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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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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할때 이만수라 친새끼들 다 꿇어라 갓동님이 니네 친구냐 씨발?

ㄴ 이만까지 치고 바로 지우고 갓동님으로 들어왔다 칭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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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갓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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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갓동님의 유일한 흑역사 84년에 갓동님이 09때 홍성흔 박용택때 처럼 타격왕 경쟁자인 홍문종을 9연속 고의사구시키면서까지 타격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갓동님을 존경하는 박용택은 이걸 벤치마킹해서 홍성흔을 제끼고 타격왕이 되었다.

이 틀의 대상은 시즌 MVP입니다.

ㄴ솔직히 장명부 거르고 이만수 주기는 좀; 장명부 걸러도 차라리 장효조가 낫고
ㄴ84시즌에 받을만했지만 김영덕이 '용택'해서 최동원한테 표가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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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인 혀라!"
KBO리그 역대 MVP
1982년 1983년 1984년
불사조 어그로꾼 갓동님 불멸의 투수
KBO 3대 포수
이만수 박경완 김동수
2014 KBO 리그 4대 명장
갓동님 빙동님 쪽동님 각동님
이만수 갓동님

St. Mansoo "The Baseball" Lee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22
삼성 라이온즈 종신 갓동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58년 9월 9일
출생지 감자국 철원군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머구
학력 머구중앙초-머구중-머구상고-한양머)
선수 정보
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맴버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포수
경력 삼성 라이온즈(1982~1997)
지도자 정보
경력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캐처 (2000~2006)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07~2010)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0)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0~2011)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1)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 (2011)
SK 와이번스 갓동 (2012~14.10.23)
라오스 J 브라더스 구단주 (2016~현재)
삼성 라이온즈 종신갓동 (종신)


선수 시절[편집]

최고의 수비와 최고의 타격을 갖춘 KBO 역사상 최강최고의 포수

KBO 역대 최강의 우타자 맞음 오푼신 이전의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그 자체


이것이 바로 갓동님의 위대하신 용안이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원년 멤버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하셨다.
위대한 야구인의 탄생을 알리듯, 1982년 동대문에서 열렸던 MBC 청룡과의 개막 경기에서 프로야구 1호 안타와 1호 홈런을 터트린 주인공이 되셨다.

1984년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타율-홈런-타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셨다. 다만 타격왕 차지할 때 정규시즌 막판에 타율 2위였던 홍문종에게 9연속 고의사구가 보내면서까지 차지한거라 논란이 좀 있었다. 25년 후에 박용택이 이걸 벤치마킹해서 타격왕이 되었다. 어쨌든 간에 이후 이만수는 최초로 83 84 85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셨다.

이만수는 홈런왕이면서 압도적인 볼삼비에 타격왕까지 경쟁할 정도의 타자 그 자체셨다. 수비부담이 큰 포수로서 쌓은 업적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야구 그 자체.

이후 10시즌 동안 리그 최정상 타자이자 삼성 라이온즈 원클럽맨으로 16시즌간 활약한 명실상부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은 실력과 인덕, 라이온즈에 대한 충성심을 겸비한 갓동님이 삼성 라이온즈의 종신감독이 되길 염원하고 있다. 그에 따라 갓동님은 무능한 쳐중일에 의해 통합 5연패의 꿈이 좌절된 칩성을 SK에서 그러셨듯 재건하려는 큰 뜻을 품고 계신다.

그의 직속고딩후배인 양준혁이 신인때 갓동님한테 죽빵을 가장 많이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양준혁이승엽을 유난히 갈구기도 많이 갈궜다. 특히 뒷담으로 갓끼리를 욕한다고 갓동님한테 맞은만큼 오푼이에게 그대로 돌려줬다고. 그러나 정작 갓동 본인은 효조갑에게 고딩때부터 많이 맞고 다녔다.

수비 실력 논란[편집]

이런 위대한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당시 프로야구에 몸담고 있던 선수 혹은 스태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만수의 공격력을 믿고 한 이닝이라도 더 기용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쉬운 공을 던져줬다." 식의 이야기가 많다.

특히 김성근 감독은 OB에 몸 담던 시절, "이만수 팔의 핏줄만 봐도 구질이 보였다. 그걸 보고 써 먹었다."고 강연때 얘기 하고 다니기도 했는데, 막상 그 경기 이만수는 긴팔을 입고 있었다. 각자의 판단에 맡기며 당시 세이콘이 사령탑에 있던 OB 베어스와, 갓동님께서 주전 포수로 있던 삼성 라이온즈의 성적 비교표를 첨부한다.

팀/시즌 1984 1985 1986 1987 1988
삼성 라이온즈 2 1 1 1 4
OB 베어스 3 4 4 4 5

참고로 당시엔 6개 팀이라 3위, 4위는 한국시리즈는 커녕 포스트시즌도 없이 시즌 접는 제도였다.

