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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군(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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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원래 자산군, 은산군, 순천군이었는데 1908년 좆본 섬숭이들이 마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사실 원래 순천 관아는 은산과 자산 사이의 좆만한 곳에 있고, 크고 아름다운 월경지가 은산 동쪽에 떡하니 있는 병신같이 생긴 모습이라서 개조가 필요하긴 했다. 그리고 은산군에서도 금이 나왔는데, 여긴 영길리가 들고 갔다.

좆본시절에는 양잠으로 평남내에서 제일로 알아줬다고 한다.

6.25 전쟁 초기 북괴가 평양이 털릴 경우를 대비한 후방 사령부를 순천에 두었다. 하지만 9월 28일 국군서울을 수복한 이래 존나 빠르게 북진하면서 김혹부리우스를 비롯한 북괴군 사령부는 누구보다 빠르게 순천 이북으로 탈주했고 6.25 전쟁평양 탈환이후 유엔군이 북진했을때 김종오성님이 지휘하던 6사단 7연대가 1950년 10월 18일 22시 15분에 양덕군을 수복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를 외치면서 이틀만에 성천하고 순천 날로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날 14시 20분에 맥아더가 북괴군 수뇌부 정의구현과 미군포로 구출을 위해 보낸 11공정사단 187연대가 서남쪽 3.2km지점에 상륙, 미리 순천을 먹었던 6사단과 만났고 국군이 사용가능한 막대한양의 탄창과 같은 보급품을 얻었다고 한다.

1.4 후퇴중공군으로부터 평양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 순천에서 만들어졌지만 UN군은 멘붕 오고 맥아더는 횡설수설하다가 또 병신짓해서 결국 평양을 빼앗기게 되었다. 맥아더 실망이양.

북괴 시절, 특히 1983년에 좆같은 공산주의식 경제를 때려치울 생각은 안 하고 뽀그리우스비날론 생산 기지를 세웠지만 화려하게 망했고 이 생산 기지는 2008년에 완전 없어지게 되었다.

전라남도에 있는 순천과 이름이 똑같은 동네다. 다만, '천'자 한자표기는 다르며 전라남도에 있는 순천은 시로 승격됬다.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미국 애플에서 직구한 아이맥이 북송 당하는 문제가 있었다 아마 남한, 북괴 구분도 못 하는 빡대가리 인턴 + 우연히 똑같은 이름 때문에 저렇게 된듯. 졸지에 핵볕정책행

순천군 문서는 의외로 디시위키가 나무위키보다 내용이 더 알차다.

읍면[편집]

순천읍[편집]

읍소재지는 관상리이다.

1914년 순천군 군내면 + 선도면 + 활동면 = 순천군 순천면이 되었고 1929년 오운면을 흡수하고 1936년 순천읍이 되었다. 요근방을 흐르는 대동강은 순천의 옛이름인 '정융군(靜戎郡)'에서 이름을 따 정융강이라 부르는데, 이 정융강을 면 동쪽에 두고 북창면, 선소면과 경계를 이루고 대동강빨 충적평야가 면전체에 퍼져있다.

누에를 많이 쳐서 1934년 평양 잠농제조소가 본읍으로 이전해와서 여자양잠강습소를 설치, 양잠지도원을 양성하여 평남일대에서 누에를 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1937년에는 좆본이 순천역앞에 화학공장을 설치, 비료, 카바이드, 산소를 생산했다. 물론 둘다 김씹쌔때문에 르메이 셰프님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주셔서 흔적도 없이 사라짐 ^오^

북괴수립초인지는 모르겠지만 빨갱이정권초에 관상리, 창리, 평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1.4 후퇴이후 북괴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순천읍(관상1리 + 관상2리 + 서변리 + 관하리), 창리(1,2리 없애고 원상복귀), 용봉리(용소리 + 마상리 + 운봉리), 원상리 일부(원별리), 강포리(전산리 + 강포리 + 초송리), 평리(평1리 + 평2리 + 중리 + 상리), 금천리 대부분(송포리 일부 + 추리 + 하리 + 성암리), 내남리 일부(송포리 나머지)로 개편되었다.

내남면[편집]

면소재지는 중평리.

1914년 개천군에서 옮겨졌다. 서쪽 신리에 국사봉이 솟아있고 안주시에서 들어온 정융강의 지류가 면 중앙을 동남류, 순천읍과 자산면 경계에서 정융강으로 들어간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원상리 대부분(지하리 + 지상리 + 순천읍 원별리), 금천리 일부(사평리 일부), 용암리(용천리 + 각암리), 내남리(금평리 + 중평리 + 사평리 일부 + 순천읍 송포리 일부), 응봉리 일부(매남리), 신흥리(신리 + 금곡리 + 원봉리)로 개편되었다.

북창면[편집]

면소재지는 북창리.

1914년 진북면 + 함오면 + 마산면 + 인산면 = 순천군 북창면이 되었다.

서쪽 욕하리에 오봉이 솟아있고 개천과의 경계선에 입봉이, 영원군에서 발원한 정융강이 서쪽 순천읍과의 경계에 있다. 북창리에 그 유명한 천왕지신총이 있다.

