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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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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조 사건참조.

개요[편집]

평안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 함경남도 장진군, 함주군, 정평군, 서쪽으로 덕천군, 평안북도 영변군, 남쪽은 맹산군, 함경남도 영흥군, 북쪽은 평안북도 희천군과 접한다. 본래 2,249㎢에 달하는 거대한 군이었지만 북괴 군면리 대폐합때 1,232.6㎢의땅이 대흥군으로 분리됨에 따라 1,182㎢으로 쪼그라들었다.

낭림산맥묘향산맥이 갈라지는 산악지역에 위치해있으며 동부 낭림산맥을 따라 소백산(小白山, 2,184m), 동백산(東白山, 2,096m), 검산령(劍山嶺, 1,127m), 사수산(泗水山, 1,747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있고 남쪽에도 모도봉(毛都峰, 1,833m), 덕인봉(德仁峰, 1,345m), 만진덕산(萬陳德山, 1,160m) 이, 북쪽에 웅어수산(雄魚水山, 2,019m), 낭림산(狼林山, 2,014m), 무동봉(舞童峰, 1,762m), 묘향산, 천괘산(天快山)등이 솟아있기 때문에 군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대동강의 발원지인데 성룡강, 남천강의 지류가 대동강에 합쳐지고 이강들을 따라 아주 좁은 평야들이 형성되었다.

건치연혁[편집]

발해멸망이전까지 연혁은 알 수 없다. 고려초 군의 전신인 영원진(寧遠鎭)이 설치되었는데 1041년 최충에 의해 영원성이 축성되었다. 하지만 고려 중후기 치소가 평원군으로 옮겨졌다.

이후 1396년 영청에 합해져 영녕현(永寧縣)으로 불리다가 1466년에 원래위치로 돌아가 군이 설치되고 그대로 진이 설치되었다.

1525년 군의 치소를 남쪽 소초역(所草驛)으로 옮기고 잉목진(仍木鎭)으로 칭했다가 이후 몇차례 치소가 옮겨졌다. 정묘호란이후 1633년 둔전이 설치되었고 1684년 청성부원군 김석주의 요청에 따라 영성진이 되었다.

하지만 폐단때문에 2년도 안되서 진이 폐지되고 영원둔으로 재설치되었다가 1686년 국방의 요지라고 하여 독진으로 격상되고 첨사가 파견되었다. 1823년 영성진이 폐지되고 군수가 행정을 보게 되었다.

1895년 군으로 승격되면서 치소가 성룡면 고읍성에서 영원면지역으로 옮겨졌다. 1896년 4등군으로서 평안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리 대폐합당시엔 별 일이 없었고 1917년 쾌락면 + 영청면 = 영락면이 되고 읍내면이 영원면이 되었다.

북괴치하로 잠시 넘어갔다 6.25 전쟁초기 국군이 북진함에 따라 대한민국에 수복되었고 유재흥이 지휘하는 8사단이 주둔했다. 하지만 거대한 땅덩이를 1개 사단에게만 맡긴 결과 전선 곳곳에 구멍이 생겼고 결국 이 구멍을 파고든 중공군의 기습으로 8사단은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맥아더, 월튼 워커, 유재흥중 누가 저딴 병신같이 전력을 배치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평안남도지역 상당부분을 수복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거대한 면적, 그 면적에 걸맞지 않게 매우 비좁은 평지와 산악지대 때문에 포기할 법도 한데 문제는 여기서 동쪽으로 산 넘어가면 바로 동해안에 위치하고 또 하필이면 평야지대라 방어에도 불리한 정평군이고 정평이 따이면 함흥을 포함해 함경도 전체가 좆되는 터라 함흥과 함경도 전체를 지키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를 제대로 지키려면 여기 북쪽의 평안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해발 2000m 급의 고지들[1]을 반드시 확보해야 되기 때문에 휴전 직전까지 강원도 산동네에서 벌이는 고지전 따윈 좆밥으로 보이는 미친 고지전으로 피똥을 쌌을 것이다.

암튼 청천강 전투이후 북괴군이 수복하게 되었다.