또한 5시즌동안 삼성vsOB의 팀간 맞대결은 다음과 같다.
1984 9승11패 삼성 열세
1985 15승1무6패 삼성 우세
1986 12승6패 삼성 우세
1987 12승6패 삼성 우세
1988 8승10패 삼성 열세

총 56승1무39패로 삼성의 압도적인 우세였다.(승률 .589) 세이콘은 이만수의 삼성한테 철저히 발리고도 입을 털며 정신승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

선수 생활 성적표[편집]

Year Team G AB AVG H 2B 3B HR RBI R SB BB OBP SLG
1982 삼성 라이온즈 78 270 .289 78 16
(6위)
1 13
(4위)
51
(5위)
46 6 50 .400 .500
1983 98 357 .294
(8위)
105
(7위)
12 0 27
(1위)
74
(1위)
53
(4위)
0 49 .379 .555
(2위)
1984 89 300 .340
(1위)
102
(6위)
17
8위)
1 23
(1위)
80
1위)
45
(9위)
3 38 .414
(3위)
.633
(1위)
1985 103 357 .322
(5위)
155
(5위)
19
(9위)
2 22
(1위)
87
(1위)
63 7 56 .414
(2위)
.571
(2위)
1986 59 212 .321 68 8 0 16
(3위)
39 31 1 27 .367 .585
1987 85 299 .344
(2위)
103 14 1 18
(2위)
76
(1위)
56
(6위)
6 51 .431
(2위)
.579
(1위)
1988 86 285 .323
(6위)
92 13 0 18
(3위)
58
(4위)
47 6 48 .419
(3위)
.558
(2위)
1989 110 359 .284 102 11 0 20
(3위)
64
(4위)
55
(10위)
4 52 .373 .482
(4위)
1990 110 359 .287 103 13 0 26
(2위)
57 50 3 59 .386 .540
(2위)
1991 118 378 .317
(5위)
102 18 0 17
(7위)
74
(6위)
51 6 64 .413
(4위)
.500
1992 93 305 .289 88 11 0 22
(6위)
70 50 7 60 .402 .541
1993 78 193 .207 40 3 1 5 20 21 0 24 .294 .311
1994 109 233 .253 59 14 0 12 37 24 0 33 .343 .468
1995 97 158 .215 34 10 0 5 27 17 1 32 .3373 .344
1996 97 193 .285 55 12 1 6 38 14 2 24 .359 .451
1997 39 52 .231 12 2 0 2 9 2 0 5 .298 .385
통산 15시즌 1449 4310 .296 1276 193 7 252 861 625 52 672 .388 .519
(8위)


이렇게 오랜 기간 라이온즈에 헌신한 갓동님이지만, 정작 삼성 라이온즈 프론트는 은퇴 후 코치 연수 지원 문제에 인색한 대처를 보여주며, 16년간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은퇴식도 없이 방출로 정리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하셨다.

16년, 13년간 삼성 라이온즈의 원팀맨으로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 두 명의 만남.

은퇴 20년 후, 두 명은 21세기를 대표하는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들이 되셨다.

지도자 생활[편집]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이만수 V2!!

갓동님의 지도자 생활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선수로써는 명예를, 감독으로써는 불명예를. 세이콘의 불똥을 치우느라 욕이란 욕은 다 쳐먹은 감독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편집]

한국인 최초 메이자리그 불펜 캐쳐, 시삭스의 우승 멤버

이후 야구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던 갓동님께서는 자비를 털어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 캐쳐로 7년간 활약, 2005년엔 8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으셨다.

좌측 하단에 갓동님의 존안이 보인다


메이쟈에서도 팬들과 호흡하는 갓동님


우승 퍼레이드. 이런 차가 5대가 있었는데 갓동님은 첫 차의, 그것도 가장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심지어 바로 옆은 당시 2005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한 저메인 다이이다.


그리고 이후 SK 와이번스의 강력한 간청을 받아 한국 야구계의 발전을 위해 수석코치의 자리를 허하신다. 한국으로 귀국하려 할 때 선수진과 프론트가 앞으로도 함께 해 달라며 간곡히 요청했으나, 갓동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셨다.

 모두가 높은 곳을 바라볼때, 나는 다시 한 번 낮은 곳을 쳐다본다.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SK 와이번스 1기[편집]

김성근과 갓동님

빛과 어둠

2007년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직으로 김성근을 보좌했다. 이후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오가다가, 김성근 경질 이후 SK 와이번스의 감독 대행을 거쳐 이듬해 정식 감독직을 맡게 되셨다.

당시부터 김성근과는 일련의 마찰이 있으셨다. 만리타들은 김성근의 선수 혹사에 갓동님께서 저항했다고 주장하고, 상당수의 SK 와이번스 팬들은 2군 감독인 시절 SK 2군을 꼴지로 끌어내린 것을 포함하여 이만수가 무능하다고 주장한다. 진실은 알 길이 없다.[1]

수석코치 부임 초기인 2007년, 당시 비인기 구단이던 SK의 흥행을 위해 한 "팬티 세레머니"가 유명하시다.

이런 갓동님의 현안과 희생정신으로 SK 와이번스는 비로소 베이징 뉴비와 새로이 야구를 보게 된 신흥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단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SK 와이번스 2기[편집]

세이콘의 저주로 좆망한 비운의 시절

이 짤방이 나오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짤방은 조롱의 의미로 제작된 것...이라기 보단 세이콘의 저주가 없어지길 바라는 의미로 제작된 것 같다. 야구 그 자체도 세이콘의 저주를 풀진 못했다. 언젠간 풀겠지

그저 머구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던 갓동님의 커리어에서, 상당수의 SK 와이번스 팬들을 제외한 야구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살아있는 성인으로 거듭난것은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ㄴ노리타냐? 그래 땅기는 모르겠다 치자 근데 한동민은 세이콘 이후에 입단했고 바키는 세이콘이 틀드카드로 쓰려했는데 뭔 세이콘의 유산 ㅋㅋ

ㄴ한동민은 갓동이 처음으로 1군 올려서 14홈런정도 치고 땅기가 잘치기 시작한건 2013때 부터다 그리고 위에 말했듯 암종윤과 틀드할뻔함. 전형적인 노리타 새끼

  • 최정이 갓동님 덕에 홈런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문서 반달당했냐?

