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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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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좆나추운곳. 장진호 전투 당시 중공군 국군 미군모두 서로 총질하고 대포날리고 뱅기로 공습날려서 전사한사람 천명도 채못넘기고 수만명을 순식간에 냉동참치로 만들정도의 강추위를 자랑했다.

어떤 멍청한 놈이 멸공통일 하면 훨씬 길고 추운 겨울 때문에 여기에 기어들어간 빨치산이 훨씬 더 오래 버텼을지도 모른다고 써놨는데 그야말로 개소리다. 산에서 유격전 벌이는 빨치산보다 진압군 쪽에 훨씬 유리해지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진압군도 존나게 추워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진압군은 물자를 빵빵하게 받으면서 훨씬 편하게 싸우지, 자칫하면 그냥 얼어죽기 십상인 맹추위 속에서 부족한 물자를 가지고 항상 쫓기면서 싸워야 하는게 빨치산이다. 무엇보다 겨울이면 산에 눈이 왕창 쌓이는데 눈 위에 발자국이 남으면 진압군이 빨치산을 추격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래서 백선엽지리산에서 깔짝대는 빨치산 왕창 때려잡을 때도 진압 시기를 겨울로 잡은거고. 한반도 남쪽에 있는 훨씬 따뜻한 지리산도 결국 못 버틴 판국에 시베리아에서 직수입한 맹추위가 훨씬 더 오래가는 개마고원에서 버틴다? 그럼 그 새끼는 세계 유격전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의 초거물 게릴라 지도자인거다.

1,300m ~ 2,000m고도의 산들이 득실득실거리는 고원지대에 그나마 있는 하천인 장진강, 부전강일대가 하나같이 건조한 골짜기였다보니 옥수수, 감자, , 귀리, 좁쌀, 아편, 대마초등을 재배하거나 낙엽수, 삼나무, 붉은 소나무등을 벌목하여 부전강, 장진강을 따라 함흥으로 수출하면서 먹고살았다.

존나 살기 힘든 곳이라 6.25 전까진 일제시대부터 외부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은둔해 살던 기독교 공동체나 기타 도망자들도 마을을 이루고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물론 장진호 전투 때 같이 휘말려서 흥남 철수 때 남한으로 피난.

광복 전의 면적이 5,112.67㎢로서 함경북도 무산군평안북도 강계군에 이어 한국에서 3번째로 넓은 군이었다.

좆화수새끼한테 개쳐맞던 김희갑이 이지역 출신이다.

읍면[편집]

1945년 8.15 광복 당시 기준으로 7면이 존재하였다.

군면리 대폐합을 거치면서 북면, 동하면전역, 상남면 1개리, 동문면이 낭림군으로 독립되었다.

現 장진군에 잔류[편집]

장진면[편집]

長津面

면적 501.92㎢

면소재지는 하갈우리.

1938년 기존 장진면이 수몰됨에 따라 군청이 이곳으로 옮겨졌고 신남면에서 장진면으로 개명되었다.

장진강 상류지역으로 서쪽은 동백산(東白山, 2,096m), 남쪽은 마대산(馬垈山, 1,745m), 황초령(黃草嶺, 1,200m. 이걸끼고 함주군과 접함), 응봉(鷹峰, 1,314m), 오봉(五峰, 2,004m), 동북쪽은 북산(北山, 2,070m), 삼덕치(三德峙, 1,449m), 동쪽은 덕동산(德洞山, 1,653m)등의 산지가 솟아있다.

대부분지역이 고랭지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먹고살거나 서흥리 덕동광산(), 연상하리 계곡(사금)에서 금을 캐면서 먹고살았다.

1952년 1.4 후퇴이후 북괴로 넘어간 뒤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장진읍(경하리), 축전리(서흥리 + 중남면 문천리), 신대리(신흥리 + 대남리), 황초리(상갈우리 일부 + 고토리), 신풍리(신하리 + 만풍리), 도내리(도내리 + 상갈우리 일부)로 개편, 장진군에 남았다.

