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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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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행정구역 · 포항시 행정구역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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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다도해해상 태안해안 한려해상
사적 경주
경주시

慶州市

Gyeongju City

신라왕조의 왕과 왕비를 본딴 캐릭터
광역시도 경상북도
하위 행정구역 4읍 8면 11동 186법정리동 307리 335통 3,254반
인구 113,851세대 259,228명 (2017년 1월 31일 기준)
남 129,881명, 여129,347, 외인 약 8천명
행정면적 1,324.89㎢[1]
시장&국회의원 주낙영 & 김석기
기타 도심지역에 땅을 파기만 해도 문화재가 나와서 개발하기 힘들다.
시청 소재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양정로 260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

설명[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좆퇴물입니다!!

오래 전 퇴물이 됐거나 진행 중인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딴 새끼들은 고민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갖다 버립시다!!
다만 대상이 각성하여 예토전생 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신라 수도로, 경남과 경북이 이곳을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로마 포지션이라 하더라. 물론 지중해가 내해였던 로마 제국과 한반도 전체도 못 삼킨 신라는 비교할 깜냥도 안 되고 한국 기준에서는 그렇다는 얘기.

인구가 자꾸 줄어든다. 특별한 산업도 없고 관광도 망해가고 있고... 근데 솔직히 볼 건 없다.

ㄴ 역알못들이야 볼 게 없다고 한탄하겠지만 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만큼 문화재는 엄청 많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새끼를 위해 첨언하면 그거 국가 소유임 ㅎ 그래서 제대로 개발도 못 함.

땅만 파면 유물이라는게 ㄹㅇ 과장이 아니다. 심지어 땅파다가 유물 발견하고 발굴팀들이 발굴 다 끝내고 다시 흙 덮는 과정에서 흙으로 덮으려고 주변 흙을 파내오는 과정에서도 유물이 발견되는 곳이다. 그때 발견된 유물이 전차형 토기이다. 마침 그때 경주박물관에 와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그걸 보고 그 자리에서 발굴팀에게 차 한대를 하사했다고

모 급식이 전하기를 황성초에서 2015년에 한 번 계단 보수중에, 2018년에 한번 화장실 공사중에 문화제가 발견됐다 카더라. 심지어 거긴 보도블럭도 깔려있었음

경주빵은 황남빵 짝퉁이라고 하던데... 어차피 황남빵 자체가 경주와 별 상관 없는 일본 화과자의 로컬이니...

황남빵 같은 거 줄서서 사먹지 마라. 존나 쓸데없는 짓이다. 그냥 아무데서 황남빵 한 통 사서 집 가서 전자레인지에 물 한 컵과 같이 돌리면 갓 나온 황남빵 맛이 난다. 동네 가까운 시장이나 마트 가면 대량으로 팔 텐데 그거면 충분하다.

서점은 시내에 있는 제일서점에 가고 식당은 보문단지내에 호텔가라. 봄에 보문 가면 존나 예쁘다. 경주시내보다는 동국대근처 성건동 4거리에서 유흥을 즐길 수 있다.

정작 경주 가면 순두부 찌개와 떡갈비뿐이다.

양산단층이 위치해서 한국에서 지진이 가장 잘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 지진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2016년 경주 지진.

어떤 다큐 봤는데 이지역 지나는 단층이 좀 많다고 하더라. 와 헬이네.. 저거 다 움직이면 답없을 듯... 거기다가 옆에 단층들이 가까이 붙어있다. 이 같이 날뛰면 좆된다고하더라.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자본과 정치력 앞세워 고대유물 훼손해가며 건립한 강원도 춘천시의 레고랜드 코리아가 '적자랜드'가 되면서 적어도 유적지 보존이라도 한 경주시가 재평가 받게 되었다.

