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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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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개요[편집]

함경남도 동해안 중부에 자리잡은 그냥저냥한 시골이다. 사과가 유명했다고 한다.

고대시절에는 별 존재감이 없던 곳이었지만 발해시절 한정으로 남경 남해부의 소재지가 되어 리즈시절을 누렸다.

발해때는 옥저의 고지였다고 옥주(沃州)라고 불렸다.

하지만 발해 멸망한 뒤 원주민들은 요동으로 강제이주당하고 이후 여진족들이 정착했다.

윤관장군이 세운 동북 9성중 하나인 영주(英州)로서 고려에 먹혔다가 금나라에게 할양되었고 이후 공민왕때 쌍성총관부 박살내면서 같이 수복되었다.

공민왕은 아무생각없이 청주(靑州)라고 칭했는데, 이게 충청도 청주시랑 이름은 같고 그렇다고 새로 쓸 이름은 없어서 북쪽의 청주라 해서 '북청(北靑)'이 되었다.

조선시대때는 회령군과 함께 단골 유배지로 꼽혔다.

이항복성님이 여기서 유배생활하다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음

북청 물장수라고 혹시 들어봤냐?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던 아이고↗↗ 김사장이 여기 유행어. 그 북청이 이 북청군에서 따왔다. 혹성탈출 때 서울의 물장수 일은 함경도사람이 도맡았고 그 중에서도 북청군 출신이 많았다고 해서 북청 물장수라고 한다.

현재는 남서쪽 일대는 북괴 치하에서 신포시라는 도시로 따로 독립되어 있는데 손꼽히는 수산업 기지라나 뭐라나. 고작 나무배, 뗏목으로 동해바다에서 조업활동하다가 수중고혼 되는 게 한두번이 아닌 북한에서 뭔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지금의 신포시는 정으니의 딜도발사를 위한 기지로서의 가치밖에 없다.

북청사자놀음이란 민속극의 고향이지만 본진은 빨갱이가 쳐먹어서 좆망하고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과 그후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읍면[편집]

現 북괴령 북청군[편집]

1974년 1월 신창군이 폐지됨에 따라 신창읍, 거산면전역을 회복했다.

북청읍[편집]

北靑邑

면적 79㎢. 읍소재지는 내리.

북도우의 대덕산이 있고 서남쪽으로 남대천이 흐르면서 평야가 만들어진다. 당포리에 아마포공장, 남리에 주석산공장, 서리에 주물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동리, 서리의 5일장, 남리 우시장이 있었다.

1627년 건립된 노덕서원, 1901년 세워진 삼의사, 동정공원, 영덕산공원, 북청읍성이 있었다.

1952년 북괴치하로 넘어간뒤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북청읍(상동리 + 하동리 + 북리 + 내리 + 서리 + 남리 + 외서리 + 외동리 + 덕성면 동장내리 일부), 죽상리(죽평리 + 북상리), 청흥리(남흥리 + 당포리 + 동흥리), 중평리, 장항리로 개편, 전지역이 북청군에 남았다.

1953년 북청읍에서 서리가 부활했다.

신창읍[편집]

新昌邑

면적 48㎢. 읍소재지는 신창리.

본래 해안사(海晏社), 상포청사(上甫靑社), 하포청사(下甫靑社)가 있던 지역으로 1912년 사가 면으로 개편됨에 따라 해안면, 신창면, 포청면이 되었다. 1914년 해안면 + 포청면 = 청해면(靑海面)이 되고 1916년 청해면 + 신창면 = 신창면이 되었고 1942년 읍이 되었다.

남대천 하류의 충적평야지대로 동해와도 접한다. 토성리에는 발해 남경남해부의 치소로 확정된 청해토성이 있다. 이 토성은 8.15 광복이전까지 숙신고도토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북괴치하에서 고고학발굴로 오지게 많은 발해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발해 남경남해부 치소가 되었다.

8.15 광복이후 면으로 강등먹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신창읍(신창리 + 신풍리 + 보청리 일부), 청해리(한야리 + 토성리 일부 + 보청리 일부), 예승리(예원리 + 승평리), 덕음리(덕음리 + 장호리), 만춘리로 개편, 전지역이 신창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토성리가 복구되었으나 1974년에 신창군이 북청군에 흡수됨에 따라 전역이 북청군에 흡수되었다.