북괴가 수복한 뒤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성룡면, 대흥면, 소백면, 신성면, 온화면 5개리, 덕화면 3개리, 금성면 2개리를 스까해 대흥군을 신설했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심화조 사건당시 뽀그리우스에게 숙청당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을 기존 북창 수용소에 넣을려다가 수가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니까 대흥군에 새로 정치범수용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심화조 사건이 끝난뒤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읍면[편집]

現 북괴령 영원군[편집]

영원면[편집]

寧遠面

現 북괴령 영원군 영원읍, 도평리, 마산리, 문곡리, 신막리, 신대리, 용성리, 신리, 장산리

면소재지는 영녕리. 군청소재지이다.

영녕(永寧)·신율(新栗)·기대(箕垈)·신(新)·대룡(大龍)·덕암(德巖)·성장(城壯)·방산(方山)·남산(南山)·임탄(荏灘)·봉덕(鳳德)·도평(都坪)·문곡(文谷)·마상(馬上)·직(直)·마근담(麻槿潭)·석막(石幕)의 17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영녕면(永寧面) + 문곡면(文谷面) + 풍서면(豐瑞面) = 읍내면이 되었고 1917년 영원면으로 개명되었다.

동부 경계를 따라 신기봉(神奇峰, 1,465m), 덕인봉등이 솟아있고 남부 경계를 따라 만진덕산, 대덕산(大德山, 932m), 약태산(藥苔山, 973m)등이 연이어 있고, 중앙에는 봉덕산(鳳德山, 810m)이 솟아 있다. 만진덕산에서 발원한 남천강이 면중앙을 서류, 대동강으로 합류하여 덕천으로 유입된다.

성장리지역에 발해시기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는 읍성과 몇개의 석성이, 면동쪽에 동문정(東門亭), 마막현에 문묘가 있었다.

8.15 광복이후 영녕리가 1,2리로 분리되었고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도평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이후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영원읍(舊 영녕리), 도평리(舊 도평리), 마산리(마근담리 + 마상리), 문곡리(봉덕리 + 문곡리), 신막리(직리 + 석막리), 신대리(대룡리 + 신률리 + 기대리), 용성리(신리 + 덕암리 + 성장리), 장산리(남산리 + 임탄리 + 방산리)로 개편, 영원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12월 용성리에서 신리가 복구되었고 용성리가 신대리의 일부를 편입했다. 1958년 마산리의 일부가 신막리로 이관되었다.

태극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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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極面

現 북괴령 영원군 옥천동, 영창리, 풍전리, 송산리

군 서북에 위치한 면. 면소재지는 태극리.

태극(太極)·영창(永昌)·화순(和順)·송산(松山)·율지(栗枝)·풍전(豊田)의 6개리를 관할했다.

우리가 잘 아는 태극기의 '태극'과 한자가 같다.

1917년까지 덕천군에 속해있던 태극내면, 태극외면을 태극면으로 합했고 1935년 영원군으로 이관되었다.

동쪽에는 백애산, 고성산이 영락면과 경계를 이뤘고 북쪽에는 묘향산영변군, 희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묘향산에서 발원한 소하천리 남동류하여 면 남부에서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태극광산, 무극광산에서 금, 은이 생산되었다. 영창리에 볍련사와 서산대사가 심었다는 세죽(細竹)밭이 있었는데... 지금은 알지? 어쩔 수 없어.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영창리에서 양평리(楊坪里), 화순리에서 마남리(馬南里), 태극리에서 강선리(降仙里)가 신설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내창리(태극리 + 강선리)[2], 영창리(영창리 + 양평리), 화순리(화순리 + 마남리), 풍전리(율지리 + 풍전리), 송산리로 개편되었다. 태극의 태극이 그 태극이었다보니 혹부리가 행정개편하면서 태극이랑 관련있는 글자는 몽땅 지워버린듯.

이후 35년이 지나 화순리가 내창리에 흡수되었고 그 내창리가 화순리로 개명되었다가 1년뒤 옥천동이 되었다. 그러니까 옥천동(=화순리 + 내창리)이거.

영락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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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樂面

면소재지는 중흥리.

