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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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문종(文宗)
시호 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

(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

이향(李珦)
부왕∙모비 아버지: 세종 어머니: 소헌왕후
왕후 정비: 현덕왕후
왕가 전주 이씨
왕조 조선


세종대왕 아들이자 세종대왕과 조선왕조 전반기 최전성기를 이끈 성군이시다. 휘는 '향'

세종-문종 부자의 하드캐리가 없었다면 조선왕조는 당시와 같은 개쩌는 중앙집권 통치력과 정통성과 왕조의 위엄을 갖지 못하고

그저 그런 쿠데타 정권에 내란이나 일어나다 없어지는 왕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다.

천재에 과학왕이고 혁신적이었으나 조금만 더 오래살아서 왕좀 오래 해먹으셨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이 수백년간 많이 회자되어온 왕이다.

그래도 왕 재위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38세에 붕어하셨다. 참고로 9대 성종보다 오래 사셨음. 물론 오래 사신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단명하신것도 아니다.

그리고 세종의 치세 상당부분이 문종의 대리청정으로 이뤄졌다.[1] 세종 치세 후반기의 개쩌는 업적들은 사실 문종이

연로해서 눈이 잘 안보이는 세종과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자기가 '국왕의 의무'로서 국가를 헌신적으로 통치하면서 사실상 하드캐리해서 만든 업적이다.

문종의 통치력과 더불어 자기 자식에게도 찌질하게 군 선조 인조 영조 따위 찌질한 것들과는 다른 세종의 국왕으로서 큰 그릇을 느낄 수 있는 대목. (생각해보자. 세종의 아버지 이방원은 자기가 왕 되겠다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람 죽여대고 자기 공신 형제도 싸워서 내치고 아버지 이성계와도 수만명의 군대로 전쟁을 벌이며 왕좌를 뺐었다. 자기 아버지가 싸이코성을 살려 그꼬라지를 벌이면서 왕이 된 것을 가장 잘 아는 세종이다. 자기 아들 문종이 자기 닮아서 존나 씹천재에 성군으로 나왔다고 해도, 권력에는 피도 부자지간도 없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인데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고 해서 능력있는 아들에게 국정을 맏기고 씹하드캐리 시키는 것도 보통사람이면 절대 할수 없는 일이다. 단지 권력욕만 강한 사람들은 지애비 등에 칼침넣어서라도 왕이 되려는게 인간역사인데, 죽어도 못한다.)


단종이 제 앞가림 제대로 할때까지만 살아있었어도 헤븐조선 테크의 완성을 찍으며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수양좆 개씨발놈이 왕위 찬탈하면서 세종 문종때 전국을 뒤져서 모은 분야별 똑똑한 인재풀들은 다 때려죽이고

대가리 멍청한 별의별 양아치 깡패새끼들이 공신이되면서 조선의 전성기와 인재풀이 지기 시작함.... 조선은 문종사후 세조집권 숙청질부터 내리막길이었다.

세종 문종기의 전성기와 개쩌는 인재풀과 국가발전은 이성계-이방원 시기에 왕씨대학살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수십년간 뒤져가며 이잡듯 사람 잡아죽이던 개쩌는 중앙집권 통치력과 행정력을 선순환 시켜서 전국을 뒤져서 똑똑한놈 있으면

지역과 출신 가리지않고 노비조차도 데려와서 일시켜먹으면서 '최적화 테크'를 탄 결과였다. (그리고 여말선초 혼란과 내전기에 왕조가 바뀌면서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죽고 왕씨는 씨를 말리면서 국가적인 인력이나 인재풀이 많이 박살난 점도 사실 크다. 이는 조선초 왕위찬탈기의 사실 흑역사)

그런데 그렇게 애써 모은 귀한 인재풀을 세조가 쿠데타 하면서 죄다 갈아버렸으니..ㅜㅜ 전국에서 진짜 지역안배니 부모빨이니 신분이니 그딴거 집어치우고 능력 그자체만 보고 실력순으로 긁어모은 씹인재풀인데 너무 아깝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문무 양쪽에서 100은 찍어놓은 양반이었다고 한다. 세종대왕 집권기 후반은 눈이 안보일 정도로 건강이 매우 안좋아져서 세종 말기 업적은 거진 다 문종의 업적이다.

문제라면 당시에는 3년상에 대한 개념이 잘 정립이 안되서 3년상 하다가 골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효성깊고 유교에 통달한 (그리고 해야하는) 고스펙 왕답게 3년상을 너무 빡시게 해버려서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의견이 있다.

거기에 워낙 조선 왕은 빡센 직업이었기도 해서 과로사하기 쉬운 환경이라서....

[2]

근데 즉위하고 얼마 안있어서 죽어버렸고 그 뒤에 수양대군단종 폐위 사건의 임팩트가 워낙 쎄서 걍 묻혔다.

실제론 수양대군 새끼 문종만 보면 오줌 질질 쌀 정도로 패기로운 왕이었는데 요절 때문에 우유부단한 병신 이미지가 생겨 버린 비운의 왕.