가회면[편집]

佳會面

면적 108㎢. 면소재지는 중리.

1912년 가회사(佳會社)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지형은 대체로 서고동저이고 서쪽으로 희사봉산맥이 남하하면서 군내 최고봉 거두봉 + 남령을 형성해놨다. 한편 지류인 효자천이 면북쪽에 치우쳐 동류하므로 서남부가 높은 가운데 남대천중류 유역의 지류가 합류하여 비교적 광대한 평야가 펼쳐져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중리(중리 + 마산리), 나흥리, 봉의리, 초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북청군에 남았다.

1953년 후창면 당우리, 문동리, 초리에서 지만리가 신설되었다. 1954년 마산리가 복구되었다.

거산면[편집]

居山面

면적 171㎢. 면소재지는 평리.

1910년 상거산면 + 하거산면 = 거산면이 되었다. 북으로 대덕산이 있고 남쪽은 동해와 접한다.

북고남저의 삼각형지형에 동해로 흐르는 거산천유역에 면이 형성되어있어 계곡및 하류평야와 해안평야가 주요 생활무대를 이룬다. 평리쪽에는 북청대표 곡창지대인 거산평야가 펼쳐져있으며 미역생산으로 유명했던 건자포가 있었다.

1949년 포항리에서 건자리, 평리에서 반송리가 신설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건자리, 반송리(반송리 + 포항리 일부), 상입석리(상입석리 + 하입석리 일부), 상세동리, 하세동리(하세동리 + 포항리 일부), 평리(반송리 + 하입석리 일부)로 개편, 전지역이 신창군에 편입되었다.

속후면[편집]

俗厚面

면적 74㎢. 면소재지는 서호리. 1912년 속후사에서 속후면으로 개명되었다. 1933년 평산면을 흡수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동부 기름진 충적평야와 남대천 퇴적물이 연안조류로서 이룬 석호의 발달로 이름이 높았다. 오산호, 현금호등의 큰 호수가 있다. 해변 10여km에 걸쳐 푸른 소나무가 ㅈ둘러싸인 백사장에 못까지 곁들여진 해수욕장이 있지만 마이너스의 손 북괴답게 지금은 모르겠다.

창성리에 여진문자로 쓰인 비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됬는지 알 길이 없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용전리, 로 개편되었고 용전리를 제외한 전역이 신창군으로 편입되었다.

신북청면[편집]

新北靑面

면적 77㎢. 면소재지는 신북청리.

과거 양천사(楊川社), 양가사(良家社), 중산사(中山社)가 있던 곳으로 1914년 양천면 + 양가면 + 평산면 일부 = 신북청면이 되었다.

동북쪽에 대덕산이 있으며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은 경사면을 이룬다. 남대천유역의 ㅅㅌㅊ 충적평야가 있었지만 북괴치하에선... 알지? 어쩔 수 없어.

1949년 양천리가 양천동리, 양천서리로 분리되었고 보천리에서 보상리, 초리에서 양가리, 신북청리에서 안곡리가 신설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함으로 인해 양가리(양가리 + 초리), 신상리, 안곡리, 신북청리, 하호리, 동도리(동중리 + 동상리), 양천서리(무우대리 + 양천서리), 양천동리, 보천리(보천리 + 보상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양가리, 신상리, 안곡리, 신북청리만 북청군에 남고 나머지는 신창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신북청리가 양천동리, 양천서리에 땅을 떼줬다. 1957년 신북청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1974년 신창군이 북청군에 통폐합됨에 따라 전역이 북청군에 흡수되었다.

후창면[편집]

厚昌面

면적 84㎢. 면소재지는 이리.

1912년 인후사(仁厚社) + 인창사(仁昌社) = 후창면이 되었다.

서쪽으로 면 제일봉인 종산(鍾山, 705m)이 홍원군 용포면과 경계하고 있고, 남쪽으로 광대산, 압해산, 북으로 무차령, 시대산, 천의봉등이 면을 둘러싸고 있다. 무치령에서 발원하는 종고천유역으로 평야가 형성되어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종산리(통구리 + 일리), 당우리(당우리 + 동평리), 문동리(이리), 부동리, 오평리로 개편되었다.