서한면[편집]

西閑面

면적 483.73㎢.

면소재지는 유담리

장진강상류지역으로 서남쪽은 소백산(小白山, 2,184m), 남쪽은 동백산, 서북쪽은 천의물산(天宜物山, 2,032m), 남동쪽은 덕동산, 동쪽은 사양지산(蛇陽地山, 1,469m)등의 산이 솟아있으며 장진강에서 갈라진 여러지류가 동류, 낮은 동쪽저지대에 장진호가 만들어졌다.

장진강수력발전소 + 사설개척철도 부설로 개발되었으나 1,300m의 고지대라 할게없다보니 화전, 밭농사를 짓거나 벌목을 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서목리, 늪수리, 중화리(유담리 + 한하리), 양묘리(한상리 + 신포리), 임산리(서중리 + 북수리), 용호리(적수리 + 중남면 중남리 + 고별우리)로 개편, 장진군에 남았다.

중남면[편집]

中南面

면적 595㎢.

면소재지는 사수리.

장진강상류 우측 경사면지역으로 동쪽 부전강유역과의 경계선에 연화산맥이 남하, 대남산, 유린산, 수침산, 고대산, 오봉, 서쪽 사양지산, 덕동산, 남쪽 삼덕치, 북산등의 산이 솟아있고 북서로 경사진 고랭지이다.

1933년 사설 개척철도개통 + 1936년 수력발전이전까지 개깡촌이었다. 장진강 제1댐때문에 면중앙부는 넓은 저수지가 되었다.

1667년 현종대에 본면 구진리에 장진책을 설치했는데 1758년 영조대에 진이 화재로 없어져 인근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소재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백암리, 풍류리(퓽류리 일부), 해방리(사수리), 신흥리(신흥리 일부 + 풍류리 일부), 청량리(신흥리 일부 + 통지수리), 용호리(중남리 + 고별우리 + 서한면 적수리)로 개편, 면전체가 장진군에 남았다.

상남면[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ㄴ출신 실향민 분의 증언

上南面

면적 877.86㎢. 대구(883.5㎢)와 면적이 거의 비슷하다.

면소재지는 덕실리.

장진강 중상류지역으로 연화산,고석곡산(古石谷山, 1,871m), 천의물산, 북쪽 백산, 온통산등의 산지가 솟아있어 1,500m이상의 산지고원이 되었다.

장진강이 중앙을 뚫고 북류하며 협곡을 이루고 좌우로 2,3개 지류가 발달하여 이곳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갈전리에 장진강제1댐이, 속사리에 보조댐이 설치되었으며 이호수의 물을 황초령찍고 동해사면으로 역류, 1933년 ~ 1936년동안 약 30만 KW의 발전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대 함경감사등이 별청산책을 본면 양거수리에 고수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그 토성의 유지가 남아있다.

속사리, 메물리, 갈전리(갈전리 + 천의수리), 중흥리(삼흥리 + 창평리 + 마등리), 운수리(와갈리 + 서덕리 + 운수리 + 덕실리 일부), 황포리(황포중리 + 황포측리 + 황포초리), 양덕리(연화리 + 양거수리 + 덕실리 일부), 문악리일부(문악리)중 문악리를 제외한 전역이 장진군에 남았고 문악리는 낭림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양덕리가 문악리에 땅을 조금 떼줬고 황포리 일부는 낭림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운수리, 황포리, 중흥리, 양덕리가 낭림군으로 이관되었다.

이관된 운수리는 1958년 일부가 덕우대노동자구가 되었고 1961년에는 운수리도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63년 양덕리가 중흥리에, 덕우대노동자구는 운수노동자구에 편입되었다. 1981년 운수노동자구는 운수리로 강등먹었다.

