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안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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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평안북도
자치시 신의주시
자치군 의주군 · 용천군 · 철산군 · 선천군 · 정주군 · 박천군 · 태천군 · 영변군 · 운산군 · 구성군
창성군 · 벽동군 · 삭주군 · 초산군 · 위원군 · 희천군 · 강계군 · 자성군 · 후창군

평안남도
자치시 평양시 · 진남포시
자치군 안주군 · 대동군 · 순천군 · 맹산군 · 양덕군 · 성천군 · 강동군 · 중화군 · 용강군 · 강서군
평원군 · 개천군 · 덕천군 · 영원군
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安州

동쪽으로 개천군, 순천군, 남쪽은 평원군, 북쪽은 청천강건너 박천군영변군, 서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다. 8.15 광복직후 시점으로 1읍 7면 169리로 구성되어있었으며 군청은 안주읍 북문리에 있었다. 면적은 692.19㎢로, 평안남도 총 면적의 4.6%를 약간 넘는다. 평양과의 직선거리는 67km 정도로 서울과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와의 직선거리와 비슷하다.

묘향산맥의 지맥인 자모산맥(慈母山脈)이 본군 동면에서 뻗어내려 마두산(馬頭山, 536m), 서삼봉(西三峰, 451m), 두미산(頭尾山, 419m), 상산(上山, 528m), 원룡산(元龍山, 301m)등이 솟아나있는데 이중 자장현이남의 마두산, 삼산, 원룡산, 취라봉등은 운곡면을 인접한 대니면, 안주읍, 동면, 순천과 경계를 이루게 만들었다. 운곡면과 동면에 있는 자모산맥을 빼면 전역이 평야지대이다.

탈북했다가 재입북한 임지현병신년이 현재 여기서 살고 있다고 한다.

연혁[편집]

낙랑군 증지현이 있었다는 썰이 있다.

수나라 38만 별동대를 을지문덕슨상님이 육회로 만든 살수대첩의 성지인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군명은... 몰라 시발. 암튼 이때 뒤진 수나라 병사의 뼈가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골적도(骨積島)라는 이름의 하중도가 안주읍근처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나 북괴지역정보넷이나 재령군에 있던 '식성군(息城郡)'이 여깄다고 개지랄하는데 왜이지랄인지 모르겠다.

고려평안남도를 재수복, 청천강이남을 장악한뒤에는 팽원군(彭原郡)이라 불렸다. 931년 북진정책을 고수한 왕건의 지시에 따라 북방의 발해유민, 여진족들을 점령하고 이들을 총괄하는 안북부(安北府)로 떡상되었고 983년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가 되어 방어사가 파견되었다. 1018년에는 영주가 빠졌고 안북대도호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구한말까지 북방방비의 핵심요충지로 대우를 받아왔다.

서희성님이 강동6주를 받아낸 뒤로 이 강동 6주와 평양이 관할하던 강동군, 강서군, 중화군외의 평안도전지역이 안북대도호부의 관할이 되었다.

1369년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가 설치되면서 지금의 이름인 안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평안도를 설치하면서 평양과 함께 중요도시로 취급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이 고을에 전염병과 기근이 겹쳐서 씹창이 났을 때 오리 정승이 와서 단기간에 재건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냥 "오리정승 실무능력 쩌네요"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평안도 병영이 있었던 요충지라서 여기가 씹창 나면 북방 방비도 같이 씹창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정묘호란때 주민들과 군인들이 후금에게 치열하게 저항했다가 털리고 박살났다. 김복희(金福希), 함계선(咸繼善), 계종(繼宗) 형제등 많은 무관과 지역 인사들이 본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또한 이들중 살아남은 일부는 정묘호란의 다른 전쟁에서도 활약했다. 1989년 안주군민회에서 편찬한 <내고장 安州>에 이들을 포함하여 정묘호란 때 활약ㆍ순절한 42인의 이름이 실려 있다.

조선후기에는 김기지를 비롯해 88명의 문과급제가를 배출했다. 이들은 주로 조선 인조 이후에 출생하여 숙종 이후부터 영조, 정조, 순조에 이르는 조선 후기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또한 강혜적과 석지암을 비롯한 64명의 무과 급제자가 확인된다.[1]

중국으로 향하는 주 길목에 있고 청남과 청북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 한때는 번화하였지만, 구한말이후부터 취급이 박해지면서 거지동네가 되기 시작했다.

