을 중단했다. 다음날인 20일 오전 8시 수색을 재개했으나 결국 아이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정말 참혹한 사건이다. 게다가 이 짓한 새끼의 망언이 드디어 다음목차에 나온다.

현장 검증[편집]

위 짤방은 그 해 12월 22일 오전 11시 동작대교에서 벌어진 해당 사고의 현장 검증 영상에서 탄생한 것이다.

기자: 지금 심정이 어때요? 범인: 착찹하고 괴롭습니다. 기자: 후회 안 해요? 범인: 후회합니다. 기자: 뭐라고요? 애들 사체 발견된 건 알아요? 범인: 어제 들었습니다. 기자: 어때요? 심정이. 범인: 괴롭습니다. 기자: 왜 그랬어요? 범인: ...살 방법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기자: 왜 같이 안 죽었어요? 범인: 기독교인이라서 자살은 못 했습니다. 기자: 기독교인인데 사람 죽이는 건 괜찮아요? 범인: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기자: 뭐라고요? 범인: ...그래도 죄송합니다. 기자: 입 벌리고 말하세요. 범인: 죄송합니다. 이 어처구니 없고 기막힌 망언에 많은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른 문제 분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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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치기 · 접기 ]

1. 개요


인간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가장 모멸적인 위키, 인격체를 존중하지 않고 개만도 못하게 취급해버리는 소시오패스들의 위키[2]

만악의 근원이라고 쓰고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읽는다쉽게 말하면 마리사와 앨리스의 관계

2. 여담


이 문서는 지나가던 천하의 개쌍놈들, 만악의 근원 나뮈병·나뮈충 새끼들이 지딴에는 재밌는 줄 알고근데 진짜 재밌다고 생각하는 남간충이 있다는 게 함정. 위키러라고 쓰고 반달러라고 읽는다[3]
XX같은 취소선점괄호(?)와 쓸데없는 하이퍼링크크고 아름답게 많아서(...) 읽기가 힘든 헬게이트헬조선과는 다르다 헬조선과는!가 열린 문서입니다(...)아니야 우리 나무위키는 그렇지 않아!
빠가 까를 만든다 망했어요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4]가독성을 위해 검열삭제같은 점괄호(...)랑 애미뒤진 이런 거 그리고 이런거 그리고 깨알같은 주석의 비율을 줄여주세요.
그런데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현실은 그런 거 없다(...) 답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를테면 취소선이라든가 취소선이라든가
그리고 이 틀에도 쓰고 있다는 게 함정. 흠좀무. 무슨 지거리야 물론 믿으면 골룸.[5][6][7] 왜 골룸인지는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여백이 부족하므로 생략한다.
나무위키도 위키야 위키 나무위키에서는 편집이 당신을 합니다!! 나무위키의 영향력은 남한 제이이이이이이이일!!! 생략한다며! 그런거 없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사실 뻥이다 카더라.
이렇게 된 이상 취소선으로 간다 야 신난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취소선이 많아보인다면 지는 거다 나뮈병을 죽입시다. 나뮈병은 나의 원수
이거 뭐야 무서워...가히 데꿀멍 아 씨바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새끼들은 절대 사람 새끼들이 아닐 것입니다.
근데 지금도 계속 쓰고 있잖아? 안될거야 아마... 에엑따! 무... 무슨 지거리야! 용서 못해! 장비를 정지합니다 물론 이게(...)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이다(...) 아님 말고.
더 생각나는 X같은(...) 엔하계 위키/특징적 표현은 추가바람.
3. 관련 문서



