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송)


11세기 12세기 관련 문서 13세기
12th Century / 12世紀 / 1101년~1200년
국가 포르투갈 왕국 · 레온 왕국 · 카스티야 왕국 · 아라곤 왕국 · 무라비트 왕조 · 무와히드 왕조 · 잉글랜드 왕국 · 프랑스 왕국(카페 왕조) · 신성 로마 제국 · 교황령 · 피렌체 공화국 · 베네치아 공화국 · 키예프 공국 · 비잔티움 제국 · 예루살렘 왕국 · 에티오피아 제국 · 파티마 왕조 · 아이유브 왕조 · 아바스 왕조 · 룸 술탄국 · 셀주크 제국 · 호라즘 · 가즈니 왕조 · 고르 왕조 · 서요 · 크메르 제국 · 리 왕조 · 송원시대(서하 · 요나라 · 금나라 · 송나라(북송 · 남송)) · 고려 · 일본(헤이안 시대 · 가마쿠라 막부)
사건 세계사
금나라 건국 (1115년) · 보름스 협약 (1122년) · 서요 건국 (1124년) · 정강의 변 (1127년) · 에티오피아 제국 건국 (1137년) · 포르투갈 왕국 건국 (1139년) · 아이유브 왕조 수립 (1171년) · 겐페이 합전 (1180년) · 가마쿠라 막부 수립 (1185년) · 튜튼 기사단 창설 (1190년) · 쇼군 직위 등장 (1192년) · 셀주크 제국 멸망 (1194년)
한국사
여진 정벌동북 9성 획득 (1107년) · 동북 9성 환원 (1109년) · 이자겸의 난 (1126년) · 묘청의 난 (1135년) · 정중부 수염 사건 (1144년) · 삼국사기 편찬 (1145년) · 무신정변 (1170년) · 김보당의 난 (1173년) · 조위총의 난 (1174년) · 이의방 암살 (1174년)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 정중부 암살 (1179년) · 경대승 사망, 이의민 집권 (1183년) · 이의민 암살 (1196년) · 만적의 난 (1198년)
대표 인물 아폰수 1세 · 리처드 1세 · 존 왕 · 필리프 2세 · 프리드리히 1세 · 인노첸시오 3세 · 살라흐 앗 딘 · 알라 웃 딘 무함마드 · 야율대석 · 천조제 · 태조(금) · 해릉양왕 · 휘종(송) · 흠종 · 고종(송) · 효종(송) · 악비 · 진회 · 의종(고려) · 윤관 · 이자겸 · 척준경 · 왕자지 · 묘청 · 김부식 · 김돈중 · 이고 · 정중부 · 이의방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안토쿠 덴노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관련 작품 수호지 · 무인시대
이 문서는 성군(聖君)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금 헌터 머똥령들이 본받아야 할 개념 군주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똥수저 백성들의 편이니 모두 폐하에게 경배합시다.
이 문서는 성인(聖人)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그 누구도 깔 수 없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성인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이 문서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역사 속의 네임드 급 인물들입니다. 이 틀은 고인이 된 대상에게 사용하십시오.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송나라의 역대 황제
10대 고종 헌황제 조구 11대 효종 성황제 조신 12대 광종 자황제 조돈


송 효종
묘호 효종(孝宗)
시호 소통동도관덕소공철문신무명성성효황제 (紹統同道冠德昭功哲文神武明聖成孝皇帝)
출생 1127년 11월 20일
즉위 1162년 7월 12일
퇴위 1189년 2월 18일
사망 1194년 5월 8일
국적


개요[편집]

송나라의 11대 황제 효종. 이름은 조신(趙昚)이다.

화북 지방을 잃고 위기에 빠진 송나라를 중흥시킨 명군이다.(사실상 남송의 유일한 명군)


제위 과정[편집]

선대 왕 고종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묘부의 변 이후 사실상 고자가 되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고종의 친자식은 남자 1명과 여자 5명이었는데, 친아들이 요절해버려서 실질적으로 황위를 물려주기 위해선

황실에서 인재를 찾아서 양자로 삼았어야 했다.

