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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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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오지게 춥고 교통편도 열악한 함경남도의 군이다. 예로부터 갑산군과 함께 삼수갑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철도도 북괴치하에서 80년대에 겨우 개통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춥냐고? 연평균기온이 고작 2.1도, 1월 평균기온이 -18.8도다. 거기에 9월 30일쯤에 첫 얼음이 얼고 4월 29일쯤에 얼음이 녹는다. 오우야

만약 대한민국이 멸공통일에 성공했다면 삼수생들이랑 엮여서 윾모아 넘치는 지역드립들이 여럿 나왔을 것이다. 아님 삼수생들을 위한 재수학원을 오지인 삼수군에 때려박거나 그런식이었겠지.

역사[편집]

발해멸망이전까지는 북한지역이 으레그렇듯 사료도 엠창이고 고고학 발굴자료도 창렬이라서 저시대때 산사람들 말고는 어땠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알 수 있는건 초창기 고구려에게 먹혔던 개마국의 일부라는 설과 발해 서경압록부 신주의 일부뿐이다.

발해멸망이후 여진족의 땅이되었다가 이성계갑산군을 수복하면서 같이 조선의 땅으로 편입되었다.

우리가 아는 삼수는 1441년 갓종머앟님이 갑산군에서 여진족들을 통제하기위해 세운 삼수보(三水堡)에서 시작되었다. 1446년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454년 만호를 뒀다가 수양대군이 군으로 환원시켰다.

1696년 반란모의가 뽀록나서 현으로 떨어졌다가 1710년에 육진과 같은 핵심 군사요지라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북괴치하에선 일부가 신파군으로 분리되면서 면적이 반토막났다.

백석센세께서 1959년 붉은 편지사건으로 숙청당한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신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뽀그리가 만든 삼수댐이 12년뒤 2019년 1월 28일 이생겨서 물이 세서 경작지 씹창나는건 물론이요 전기생산도 안되는등 군지역을 물지옥으로 만들고있다. [1]

읍면[편집]

現 북괴령 삼수군[편집]

삼수면[편집]

三水面

면적 169.7㎢, 면소재지는 중평장리.

1942년 삼남면에서 삼수면으로 개명되었다가 8.15 광복이후 소련군정시기 원래이름으로 돌아갔다.

동쪽 갑산과의 경계에 은린령, 서쪽 관흥면과의 경계에 관동령, 면내 화개봉등이 솟아있는 산악지대이다. 조선시대 삼수보도 일제때 의병죽창맞고 좆본이 억지로 여기에 옮겨버렸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중평장리(중평장리 + 운봉리 + 회산리), 신양리(신풍리 + 화양리 + 독산리 + 화산리), 원동리(원덕장리 + 중석리 + 은동리), 천남리(천평리 + 남풍리), 관동리(관동리 + 북수리)로 개편되어 전체가 삼수군에 편입되었다.

관흥면[편집]

館興面

면적 334.7㎢, 면소재지는 삼덕리.

1896년 갑산군에서 옮겨졌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관서리(상두르리 + 하두릉리 + 고암포리 + 삼포리), 청수리(청계리 + 청학리 + 복서리), 관흥리(삼덕리 + 은산리), 심포동리(심포리일부 + 간평리), 간령리(간령리 + 상청계리 + 심포리 일부), 일자봉리, 개운성리(개운성리 + 남양동리일부), 용복동리(용복동리 + 남양동리일부)로 개편되어 전체가 삼수군에 편입되었다.

금수면[편집]

襟水面

면적 146.5㎢, 면소재지는 성내리.

1896년 갑산군으로 넘어왔고 군청도 여기로 옮겨졌다. 하지만 얼마못가 의병들의 죽창때문에 중평장리로 옮겨졌다. 고원지대이지만 중평천발 평야말고는 큰 기복도 없는 평지이다.

삼수읍성이 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삼수읍(성내리 + 인동리 + 탑동리), 예홍리(중리 + 함포리), 반룡기리(반룡기리 + 간천리 + 일건리일부), 동수리(관동리 + 용천리 + 용하리 + 일건리일부), 삼곡리(양응리 + 농막리 + 삼흥리 + 수차리일부)로 개편되어 전체가 삼수군에 편입되었다.

호인면[편집]

好仁面

면적 178.9㎢, 면소재지는 보성리.

보성리 인차외보(仁遮外堡)와 좆본시절에 버려졌고 6.25르메이 셰프님, 혹은 도서정리사업때 혹부리가 갈아버렸을 압록강행성이 있었다. 과전리에 중흥사가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관평리(중평리 + 관흥리), 신전리(신봉리 + 재전리), 왕가리(왕가리 + 금수면 억두리), 중운리(한평리 + 중위리 + 운전리), 농평리(농평상리 + 농평하리 + 병풍리 + 금수면 수차리일부), 영성리(영성리 + 신풍리 + 대복리), 포성리, 상대리(인산리가 넘어감)로 개편되었고 상대리를 제외한 전지역이 삼수군으로 넘어갔다.

現 북괴령 신파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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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신파군은 1981년 애미쳐뒤진 혹부리새끼의 첫번째 좆집이자 애미쳐뒤진 뽀글이새끼의 애미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으로 개명되었다.

북조선 린민들에게는 보양식으로 으뜸인 신파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신파면[편집]

新坡面

면적 152.71㎢, 면소재지는 신갈파리.

1942년 강진면에서 신파면으로 개명되었다가 8.15 광복직후 소련군정에서 삼수면으로 개명되었다.

동쪽 호인면과의 경꼐에 영성령, 서쪽에 형천산이 있고 그외에 1,000m의 산이 빽빽한 산악지대로 면서부를 북류하는 장진강일대에 약간의 평야와 계곡이 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신파읍(신갈파리), 신상리(민탕리 + 소농리일부), 삼포동리, 풍양리(이방리 + 보파리 + 두지리 + 포리), 강하리(차항리 + 토평리 + 박주평리 + 구갈파리), 장항리)만항리), 신중리(선소리 + 소농리일부), 상대리(지응리 + 호인면 인산리)로 개편되어 신파군으로 넘어갔다.

1954년 상대리일부가 호인면에서 신설된 포성리로, 강하리 일부가 신중리로 넘어갔다.

1961년 신중리가 신파읍, 강하리, 장항리에 오체분시되면서 없어졌다.

삼서면[편집]

三西面

면적 569.2㎢, 면소재지는 보성리.

면전체가 산악지대이다. 보성리에 어면보(魚面堡), 신방보(神方堡), 묘파보, 별해진등 전방요새들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성동리(성기리일부 + 동동리), 삼서리(포성리 + 구지리 + 금천포리일부), 용하리(장재기리 + 강응계리 + 상니구지리), 송지리(운송리 + 자지리), 저풍리(신흥리 + 계양리), 포덕리(금천포리일부 + 성기리일부)로 개편되어 전체가 신파군에 편입되었다.

1961년 용하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자서면[편집]

自西面

면적 234.7㎢, 면소재지는 상동구리.

자작보가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자서리(상동구리 + 등암리일부), 태양리(태양리 + 등암리일부), 도룡덕리, 석평리, 차보리, 원동리(원동리 + 소암리), 거룡리(상거리 + 용교리), 황철리(황철리 + 고영리 + 하동구리), 목서리(목척리 + 서가리), 하원동리로 개편되었고 전역이 신파군으로 편입되었다.

1954년 태양리 일부가 도룡덕리에, 목서리일부가 황철리에, 황철리 일부가 목서리에 편입되었다. 1956년 원동리는 신흥리로 개명되었다.

신흥리는 1969년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