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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h Century / 7世紀 / 601년~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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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는 612년 7월, 고구려 영양왕 제위기간에 일어난 제 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같은해 3번의 치열한 전투(요하 전투 - 요동성 전투 - 평양성 전투) 이후 막을 내렸던 전투이다.

퇴각하는 수나라 30만 땅개를 고구려가 몰살시킨 사건을 말한다.


그 전에 수나라는 고구려에 330만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갔다. 삼국사기는 113만으로 적혀있고 중국 사서에 병과별로 적힌걸 다 합치면 330만 가량된다. ㄴ 113만 정도만 전투병이고 나머진다 보급병이다. 고대에는 보급하는 애들은 병력으로 안쳤다. 113만이 맞으니 부풀리지 말자.

ㄴ113만도 부풀린거다 ㅂㅅ아 현대국가도 백만은 무리여 ㅅㅂ 최대 사십만이고 거기서 보급병 빼야됨

ㄴ최대 사십만은 또 어디서 나오는 소리여? 중국 사서는 300만 넘게 동원했다고 분명히 적혀있고, 삼국사기도 113만이라 적고 보급병은 그 두배라고 적어놨다. (참고로 이렇게해서 보급병 합친거 계산하면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가 주장하는 동원량이 얼추 비슷해진다. 330만~340만 사이.)그리고, 통일제국으로 강성하던 수나라가 이 전쟁에서 지고나서 바로 좆망트리 탄 것으로 미루어봤을때, 수나라는 충분히 이 전쟁에서 무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내사학이 아무리 국뽕요소가 많아도 이런거 근거도 없이 떠드는 줄 아나.

ㄴ일설에 의하면 육군 113만, 수군 4만, 보급병 200~300만이라고 한다.

즉 기록으로 따졌을때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 병력을 이끈 전쟁이라 한다.

수양제의 아버지가 이미 수십년은 먹일만한 군량을 확보해놓아서 백만이 넘는 병력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한다.

이 당시 전쟁준비로 수나라 백성들이 헬조선 노예만큼 가혹한 노역을 견디다 못해 만든 노래도 있으니 찾아볼 것.

어쨌든 상대가 100만을 넘기는 대군이었음은 확실하다. 수나라도 이 전쟁을 하기 위해 상당한, 아니 거의 모든 국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렇게 백만대군을 몰고 수양제가 직접 참전하여 요동성을 쳐들어간다. 문제는 수양제가 병신같이 자기한테 최종보고가 올라온후 자신이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모든 부대들은 독자적인 행동을 못하게 함.

그래서 고구려는 불리하면 청야수성 작전을 써서 성을 버리고 빠졌다가 그 사이 수양제의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수나라 군사를 다시 치고 빠지는 전술로 존나게 오래 버틴다. 한 석달쯤?

이렇게 고구려는 요동성에서 버티면서 청야전술을 시전해댄다. 이 요동성은 끝끝내 뚫리지 않아서 수나라의 발목을 잡는다.

이때 수군이 평양을 향해 쳐들어갔는데 낚시에 제대로 걸려서 다 몰살당함.

요동성 존나게 안뚫리니까 양제가 지 따까리한테 30만쯤 쥐어서 너 먼저 평양 ㄱㄱ 하는데 보급로가 여의치 않으니까 따로 수군 한 5만쯤 떼서 보급 이빠이 쥐어주고 평양에서 합류하라고 했다.

이때 고구려군은 머가리를 굴렸다. 육군 30만이랑은 어차피 싸워서 못이기니 을지문덕이 얘네들 상대로 후퇴를 가장한 청야전술하면서 보급 고갈내고 지연작전 하는동안 따로 병력 때서 평양으로 오는 수군놈들을 족쳤다. 고건무(영류왕)가 지휘한 이 전투에서 멋모르고 평양성에 진격한 수군들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대동강 하구에 발이 묶였다. 패전국인 수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500명으로 4만명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육군 새끼들이 똥줄빠지게 기동해가면서 평양가면 먹을거 있겠지 하고 왔는데 수군 작살나고 보급이 실종되어 있는걸 보고 어이가 상실했다고 한다. 이들은 아예 수군의 위치조차도 몰랐다. 이쯤되면 수나라 군인들 불쌍하기 그지 없다. 군인들이 뭔 죄겠어 윗머가리가 문제지.

뭐 어쨌거나 먹거리가 떨어진 수나라 군대는 어쩔수 없이 후퇴해야 했고 이 후퇴하는 군대를 작살난게 살수대첩이다.