ㄴ 근데 그 셋은 다른팀 가서 나란히 망했다지??

  • 용병 투수 마리오가 부상을 당하자 '용병은 용병일뿐' 이라고 말하며 구설수에 올랐다. 또한 루크 스캇과 말싸움을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ㅆ다.

연도 11 12 13 14
순위 2[2] 2 6 5


이 성적표에서 볼 수 있듯, 2번의 최종 준우승을 거머쥔 명장이다.

하지만 이후 2년은 세이콘의 저주에 못이겨 갓동님 마저 세이콘의 칠흑같은 저주에 빨려들어 2년동안 5,6위 싸움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게 기적이고, '미라클'이다. 선수들에게 고맙다. 뒤는 생각하지 않겠다. SK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으면 좋겠다.
 내가 없더라도, 다른 감독이 오시더라도 그 트렌드는 정착됐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이만수 갓동님, 14년 10월 17일. 넥센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이에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갓동님께서 류중일의 후임으로 삼성에 부임해 이러한 기적들을 다시 한 번 이뤄주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임감독의 개삽질에 힘입어 2014년 당시 없다시피한 용병과 부상지옥을 겪으면서도 마지막까지 4위 경쟁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만수가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어느정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후[편집]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이만수는 야구로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자는 일념 하에 야구 재능 기부를 시작하셨다.

2015년 1월 5일부터는 문경 글로벌 선진학교 야구부를 코칭하기도 했다. 문경 글로벌 선진학교는 운동만 시키는 한국 엘리트 체육의 병폐를 답습하는 학교가 아니라, 공부와 체육을 병행하는 진정한 문무 겸비의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는 학교로서, 갓동님의 스타일과 딱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이후 감독은 최향남으로 교체.)


이후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 브라더스를 아낌없이 후원하고 지도하며 척박한 땅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고 있으시다.

 모든게 쉽지 않았다. 입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뎅기열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선수들이 잘 웃지 않았다. 일일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잘 하는 선수는 안아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거북해 했지만, 점점 분위기가 좋아졌다. -라오스에서 귀국 후 인터뷰에서. 라오스 리

이만수 전 감독은 구장에 선을 긋는 일부터 시작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시가 아닌 스스로가 몸을 움직여 실천하고 있다.출처

 저는 평생 야구로 인해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제가 감독을 그만두고 쉬는 상황이기 때문에 팬들한테 약속한 대로 정말 제가 가지고 있는 야구를 후배들한테 재능 기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섬이든 산골짜기든 어떤 외진 곳이든, 부르면 달려가서 제가 갖고 있는 재능을 다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출처

시포를 한 이만수 라오J 브라더스 구단주가 시구 시타를 마친 선수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레전드와 함께하는 2016 KBO 야구캠프에 참석하여 각동님야왕과 함께 재능기부를 펼치시면서 대한민국 야구의 꿈나무들을 무럭무럭 키워내고 계신다.

대구 소년원까지 친히 찾아가셔서 포기하지 말라는 강연을 펼친 이만수 갓동님.

야구계에 희망을 불어넣는 이만수 갓동님은 폭력사태가 터졌던 화순초 야구부를 직접 찾아가서 재능기부를 펼치셨다.


2017년 12월에 '이만수 포수상'을 제정해 포수 기근 현상을 개선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다.

종합적인 평가[편집]

선수육성에는 일가견이 있으나 팀 케미스트리 관리와 경기운영 능력과 팀 운영 능력이 좋지 않은 감독

체계적인 시스템 위에서 정상급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기량을 발휘하도록 해주는데 일가견이 있는 류중일감독의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 쉽게 말하면 류중일이 잘하는걸 다 못한다.

뽑아낸 유망주는 갓동님이 좀 더 많긴하다. 김경문 감독의 하위호환급 존재.

김성근이 퇴임한 이후로 SK는 줄곧 선수전력은 우승권에 분류됐지만 성적을 못낸다. 포지션별로 ㅅㅌㅊ 선수들이 많지만 뭔가 아귀가 않맞는다. 투수진이 잘하면 타자진이 죽쑤고 국내선수가 잘하면 용병이 병신이 되고 조건이 갖춰지면 주축선수가 부상당하는 등 뭔가 핀트가 자꾸 않맞는다.

한두번 그러면 우연이지만 계속 그러면 감독의 능력을 의심해봐야한다. 첫 두해 2등한건 색깔이 강했던 김성근식 야구의 향이 아직 채 가시기 전에 올린 성적이고 그 이후 주축으로 클 만한 유망주는 자꾸 나오는데 팀으로써 뭉쳐지질 못한다. 자기 색깔을 못입힌다.

경기 운영능력도 좋지 않다. 작전 성공률은 바닥을 기고 경기 운영에 비전이나 색깔이 없다. 일명 영혼 없는 야구. 특히나 한국 역사상 색깔이 가장 독특했던 팀중 하나인 SK왕조의 바로 뒤 후발주자라 이런 단점이 더욱 부각된 면도 있다.