중흥(中興)·신흥(新興)·낙포(樂浦)·송평(松坪)·낙창(樂倉)·태평(泰平)·삼포(三浦)·용삼(龍三)·산막(山幕)·창(倉)·문암(門巖)·양성(陽城)·초대(草大)의 13개리를 관할했다.

1917년 쾌락면(快樂面) + 영청면(永淸面) = 영락면이 되었다. 서쪽에 고성산(姑城山, 1,145m), 백애산(白涯山, 1,524m), 북쪽의 무동봉, 천쾌산등이 솟아있고 대동강이 면남부를 관류한다.

창리 영락광산에서 금, 은이 채굴되었는데 8.15 광복기준 12계단의 도광기가 있어 채굴하면 바로 발전시설로 보내졌다고 하며 절단, 가공되어 평양, 함흥으로 보내졌던 천연 슬레이트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이후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승통리(삼포리 + 낙포리 + 송평리)[3], 중삼리(중흥리 + 용삼리), 창산리(산막리 + 창리 + 문암리), 대성리(양성리 + 초대리)로 개편, 영원군에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기록에서 종범당했다.

덕화면[편집]

德化面

現 북괴령 영원군 도삼리, 대흥군 덕흥리

면소재지는 교관리.

교관(敎館)·중흥(中興)·성(城)·횡천(橫川)·신흥(新興)·신덕(新德)의 6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신덕면(新德面) + 신화면(新化面) = 덕화면이 되었다. 동남부 경계에 백산(白山, 1724m)이 덕화면 신성면, 함경남도 영흥군과 경계를 이루고 남계를 따라 마유령(馬踰嶺, 972m), 횡천령(橫川嶺, 1,062m), 열봉(熱峰, 1,595m)이 솟아있으며 면북부를 대동강이 서류하며 관통했다.

횡천리 횡천광산에서 금, 은이 채굴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도삼리(중흥리 + 교관리 + 횡천리), 덕흥리(신덕리 + 신흥리 + 성리)로 개편되었고 도삼리는 영원, 덕흥리는 대흥군으로 편입되었다.

온화면[편집]

溫和面

現 북괴령 영원군 수하리, 온양리, 회양리, 신흥리

면소재지는 온양리.

온양(溫陽)·회양(回陽)·신답(新沓)·용덕(龍德)·수하(水下)의 5개리를 관할했다.

동쪽 황처령(黃處嶺, 1,024m), 영단산(永丹山, 1,532m), 서쪽 백암산(白巖山, 1,105m), 북쪽 남곡봉(南谷峰, 1,487m)이 솟아있다. 또한 대동강의 지류인 온창강(溫滄江)이 면 중앙을 남서류, 면남부에서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온양리에는 병치료에 좋다는 온화온천이 있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수하리, 온양리(신답리 + 온양리), 회양리, 신흥리(용덕리 + 용평리)로 개편되었고 본래 수하리만 영원에 남고 나머지는 대흥군에 넘어갔다. 하지만 1954년 대흥으로 넘어간 3개리가 모두 영원으로 돌아왔다.

성룡면[편집]

成龍面

現 북괴령 영원군 용대리, 청산리, 순호리

면 소재지는 구창리.

구창(舊倉)·평대(坪垈)·길대(吉垈)·청막(淸幕)·장산(長山)·성진(城眞)·만평(萬坪)의 7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판어동, 길석동, 강동참, 관대참이 길대리(吉垈里), 청리와 연막리가 (淸幕里), 장백동과 산정동이 장산리(長山里), 성동과 연진동이 성진리(城眞里), 만창동, 잠평동, 직동, 조산동이 만평리(萬坪里)로 개편되면서 관할리가 16개동리에서 7개리로 줄었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청막리에서 동창리(東昌里), 만평리에서 창문리(昌門里)가 신설되었으나 군면리 대폐합때 용대리(평대리 + 구창리), 청산리(청막리 + 장산리 + 동창리 + 길대리), 순호리(성진리 + 만평리 + 창문리)로 개편, 대흥군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954년 3개리가 모두 영원군으로 넘어갔다.

