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Leichter Kampfwage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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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칭 LK I

1차사료에 명시된 고증 이름 표기는 L.K.이며 L.K.I라는 숫자가 부여된것은 L.K.II가 계획된 뒤의 일이다

따라서 시기별로 L.K.와 L.K.I를 나누어 쓰는것이 바람직하다


이 전차는 A7V를 설계한 요제프 폴머(Josep Vollmer)가 중전차의 성능에 의구심을 품어 플랜B로 구상해오던 전차를 실차까지 만들게된 경전차이다.

1917년 9월 독일 교통수송국의 헤르만 마이어(Herman Meyer)대령이 이 계획에 허가를 내려 L.K.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개발완료를 지시한다.

하지만 1917년 말까지도 시제차 제작 허가나 예산은 지급되지 않았다.

독일 최고사령부는 전차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L.K.의 테스트는 커녕 시제차 제작또한 무기한 연기되었고 당시 이 전차만을 개발하던 VPK는 이를 매꿀만한 대체제가 없어 전차개발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차의 죽어가던 운명은 영국이 살려주었다.

캉브레 전투에서 영국의 대대적인 전차운용의 효과를 보고 독일 최고사령부가 잠시나마 전차에 관심을 표명하게 만드는 개기를 만들어주었던것이다.

1917년 12월 29일, 시제차 제작 허가와 함께 예산이 지급되자 VPK는 서둘러 시제차를 만들었다. 1918년 1월에 완성된 L.K.는 곧바로 시험주행에 들어가게 된다.

시제차의 주행시험은 성공적이었다. 최고속도 시속 30km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속도를 기록하였으며 기계적 신뢰성 역시 뛰어났다.

무엇보다 앞뒤로 긴 차체는 폭 2m이상의 참호를 넘어갈 수 있어 번번이 참호에 빠지던 르노와 대비되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평가는 이 전차가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평가를 알아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전차는 대량생산에 주안점을 둔 설계였기 때문에 엔진을 일반적인 차량에 쓰이는 60마력 엔진을 사용하여 엔진 수급만큼은 걱정이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차체설계에 중량제한이 생겨 충분한 장갑을 두르지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전차의 장갑은 8mm의 방탄 처리되지 않은 일반철강이 사용되었고 이는 반경 300m안에서 일반 소총탄마저 방어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최악의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1918년 1월 17일, 독일 최고사령부에 의해 L.K.의 제식채용은 거부되었다.


관련항목[편집]

Leichter Kampfwagen II

Leichter Kampfwagen II/K

관련정보[편집]

파일:독일 제국 국기.png파일:오스만 제국 국기.png 항목이 작성된 1차 세계대전 동맹군(사실상 독일 제국군) 무기 일람
화기류
보병화기 Gew98/MP18
권총 마우저 C96/루거 P-08/보르하르트 C-93
지원화기 MG08/M1918 탕크게베어
육상병기
전차 A7V/Beutepanzer
장갑차 E-V/4 에르하르트
프로토타입 K-wagen/LK 전차/Oberschlesien
공중병기
전투기 포커 아인데커/포커 Dr.1/알바트로스 전투기
폭격기 고타 G.IV/체펠린 비행선
해상병기
전함 나사우급/헬골란트급/카이저급/쾨니히급/바이에른급
잠수함 유보트(U1형~U158형)
참고: 제1차 세계 대전의 협상군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