양아치였던 수양대군이 병신짓 하면 문종이 그래도 동생이라고 다 커버쳐줬다고 한다. 이런 형의 아들을 통수친 수양은 진짜 사람새끼냐?

사실 수양이 얘도 문종이 빨리 죽어서 존나 문제 생기기는 했다. 문종이 살아있다면 형이 무서워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형이 뒤를 봐주니까

딱히 왕위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다. 수양이 얘 잘 보면 알겠지만, 문제도 딱 문종이 봐줄만한 선에서 그쳤었다. 그런데 문종이 죽으니 얘 입지가 존나 문제가 생긴거다.

그 상황에서 '씨발' 하는 심정으로 단종 폐위한거고. 물론 시빨 조카를 그 따위로 한거에서 수양이쌔끼를 커버할 순 없지만.

이후 세종과 문종 두 성군의 집권시기 분기점을 잘못타고 세이브를 하는바람에 조선은 앰창루트를 타게되고 점차망해간다.

군사적으로도 굉장히 조예가 깊은 왕이었는데 자신의 병법이 제갈량[3] 보다 쬐끔 딸릴 거라고 말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으며 부왕인 세종이 개척해 놓은 4군 6진을 안정화 시켰고 군인들이 자기들 편하다고 칼 길이를 짧게 만들어 차고 다니던 환도(칼)의 길이를 법으로 제정했고 화차도 개량했다. 문종화차라고 검색하면 다 나오니깐 생략.

웃기는 건 수양대군은 자기가 무인 기질이 있다며 말을 존나 현란하게 타던가 또는 격투기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국왕이라는 자가 단순히 싸움질 잘하는게 더 중요할까 아니면 군사들을 위해 신무기를 개발하고 지원을 하는게 더 중요할까.

아니 그 이전에 문종이 이노오오오오옴 하면서 패왕색패기 발동하면 속고가 축축하게 젖어 벌벌 떨던 병신이 이런 말하는 게 웃기다.

전에 악질 수양빠 드라마 작가들이 역사왜곡을 존나 심하게 해서 드라마에서 문종은 수양에게 휘둘린 다소 유악하고 힘없는 왕으로 묘사되는 ㅂㅅ같은 상황이 잦았는데 실제 문종은 왕재가 흘러넘치던 유능하고 패기로운 존나 쎈 왕이었으므로 수양따위는 문종이 눈만 까딱해도 아부하고 빌빌기던게 현실이었다.

ㄴ 근데 이제 수양은 원래 역사대로 권력을 추구하는 악당상이 대세인데 문종은 아직도 그놈의 유약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극쓰는 방송작가들 한달동한 왕이 해야할 일 다 하게하고 3년상까지 치루게 해야 정신들을 차릴듯.

미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인운이 무지 안 좋았다.그나마 가장 사이가 좋았던 부인도 단종을 낳자마자 사망...ㅜㅜ

그러니까 결론은 동생새끼 안조진거 말고는 다 잘하신 분이다.

사실 역적질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 능력있고 깡다구 존나 센놈들이나 할 수 있는 건데 자기 볼 때마다 고의 축축하게 적시는 ㅄ동생새끼가 감히 역적질을 시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시는게 당연하기는 하다.

정리하면 그냥 잘생기고 능력좋고 공부 잘하고 군사분야에서도 소홀하지 않으며 성군인 아버지한테 효심도 깊었고 븅신같은 동생도 깊은 우애로 보살피고 자식도 사랑하고 신하도 어르고 달래다 혼낼 줄도 아는 그냥 유교국가에서 나올 수 있는 완성형 군주라고 보면 된다. 다만 아빠가 너무 씹사기라 좀 묻히는 감이 있어서 그렇지 결국 아버지의 업적을 완성시킨것도 문종의 업적 중 일부였다. 조선초기의 희망찬 분위기를 이어가던 왕이었다.

웨폰 리엔지니어링[편집 | 원본 편집]

미사일터렛을 재설계 하셨다. 조선 수레차 무기의 최대 난관인 산악지형에서도 이동 가능한 설계를 하셨다는데, 이 덕에 산성에서의 전략적 사용이 가능해져 임진왜란 기간에 진주성, 행주산성 등지에서 왜구들 고슴도치 만드는게 가능해졌다. 후대에 전하지는 않는다. 아마 탈부착 가능한 외륜거일까?

  1. 대리청정은 단순히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세자를 다음 왕으로 인정하는 절차나 다름 없는 것이다.
  2. 성종시절 야사 중에, 어떤 놈이 역모하다 잡혀왔는데 그냥 죽여도 되는 걸 무슨 생각햇는지 성종이 "너 왕되고 싶다니까 같이 진짜 왕노릇 해보자" 하고 지 일과시간 따라다니게 햇는데 그 업무 강도 보고 질려서 한달도 못 돼서 죽여달라고 데꿀멍했다 카더라. (윤승운 씨 '맹꽁이서당' 만화에서 본 거다.)
  3. 물론 여기 언급한 제갈량이 삼국지연의 기준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삼국지연의의 조선전래는 이보다 좀 뒤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선조에게 기대승이 언급하기로 '삼국지연의라는 책이 나온지 오래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