연혁[편집]

고대[편집]

고인돌, 청동검, 간돌칼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전 인류의 흔적은 없다. 이후 구정동, 평동 입실리 유적과 같은 후기 청동기 문화를 밝혀주는 유적, 조양동 유적과 같은 초기 철기시대 유적등이 있었다. 이후 고조선에서 월남한 유랑민과 토착세력이 스까되어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의 6촌이 만들어졌다. 이후 6촌 촌장과 북방 어디선가 내려왔을 박혁거세사로국을 건국하면서 신라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상기한 6촌은 32년(삼국사기피셜)에(?) 각각 양부(梁部), 사량부(沙梁部), 본피부(本彼部), 모량부(牟梁部), 한기부(漢祇部), 습비부(習比部)의 6부로 개편되었고 신라 왕경의 관할 행정구역이 되었다. 6부 아래에는 방(坊)과 리(里)가 있어 왕경-6부-방리의 형식으로 행정구역이 편제되었다고 한다.

고려[편집]

935년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낸 고려는 신라 왕경을 경주(慶州)로 개편시켰다. 940년에는 경주를 대도독부(大都督府)로 승격시키고 휘하 양부, 사량부, 본피부, 모량부, 한기부, 습비부의 6부는 각각 중흥부(中興部), 남산부(南山部), 통선부(通仙部), 장복부(長福部), 가덕부(加德部), 임천부(臨川部)로 개명시켰다. 그리고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신라멸망이후 월성이 슬럼가로 변하고 지금의 경주시가지에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경주읍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라 왕실을 어느정도 포용시켰다 하더라도 이들이 허튼짓을 할 것이 두려웠던 고려 조정은 경주와 경주출신인 舊신라세력을 고려 중앙정부에 들이는 것을 되도록 지양하는 분위기였지만...

왕건이 죽은 뒤 허구연날 터지던 케찹파티로 인해 고려 중앙정계의 주축이었던 개경, 서경출신 고위관료들이 갈려나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성종이 케찹파티로 개판 5분전이던 중앙정계를 어찌어찌 안정시킨 뒤 舊신라세력을 중앙정부로 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987년에 동경(東京)으로 승격되었고 995년 지방 수도를 통치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유수사(留守使)가 설치되었고 10도가 설치되면서 영동도(嶺東道)에 소속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경순왕이었던 현종[2]은 매년 3경에 왕이 행차해서 연회를 베풀어야 하는데 너무 멀다고 1012년 동경유수관을 경주로 격하시키고 방어사(防禦使)를 파견시켰다. 2년뒤 4도호부 체제를 정비하면서 경주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를 설치했다. 하지만 1030년 동경유수로 롤백시켰다.

이후 동경은 서경, 남경처럼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중앙관리들이 임명된 유수관과 서경의 서경관과 같이 토박이 향리들이 통치하는 자체 행정기관이 따로 설치되었다. 모두 후자가 실질 행정을 담당하고 전자가 후자가 뒤에서 호박씨를 까지 않나 감시하거나 서로 견제하는 구도로 3경이 운영되었는데 동경의 경우 '경주사(慶州司)'가 후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경주사는 호장정조 4명, 섭호장 4명(호장 최종 8명), 부호장 4명, 호정 2명, 부호정 2명에서 휘하 병정, 부병정, 창정, 부창정, 사옥정, 객사정등 이런저런 향리를 위한 관직으로 구성되었다. 경주 토착성씨중에서 경주 이씨, 경주 김씨, 경주 최씨가 경주사 호장을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우왕이후 경주 김씨와 경주 이씨가 경주사의 호장을 차지했다.[3] 하지만 강력한 행정권으로 유수관과 자강두천의 빅매치를 벌이던 서경의 서경관과 달리 이쪽은 실무는 다하는데 무신정변때 경주사가 반란에 참여하자 속군인 영주의 향리들이 경주사가 이끄는 반란군을 족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권한이 병신이었다.