1953년 문동리, 당우리와 가회면 초리에서 지만리가 신설되었다. 1958년 문동리일부와 초리 일부가 당우리에 편입되었다.

現 북괴령 덕성군[편집]

덕성면[편집]

德成面

면적 139㎢. 면소재지는 수동리.

1912년 상사(上社) + 하사(下社) = 덕성면이 되었다.

남대천 중류유역으로 유역평야가 대체로 서쪽으로 기울어져 펼쳐지는 반면, 동반부는 산간지대를 이룬다. 이원군과는 영덕산으로, 거산면과는 대덕산으로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대체로 500m이상의 산간지대이다.

비교적 기름진 평야가 각처에 산재하고 있으며, 양덕수리조합등 수리 시설이 잘 발달되있어 농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이중 수동리, 수서리, 이망지리등에서 논농사가 이뤄지고 그이외에선 밭농사가 이뤄졌다. 물론 공산화되면서 좆망했다.

고려중기 학암(鶴巖)이 창건했다는 암자인 학린암(鶴隣庵)이 있고 이망지산성(泥望只山城), 용미동산성(龍美洞山城), 금반덕산성(金盤德山城)의 터가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나하대리(나하대리 + 동장내리 일부), 덕성읍(수동1+2리 + 죽전리), 주의동리(주의동1 + 2리 + 어은리 + 서흥리), 이망지리(이망지1+2+ 만항리), 수서리로 개편, 전지역이 덕성군에 편입되었다. 나하대리가 덕성읍과 북청군에 땅을 좀 떼줬다.

1981년 이망지리가 낙원리로 개명되었다.

상거서면[편집]

上車書面

면적 420㎢. 면소재지는 중돌리.

1914년 거서사(車書社)가 상거서면, 하거서면으로 분리되면서 만들어졌다. 서쪽으로 태백령, 북쪽으로 희사봉, 동북쪽으로 마산, 동쪽으로 차일봉, 남쪽으로 거두봉등 높은 산이 경계를 이루며 솟아있으며 남대천 지류인 거서천이 면중앙을 흐른다.

거서천 상류지역으로 높은산이 솟아있고 동부가 비교적 낮은데 강유역 계곡이 동서로 펼쳐져있어 이쪽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희사봉, 차일봉지역은 인삼이 나왔다고 한다. 물론 북괴수립이후 좆망했다.

한무제가 신선과 함께 바둑을 두었다는 썰이 전해지는 한무탑(漢武塔), 불결한새끼가 입산하면 해를 입는다는 차일봉의 유선암(留仙菴)이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상돌리(상동리 + 상서리), 중돌리(중돌리 + 하돌리), 엄동리(엄동리 + 엄서리), 신태리, 엄서리(수서리)로 개편, 전역이 덕성군으로 편입되었다.

성대면[편집]

星垈面

면적 420㎢. 면소재지는 평리, 1912년 성대사에서 면으로 바뀌었다.

북쪽으로 검덕산, 대덕산이 풍산군과 경계를 이룬다. 남대천 동북지류인 곤파천, 서쪽지류인 향동천이 흐른다. 양지류가 합류하는 남대천 본류부근의 중앙에 평야가 나온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보성리(보성1+2리), 동중리(조양리 + 수동리 + 수서리 일부), 장흥리(평리 + 양평일리 + 수서리 일부), 양승리(승동일리 + 승동이리 + 양평이리), 창성일리, 창성이리로 개편, 전역이 덕성군으로 편입되었다.

이곡면[편집]

泥谷面

면적 535㎢, 면소재지는 초리.

1912년 이곡사에서 이곡면으로 개편되었다.

북으로 풍산군과 함경산맥의 능선을 경계로 접하고 있으며 남대천 상류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산봉(南山峰, 1,684m), 용수동령(龍水洞嶺, 1,531m), 검덕산등 1,500m가 넘는 산이 북쪽 경계를 이루며, 북청에서 갑산에 이르는 후치령이 면을 지나간다.