송태종 이후 송나라의 황제들은 고종 포함 태종의 후손인데 태종의 후손 대부분이 정강의 변 때 금으로 끌려가서

어쩔 수 없이 태조의 후손들 중 적장자를 찾았어야만 했고

결국 고종은 태조의 후손 둘을 양자로 삼았는데 그 중 한명이 효종이었다.

그렇게 1162년 7월 24일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고 효종이 황제가 되었다.

송태조의 후손이 황위에 오름에 따라, 효종 이후 송나라의 황제 자리(광종, 영종, 이종, 도종 등)는 전부 송태조의 후손이 차지했다.


평가[편집]

효종은 잃어버린 송나라의 고토를 수복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잠시나마 금나라를 공격해서 땅을 되찾은적이 있었으나 되려 뚜들겨 맞고 패하기도 하였다.

결국 효종은 무지성 북벌 이전에 가난한 백성들의 삶의 안정화 등 내치에 집중하게 된다.

효종의 여러 개혁들은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백성들에게 뜯는 세금을 줄이고, 미친듯이 올라간 소금의 가격을 안정화 시켰으며, 관리를 뽑는데에도 여러 부정부패를 없애서

고종 때의 부패와 불안정함을 해소하여 나라가 전체적으로 안정화되었고, 송나라 백성들의 삶의 수준은 높아졌다.

효종이 다스린 이 시기를 건순지치(乾淳之治)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강의 변 이후 망조가 존나 씨게 든 남송을 안정화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였고,

효종 때 닦인 남송의 기반은 이후 45년 가까이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남송이 항전할 수 있게 해준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효자[편집]

효종이라는 묘호답게 이 사람은 엄청난 효자였다.

효종의 재위는 1289년까지인데, 선대 황제인 고종놈도 1287년까지 20년 넘게(...) 태상황으로서 살아있었다.

(고종은 80세까지 살았는데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양반 치고는 오지게 오래 살았다. 현대 시대에서도 80세면 결코 적게 산 나이가 아닌데

12세기에 80세면 현대 기준으로 거의 110살은 살았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10~15년동안 황위에 있는 것도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닌데 자그마치 25년을 태상황에 있으면서 룰루랄라 놀러댕기고

시시건건 황제 일에 간섭하는 등 딱 봐도 뒷골 땡기는데, 효종은 이런 못난 양아버지를 깍듯이 모셨고, 1187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효종은 땅을 치며 슬퍼하였고, 이틀동안 밥숟갈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1189년 퇴위하고 죽을 때까지 중화전에서 양아버지 고종을 애도하였다.


자식 관계[편집]

이 문서는 너를 울게 만듭니다.
이 문서는 너를 울릴 수 있는 감성팔이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서를 읽기 전에 눈물부터 쏟으시길 바랍니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ㅠㅠ 이 문서를 보고 광광 우럮따 8ㅅ8

양애비 고종한테 옮았는지 자식운이 참 지지리도 없었다.

아들 4명과 딸 2명이 있었는데, 장남은 약을 잘못 먹고 사경을 헤매다가 고종과 효종이 돌아가면서 지극히 간병을 해줬는데 결국 세상을 떠났고

평소 효심이 깊었던 삼남 조돈을 태자로 삼았다가 차남은 홧병에 걸려 죽어버렸고, 남은 아들과 두 딸도 요절해버렸다.

실질적으로 효종에게 남은 자식은 훗날 광종이 되는 조돈 하나 뿐이라

효종은 조돈을 정말 지극히 아꼈다.

나중에 고종이 죽고 효종은 조돈에게 양위를 했는데 문제는 조돈의 아내 자의황후였다.

자의황후는 효종과 광종의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하였고, 결국 두 부자의 사이는 파국에 치달아버린다.

언제는 효종이 광종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술과 술잔을 보냈는데 광종은 효종의 마음도 몰라주고

술잔을 깨부수고 연회에도 초청하지 않는 등 효종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만 했다.

효종이 결국 병이 들어 병상에 누워도 간병조차 오지 않아 효종은 결국 혼자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황제 시절에는 태상황 고종한테 갈굼당하고 태상황 시절에는 사랑하는 자식과의 관계가 파탄나는 등 여러모로 비운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