[1] 점괄호(...)가 쳐져 있지만 실제로는 틀에 점괄호를 넣으면 망했어요.그럼 왜 점괄호를 친거지...(...) 지울 생각은 없나
[2] 참고로 필자는 좆무위키 안 한다(...). 괜한 오해 말도록.
[3] 취소선이 쳐져있지만 사실로 봐야한다(...) 나무위키의 높으신 분들은 취소선을 엄연히 '개그'의 한가지 아니,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4] 게다가 이런 각주도 줄줄이 다는 병크(...)를 저지른다. 충공깽(...)
[5]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각주를 줄줄이 다는 병크(...)를 다는 일이 없길 바란다
[6] 이렇게(...)말이다.
[7] 이 좆같은 각주를 줄줄이 다는 병크러들은[8] 사람 새끼가 아닐지도 모른다.
[8] 당연이 신지식의 성지 나무위키러들은 아닐 것이다.(...)[9]
[9] 이렇게 각주 안에 또 각주를 쳐다는 일도 없길 바란다. 무한의 각주? 히오스인가? 뭐야 이거 무서워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22장 21-23절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1].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의 복음서 22장 11-13절

가톨릭, 정교회의 관점[편집]

고해성사를 모독하는 것. 모고해가 성립되는 경우는 고해자가 고해신부 앞에서 죄의 고백을 할 때 기억에 떠오르는 사죄(死罪)들 중 어느 것을 고의로 숨기거나 사죄의 종류 혹은 회수를 은폐할 때, 그리고 사죄의 어느 것에 대하여 하등통회조차 하지 않고 고백할 때이다. 모고해의 결과 고해자의 죄의 고백과 고해신부의 사죄(赦罪)는 모두 효력이 없으며 고해자는 독성죄(瀆聖罪)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해자는 다시 온전한 고해를 해야 할 뿐 아니라 독성죄까지 통회하고 고백해야 한다.

 
가톨릭대사전, <모고해> 항목

모고해란 고해성사를 모독하는 경우나, 죄를 고의로 은폐시키거나, 중죄의 경우 불완전한 뉘우침(하등 통회)조차도 하지 않고, 고해 성사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음에 다시 고백해야 하며, 모고해 사실도 말해야 한다.

 
— 천주교 용어사전, <모고해> 항목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를 완전하고 깨끗하게 씻을 수는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보속을 통해서 죄로 인한 벌을 현세에서 감경, 혹은 보속이 죄에 비교해 충분히 컸다면 완전히 탕감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 역시도 간단하며, 단지 사제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깊이깊이 반성하며 다시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사실대로 고백하고, 사제가 내린 보속을 충실히 하는 것.

하지만 이들 보편교회에서는 이 항목과 같은 미친 소리를 방지하기 위하여, '제대로 된 반성 없이 고해성사를 보는 자들'을 '모고해'라고 하여서 '고해성사, 나아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대죄'로 본다. 당연히 죄가 씻어지기는 커녕, 죄가 더 깊어지는 역효과가 난다. 인터뷰에서 말하는 태도를 볼 때, 이미 "죽이고 회개하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이고, 이건 빼도박도 못 하는 모고해에 속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주어지는 회개 [2]에 대한 죄사함은 죄를 맘대로 짓고 입에 발린 반성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서를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기에 통회 및 고해를 하면 보속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나,[3] 계획적인 살인에 더해 "죄는 짓고 회개는 하면 그만"이라는 발상에 사제들이 괘씸죄까지 보속시킬 가능성이 높다. 설령 진심으로 고해했다 하더라도, 살인이라는 대죄에 대한 보속은 성경 73권(신약+제2경전을 포함한 구약) 전체 필사과제 쯤은 애들 장난일 정도로 무거울 것임에 분명하다. [4]

개신교의 관점[편집]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누구든지 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회개했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죄 하나하나에 대해서 일일이 회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시 19:13, 눅 19:8, 딤전 1:13, 15).

각자는 죄의 용서를 얻도록 기도함으로써 자기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사적으로 고백을 해야 한다(시 51:4­5, 7, 9, 14, 32:5­6). 그렇게 함으로써 죄의 용서를 얻게 되며 또한 죄를 버림으로써 자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잠 28:13, 요일 1:9). 그러므로 형제나 그리스도의 교회에 걸림돌이 된 사람은 사적으로든지 공적으로든지 자기의 죄에 대하여 고백하고 슬퍼함으로써 상처를 입은 자에게 자기의 회개를 표하도록 해야 한다(약 5:16, 눅 17:3­4, 수 7:19, 시 51편 전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이 회개를 통하여 화목케 되고 그를 사랑으로써 용납해 주어야 한다(고후 2:8, 갈 6:1­2).