6.25 전쟁초기 평양 탈환이후 미군북괴군 수뇌부 척살과 미군포로 구출을 위해 상륙작전을 실시할 때도 안주 바로밑의 숙천에서 실시되었지 안주는 그닥... 좋은 취급을 못받았다. 그리고 마두산에선 빨치산새끼들이 깽판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두산빨치산의 활동지는 마두산 혁명전적지라는 좆같은 이름으로 혹부리가 항일 투쟁을 했다는 주작작업에 들어갔다. 엥? 마두산? 거기 6.25때 빨치산이 뛰던데 아니냐?하면서 반박하던 할배들은 어디 위대한 돼지새끼의 혁명과업에 지랄이야하면서 자살당하셨다. [1]

청천강 전투당시 국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격전지였으나 털렸고 지 땅을 재수복한 북괴는 대니면, 입석면, 연호면, 용화면지역을 분리, 을지문덕센세의 이름을 따 문덕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십년뒤 고난의 행군으로 전국민이 아사하고 골골대던시절 뽀그리우스는 알수 없는 이유로 1980년 멀쩡히 잘 분리된 청남구의 마을이름들을 좆같은 우상화 + 체제선전용 이름으로 개명, 그리고 지가 기쁨조 보지에 좆을 넣었다빼듯 문덕군에 넣었다 빼면서 청남구를 새로 만들었고 舊 운곡면지역은 그냥 운곡지구로 분리시켰다.

산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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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편집]

'열두삼천리벌'이라고 불렸던 비옥한 안주평야를 기반으로 본 지역의 주 산업이 되었다. 농경지 면적은 해방 이전(연도 불명) 313.97㎢로 전체 면적의 45.35% 정도를 차지하여 경지면적이 평균적으로 35% 수준이었던 평남 내 타 지역보다 높았다.[2] 1938년 통계에 따르면, 안주군 주민 15,751세대 90,261명 중 농업 종사자는 10,943세대(69.47%),66,686명(73.88%)에 달했다. [3] 특히 쌀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연 생산량은 일제강점기 기준으로도 약 20만 석에 육박, 평원군과 함께 도내 수위권을 다투었다. 농업생산량을 기반으로 부농(富農)도 많이 거주했다. 안주에서 난 쌀은 철도편이나 청천강 수운, 황해 연안 해로 등을 통해 평양,진남포,박천,개천 등지로 반출되었다. 하지만 안주 농업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았는데, 미곡 대다수가 진남포를 거쳐 일본 본토로 수출의 탈을 쓰고 수탈당하는 정도가 심했고 1926년에는 이웃 평원군과 함께 일제가 쌀 증산 목적으로 지주들에게 수리(水利)조합의 시설비, 치수(治水)사업비를 떠넘기고 도시발전사업 비용도 전가하는 폐단이 있기도 하였다. 이는 지주들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4]

어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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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만에 접한 입석면, 연호면 일대에서 활발했다. 종사 세대는 289세대(1.83%), 인구는 673명(약 0.75%)이라고 추산된다. 농업에 비해서는 종사자 수도 매우 적고 빈약해 어종별 어획고 및 어업협동조합 등등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주 어종은 황해에서 주로 잡히는 조기갈치준치홍어 등이 있었으며 청천강 하구 강어귀를 끼고 있어 조개, 뱅어, 숭어 또한 풍부했다.[5]

임업, 광업[편집]

임업의 경우 마두산, 두미산 등 동부 산지를 중심으로 하나 특기할 수준은 못 되었다.

광업의 경우 갈탄이 주로 생산되었다. 안주 지역 서부에 분포한 신생대 제3계 안주층을 기반으로 갈탄 매장량이 5,300만 톤에 달하는 탄전이 발견되어 1912년부터 채탄이 시작되었고 철도가 부설되어 탄을 운송하고 탄광운영을 지원하였다. 주요 탄전지대는 다음과 같다.

  • 신리(新里)탄층: 입석면 신리 내동, 인풍리 일원.
  • 용연리(龍淵里)탄층: 용화면 용연리, 봉학리, 용담리, 용반리.
  • 연호면(燕湖面)탄층: 연호면 동림리, 중오리 등등.

금광은 안주 동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였다.

  • 신안주면 증암리 일대.
  • 주내(州內)면[6] 용연리, 서상리 일대.
  • 동면 봉덕리, 명학리, 연풍리 일대.
  • 운곡면 용복리, 재전리 일대, 용택리 삼막동ㆍ원용리 용성동 일원, 온상리, 용담리, 용계리, 용양리 일대. [7]

1938년 기준 광업 종사 세대수는 277세대(약 0.18%), 종사인구는 1240명(1.37%)이었다.

상업,금융[편집]

공업[편집]

읍면[편집]

現 북괴령 안주시[편집]

안주읍[편집]

安州邑

1914년 읍북면 + 주북면 = 주내면이 되었고 1917년 안주면으로 개명, 1931년 안주읍이 되었다. 읍소재지는 칠성리

동쪽 동면과의 경계지에 서삼봉이 솟아있고 남쪽에는 마두산이 솟아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대니면, 운곡면과 경계를 이룬다. 청천강이 읍 북쪽에 있다.