유수관에는 동경유수사(3품이상), 유수사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지유수사(3품이상), 부유수(4품이상), 개경에 있으면서 감찰만 하는 판유수사(3품이상), 판관(判官, 6품이상),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 7품이상), 장서기(掌書記, 7품이상), 지역의 사법집행을 담당하는 법조(法曹, 8품이상),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醫師, 9품이상), 교육과 문장을 담당하는 문사(文師, 9품이상)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경주출신들이 너도나도 중앙관직에 진출해 한자리를 해먹으면서 중앙 문벌귀족의 핵심도시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무신정변이후 김보당의 난이래 "저 군바리새끼들 인정못한다!"라면서 1202년 동경 야별초의 난을 일으키고, 군바리들이 동경은 무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욷높이야 하면서 땅끄몰고 동경을 밀어버리면서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경 출신인 이의민덕분에 조위총의 난이후 서경처럼 완전히 좆망하는 것은 면했지만. 하지만 1204년 신라부흥운동사건으로 인해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을 먹고 휘하 속현, 영군이 모두 무신정권에 우호적이었던 도시인 안동상주로 예속되었다.

1219년 다시 동경으로 승격되었지만 몽골제국의 침공으로 인해 황룡사를 비롯한 동경의 수많은 랜드마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간섭기엔 고려의 위상이 격하되면서 1308년 계림부(鷄林府)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원간섭기 끝나고 잠깐 동경으로 복구되고 1378년 경주읍성이 재건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경주부(慶州府)로 개편되었다.

행정구역[편집]

파일:경주시 행정구역.gif

감포읍[편집]

이 문서에는 바다 냄새가 납니다. 또한 바다는 모든 걸 바다줍니다.
파닥! 파닥!

그 유명한 문무대왕릉이 여기 있다.

경주가 동해에 접해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경주시내가 바다랑 워낙 멀리 떨어져있고, 바다에 가려면 큰 산을 넘어야하기 떄문이다.

건천읍[편집]

단석산 : 여기도 경주국립공원인데 외지인들에게 존재감은 0에 가깝다.경부고속도로 건천IC와 신경주역이 있다.근데 건천IC가 뭔데 이 10덕아

안강읍[편집]

安康邑

면적 138.87㎢. 읍소재지는 안강리.

안강리(安康里), 양월리(楊月里), 육통리(六通里), 노당리(老堂里), 산대리(山垈里), 옥산리(玉山里), 하곡리(霞谷里), 강교리(江橋里), 두류리(斗流里), 근계리(根溪里), 갑산리(甲山里), 대동리(大洞里), 검단리(檢丹里), 사방리(士方里), 청령리(靑令里)의 15개리를 관할한다.

서기 128년(삼국사기피셜) 신라에 정복된 음즙벌국(音汁伐國)이 있었다. 음즙벌국 정복이후 그 자리에 음즙벌현이 설치되었고 지금의 안강리 자리에 비화현(比火縣)이 신설되었다. 경덕왕때 비화현이 안강현(安康縣)으로 개명되었고 신라말에 음즙벌현이 통폐합되었다. 신라때는 의창군의 속현이었지만 1018년 의창군이 흥해군으로 개명되어 경주에 내속되면서 그대로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엔 거물급 유학자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본읍에 옥산서원이 만들어졌다.

외동읍[편집]

공단에서 일하는 외노자들이 많다

생활권 일부는 울산 북구랑 붙어있음. 당장 홈플러스 북구점 40퍼 정도가 차타고 경주에서 내려온 사람이라 함

강동면[편집]

양동마을이 이곳 양동리에 위치하고 있다.

내남면[편집]

파일:흔드르라 이리야.gif !!!!
.
파일:Gmsemf.gif

2016년 경주 지진의 진앙지다. 전진은 규모 5.1 본진은 규모 5.8이다.

진앙지인 만큼 피해가 컸다.

윾시민의 고향이다.

남산 : 문화유산이 상당히 많이 있다. 산은 낮은데 낮다고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산내면[편집]

산내 계곡이 시원하다. 여담으로 필자는 산내고등학교에 갈바에 자살을 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선언한적이있다.

서면[편집]

부산의 서면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좋다.

양남면[편집]

관광, 모화공단과 함께 경주의밥줄인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여기있다.

양북면[편집]

감은사지가 여기에 있는데 저녁 해 질 녘 에 가면 운치가 상당히 좋다.