 

이번에는 개신교 신학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이를 두고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식 구원론을 한국 근본주의 개독들이 함부로 남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남용도 남용이지만 구원론에 대한 자의적 왜곡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리와 엮어서 비판하기도 하는데, 효과적인 비판을 위해서는 기독론보다는 구원론의 측면에서 접근함이 적절하다.

어쨌든 개신교의 입장에서 얼핏 보기에는 마치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을 뿐, 솔직히 옳은 말이지 않은가" 식의 반응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죄는 씻을 수 있다는 이 헛소리에 담겨 있는 구원론은 근본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잡탕식 구원론이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일례로 침례교 신학자인 신광은은 한국의 개신교에 만연한 구원론을 분석한 바 있는데 [6]이것은 위의 망언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그에 따르면, 개신교 구원론의 두 축을 이루는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부적절한 야합이 문제라는 것이다. 참고로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아직까지도 상충관계에 있으며 두 교리 사이의 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 알미니안주의[7]:내가 내 의지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로써 구원의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도중에 구원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 칼뱅주의[8]: 은 나의 구원을 끝까지 결코 취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나를 구원하지 않았을 위험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서로 상충되는 두 교파의 교리에서 신자들이 듣기 좋고 입맛에 딱 맞는 부분만 이렇게 쏙쏙 끄집어내어, 그 둘을 한데 합쳐 버림으로써, 편의주의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며 교리라기보다는 비즈니스에 가까운 마케팅용 잡탕을 만들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즉, 제대로 된 알미니안주의자는 범인 이씨의 죄에 대하여 구원의 상실을 엄중히 경고했을 것이며, 제대로 된 칼뱅주의자는 범인 이씨의 죄에 대하여 주권적 유기를 엄중히 경고했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칼뱅주의자는 타인의 선택유기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구원받은 사람은 그 행실 속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게 된다고 추정한다. 즉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자기 죄를 진심으로 애통해하고 그 죄로 인해 고통받게 될 것인데 이 행동은 그렇지 않으니 '당신은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라고 경고한다는 뜻이다.