갓동님이 떠나신 후로도 SK의 문제점은 선수가 없는게 아니라 팀을 조율할 감동님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간성[편집]

예로부터 인간성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평을 받던 사람이다.

아래 사진은 365일 세이콘에게 혹사당하던 선수들을 구제하는 모습이다. 정작 본인은 현역시절 지독한 연습벌레였다는거.

이 사진은 당시엔 무지몽매한 야알못 우민들에 의해 '김성근의 지옥훈련으로 다져진 SK 와이번스의 케미스트리를 무너트리는 일이다.'라며 매도당했으나, 후일 김성근의 한화 감독 경질과 더불어 김성근의 '지옥훈련'으로 대표되는 팀 운영 방식이 구시대의 유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남에 따라 재평가 받는 짤이 됐다.

야구 해설위원 이병훈과의 현역시절 인연을 소개한다.

이렇듯 부부 사이의 믿음을 위트 있게 전파하시는 사랑의 전도사이기도 하시다. 병훈아! 또속냐


아래는 제자들과의 모습이다.

7선발급 투수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

김광현과의 사제관계는 이미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야기이고, 최경철과의 관계도 유명하다.

당시 1군과 2군을 전전하던 허접 포수에 불과했던 최경철은 갓동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이후 LG 트윈스에서 만개했지만 2015년 다시 망했다.

그러나 원래 좆노답새끼를 1년만이라도 터트린 갓동님의 위업은 머단하다 할 수 있겠다.

갓동님의 야구에 대한 신념과 열정,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면서 신나게 유망주들을 버리고 있는 세이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다.

수석코치 시절 이만수 갓동님의 순결을 빼앗아놓고 감독이 되자 쌩까고 똥칰으로 도망간 배은망덕한 정근우는....

결국 똥칰에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메이저 물먹었다고 한국야구를 개 좆으로 보던 루크 스캇이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날릴때도 웃어 넘기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타팀 선수라도 아낌없이 격려를 해주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김시진 前 감독하고는 삼성 시절 최고의 배터리로 이름을 날리던 사이였다. 둘 다 감독이 되서는 그 완벽함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우정만큼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감독생활을 빙시진하고 비교하진 말자. 2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감독과 감독생활내내 포시진출에 전부 실패한 빙시진은 넘사벽이다.

지금은 한화 최고의 먹튀로 거듭난 송은범도 SK시절엔 좋은 투수였다.

김성근 재임 시절 혹사당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고 돌아온 송은범을 선발로 믿으며 기다려준 이만수 갓동님의 전략으로 2012년 송은범은 부상 복귀 이후 윤희상과 함께 SK를 이끄는 원투펀치로 거듭나게 되고, 이만수 갓동님과 헤어져 KIA로 가자마자 바로 망했다.

역시 갓동님과 함께 있어야 선수들의 포텐이 터지는듯 싶다.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의 최고의 선수들, 선동열 각동님, 이만수 갓동님, 김시진 빙동님의 모습.

故 최동원의 모습을 볼 수 없는것이 정말 아쉽게 느껴진다.

국민타자 이승엽하고도 절친한 선후배 관계이다.

이만수 갓동님은 현역시절 이승엽의 타격폼을 따라해보면서 연구했을 정도로 이승엽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사진도 이승엽이 먼저 갓동님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8월 8일 엠스플 뉴스가 폭로한 화순초 야구부 폭행사건. 심정진 감독이 겨우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을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결국 감독직에서 짤려나간 사건이다. 하지만 피해자측은 이후 지역 야구부 인사들과 일부 학부모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해 2차 피해를 입은 헬조선스러운 결말로 끝날뻔 했으나 엠스플 탐사보도로 겨우 진상이 알려진 사건이다.

이에 이만수 갓동님은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이 전임 감독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을 걸 생각하니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라며 자책하셨고, 이후 최희섭 해설위원과 함께 직접 화순초를 방문하여 아이들을 위로하고 재능기부를 펼치셨다.

야갤러를 울린 그들의 우정

최동원과의 우정이 유명하다.

故 최동원이 암으로 투병하던 당시, 붓싼 싸나이의 자존심 때문에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했다.

그 탓에 친한 지인들에게도 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혼자 쓸쓸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평소 최동원과 절친했던 이만수 갓동님은 추석때면 최동원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는데, 당시 병원에 있던 최동원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최동원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처음에는 말을 돌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느끼신 갓동님께서 계속해 이유를 묻자 최동원의 아내도 사실을 고했다.


이만수 갓동님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을 정신도 없이, 추리닝바람에 맨 발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최동원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헐크라고 불리는 사나이, 이만수 갓동이 의식을 잃은 최동원의 옆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마냥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때 기적적으로 최동원 선수가 잠시 의식을 차리고 이만수 갓동님의 볼을 만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사흘 뒤, 최동원은 임종을 맞이했다.

이만수 갓동은 처음 병원을 찾은 날부터 최동원이 임종을 맞이하던 그 날까지, 매일 병원을 찾아와 오랫동안 그의 옆을 지키다가 돌아오곤 했다.

이만수 갓동님께서 지켜주신 덕에 최동원도 쓸쓸하진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출처


다음은 삼성 라이온즈 강타자 계보를 이어가는 후배, 이승엽의 통산 400 홈런 달성을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의 전문이다.