동남쪽으로는 송이령(松耳嶺), 망덕봉(望德峰)등 1,000m이상의 산이있으며, 서쪽으로는 마산, 차일봉등 1,600m이상의 산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대천 상류의 세갈래 지류가 갈라지는 곳으로 험한 산간계곡으로 인해 평야가 거의 없고 그만큼 군내에서 가장 인구가 적었다.

인동리에서 이 채굴되고 상리에선 이 채굴되었는데 후자의 경우 일제강점기이전부터 주민들이 원시적인방법으로 채굴하여 농기구를 만드는데 썼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송중리(송전리 + 중리), 인동리(삼강리 + 가산리), 중동리(제초리 + 제중리), 삼기리(고립리 + 삼기리 + 노평리), 직동리(직동리 + 장생리), 상일리, 상이리로 개편, 전역이 북청군에 편입되었다.

1984년 상일리, 상이리를 철산노동자구로 통폐합했다.

하거서면[편집]

下車書面


면적 94㎢. 면소재지는 임자동리.

1912년 거서사에서 상거서면, 하거서면으로 분리되었다. 거서천 하류지역으로 남부는 낮은 평지이고 북부는 500m이상의 고지대이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임자동리, 월근대리(월상리 + 월중리 + 월하리), 신흥리(상신흥리 + 하신흥리), 덕우대리로 개편, 전역이 덕성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월근대리가 엄서리에 땅을 떼줬고

現 북괴령 신포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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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읍[편집]

新浦邑

면적 45㎢. 읍소재지는 신포리.

1914년 소양화사(小陽化社)에서 신포면으로 개명되었다가 193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으로 홍원군계의 종산에서 뻗은 산맥이 서부 경계를 이루면서 읍의 중앙부가 높고 남부해안 평지에서 신포만이 펼쳐진다. 그리고 본읍 앞바다에 마양도라는 섬이 있는데, 조선시대 군마를 키우기에 제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북괴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신포읍(신포1+2+3리), 보주리(상보주리 + 하보주리 + 노평리 일부), 신호리(신호1+2리), 육대리(육대동리 + 육대남리 + 노평리 일부), 마양도리(문암리 + 토성리 + 도서리 + 중흥리 + 석정리)

양화면[편집]

陽化面

면적 83㎢. 면소재지는 동리.

1914년 대양사(大陽社) + 양평사(陽坪社) = 양화면이 되었고 1929년 신포면 동쪽 3개리를 흡수했다.

동북단 압해산, 서북단 태양산이 연결되고 남쪽 동해안을 끼고 있어 배산임해의 지형을 이루었으며 그중간에는 해안평야가 있다.

본면 호만포리에는 임진왜란시기 문묘제위판, 제기, 경서등을 보존했던 형조참판 손윤문의 위패를 모신 경의사(景義祠)가 있었지만 알지? 어쩔 수 없어.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호남리(유호리 + 남안대리), 동호리(동리 + 후호리),

아웃풋[편집]

  • 김복용 - 매일유업창업주
  • 김호선 - 애니깽 사태한국 영화를 완전히 갈아엎어버린 병신감독이자 강간범이다.
  • 오진우 - 이 씹쌔끼는 혹부리의 마적단 동기인데 혹부리의 후장을 빨다 혹부리의 후장이 파열되었는지 김돼지이외의 인물의 우상화가 금지된 북괴에서 몇안되게 우상화가 되고 있다. 병신새끼.
  • 고두환 - 황해도지역에서 쪽숭이들 뚝배기깨고 항일유격대활동을 하다 순국하셨다.
  • 김경천 - 지금의 빨갱이두령 혹부리는 소련이 만든 가짜인물이라면서 자주언급되는 독립운동가로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쏘련 빨갱이에게 코렁탕먹고 순국하셨다.
  • 이동원
  • 이찬 - 오진우와 맞다이뜨는 북청군 최악의 아웃풋이다. 친일파와 빨갱이의 끔찍한 혼종이다.
  • 이준 - 헤이그특사때 그 이준이 맞다.
  • 이지란 -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은 조선 개국공신. 해당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인 청해 이씨(靑海 李氏)의 시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