단, 현재 이 문서에서는 알미니안주의가 개신교 신학의 양대 축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개신교 신학의 관점에서 엄밀하게 따졌을 때 좀 어폐가 있다. 현대 개신교 교파들 창시의 기본 토대가 되는 루터의 이신칭의론은 대다수의 교파가 신앙의 근본으로 고백하는데 알미니안주의의 신인협력설은 이 이신칭의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아르미니우스파는 개신교에서 매우 극소수이다. 알미니안주의보다는 웨슬리안주의가 칼뱅주의에 대응하는 양대 축으로 더 알맞다. 웨슬리가 알미니안주의에 영향을 일정 부분 받긴 했으나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다. 웨슬리는 하느님의 선재은총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의 성화를 논했을 뿐이고 그 역시 기본적으로 루터의 이신칭의론은 베이스로 깔고 들어갔다. 그는 그저 칼뱅파 일부의 극단적인 이중예정설에 반기를 들고, 인간이 성화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을 뿐이지 이신칭의에 위배되는 구원의 취소 같은 것을 주장한 적이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교회 내에서의 신앙 활동(성사 등), 선행 등을 통해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주입된다는 의화교리를 갖고 있는 그 가톨릭 조차도 신인협력이나 구원의 취소를 그렇게 쉽게 논하지는 않는다.[9]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 역시도 구원을 논할 때 1순위가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구원관은 웨슬리안과 알미니안의 사이에 있다고 보면 된다. ~~확실한 건 정교회, 가톨릭, 칼뱅주의, 웨슬리안, 알미니안 등 어느 관점에서도 펠라기우스 이 놈의 자력구원설은 개소리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개신교인이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나올 게 아니라 "제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정도의 고백이 나왔어야 하지만, 그렇게 개념이 박힌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짓거리를 했을지는... 어쨌든, 어느 쪽 교리를 근거로 하든 저 자가 구원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오히려 엄격한 개신교 교리에 입각하면 저 발언으로 오히려 죄를 더 쌓았을 가능성이 한없이 높다. 만일 종교재판이 있던 시절이었으면 신성모독과 이단으로 즉시 엄중한 처벌이 나왔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개신교나 여느 기독교 교파의 관점에서는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다. 범인이 자살을 하지 못한 것은 십계명 중의 '살인하지 말라'를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자신을 '살인'하는 것이므로)[10]하지만 범인은 자신의 자식들을 살해하였다. 기독교 교리상 아이들은 돌보아야 할 존재들, 즉 지켜야 할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피의자는 자기 자식들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도박, 빚, 갈취 등 범행을 하기 전에 기독교의 교리에 철저히 금지되는 짓들을 저질렀다. 최종적으로 단결짓자면, 여느 보통 개신교인이나 기독교 교파에 소속된 신앙인들이 하지 않을 짓을 저지른 것이다. 범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며,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 그는 아마도 교회에 나가기만 하는 신자였을 것이고,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지도 못했다. 이리하여 저속한 교리에 대한 지식, 낮은 이해도, 그리고 오직 자살만은 안 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은 그를 좋은 결과로 이끌지 않았으며, 구원마저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신자라고 해서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뜻, 즉 살인을 포함한 모든 죄를 저지르지 않고 예수를 충실히 따르는 사람만이 구원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서, 예수를 아이들을 귀중하고 소중히 여겼다. 예수는 누구든지 어린이 한명이라도 죄를 짓게 하거나 불행하게 한다면 차라리 맷돌을 발에 걸어 바다의 빠지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다. 범인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그저 자살만 안 하면 된다는 생각은 기독교 교리를 모르는 것이다.

결론[편집]

기독교적 도덕율을 이유로 자살할 수는 없었다고 말하던 [11] 이 씨가 정작 기독교적 도덕율에 절대로 어긋나는 살인(그것도 자기 자식에 대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이 모순이 아니냐고 묻는 기자에게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식의 뻔뻔한 대답을 한 것을 보면, 그러한 모순적인 태도가 황당하고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함은 물론 기독교적 죄사함을 멋대로 범죄를 저지른 후 도피할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나 도피처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은 분명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자살은 그래도 자기 하나 죽고 말지 살인은 남을 죽이는 거다. 어느 쪽이 더 안 좋은 건지는 명명백백하다.

아무리 흉악하고 큰 죄인이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경우 신앙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 하나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의 교리와 입장에 따라 볼 때 이 사건의 범인 이 씨에게 구원의 여지가 없다, 즉 "죄를 씻을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의 교리는 죄를 씻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철저히 반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양심에 달린 문제이고, 개신교를 기준으로 보건, (고해성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 공교회의 입장에서 보건 타인은 알기 어려운 문제이다. 애초에 기독교적 기준에서 죄를 사한다는 것은 신의 몫이지, 인간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적 신앙 내에서 어떤 죄든 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12] 그리고 이 사건의 범인 이 씨가 정말로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는지, 그의 말대로 신에게서 용서받아 씻어졌는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이는 신이 판단할 문제이지,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13]

무엇보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도 하느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는 존재이며, 저런 위선적인 뜻을 가지고 마음에도 없는 회개를 하는 것에 대해 곧이곧대로 듣고 죄를 용서해 줄 만큼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다. 당장 복음서에서 바리사이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에게서 독사의 새끼들이란 쌍욕까지 먹으면서 강한 질타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자. 이들은 세간에서 보기에는 매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다.