나는 지금 적도에 가까운 무더운 나라 라오스에 와 있다.
오늘도 올 해 내가 가져온 공과 방망이로 처음 야구를 시작한 라오브라더스팀을 지도하며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왔다.
샤워 후 핸드폰을 들려오는 잊지 않고 연락해주는 한 후배의 기쁜 소식에 마음이 동하여 글을 남기고 잘련다
 
이승엽. 두 말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이자, 내가 본 후배 중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다.
내가 은퇴를 앞둔 첫 해에 이승엽 선수가 루키로 팀에 합류했다 나는 그가 처음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리배팅을 하는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스윙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힘이 느껴져 마치 대포알처럼 공을 야구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나의 타구와 너무 비교 돼 고참으로서 선배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 감정이 400호의 홈런타구가 날라가는 장면과 오버랩 되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는 루키인 이승엽선수의 배팅연습을 몰래 커닝하면서 따라해보기도 했었다.
 
그 시절 경직된 선후배 문화만 아니었다면 가서 물어보고 후배에게 배웠더라면 나도 홈런을 조금은 더 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완벽한 스윙을 가진 그의 최고의 장점이 연습량과 자기관리라는 것이 또 한 번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만족할 줄 모르는 성격 덕분에 그의 스윙은 계속 진화한다.
팀에서 최고 고참인 그가 동계훈련에서 보이는 모습, 시즌 중 시합 전 모습, 시합에 들어가서 보이는 정신력,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자세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같이 성공하지 못한 지도자의 끊임없는 잔소리보다, 팀의 선배가 보이는 작은 정성의 모습들이
열 배, 아니 스무 배 이상 팀에 공헌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4번타자이자 아시아의 4번타자가 보이는 그 겸손함은
앞으로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이 더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배터리 코치로 있을 때 이승엽선수가 동계훈련차 지역 라이벌 팀인 시카고 컵스로 초대받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모시고 있던 기옌 감독에게 저 선수를 빼앗기면 우리는 앞으로 지역 라이벌전을 더 힘들게 치뤄야 할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 적이 있다.
기옌감독은 몰래 승엽이의 프리 배팅을 한참 지켜보더니, 어떻게 저런 선수가 아직도 한국에 있을 수 있냐고 꼭 데려오고 싶다고 흥분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만약 승엽이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고 우리가 데려왔더라면 그 해 메이저리그 홈런왕은 어쩌면 대한민국 4번타자의 차지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추억에서 나와 내일 훈련할 라오스 선수들을 위해 지도방안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훌륭한 스윙을 가지지도 않았고, 훌륭한 지도자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항상 내 몸이 고생을 한다.
아직도 저렇게 멋진 스윙을 가진 승엽이가 이 곳에 있었으면 더 훌륭한 야구를 가르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도 안 되는 아쉬움을 접어두고
나는 또 내일 자라나는 선수들이 이만수가 아닌, 더 멋진 이승엽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승엽아, 자랑스럽고 정말 축하한다.

시카고에서 만난 선배 홈런왕과 후배 홈런왕

이에서 볼 수 있듯이,

  • 1. 후배에게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탈권위적인 시각
  • 2. 일본에서도 온갖 조롱을 당하던 이승엽을 아시아의 4번타자, 메이저 홈런왕 감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하는 배려심 넘치는 모습
  • 3.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공경하는 이타주의적인 성격
  • 4. 자신의 팀을 낮추고 타팀을 끌어 올려주는 공리주의적 성격

을 두루 갖춘 사람이시다.


팬 사랑이 각별하다.

위에 언급된 팬티 세레머니뿐만 아니라, 팬서비스가 가장 좋은 야구인으로 알려져 있다.

야갤에서조차 팬서비스 관련해서는 험담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모조리 미담이었다.

이런 분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정신적 지주로 있으신 덕에 삼성 선수들도 전 구단중에 팬서비스 잘 해주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엽이 정신적 지주가 되자마자 구자욱을 비롯한 삼성 선수들의 팬 서비스가 개판이 되었다.

요번 챔필에서 한 올스타전 이였죠..
 
3루 서프라이즈존(익사이팅존)에서 경기 보고 있었는데 아마 이재원 선수 타석이엇을 겁니다
 
이재원 선수가 친 파울타구가 엄청 높이 뜬 상태로 서프존으로 날아오길래 저는 피했지만 어떤 여성분이 뒷목부분을 맞으셨더라구요...
 
경호원도 달려오고 무튼 꽤 심각해 보였고 밖에 나가서 치료도 받고 들어오셨는데
그 때 3루베이스코치를 이만수 감독님이 하고 계셨는데 관중석 쪽으로 오시면서
몸은 괜찮으신지 먼저 물어보시면서 배트 하나 드린다고 하시더라구요..
 
실제로 다음 이닝에 이재원 선수가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있던 배트랑 싸인볼 가져오셔서 그 여성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만수 코치에 관한 기분좋은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한국어로 이 이야기를
번역해준다면 참 고맙겠군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요.
 
A nice story about coach Lee.  If somebody can translate this in Korean, 
I would appreciate it and many people can share...
 
 
중부 표준시각으로 2005년 11월 3일 오후 3시 30분 chicagosports.com
을 통해 보니 참 대단하더군요. 화이트삭스는 우리들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지만, 저와 제 딸은 영원히 화이트삭스 팬이 되었습니다.
 
From Chicagosports.com November 3, 2005, 3:30 PM CST 
Unbelievable class. The White Sox may have broken our heart, 
but my daughter and I will forever be White Sox fans.
 
