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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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북괴수립이전한정

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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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대동군용강군사이에 끼여있는 지역

역사기록들이나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모아보면 부천시북괴ver에 가깝다.

고구려평양으로 수도를 옮긴뒤에 강서군에 많은 고구려 고분들을 만들어놨다. 이중에 가장유명한게 바로 사신도가 있는 강서대묘와 수산리에 있는 수산리 고분군이다.

강서대묘같은 경우에는 좆본점령시기에 발굴되었지만 수산리 고분은 1971년 북괴놈들이 발굴했다고 한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이나 문화재가 많이 있어서 통일되더라도 개발이 쉽진 않을 것같다...만 도굴을 생각한다면 이것도 미지수다.

조선시대에는 꽤나 깨어있던 조선의 리얼 깨시민들이 많이 살았다.(백선엽센세의 증언) 물론 지금은 그런거 없다.

싸이할아버지가 여기출신 실향민이라고 한다.

건치연혁[편집]

북괴치하인 1957 ~ 1958년까지 선사시대 주거지 1기, 고인돌 2기, 고분등이 조사되었다. 고구려가 장악한 시절에는 삼묘리, 태성리등에서 수많은 벽화고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구려가 좆망하면서 같이 좆망했다.

고려가 평안도지역을 재수복했을 때 함종에 속했던 함종면 근처를 제외한 전지역이 서경기(西京畿) 4도에 속했다. 하지만 묘청의 난으로 서경기가 폐지되고 서경근처에서 6개현이 신설되는동안 이악향(梨岳鄕), 대구향(大垢鄕), 갑악향(甲岳鄕), 각묘향(角墓鄕), 증산향(甑山鄕)의 6개향에서 강서현이 신설되었다.

1394년 증산향이 증산현으로 분리되었다.

수백년이 흐르고

1906년 평양에서 초리면, 잉차면의 2개면이 스까되고 군내면이 신설되면서 13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증산군이 통폐합되었고 평원군으로 진방면, 초곡면이 떨어져나감에 따라 16개면으로 확장되었다. 1929년 장안면이 함종면에 합병되고 신흥면 + 풍정면의 2개면이 스까되어 14개면으로 개편되었다.

북괴치하에선 대동군 대보면과 같은 일부지역과 함께 보다가 쌍욕이 절로 나올 수준으로 심각하게 행정구역이 마개조되었다. 극--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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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면[편집]

江西面

중심지. 면적 45.69㎢. 면소재지는 덕흥리 고분으로 유명한 덕흥리.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강서군 군내면, 서부면, 거암면일부를 스까서 만들어졌고 강서군청이 설치되었다.

1949년 덕흥리가 1,2,3,4리로 분리되었다.

백선엽장군(덕흥리), 노신영前 국방부장관(학성리)의 고향이다.

동진면[편집]

1958년 기양노동자구와 탄포리가 강서읍으로 스까되면서 강서군 중심지가 여기로 옮겨졌다.

본면에 있는 청산리가 1950년대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가 나도 청산리에서 직접 농민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현지지도로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켰으니 이걸 청산리 방법이라면서 당원들도 농사짓고 떼굴떼굴 구르면서 사회주의 낙-원을 만들라고 지시한일이 있다. 초창기엔 나름 잘먹혀서 경제도 떡상하고 주민들의 충성심도 올라갔지만 이후에도 경제활동에서 당의 간섭을 줄이는 부분적 자유시장경제로 나아가야할때도 끝까지 밀어붙이다 폭망했다.

반석면[편집]

班石面

면적 39.97㎢, 면 소재지는 상사리.

1896년 평양부 반석방이 증산군 반석면으로 개편되었다. 반이리에 모산(帽山), 고산(孤山), 장산(長山), 하사리 봉래산(蓬萊山)이 있었다.

1952년 사천리극히일부(상사리 + 쌍룡면 운포리 + 신경리 + 산경리), 반석리(반이리 + 반오리 + 반륙리), 가장리대부분(반일리 + 반삼리 + 반사리 + 하사리 + 성태면 가장리)로 개편되었다. 1959년 가장리, 반석리가 대동군으로 이관되었다.

