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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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江東郡

평양 동쪽에 있는 깡촌으로 북괴 치하에서 평양 소속으로 되어있다.

원래 삼등군이라고 사실상 고립된 지역인 삼등면에 있던 군이 있지만 너무 작은 관계로 부군면 통폐합때 없어졌다.

단군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원래는 평범한 무덤이었지만 1993년쯤인가 뽀그리새끼가 무슨 씨발 피라미드마냥 벌크업을 시켜놨다.

북괴치하에선 1952년 원탄면, 승호읍, 고천면일대가 대동군에서 옮겨진 청룡면과 스까져 승호군이 되었고 남은 강동군은 성천군 향탄면을 스까해 신설되었다. 이중 승호군은 舊 원탄면과 고천면일대의 상당한 부분을 평양시 삼석구역에 내주고 승호군또한 1960년대 평양의 외연확장때 승호구역으로 편입되었다.

이 승호구역에는 승호수용소라고도 불리는 정치범수용소인 26호 관리소가 설치되었다. 이 수용소는 청진시의 수성수용소와 함께 김혹부리우스뒈지기전 북조선 린민들이 잘 알고있고 두려워하는 헬오브헬수용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폐쇄되었고 부활떡밥등 매우 흉흉한 소문이 들리니까 돼정은이 승호수용소의 흔적을 지워 주민들의 반정부감정을 조지려는 의도(?)로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읍면[편집]

인구는 1944년 기준이다.

승호읍[편집]

면적 86.32㎢, 인구 1만 7909명. 면소재지는 승호리로 1941년 만달면에서 승호읍으로 승격되었다. 흑룡산을 기준으로 원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부중앙에 만달산이 있다. 능성강이 서류해 남강이 되어 중화군과의 경계를 지난다.

6.25 전쟁인천상륙작전이후 북괴군이 토끼면서 북한지역에서 양민학살을 행할 때 승호리에서 1,500명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과 대동군칠골에서 2,500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모아 '평양시 학살사건'이라 칭한다.

북괴치하로 들어간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승호읍(승호일리 + 승호이리 + 승호삼리 + 파릉리 + 응암리 + 대성리), 과음리(과음리 + 운학리 + 입석리 + 광청리), 화천리, 금옥리(금옥리 + 삼등면 청탄리)로 개편되어 승호군으로 독립했지만 1959년 평양시 승호구역이 되었고 금옥리, 화천리가 강동군으로 넘어갔지만 모두 되찾았다.

고난의행군이전 북조선 린민들도 잘 알고 무서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정치범수용소중 하나인 승호수용소가 있었지만 1994년 국제인권단체의 폭로로 썰렸다. 하지만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청진시의 청진교화소로 보내졌다. 여기 끌려갔던 사람들 안습ㅠㅠ 참고로 주체사상을 만들고 고난의행군터지니까 머한으로 탈주한 황장엽이 본읍 광청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지도를 보면 강동군의 다른 면지역과 분리되있는 독자적인 생활권이 만들어졌기에 북괴정권붕괴이후에도 승호군이름달고 그대로 남거나 평양에 재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강동면[편집]

면적 65.97㎢, 인구 1만 2834명. 면소재지는 아달리. 군 소재지인데 1914년 성천군 문헌면과 강동군 현내면이 스까되어 만들어졌다. 금곡리 고분군, 북괴치하에서 뜬끔없이 급조된 단군릉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부터 강동향교도 있는 강동의 중심지였고 북괴치하에서도 강동군의 중심지이다. 1907년 광명학교라는 민족학교가 있었지만 좆본이 국민학교로 강제편입시켰다.

1952년 강동읍(아달리 + 칠포리 + 지례리 + 송학리), 문흥리(문흥리 + 지리 + 문평리 + 봉진면 문왕리), 용흥리(용흥리 + 용복리 + 와룡리일부 + 고천면 명리), 명의리(명의리 + 명례리 + 와룡리 일부), 화강리(화강리 + 원효리 + 삼등면 봉오리), 하리(하리 + 상리 + 효덕리 + 숭의리)로 개편되어 강동군에 편입되었다.