 
 
제 딸 Carris는 8살이고 Astros를 좋아해요. 그 애는 저와 함께
시즌 내내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카디널스와의 18이닝 플레이오프 게임과,
Astros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른 6차전 게임에도 함께 있었죠.
 
(옮긴이 : 18이닝 플레이오프게임 상대는 카디널스가 아니라 브레이브스 였음.
쓰신 분이 실수하신듯...*^^*)
 
 
My daughter Carris is 8 years old and loves the Astros. She has been 
with me through the entire season as well as the 18-inning playoff game 
against the Cardinals and Game 6 when the Astros clinched 
the National league championship. 
 
 
 
월드시리즈는 저와 제 딸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오후 4시 15분에 구장에 도착해서 월드시리즈 경기의 에너지를
보고 느껴보려고 했지요. 딸 아이는 엄청 좋아하는 제프 백웰의 사인을
무척 받고 싶어했지만, Astros는 연습하러 나왔다가 우리 쪽은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가버렸어요.
 
The World Series offered me a chance to enjoy an experience 
with her that neither of us will ever forget. We arrived at the ballpark at 4:15 p.m. 
to see and feel the energy of a World Series game. She hoped and hoped 
that we would be lucky enough to get a Jeff Bagwell autograph (her favorite player). 
The Astros took the field and left without even looking our way.
 
 
 
Carris는 약간 화도 났지만 Astros 선수들이 다시 와서 사인을 해주기 바라며
들떠 있는 상태였죠. 우리는 경기장 맨 앞줄쪽에 자리를 잡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나와 몸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그들은 여유있어 보였고
자신감에 차 보였죠. 선수들은 자신들을 향해 조롱을 하는 팬들 속에서
연습을 하며 쉴새없이 관중석에 공을 던져줬습니다. 곧 팬들은 화이트 삭스
선수들의 이런 모습을 즐기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리로 돌아가
잡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Carris was slightly upset but stayed anxious and hopeful that the Astros 
would come back and sign autographs. We stayed positioned on the front rail 
and watched as the White Sox took the field to warm up. They seemed loose 
and confident. They played with the fans that razzed them and consistently 
threw balls to the crowd. Soon the fans were enjoying the White Sox players. 
Many came over to the stands and small-talked.
 
 
제 딸은 화이트 삭스가 계속 훈련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었나 봅니다. 
우리는 구경하다가 파울볼을 잡으려고 했지요. 몇 개는 우리 쪽으로
날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졌죠. 그리고 '쾅!!'
저는 제 뒤로 열 다섯줄쯤 뒤에 공이 떨어진 관중석쪽을 보고 있었는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여자 아이가 다쳤어요!!". 저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끼며 돌아봤어요.
저 사람들이 말하는 여자 아이가 제 딸인지 확인하려구요.
 
My daughter still was not convinced the White Sox deserved any positive 
reinforcement. We then watched and now hoped to catch a foul ball. 
A few came our way although most landed well out of reach. Then, BAM. 
I was looking up into the stands where a ball had landed 15 rows behind me 
and then it happened. Everyone around me was yelling, "The little girl got hit". 
I felt my heart fall out of my chest as I turned to look and see if my daughter 
was the girl they were shouting about. 
 
 
Carris는 제가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어요. 딸 아이는 한 걸음 물러나
자기 뒤에 접힌 채로 있는 의자에 앉으려고 했지요. 저는 계속 물었어요,
"어디에 맞았니? 어디에 맞았니?". 딸 아이는 손을 들더니 살이 많은 쪽에
벌겋게 붓고 멍이든 곳을 보여주더군요. 우리 앞쪽에 있는 안전요원들이
의사를 불렀어요. Carris는 놀라지만 않았다면 괜찮아 보였음에도, 눈에
눈물이 고여 있더라구요.
 
Carris had a look on her face that I can not describe. She took a step back 
and tried to sit on the seat folded up behind her. I kept asking "Where did it hit you, 
where did it hit you?" She held up her hand and showed me a red, bruised spot 
on the meaty side of her hand. The security guard positioned in front of us 
called for the medics. Carris had a tear in her eye although she seemed OK if not in shock. 
                                                                                                  
 
우리는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화이트삭스의
불펜 코치 이만수씨였습니다. 그는 Carris의 손을 살펴보고 공 한 개를 
쥐어줬습니다. 그러자 딸 아이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저는
월드시리즈의 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만수씨는 그라운드에
내려가서 Carris를 안아올려 포즈를 위해 자기쪽에 세웠습니다. 그가 딸을
잘 달래고 있는 사이 의사가 왔습니다. Carris의 손은 약간 멍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앞줄을 떠나 우리 자리로 갔습니다. 딸은 그 공과,
벌이 그려진 풍선과, 글러브를 경기 끝날 때까지 꼭 쥐고 있었죠.
               
We waited for the medics to come but the first person there was 
the White Sox bullpen coach Man Soo Lee. He checked on Carris and handed 
her a ball. This brought a small smile to her face and allowed me a chance 
to catch this World Series moment on camera. Man Soo Lee reached down 
and picked up Carris and held her close to him for the pose. He offered 
some sympathetic words and then the medics arrived. Carris' hand was a little bruised 
but will be fine. We then left the rail at the front row and found our seats. 
 