천북면[편집]

깡촌

현곡면[편집]

유일한 희망 프루지오.그리고 나원역

동천동[편집]

시청과 한전이 있고 아재들의 놀이터 5

보덕동[편집]

역사관광보다는 레저 휴양 중심 관광단지다. 리조트, 호텔이 상당히 많고 보문호, 덕동호 가 있는데 여기랑 토함산을 지나 감포까지 가는 (구)4번 국도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다.(초보는 딱히 추천안한다 길이 안좋아서)

천군동[편집]

경주월드 있는 곳. 롤러코스터 애호가의 성지이기도 한다.

불국동[편집]

불 . 국 . 사

선도동[편집]

지랄이야 성건은 외국애들 많아서 모르겠는데 선도동 ㅈㄴ 살기 좋다 게이야..

성건동[편집]

제일 더러운 동네임

용강동[편집]

경주의 할렘가. 용강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의 용강동은 레알 할렘 그자체다.

월성동[편집]

황룡사지, 안압지, 첨성대, 월성, 국립경주박물관, 분황사

중부동[편집]

황남동[편집]

대릉원, 포석정, 남산, --개--황리단길

황성동[편집]

경주에서 그나마 '시' 스러운 자랑스런 황성공원이 있음

황오동[편집]

관광[편집]

경주하면 관광이다. 도시자체가 박물관이다 보니 수학여행지로 많이 이용하고 조가튼 수련회수학여행때 많이도 이용한다. 세월호, 메르스, 코로나 콤보를 맞아본 세대가 아니라면 한번쯤은 다 갔던 곳이고 학교가 병신이라 초등학교 때 한번 중학교 때 한번 고등학교 때 한번 더 가는 경우도 가끔있다 게다가 수련관도 다똑같으면 거의 연례행사 수준ㄹㅇ

ㄴ난 세월메르스 콤보도 아닌데 한번도 안가봤다 ㅜㅜ

여기도 한옥마을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지진 이후로 침체기 상태다.

ㄴ 지랄 페북보고 첨성대 존나옴. 그만좀와라 차막힌다 개새끼들아.황리단길에서 갓길로 다녀라.6백미터짜리 길 가는데 10분 걸린다.딴 데서 맛있는 밥 먹어라.거기 갈 시간에 읍성이나 가라

원체 노잼이라 수학여행 이후론 경주쪽으로 오줌도 안쌈.

대학교 사학, 고고학, 역사교육 이런곳에 들어가면 한번쯤은 경주로 답사 올거다(안올수도 있고) 필자는 2013년에 사학과 답사로 경주갔는데 남산이 젤 빡시다. 산 자체는 낮고 1000m넘는 본좌급 산에 비하면 힘은 덜 들지만 난간같은 안전시설이 ㅆㅎㅌㅊ니 조심해서 오르도록. ㄹㅇ 한눈팔면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저세상 갈수도 있겠구나 라고 느꼈다.

ㄴ 용장인가 거기가 좀 많이 위험해보이긴 했는데 거기 빼곤 괜찮았음 나는 2018년에 다녀왔다.


2016년 9월 12일. 명절특수를 준비하는 경주에 난데없이 규모 5.1 전진과 5.8본진이 덮쳤다. 이 지진 이후...

현재도 여진만 600번 넘게 발생 중인 헬경주인 상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정도인 3.0지진도 번번히 일어나니까 지진딸 해보고 싶다면 지진도시 경주에 가보자


근데 요즘은 안난다. 응력이 다 해소됐는지는 모르겠다.

ㄴ 그래도 큰 차들 지나다닐때마다 스트레스받음

'경주 월드'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거기는 다른 테마파크에 비해 제법 혜자스러운 놀이기구가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근데 인지도가 좀 안습이긴 하다.

아웃풋[편집]


  1. 그중 개발제한지역이 농지559.34㎢, 녹지410.90㎢로 땅의 80%가 개발제한으로 못쓴다. 그래도 울산과 맞닿아있는 모화공단이 꽤 커서 경주인구가 유지된다. 외국인들이 8천명정도 되는데 혹시라도 봤다면 울산에 맞닿아있는 공단에서 일하는 외노자라 보면된다.
  2. 아버지 안종은 경순왕과 왕건의 딸인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3. 경주부호장선생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