現 북괴령 낭림군[편집]

동문면[편집]

東門面

면적 804.34㎢. 면소재지는 동문거리. 대한제국시절 장진군의 중심지로서 읍성까지 남아있었다. 하지만 1937년 장진수력발전소가 건립됨에 따라 기존 군청소재지인 군내면 읍상리가 수몰되니까 장진면 경하리로 옮겨졌고 군내면은 동문면이 되었다.

장진강중류지역으로 서쪽은 낭림산맥 와갈봉, 맹부산(猛扶山, 2,214m), 북쪽은 희색봉, 남쪽은 백산(白山, 2,077m), 온통산(溫通山, 1,760m)등의 산지가 솟아있다. 산악지대 산림이다보니 제재목과 원목을 동문거리역을 통하여 운반하거나 (삼포리), 사금(삼포리), (조만리), 흑연(월상리)를 캐서 먹고살았다.

1949년 강계군 공북면, 종남면, 종서면, 곡하면, 어뢰면과 함께 장강군이 되었다가 1952년 낭림군이 되었다.

1952년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삼포리(삼포리 + 월상리), 오만리(오만리 + 영상리), 동문거리(동문거리 + 신흥리), 서중리(서중리 + 서민리), 장성리(장성리 + 연당리), 문악리(상남면 문악리 + 주파리), 서상리로 개편, 낭림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동문거리가 낭림읍으로 승격되었다.

1954년 오만리가 신원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99년 삼포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장진면과의 거리가 128km, 함흥과의 거리 200km이상이지만 강계와의 거리가 65.1km가 되기 때문에 통일이후 군면리 대폐합으로 생겨난 행정구역들을 모두 원상복귀시킨다 하더라도 이지역은 낭림군으로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면[편집]

北面

면적 744.57㎢. 대구(883.5㎢)의 84%크기를 자랑한다.

면소재지는 대흥리.

장진강중류지역으로 동쪽은 백산, 서쪽은 신덕산(新德山, 1,584m), 남쪽은 연화산등의 산지가 솟아있고 지형이 남북으로 길쭉하다. 장진강이 곡류하여 생긴 좁은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살았다.

1,200m의 고원지대라 화전으로 옥수수, 감자를 재배하거나 나무를 베어 먹고살았지만 이상리에 장진강 제2댐이 설치되어 동문거리찍고 독로강계곡으로 유역변경발전을 했다고 전해진다.

낭림읍(중강리), 연화리(연화리 + 고암리 + 이상리), 갈점리(갈점리 + 동안리), 신전리(신방리 + 구전리), 유벌리(장동리 + 장항리),인산리, 대흥리로 개편, 낭림군에 편입되었지만 1년만에 동문거리에게 군중심지자리를 털렸다. 동시에 갈점리는 대흥리, 중강리에 땅을 조금씩 떼주고 신전리는 유벌리에 땅을 조금씩 떼줬다.

現 북괴령 부전군, 신파군지역[편집]

동하면[편집]

東下面

면적 1,155.22㎢. 울산(1,057㎢)과 크기가 거의 비슷한 면이다.

면소재지는 능구리.

부전강중류지역으로 동쪽은 두운봉(頭雲峰, 2,487m), 대암산(大巖山, 2,205m), 서쪽은 백산(白山, 1,745m), 연화산(蓮花山, 2,355m)등의 산지가 솟아있고 부전강이 근처에 골짜기를 만든다.

동쪽 허천강(虛川江)유역의 분수령과 서쪽 장진강유역의 분수령이 면계를 이뤄 지형이 좁고 남북으로 길쭉하다. 1,200m이상의 고랭지대라 화전농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산수리(운산리 + 서어수리), 개화리(양부리 + 황철리), 은하리(대통기리), 원동리(원동리 + 신부리), 여운리, 능구리, 안기리로 개편되어 낭림군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954년 낭림군소속이 자강도로 바뀜에 따라, 원동리를 제외한 전역이 부전군에 편입되었고 원동리는 신파군에 편입되었다.

아웃풋[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