Carris held her ball, her bumble bee balloon, as well as her bumble bee glove 
for the rest of the game.
                                            
 
저와 제 딸은 계속 Astros를 응원했지만, 화이트삭스의 코치 이만수씨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적어도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화이트삭스도 계속 응원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야구가 팬들을 위한 경기라는 것과, 이만수씨가 우리의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군요. 화이트삭스, 애스트로스 화이팅!!!
 
텍사스 Baytown 에서 Stan Terry
 
Even though Carris and I continued to root for the Astros, it's the little thing 
that White Sox coach Man Soo Lee did that will keep us pulling for the White Sox too 
(at least in the American League). I want to let everyone know that baseball 
is the fans game and Man Soo Lee is our hero. Go White Sox and Astros! 

Stan Terry, Baytown, Texas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이자, 439홈런(역대 통산 홈런 44위)이라는 대기록에 빛나는 폴 코너코는 갓동님의 가르침을 받고 각성하여,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했다.

ㄴ 그리고 그가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한 그해, 화이트삭스는 88년만에 우승하였고, 그 이후 아직까지도 우승을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갓동님에 대한 전설적인 소문 때문에 그의 재림을 기대하는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갓동님과 함께하던 시카고 시절을 잊지 못해 후에 한국 방송에서 인터뷰를 시도하자, '아 갓동님의 나라에서 온 방송국이냐, 그렇다면 당연히 인터뷰해야지. 무조건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받아주며 갓동님과의 추억을 언급하였다.


야갤에도 갓동님한테 사인받은 놈의 팬 서비스 후기가 올라와있다. 볼 놈들은 봐라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4&no=798768&page=360&exception_mode=recommend


이렇게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 파도미남파도미이다.


이렇듯 모든 야구인과 팬들을 두루 사랑하시는 갓동님은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나부터 사랑해야겠구나.는 신념 하에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데 열심이시기로 유명했다.

중학교 1학년 후반기부터 야구를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잘 따라가지 못해 2학년을 유급해 두 번 다니면서 중학교를 4년 다녔다고 하신다.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온누리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세계적인 선수가 돼야 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신 이만수 갓동께서는 이후 10년간 하루 4시간씩만 주무시며 야구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그 덕에 크보 최강 타자로 군림하시던 갓동님께서는 그 곳에서 꿈을 멈추지 않고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세우셨다.

현역으로 메이저 진출은 실패했지만, 이후 마이너 코치 2년을 거쳐 메이저리그 코치가 될 수 있었고, 메이저 우승반지까지 끼셨다.

그렇게 꿈을 이루신 갓동님의 다음 목표가 바로 이 좋은 야구를 젊은 선수들에게 재밌고 즐겁고 신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2014년 라오스에 야구 재능기부를 시작하심으로서 그 꿈을 이루어 나가고 계시다.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있다.

김성근과의 악연[편집]

KBO 34년 역사를 관통하는 악연

KBO의 어둠과 빛

이렇듯 훌륭한 품성으로 적이 없기로 유명한 갓동님이지만, 한화 이글스 감독직을 맡고 있는 김성근 감독과는 30년에 걸쳐 쌓인 악연을 갖고 있다.

사실 악연이라고하기에도 웃긴게 갓동님은 넓은 마음씨로 무슨 일이 있어도 허허 웃고 넘기지만, 졸렬한 세이콘이 열폭해서 꼬장부리는거라서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세이콘은 주로 갓동님이 야구를 못한다고 까는데, 실업팀에서 빌빌거리던 투수가 프로리그 타격왕 타점왕 홈런왕 선수한테 그런말하는게 좀 측은해보인다. 노망인듯.

30년동안 좆크보 우승 3번해본 인간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있는 사람 깐다면서요? 구라치지마라 그런 병신새끼가 어딨냐


80년대 초반을 보면 앞서 삼성 라이온즈 선수생활 당시의 수비력 논란에 대해 얘기하며 언급했지만, 김성근 감독이 "이만수는 팔뚝 힘줄만 봐도 구질이 보인다." 식의 얘기로 이만수 갓동님의 수비실력 저평가에 한 몫을 하였다.


이렇게 악감 정이 있을 법 한 상황. 1991년에 김성근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 글을 읽을 야갤러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김성근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를 필두로 한 빅 볼 야구가 아닌 벌떼야구라는 스몰 볼 작전야구에 특화 돼 있는데, 이에 대해 약팀 감독만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우스운 것은 김성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같은 강팀을 가지고도 스몰볼 작전야구를 하겠다며 자기 판을 짠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선수들을 홀대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중용하고 류중일 이만수 등 기존 선수들을 홀대, 대우 문제로 기존 선수들과는 마찰을 빚었다. 게다가 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는 했으나, 삼성 라이온즈의 목표는 우승이었기에 3년 계약기간을 못채우고 잘렸다.

사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때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쯤 미국 LA 다저스를 통해 수입한 수비 시스템을 도입해 보완하고 시험하는 중이었다. 이 무렵 LG 이광환이 '스타 시스템'이라는 이름하에 분업 야구를 도입하기도 했으니 한국 야구는 바야흐로 새바람 혁명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집 세고 굽힐 줄 모르는 김성근은 삼성 감독에 부임해 삼성 라이온즈가 미래를 보고 가다듬고 있던 수비 시스템을 뒤집어 엎으려고 했고, 선수단의 극렬한 반발로 이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기기묘묘한 언플로 오랜 세월이 지나기 전까지 이날의 투쟁은 단순한 선수들의 항명이요, 어른한테 대드는 호로자슥 짓으로 평가절하되곤 했다. 그리고 삼성 시절에도 수많은 선수들을 분질렀고 뽑을 풀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삼성에서 런했다.