고구려때 처음 만들어져 조선시대때 3중성으로 벌크업했던 안주성과 그 성내의 백상루, 칠성공원, 북문리 칠불사, 신성내 충민사가 있었지만 1952년 미군성님들이 네이팜탄을 뿌려 다 작살나버렸고 이중 백상루는 1977년 원래위치에서 서쪽으로 400m옮겨져 병신같은 방식으로 복구되었다. 그래도 칠성공원은 이문서 위 사진처럼 잘 남아있으니 다행이다.

1949년 안주면으로 강등되었다.

북괴로 넘어간 뒤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안주읍(칠성리 + 신의리 + 청교리 + 율산리 + 남천리 + 북문리 + 건인리), 미상리(미상리 + 문봉리), 용연리(용연리 + 화양리 + 장흥리), 삼룡리(용흥리 + 용현리 + 용서리), 금성리(금성리 + 고성리), 선흥리(서산리 + 선흥리 + 도회리), 장천리(장천리 + 봉서리 + 장상리), 원풍리(북송리 + 원풍리), 청천강 이북에 있던 자장리와 신성리는 박천으로 이관된 상태에서 2개리를 뺀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동면[편집]

東面

면소재지는 용흥리.

자모산맥이 지나가는 산악지대와 청천강빨 평야로 구성되있으며 두미산, 서삼봉이 있다. 용흥리에 용흥염직공장이 있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용계리(맹주리 + 동맹리 + 용계리), 용흥리(용흥리 + 봉학리 + 연풍리 일부), 평률리(명학리 + 봉덕리 + 평률리 일부), 상서리(봉명리 + 상서리 + 봉상리 + 평률리 일부), 운흥리(운흥리 + 연풍리 일부 + 금천리 일부)로 개편되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신안주면[편집]

新安州面

면소재지는 원흥리.

1914년 청산면 + 문곡면 = 신안주면이 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원흥리(운흥리 + 소학리 + 봉림리), 운송리(운송리 + 동칠리 + 용운리), 창송리(창송리 + 신원리), 청송리(청송리 + 명암리 + 용계리), 송학리(송학리 + 증암리 + 오리), 남칠리(남칠리 + 상팔리 + 신성리 + 낙만리), 운학리(운학리 + 송죽리 + 신리 + 원일리)로 개편되어 면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現 북괴령 문덕군 + 청남구[편집]

대니면[편집]

大尼面

면소재지는 협흥리.

1914년 대대면(大代面) + 니산면(尼山面) = 대니면이 되었다.

동북쪽 마두산이 안주읍, 운곡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문남리 운곡면 경계에 삼산이, 면서남쪽 소니리에 소니봉이 있다. 면전역이 평야지대이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상계리(용흥리 + 용호리 + 남상계리), 용남리(용남리 + 문천리 + 문남리), 금계리(금계리 + 남계리 + 쌍계리), 어룡리(어룡리 + 계림리 + 백학리 + 용포리), 이서리(이서리 + 소니리 + 용봉리 + 봉명리), 만흥리(만흥리 + 발남리 + 발북리 + 만흥리), 협흥리(협흥일리 + 협흥이리 + 용화면 운천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1953년 협흥리가 문덕읍이 되었고 문덕읍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7년 이서리가 풍년리로 개명되었다. 1981년 만흥리가 용화면에서 신설된 상북동리와 함께 문덕읍에 땅을 떼줬다.

연호면[편집]

燕湖面

면소재지는 용흥리.

1914년 연경면(坰面) + 평호면(平面) = 연호면이 되었다. 청천강 하구라서 넓은 갯벌이 펼쳐져있다.

1980년 뽀그리우스에 의해 간척지로 개간될려 했지만 버로울 탔다고 한다. 오리정승이 뽕나무재배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여 양잠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남이리(남이리 + 남일리 + 북흥리 + 남흥리), 동사리(동사리 + 내삼리 + 용삼리 + 남사리), 상팔리(상팔리 + 용흥리), 인흥리(인흥리 + 신양리 + 신설리 + 서흥리), 동림리(동림리 + 용오리), 박비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1953년 동림리에서 용오리가 부활했고 남이리가 박비리에 땅을 조금 떼줬다. 1959년 박비리가 용오리로 흡수되었다.

용화면[편집]

龍花面

면소재지는 용연리.

1914년 용두면(龍頭面) + 갈화면(葛花面) = 용화면이 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상북동리(상북동리 + 응암리 + 봉학리 일부), 용중리(용남리 + 용운리 + 용중리), 용반리(용연리 + 용흥리 + 용반리), 용담리(용전리 + 약천리 + 용담리), 마산리(삼산리 + 마산리 + 봉학리 일부)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1981년 상북동리가 대니면에서 신설된 만흥리와 함께 문덕읍에 땅을 떼줬다.