물론 기독교 교리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그저 자신의 행위를 '종교의 힘으로 씻을 수 있다'라고 핑계치려는 망언으로 밖에 들릴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타 종교의 관점[편집]

불교[편집]

불교는 애초에 유일신 사상이 없고 그에 따라 누군가가 용서를 해준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참회하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하며, 고난과 수련을 통해 죄를 갚아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살인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에, 괘씸죄까지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교[편집]

이슬람교는 예배를 올리면 알라에게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며, 알라는 자비로운 분이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는 죄가 없다고 한다. 단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성이나 회개 없이 입만 나불거리며 죄만 용서 받으려고 하는 행위는 오히려 알라가 분노하는 죄악으로 간주하며, 회개의 효과도 없다고 가르친다.

자살 또한 이슬람에서 가장 강력히 금지하는 죄이다. 이슬람에서는 자살을 극도의 죄악으로 취급해서, 만약 돼지고기밖에 먹을 게 없다거나 라마단 기간인데 아사 직전이라면 일단 음식을 먹고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위급 상황에서도 종교적 고집을 부리며 거부하고 죽는 것을 오히려 죄악으로 취급하는 것.[14]

각주

  1. 여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한다면서도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
  2. 통회나 회개 자체가 그런 죄를 두 번 다시 짓지 않기로 뼈아프게 뉘우치고(痛悔) 뉘우쳐서 마음가짐을 바꾼다(悔改)는 뜻이라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고는 차원이 다른 반성이다.
  3. 살인 자체에 대해서 꺼림칙한 태도를 취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똑같은 상황이 왔을때 그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 역시도 당연히 전제되어야 한다.
  4. 참고로 한국은 범죄를 신고하지 않았다 해서 그 또한 범죄가 되지는 않으며, 고해성사를 듣는 사제는 오히려 비밀유지를 해야 하는 직종에 들어간다. 범죄 사실이 비밀유지 대상은 아니긴 하다만 아무튼 고해성사를 받고 범인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그게 법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 생긴다면 사제가 자수를 강력하게 권하긴 하겠지만.
  5.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홈페이지에서 발췌[[1]]
  6.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신광은, 2014. 단 이 사례를 분석한 저술은 아니다.
  7. 개신교 신학에서, 구원에 있어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중시하는 학설. ~~감리교, 성결교성공회 일부가 이쪽이다.~~ 현재 개신교 신학 양대 축 중 하나인 웨슬리안 계통의 교파들의 신학은 아르미니우스파 신학과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다. 웨슬리의 선재은총론과 알미니안주의의 신인협력설은 기본 전제부터가 다르다. 실제로 알미니안주의는 개신교 교파들 내에서 매우 극소수이다. 현재 개신교 교파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루터의 이신칭의론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 해석을 다르게 하는 것인데 아르미니우스파는 애초에 이신칭의 자체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8. 개신교 신학에서, 구원에 있어 절대자의 주권적 권한을 중시하는 학설. 장로교와 성공회 일부가 이쪽이다.
  9. 가톨릭 교리상으로는 대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통한 회개의 과정이 없다면 하느님 은총으로 받은 의를 상실하여 구원이 취소될 수 있기는 하다. 이 부분이 이신칭의를 주장하는 개신교 측에는 행위구원론으로 비판받는 부분이다.
  10. 하지만 대다수의 소심한 사람들처럼 실행할 용기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11. 애초에 기독교에서 자살이 안되는 이유가 자살을 스스로에 대한 살인과 동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2. 사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던지 신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그것을 씻을 수 있다는 것.
  13.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권리는 신에게 있으며, 인간은 신앙을 행할 뿐이라는 기독교 교리상의 정의(Definition)이다.
  14.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 외에도, 운동 선수인데 라마단 기간이나 그 직후에 중요한 국제 대회가 있을 경우 금식을 대회 이후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정말로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종교 교리는 잠시 옆으로 밀어놓아도 좋다는 소리이며, 반대로 교리를 앞세워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상술했듯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