이후 수나라는 좆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선다.

살수대첩 본편[편집]

암튼 이런식으로 ㅌㅌ 하고 있었던 수나라 군대 30만 당연히 식량이 없었기에 졸라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였다.

이때 을지문덕이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하면서 수나라 진영에 직접 가서 진영을 싹 보고 튀었다. 수나라 장군들은 양제한테 을지문덕이 오면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는데 위무사[1] 인 유사룡이 사내대장부가 양심이 있지... 하며 말려서 가게 두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황제가 잡으랬는데 웬 문과놈이 잡지 말랬다고 안 잡아? 그래서 을지문덕을 대려오기로 하고 추격을 보냈는데 을장군은 빛의 속도로 압록강을 넘어 튄 뒤였다.

수나라에는 두 장군이 있었는데 하나는 우문술, 다른 하나는 우중문이었다. 먹을게 진짜로 다 떨어지자 우문술은 돌아가자고 주장했고 우중문은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긴 아까우니 한판 붙자고 주장했다. 우문술은 빡쳤지만 수양제가 우중문이 머리를 잘 쓰니 믿어보라고 일전에 말한 터라 그리 따랐다.

그래서 압록강을 넘어 을지문덕하고 붙었는데 싸울 때마다 고구려군을 이기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제갈량처럼 7번을 다 이기고 보니 뭔가 수상했다. 너무 깊이 따라온 것.

먹을 것도 없이 계속된 전투로 수나라 군대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이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는 조롱하는 시를 보냈고 우문술에게는 "내가 졌다. 너네가 돌아가면 왕을 데리고 가서 정식으로 항복하겠다."하고 보냈다. 그런데 이게 항복이겠는가. 놀리는 거지.

수나라군은 진짜 한계였다. 반면 평양성은 지세가 험해서 공략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래도 을지문덕이 항복한다고 했으니 윈윈 하고 돌아가자." 하고 정신승리 하며 퇴각을 시작했다.

처음엔 방어대형을 갖추고 천천히 퇴각했으나 을지문덕이 계속 치고 빠지며 수나라군을 괴롭히자 방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끝끝내 퇴각하던 수나라군은 살수에까지 이르렀는데 강을 중간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수나라군의 후방에 총공격을 퍼부었고 수나라군은 대격전 끝에 전멸은 피했지만 군대가 전부 와해됐다.

이와중에 수나라 장수 설세웅은 그야말로 항우가 울고갈 무쌍을 찍는데 갑옷이 무겁다며 벗어던지고 도포 차림으로 무쌍을 찍어 그나마 자기네 병력 2천여명이라도 살게 만들어줬다. 설세웅만 아니었으면 수나라군은 우중문과 우문술을 비롯해 전부 죽었을 것이다.

맨 뒤에서 퇴각하는 신세웅이 이끄는 수나라 8군은 지휘관 신세웅을 포함, 전원 사망했다.

이 전투의 패배를 보고받은 수양제는 전쟁을 포기하고 귀환했다.

수나라쪽 상벌[편집]

전쟁에 져서 돌아온 장수들에 대한 상벌은 다음과 같다.

  • 우중문 서민으로 강등
  • 우문술 서민으로 강등
  • 형원항 서민으로 강등
  • 장근 서민으로 강등
  • 조효재 서민으로 강등
  • 최홍승 서민으로 강등
  • 위문승 서민으로 강등
  • 유사룡 참수

......

  • 설세웅 우후위장군으로 진급... 엥?

을지문덕을 석방하라는 유사룡은 참수당했고 나머지 장수들도 죄다 병졸로 강등당한 와중에 설세웅 혼자만 특진했다. 설세웅은 고구려군에 맞서 죽을똥 살똥 용감하게 싸워 도망갈 길을 열어주었고 그 때문에 그나마 2천여명이라도 살려온 걸 군공으로 쳐준 것이다.

수공[편집]

살수대첩은 수공이 아니다. 그냥 강을 건너는 적을 공격해서 일방적으로 학살한 것일 뿐.

수공을 쓴 전투는 흥화진 전투 하나 뿐인데 댐을 폭파해서 적을 익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물을 급격히 불어나게 해서 물을 이용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있다.

(즉, 불어난 물을 천연의 장애물로 삼아서 군대 기동을 방해하고 분단시켜 각개격파하는 형태)

같이보기[편집]

  1. 군대의 사기를 담당하던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