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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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楚'[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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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춘추전국시대 화북새끼들한테는 이곳사람이 미개 그자체로 통했다. 어떤 신하가 항우한테 "초나라 사람은 모자 쓴 원숭이(초인목후이관)" 이지랄 떨다가 기름에 튀겨진 건 유명한 얘기.

장강 중류에 존재했던 나라. 지금도 장강 중류는 '초'지방이라고도 한다.

기원[편집]

장강의 토착 이민족들이 세웠으며, 이후 중원으로 진출하면서 명분 만들려고 지들 역사를 주작질해댔다.

서주 소왕이 얘네 족속 정벌하러 오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사기에 따르면 '남쪽으로 순수 나갔다가 죽었으며 강 위에서 죽었는데 천하에 알리지 않다' 라고 되어있으며 일설에 의하면 형초(형주) 사람이 백치(흰 꿩)을 바치려 하자 그걸 받으러 강을 건너다 배에 구멍이 뚫려 익사했다고 하는데..이렇게 보면 단순 익사 같지만 죽서기년에 보면 '한수에서 육사(6개 군단)를 잃다' 로 패전을 암시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결론은 전쟁에서 져서 죽은것.

나중에 제 환공이 춘추오패가 되어 초나라를 정벌할 때 2가지 이유를 들어 까는데, 하나는 주 왕실에 공물을 바치지 않은 점, 또 하나는 상술했듯 주 소왕이 한수에서 돌아가지 못한 점을 깠다. 그러나 당시 초나라는 공물을 바치지 않은 건 내 잘못 맞음 ㅇㅇ 하고 인정하면서도 뒤의 사실에 대해서는 그게 삼백년전인데 이제와서 지랄이냐며 한수 가에 가서 물어보라고 비아냥거렸다.

전통강캐? 속빈 강정?[편집]

서주시대부터 중국의 골치거리였다. 서주시대, 주나라만 왕을 칭할수 있었는데 얘들은 지좆대로 왕을 칭해서 주나라의 권위를 위협했다..만 장강만 올라가면 종이호랑이였는지 황하로의 진출은 맨날 실패로 돌아간다.

이는 당시 초나라가 장강 유역 세력들의 연합이기 때문이란 추측이 제기된다. 즉, 훗날 손오 세력과 마찬가지로 자기 나와바리 지키는 데는 민감하지만 더 쳐먹는 건 소극적이었다는 것. 그나마 전성기인 초장왕 시절에 크게 시도한 적이 있지만 그 때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것 외에는 계속 장강 유역에 머물게 된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시 중원입장에서 얘네는 사실상 같은 민족도 아니고 외국인급 이민족이다. 위치도 보면 딱 삼국지 형주 양양 강릉 이동네다. 관우가 죽기 직전에 형주에서 치고올라가니까 조조가 뭐랬지? 저기서 쫌만 올라오면 허창인데 수도 옮겨야되나?? 이런 반응이었다. 그리고 허창 근처엔 주나라 수도 낙양이 있다. 다시말해 역공은 못가더라도 사력을 다해 얘네가 올라오려고 하는걸 어떻게는 막아내서 장강-회수 유역 애들 세력을 억눌러댈 필요가 있던것이다. 그렇게 해도 늘 통하던게 아니라서 주나라 바로 옆에 정나라는 맨날 초나라 편에 붙었다가 중원 편에 붙었다가 생존을 위해서 박쥐짓을 일삼아야 했다. 심심하면 초나라가 강건너서 자기네들 줘패러오고 무력시위를 일삼았으니까.

그꼴을 보다못한 진나라는 매번 군사력으로 억누르는것도 힘들다보니 등뒤에 적을 만드는 작전을 세운다. 하류 지방에 있던 오나라를 키워준것이다. 이게 대박을 내서 이들에게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몰리기도 한다. (오왕 합려 시절)수도인 영성(삼국지의 강릉)이 함락되고 왕실의 무덤이 있던 이릉이 불탔다.

그래도 외부로의 진출을 항상 실패했다고는 해도 반대로 자기 나와바리 지키는 데에는 매우 민감한 동네여서(그렇지만 인간도살자 백기한텐 존나 털림) 왕전이 초나라 멸망시키려면 60만 대군은 있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 때 이신(만화 킹덤 주인공)이 10만이면 된다고 깝죽대며 나갔다가 항연(항우 할아버지)한테 개피봤고, 결국 왕전이 60만 대군 몰고 가서 초나라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이 때의 분한 복수심과 부심(혹은 정신승리)이 초나라 사람들한테 계속 남아서, 나중에 진나라가 호해와 조고의 삽질로 혼란에 빠지자 이 지역이 다른 어느 곳보다 가장 강하게 반발하게 된다.

멸망[편집]

막판에 합종책(제나라 후빨러), 연횡책(진나라 육변기) 양자택일에 몰리는데, 충신 굴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횡책을 택했다가 제나라 연합군에 다굴맞고 약소국으로 운지해버렸다.

기원전 223년 진나라 군대에 수도 수춘이 함락당하고 초왕 부추가 사로잡힘으로서 멸망했다.

초한쟁패기에 항우에 의해 잠시 부활했지만 항우가 회왕(의제)을 죽여버렸고 이윽고 유방에 의해 다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