보림면[편집]

성암면[편집]

성태면[편집]

星台面

면적 86.43㎢, 면소재지는 원당리.

1906년 금려대면의 일부를 흡수해 평양에서 증산군으로 이속되었다가 1914년 강서군에 편입되었다.

태사리 성태산(星台山), 원당리 원당산(元塘山), 기우산(祈雨山), 가장리 체산(體山)등의 산이 있다.

북괴치하인 1952년 성태리(성이리 + 성삼리 + 성륙리 + 성칠리), 금송리(금송리 + 성사리 + 성오리), 마산리(원당리 + 태일리 + 태사리), 연곡리(연곡리 + 금연리 + 대마리 + 성일리)로 개편되어 증산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성태리가 성삼리, 성칠리로 분리되고 1959년 금송리를 제외한 전역이 대동군으로 넘어갔다.

수산면[편집]

신정면[편집]

新井面

면적 60.25㎢, 면소재지는 구련리.

1914년 증산군 소정면, 대정면이 풍정면으로 스까됬고 북리면과 오관면이 신흥면으로 스까되었는데, 1929년 신흥면 발산리를 제외한 신흥면과 풍정면이 스까되어 신정면이 되었다.

발산(鉢山), 화산(花山), 차유산(車踰山)등이 있고, 하천은 응암산에서 발원한 삼경천이 면을 관류해 서해로 들어가고 국령천이 강서저수지로 들어간다.

북괴치하인 1952년 청산리(후현리 + 신리 + 증산면 두만리), 신흥리(구련리 + 진사리 + 화산리 + 탄현리), 이압리(대흥리 + 하청리 + 연하리 + 증산면 저명리), 풍정리(이리 + 삼리 + 사리 + 함종면 일중리)로 개편되어 증산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중 풍정리는 1959년 신흥리 일부, 1962년 이압리 일부를 먹어서 넓이가 커졌다.

쌍룡면[편집]

雙龍面

면적 45,57㎢, 면소재지는 다족리.

1914년 증산군 용연면, 한룡면을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봉오리 도태산, 다족리 월출봉, 임성리 치산, 유명리 철산과 약방산이 있다.

1952년 문동리(다족일리 + 다족이리 + 기리), 임성리(임성리 + 창포리 + 봉오리 + 증산면 정양리)의 2개리로 마개조 짬뽕이 되고 말았다.

잉차면[편집]

본래 평양땅이었는데 1906년 강서군으로 들어왔다.

적송면[편집]

赤松面

면적 64.49㎢, 면소재지는 석삼리.

1914년 증산군 연면과 송석면을 스까해 만들어졌다.

석삼리에는 석다산(石大山)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을지문덕센세의 고향이라는 민담이 전해지고 있고 인접지역에 장수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석이리에는 을지문덕이 궁술과 검술을 연마했다고 전해지는 마이산(馬耳山)이 있다. 그외에도 을지문덕관련 민담이 아주 많다.

1952년 적송리(석일리 + 석륙리 + 석칠리), 석다리(석이리 + 석삼리 + 석오리 + 석사리), 광제리 극히일부(청령리 + 증산면 광제리 + 오화리), 용덕리일부(곡신리 + 삼부리 + 증산면 자봉리 + 용덕리)로 개편되어 증산군에 편입되었다.

증산면[편집]

甑山面

면적 81.65㎢. 면소재지는 취룡리.

1914년 증산군이 강서군에 통폐합되면서 증상군 황상면, 국보면, 성도면, 사현면을 합하여 증산군을 신설했다.

면서쪽에 김씨 시조를 모신 명당이 있는 고석산, 호랑이가 많았다는 비호산, 증산, 국령산, 옥녀봉이 있지만 대부분이 바다를 낀 평야지역이다.

손원일장군님의 아부지인 손정도 목사께서 본면 오흥리에서 태어나셨고 손정도 목사님의 아부지 손형준은 윾교탈레반이자 강서쪽에서 이름난 부농이기도 했다카더라.