1967년 하리가 하리노동자구가 되었는데 1995년 상리가 상리노동자구로 부활했다.

고천면[편집]

면적 45.91㎢, 인구 7,339명. 열파정이 있는데 절경이 오지고 지린다는 말이 있다카더라.

1952년 맥전리(맥전리 + 고성리), 도덕리(도덕리 + 동서리 + 열파리 + 선광리 + 수리), 광덕리(광덕리 + 구암리 + 용천리 + 반석리 + 고석리), 삼성리(원탄면 삼성리 + 고천면 마학리 + 관학리 + 천답리)로 개편되었고 전지역이 북괴에서 신설된 강동군에 들어갔다. 1959년 광덕리, 삼성리, 도덕리가 평양시 삼석구역에 이관되었다.

봉진면[편집]

면적 74.62㎢, 인구 9,145명. 강동군 마산면, 구지면의 일부지역, 고천면 고성리, 고읍면 북삼리와 동삼리가 스까되어 만들어졌다. 성천군과의 경계에 쳔명산이, 면남쪽에 취봉산이 있다. 고구려시대의 무덤인 한왕묘와 고성리 고성이 있는데 고성의 축조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서강변암벽에는 정묘호란시기 현감 홍내범이 가족들을 숨긴곳이라 하여 관청의 굴이라고 관굴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1952년 향목리(향목리 + 봉당리 + 건천리 + 변희리 + 운룡리 일부), 동리(동리 + 북삼리 + 낙암리 + 연리), 향교리(고천면 향교리 + 동삼일리 + 동삼이리), 한왕리(한왕리 + 고성리 + 봉호리 +외단리)로 개편되어 강동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고천면 광덕리에 한왕리 일부가 흡수되었다. 1967년 한왕리가 평성시로 옮겨졌고 향교리는 봉화리로 개명되었다.

삼등면[편집]

면적 151.05㎢, 인구 2만 2530명. 갑오개혁이후 통폐합되어 없어진 삼등현이 있던 곳이다. 좆만한 면주제에 다른지역과는 완전히 고립되어있다. 1666년에 지어진 황학루가 있다.

1952년 삼등리, 송가리(송가일리 + 송가이리 + 사탄리 + 제령리), 흑령노동자구(상속리에서 개명), 대리(대리 + 영대리 + 사단리), 문명리(문명리 + 봉의리 + 옥정리 + 용연리 + 반룡리), 송석리(송석리 + 명학리 + 생금리), 태잠리(태잠리 + 고봉리 + 봉서리), 자양리(자양리 + 석문리 + 봉래리), 하단리(하단리 + 용연리 + 신리 + 금곡리 + 중단리 + 운룡리 일부)로 개편되어 강동군에 편입되었다.

1958년 승호읍에서 신설된 금옥리가 송가리에 편입되었다.

1967년 하단리가 평성시로 옮겨지고 송가리, 대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95년 흑령노동자구에서 속추노동자구가 분리되었고 송가노동자구에서 영남노동자구가 분리되었다.

원탄면[편집]

면적 100.91㎢, 인구 1만 652명. 1914년 원당면과 마탄면이 스까되어 만들어졌다. 서강이 본면에서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1952년 고비리(고비리 + 훈암리), 원신리(원신리 + 삼산리 + 내리 + 토포리 + 성산리), 삼청리(삼청리 + 흑룡리 + 탑하리)로 개편되어 승호군으로 넘어갔다. 이중 고비리와 삼청리가 강동군으로 옮겨졌다만 삼청리는 1960년 승호구역으로 다시 들어갔다. 넘겨진 고비리는 1967년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아웃풋[편집]

  • 임지현
  • 황장엽 : 만달면의 금수저출신이라 엄청좋은 교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