그런 식의 인사가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까지 겹치며, 2년 뒤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창단 이래 최고 암흑기라는 5-6-6의 성적을 거뒀다. 팬들도 특유의 노잼야구와 기존 선수 홀대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당시 삼성 빨던 고추 안서는 삼빠 아재들은 이런 탓에 김성근삼성 라이온즈를 최악으로 회상한다고 한다.

어쨌든 이만수가 이렇게 사랑하는 자신의 팀을 조져놓은 김성근에 대한 인식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성근은 당초 2년 계약이 예정돼 있었고, 당시 헤드코치였던 이만수는 김성근 임기 종료 이후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성근SK 와이번스가 2연패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강팀으로 군림하게 되자 계약 연장을 하게 됐고, 이만수 갓동님도 안 그래도 김성근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데 자기 앞길도 가로막으니 갈등이 있었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옹호 여론과 겹쳐 갓동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선수단도 김성근 감독이 아닌 갓동님의 통제에는 따르지 못하겠다 하며 디스하는 등, 역시 안 좋았던 감정이 악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정도로 가는 곳마다 앞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김성근 감독에게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이 정도로 틀어지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김성근의 또다른 인격이 있는걸로 봐선 사실상 2:1 매치이다 카더라


이후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되면서 새로 영입한 일본인 코치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이탈하자 그 밑에서 몇 년을 버틴 갓동님의 인성이 (또)재평가되었다.


파일:일수만수.gif

또 다른 크보의 명장이자 팀메이트였던 송일수 감독과 랩배틀을 벌이는 장면

정말 못하는 게 없다.

파일:춤.gif

심판과 춤도 잘춘다

총평[편집]

박경완-강민호로 이어지는 한국 프로야구 포수 계보의 시조

양준혁-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삼성 라이온즈 강타자의 선구자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스포츠인

항상 겸손하며 낮은 곳을 지향하여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팀 역시 겸손함을 키우게 만든 한국 프로야구의 마더 테레사

자신의 청춘을 바친 삼성 라이온즈를 절대 1강으로 만들기 위해 삼성과 2강으로 꼽히던 SK 와이번스의 2군 순위를 꼴지로 만들며 1군 정규리그 순위 역시 6위까지 끌고내려온, 배영수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원조 푸른 피의 사나이

전임 감독의 선수혹사로 인한 성적때문에 업적과 능력이 가려져 비판 받은 시기도 있었으나 그가 지나간 뒤에 온 후임감독과 뒤늦게 밝혀진 전임 감독의 만행 덕분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희대의 갓동

참고로 그 후임 감독도 지금 재평가받는 중이다. 아무래도 김용희도 갓동님의 기운을 한 0.01%쯤 물려받았던 듯.

야구계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야구인

야구 전파를 위해 이역만리까지 날아간 야구 전도사

미래의 삼성 라이온즈 종신갓동

ㄴ'종신'까진 아니어도 왔으면 좋겠다. 돌한수 미친......

ㄴㄴ삼성 팬들도 팀꼬라지에 지친 모양인지 기사에 갓동님 모셔오자는 댓글이 종종 눈에띔.

인천에서는 그의 뜻을 기려 만수역을 만들어 놓았다.

여담으로 틀:착한 문서의 주인공이시다.

기타[편집]

나무위키에서도 인정받은 알찬 문서이다.

좆병신 빠따쿠들이 경기 승패에 따라 반달을 일삼는 야구 문서 사이에서도 문서다운 문서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양질의 문서이다.

이만수에 대한 말말말[편집]

야구는 그가 더 잘 안다.

 
— 안승민
2023년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
투수 양세자(1) / 천혜향(2) / 뷰지캐넌(4) / 홍정우(11) / 신윤호(15) / 점머우(17) / 유태인(18) / 최스카이(19) / 우승현(20) / 돌부처 (21) / 장필준(26) / 김태훈(27) / 서현원(28) / 백쇼or백린탄(29) / 노현진(37) / 칩사마(40) / 문용익(43) / 이재익(45) / 이재희(46) / 13연패 끊어줌(49) / 칩세웅(50) / (51) / 김서준(53) / 좌승현(54) /호성성님(55) / 수크라이(57) / 이상민(59) / 황동재(61) / 홍무원(62) / 김시온(64) / 박주혁 (68) / 박권후 (69) / 김용하 (00) / 김시현(100) / 박용민(101) / 맹성주(106) / 홍승원(108) / 박시원(109) / 김태우(113) / 장재혁(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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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예정 눈먼곤 / 눈뜬 장님들 / 제일기획 / 개씹좆학
영구결번 양준혁(10) (장효조와 동일한 등번호) / 이만수(22) / 이승엽(36)
삼전드 차기 갓동님 / 넥모바 빙동님 / 양신 / 천재2루수 / 0.331 / 살구아재 / 선수로서는 레전드 / 갓푼신 / 킁킁이 / 칩부처 / 느림의미학 / 저승사자 / 갓끼리사마 / 징어 / 머주자 / 181

각주

  1. 이 문장은 두 집단의 반달 전쟁 끝에 가장 완곡하고 두 집단의 의견을 모두 표명할 수 있는 중립적인 문장으로 바꿔 적은 문장이다.
  2.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최종순위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