북괴치하로 넘어간 1952년에 증산읍(화선리 + 영천리 + 이안리 + 취룡리 + 사과리), 광제리(광제리 + 오화리 + 적송면 청령리), 낙생리(낙생리 + 반룡리 + 오흥리 + 부암리 + 미회리), 무본리(무본리 + 승영리 + 가풍리 + 정실리), 용덕리(용덕리 + 자봉리 + 적송면 곡신리 + 삼부리), 임성리 극히일부(정양리)로 개편되어 증산군에 편입되었고 북괴정부의 큰 터치없이 증산에 남게되었다.

초리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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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里面

면적 23.93㎢. 면소재지는 강선리.

원래 평양부 초리방이었다가 1906년 강서군에 편입되었다. 보봉리에 홍산(鴻山)이 있고 동쪽면계에 대동강이 흐르고 있다. 대동강하구다보니 농사가 잘되고 강변에서 물고기나 조개를 잡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시기 좆본이 군수물자생산을 위해 강선리에 제강공장을 때려박으면서 성장했지만 커티스 르메이셰프님이 불태워주셨고 수십년뒤 영변원전의 대타로 돼정은이 강선리에 신규 핵시설을 때려박았다.

하지만 우리의 천조국은 강선리에 있던 핵시설을 미리 발견하고 밑장빼기를 시도했던 돼정은에게 푸짐한 쿠사리를 먹이게 되었고 결국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은 나가리쳐먹었고 북괴경제가 다시 허벌창이 났다. 쌤통이다 병신들.

1949년 기존 7개리에서 강선리가 일리, 이리로, 포리가 동포리와 서포리로, 보봉리가 일리, 이리로 분리되었다.

함종면[편집]

咸從面

면적 22.84㎢, 면소재지는 함종리.

고려초 아선성군이라 불렸던 함종군이 있었지만 1906년 증산군에 통폐합되었고 1914년 증산군이 강서군에 통폐합됨에 따라 남리면, 중리면이 합해지면서 함종면이 되었다.

1929년 장안면, 신흥면 발산리가 흡수되었다.

북괴수립이후 1952년 발산리(발산리 + 범오리 + 여오개리 + 고경리), 함종리(함종리 + 홍범리 + 석교리 + 송동리), 장안리(미석리 + 달상리 + 계양리), 안석리(안석리 + 봉황리 + 계산리)로 개편되어 증산군으로 흡수되었다. 이중 장안리의 일부와 안석리는 온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81년 장안리가 만풍리로 개명되었다.

서해안의 봉황두산, 그아래 호두산과 쌍어산이 절경을 이룬다지만 지금은 돼지우상화 글귀가 절경좋은곳에 세겨져있어 눈갱만 당한다.[1] 그외에 아선산(牙善山), 소고지산(所高指山), 부산(釜山), 검산(檢山), 석고개산(石古介山), 가마산(加馬山), 물백채산(勿白菜山)등이 면을 둘러싼 분지지역이다.

응암산밑에 고려말 홍건적을 뚜까팬 무명용사 소소래의 사당인 소당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알지? 어쩔 수 없어...

아웃풋[편집]

  • 갓창호
  • 갓만식
  • 갓원일
  • 손정도: 손원일제독의 아버지. 증산면 출신으로 손원일 남매를 낳은 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는동안 빨갱이짓을 했다가 중국 경찰에 투옥된 혹부리우스를 살려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었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평을 듣는다.
  • 갓일한
  • 갓선엽: 친일파. 만주군장교. 전쟁영웅
  • 배상명: 친일파 썅년
  • 김성애: 김평일의 생모.
  • 박영준: 모범경작생을 쓴 소설가.
  • 하용조: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인 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로 진화론 반대 창조론 만세를 외쳤다.
  • 김인식: 2015 WBC 감독이던 분이다.
  • 김응주
  • 오천석: 8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교육학자.
  • 노신영
  • 유창순
  • 이영덕
  • 전철우 : 본군출신 탈북자이다.
  1. 사실 북한지역의 명산에서 경치좋은곳 상당수에는 안구테러만 일으키는 돼지우상화글귀가 새겨져있다. 시발 없애자니 새긴거라 환경파괴가 필수적이고 냅두자니 씨발눈갱에 정치적으로 문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