現 북괴령 대흥군[편집]

대흥면[편집]

大興面

現 북괴령 대흥군 대흥읍, 용평리, 광통리, 인룡리, 복흥리, 흑수리.

면소재지는 사창리.

사창(社倉)·인처(仁處)·용암(龍巖)·입석(立石)·복녕(福寧)·흑수(黑水)·중흥(中興)·덕(德)·광통(廣通)·용수(龍水)·월평(月坪)의 11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태백면(太白面) + 장흥면(長興面) = 대흥면이 되었다.

동부 경계를 따라 황봉(黃峰, 1,736m), 검산령, 차일봉(1,743m)의 산이 솟아있고 대동강이 면의 중앙을 남류한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흑수리에서 검산리(劍山里), 광통리에서 영단리(永丹里)가 신설되었고 군면리 대폐합 때 대흥읍(사창리 + 입석리 + 덕리), 용평리(용수리 + 월평리), 광통리(영단리 + 광통리), 인룡리(인처리 + 용암리), 복흥리(복녕리 + 중흥리), 흑수리(검산리 + 흑수리)로 개편되었다.

소백면[편집]

小白面'

現 북괴령 대흥군 경수노동자구, 평화리, 대동리, 소백리, 낭림리.

1896년 면 북쪽에 있던 소백산의 이름을 따와 서창면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922년 장자평, 향유동, 수항리, 동당평, 서당평이 동향리(東香里), 청석동(靑石洞), 소신덕동(小新德洞), 대신덕동(大新德洞), 기은동(箕隱洞)이 신덕리(新德里)로 통합되었고, 상남리에 소남동(小南洞) + 대남동(大南洞)을 흡수, 감덕리(甘德里)에 무릉동(武陵洞)을 흡수하여 와룡(臥龍)·동향(東香)·직(直)·경수(鯨水)·사양(士養)·상남(上南)·신덕(新德)·감덕(甘德)의 8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면소재지는 와룡리. 동쪽 경계를 따라 동백산, 북동령이, 북쪽 경계를 따라 소백산, 웅어수산, 낭림산 등 높은 산이 연이어 있다. 면전체가 험한 산악지대로 구성되어있으며 대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북괴 수립직후 경수리가 1,2리로, 와룡리가 1, 2로 분리되었고 군면리 대폐합 때 경수리(경수1리 + 경수2리), 평화리(사양리 + 감덕리), 대동리(동향리 + 직리), 소백리(와룡1리 + 와룡2리), 낭림리(상남리 + 신덕리)로 개편되어 대흥군으로 편입되었다.

1961년 경수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신성면[편집]

新城面

現 북괴령 대흥군 금성리, 도흥리, 운흥리, 신남리, 창현리, 문삼리.

면 소재지는 창의리.

창의(昌義)·길현(吉峴)·동창(東昌)·장임(壯壬)·대흥(大興)·여운(如雲)·신안(新安)·신흥(新興)·구억(舊億)·진작(陳作)·도흥(都興)·문흥(文興)·하삼(下三)의 13개리를 관할했다.

1922년 신창면(新昌面) + 금성면(錦城面) = 신성면이 되었고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동창리와 장임리가 창장리(昌壯里)로 병합됨에 따라 관할리가 12개리로 줄었다.

군면리 대폐합 때 금성리(구억리 + 진작리), 창장리, 도흥리, 운흥리(여운리 + 대흥리), 신남리(신안리 + 신흥리), 창현리(창의리 + 갈현리), 문삼리(문흥리 + 하삼리)로 개편되어 대흥군에 편입되었다. 1956년 9월 창장리가 운흥리, 창현리에 분리편입되었다.

  1. 묘향산(1909m), 천쾌산(1927m), 낭림산(2014m), 웅어수산(2019m), 동림산(2096m), 소백산(2184m) 등등
  2. 태극리라 쓰기엔 빨갱이들이 이게 생각나서 이름을 바꾸려고 했을것같은데 마침 조선시대 이곳에 내창(內創)이 있었음을 알아내서 이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3. 1952년 전시수송을 원만케하기 위해 주민들이 5령의 오솔길을 포장도로로 만들어 고갯길을 승리적으로 개통했다고 승통리라고 했단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