입석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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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石面

고려때 광종이 쌓은 좆만한 토성이었지만 군사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안융진(安戎鎭)이 본면 내동리에 있었다. 지금도 딴데는 황량해서 무슨 서부영화 사막같은데 이 안융진성만 둥그러니 외롭게 남아있다.

1914년 누천면 + 남송면 + 남면 + 서면 = 입석면이 되었다.

청천강 어귀에 태향산, 산아래 수군첨절제사가 방어진을 구축한 노강진의 옛 자취, 그위 전선포가 있었고 전역이 평야였다.

연간 8만톤의 갈탄을 캐는 안주탄전이 있었다고 한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문덕읍(용주리 + 용운리 + 신명리 + 입석리 + 연흥리), 용흥리(왕산리 + 송산리 + 용정리 + 용흥리), 서호리(서호리 + 해서리 + 남조리 + 남단리), 용림리(남상리 + 원북리 + 중흥리 + 용담리 + 용림리), 성법리(동호리 + 용지리 + 성법리), 신리(내동리 + 인풍리 + 신리), 용북리(기산리 + 호남리 + 상공삼리 + 용북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문덕군으로 편입되었다.

1953년 문덕읍이 입석리로 강등쳐먹자 군의 중심지를 대니면에서 신설된 협흥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1954년 신리 일부가 안주노동자구로 분리되었고 용흥리 일부가 입석리로 편입되었다.

1980년 안주노동자구, 신리, 용북리에서 십시일반크리먹고 청남구라는 군급 행정구역이 등장했다. 1991년 서호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고 1997년 청남구가 문화, 상봉(응?), 충성, 효성노동자구로 개편, 문덕군에 흡수되었다가 2년뒤에 아래의 4개 노동자구, 신리, 용북리, 서호노동자구에서 땅찔끔찔끔 떼와서 복구되었다. 그리고 일부는 강성동으로 개명되었다.

現 북괴령 운곡지구[편집]

운곡면[편집]

雲谷面

면소재지는 용복리.

서북쪽에 안주읍, 대니면과 경계를 이루는 마두산이 있고 반룡리에 접무봉, 원룡리에 원룡산, 그리고 자모산맥빨 여러 산때문에 다른 읍면과 분리되어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용복리(원룡리 + 용복리), 입석리(온흥리 + 입석리 + 용서리), 반룡리(온상리 + 반룡리 + 운흥리), 구룡리(용흥리 + 어룡리 + 구룡리), 용담리(용림리 + 용담리 + 용천리), 용전리(용학리 + 재전리 + 용전리), 중흥리(중흥리 + 원흥리 + 용택리)로 개편되어 전역이 안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97년 8월 면전체와 순천시 신흥리(내남면 신리 + 금곡리 + 원봉리, 1년뒤에 일부가 신리로 독립)가 분리되어 운곡지구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고 이중 용복리, 중흥리에서 전산노동자구가 신설되었다.

아웃풋[편집]

  • 김홍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활동한 영화 평론가
  • 이범선 : 소설 <오발탄>의 저자
  • 문형순
  • 오제도 : 제1공화국의 공안검사. 선우종원과 함께 보도연맹을 창설을 주도했다.
  • 이응준 : 좆본군출신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이다.
  • 서산대사 휴정: 임진왜란승병을 이끈 의병장이다.
  • 김기지(金器之) : 문과 급제자로 숙종대 종7품에 상당하는 승정원 임시 주서(가주서, 假注書), 함경도 문천군수(종4품)를 지냈다. <내고장 安州>에서는 교서관 판교(判校)와 북청(北靑)부사를 지냈다고 하나, 북청부사 등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 강혜적(康惠迪) : 무과 급제자로 성종 때 종6품에 상당하는 황해도 우봉(牛峯, 현 금천군)현감을 지냈다. <내고장 安州>에서는 종5품급인 현령을 지냈다고 하는데, 현감인지 현령인지는 확인된바가 없다.
  • 석지암(石之巖) : 무과 급제자로 효종, 현종 때 활동하여 종사관(從事官)과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을 지냈다.

각주

  1. 안주군민회 편찬, <내고장 安州>, 1989.6, 제3장 인물, p.125-147.
  2. 위의 책, 1989.6, 제1장 지리개관-제2절 면적, p.4.
  3. 위의 책, 제5장 경제, p.240. 이하 안주지방 업종별 세대 및 인구는 본 페이지를 따랐음.
  4. 위의 책, 제5장 경제-제1장 농업, p.217.
  5. 위의 책, 제5장 경제-제3절 수산업, p.230.
  6. 1931년 안주읍(安州邑)으로 승격.
  7. 위의 책, 제1장 지리개관-제3절 지질, 1.구성과 2.광상(鑛床) 편을 참조,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