8월 종파사건직후 등장한 헬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시작인 북창수용소와는 별 상관없다. 정치범수용소에서 북창은 맹산군 옥천면 북창리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북창리(용하리 + 북창리 + 구상리), 용악리(용악리 + 한령리 + 중흥리), 오봉리(중하리 + 오상리 + 중상리) 부산리 대부분(부윤리 + 인산리 + 선소면 장평리)로 개편되었고 부산리로 넘어간 부윤리와 인산리는 은산군에, 나머지는 순천에 남았다.

사인면[편집]

면소재지는 사인리.

1914년 인동면 + 용곡면 = 인곡면이었다가 1917년 사인면이 되었다.

면동부경계에 백족산, 소사산이 있고 자모산에서 발원한 정융강의 지류가 면 북변을 횡단, 후탄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정융강으로 들어간다. 1900년대 영길리아저씨가 만든 사인금광이 있었다.

안국리 봉린산에 고구려 문자명왕때 세워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안국사가 있는데, 르메이 셰프님의 장작이 되지 못해서 조선후기때의 건물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물론 안쪽은 알지? 어쩔 수 없어.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봉학리(석우리 + 안국리 + 보덕리 + 봉학리), 사인리(사인리 + 군신리 + 옥전리 일부 + 덕산리 일부), 청옥리(청옥리 + 사창리 + 옥전리 나머지), 덕산리(송령리 + 삼화리 + 덕산리 나머지), 백송리 일부(반송리)로 개편되었다.

선소면[편집]

면소재지는 연당리이다.

1914년 소상면 + 소하면 + 선원면 = 순천군 선소면이 되었다.

면서쪽 순천면과의 경계에 정융강이 남류, 남쪽에는 신창면 숭아산에서 발원한 장선강이 은산면을 거쳐 흘러들어 정융강과 합류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연포리(연당리 + 남포1리 + 남포2리), 동암리(동림리 + 간동리 + 용암리), 서남리일부(도흥리 + 오천리 + 은산면 서남리 + 진산리 일부), 증산리(증산리 + 답동리), 부산리 일부(장평리), 성산리일부(모학리)로 개편되었고 모학리, 증산리, 답동리, 장평리지역은 은산군에, 나머지는 순천에 잔류했다.

신창면[편집]

면소재지는 신창리.

1914년 원상면 + 원하면 + 분지면 = 순천군 신창면이 되었다가 1929년 용화면을 흡수, 1935년에는 밀전면을 병합했다. 근데 이 밀전면은 1943년에 예토전생했다. 면동쪽 성천군과의 경계에 숭아산이 솟아있고 이 산에서 발원한 장선강이 면남쪽을 동서로 흘러들어가 은산면찍고 선소면에서 정융강으로 들어간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은산읍(신창리 + 삼중리), 용화리(용승리 + 용화리), 수덕리(신이리 + 신삼리 + 마동리), 유정리(밀전면 원창리 + 유상리 + 구정리), 동삼리(밀전면 동은천리 + 팔봉리 + 남양리), 밀전리(밀전면 월포리 + 재동1리 + 청수리), 재동노동자구(밀전면 재동2,3,4,5,6리), 구봉리(밀전면 영대리 + 서은천리), 망일리일부(망일리 + 용암리 + 은산면 정산리), 수원리(청계리 + 귀천리 + 수원리)로 개편되었고 북괴치하에서 신설된 은산군으로 편입되었다.

은산면[편집]

1908년 없어진 은산군의 중심지이다.

여타 평안도의 군현들은 고려부터 시작한것과 달리 이 은산군은 고구려 흥덕군(興德郡)이라고 고구려때의 지명도 있다. 왜 여기만 이래 기록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튼 이 은산군이 1908년 순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성내면 + 현내면 + 후덕면 + 풍전면 = 은산면이 되었고 1929년 제현면을 스까했다.

장선강이 면남부를 동서로 흘러들어가 선소면 용암리에서 정융강으로 들어간다. 1900년 영길리가 숭화리에 금광을 채굴했다.

은산리에 350년전 신광미가 세운 담첨정, 임강리 임제사, 천성리 관음사가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때는 개좆병신같이 분리됬다. 시발 귀찮다. 암튼 북괴령 은산군의 중심지가 아니게 됬다는 것만 기억해라.

자산면[편집]

1908년 없어진 자산군의 중심지이다.

1910년 군내면이 자산면으로 개명되었고 1914년 운암면, 1935년 풍산면을 흡수했다. 서부 평원군과의 경계에 자모산이 있으며 그 근교에 고구려시기 만들어졌단 전설이 전해지는 안국사, 그리고 고구려때부터 조선까지 사용된 자모산성이 있다.

후탄면[편집]

면소재지는 후탄리.

1914년 귀후면 + 오탄면 + 월탄면 = 후탄면이 되었다. 정융강이 남류, 남서쪽 사인면과의 경계에 자산면에서 발원한 작은 하천들이 흘러 정융강으로 들어간다.

아웃풋[편집]

  • 전혜린 - 기형도와 함께 요절한 천재중 하나로 꼽히는 번역가이자 수필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