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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편집]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평양 시가지 말고 나머지만 분리해서 만든 곳이다. 여타 도농분리지역들처럼 군청은 본진에 속했던 평양 인흥동에 두었다.

소련군정시기인 1946년에 평양, 1947년 중화군(청룡면, 율리면, 추을미면, 용연면, 남곶면), 강동군(시족면)에게 땅을 떼주고 옛 순안지역을 흡수하면서 지도가 졸라게 바뀌었다.

이후 또 존나게 마개조되었다.

야인시대에 나오는 하야시와 비행기 타고 갓한민국으로 탈주한 이웅평 성님이 태어난 곳이다.

읍면[편집]

관할리는 1945년 8.15 광복기준으로 했다.

고평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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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혹부리새끼 고향이 여기있어서 주사파들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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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상의 주인공은 본면 송산리에서 살았던 실향민이다.

古平面

現 북괴령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 금성동, 축전동, 서산동, 금천동, 대평동, 낙랑구역 중단리 일대.

면적 55.70㎢. 면소재지는 광탄리.

광탄(廣灘), 내(內), 서(西), 송산(松山), 남(南), 차(車), 장광(長光), 망일(望日), 추자(楸子), 하단(下端), 중단(中端), 상단(上端), 금천(金泉), 시산(匙山), 일화(日和), 신흥(新興)등 16개리를 관할했다.

묘청욷높을 일으켰다가 망하고 서경기의 4도가 분리됨에 따라 추자도 부곡(楸子島部曲), 앵천촌(櫻遷村), 용곤촌(龍坤村), 화산촌(禾山村)이 분리, 순화현(順和縣)이 만들어졌다. 이 순화현은 1396년 지금의 순안지역인 안정참으로 옮겨지면서 없어졌고 인흥부 관할의 고순화방, 평천방이 만들어졌다.

추자도, 두루섬, 두단섬[1]등 대동강 중하류의 여러 하중도를 관할했다.

1896년 13도제를 실시하면서 방,사가 모두 면으로 바뀌니까 고순화면, 평천면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당시 고순화면(古順和面) + 평천면(平川面) = 고평면이 되었다. 1939년 서성리, 평천리, 구정리가 평양부에, 문발리가 남곶면에 편입되었고 용산면 시산리(匙山里)를 흡수하면서 지도가 많이 바뀌었다.

면북단에 체봉(體峰, 92m)이라는 언덕이 있고 서쪽에는 대보면과의 경계에 대보산의 능선이 뻗어있었다. 남쪽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보통강이 남류해 대동강이 합류하면서 평양시와 경계를 이루었다. 무진강이 면중심을 관통해 남북으로 흘러들어갔다. 때문에 곡창지대로 사용되었다고한다.

북괴수립직후였던 1948년 상단리(上端里), 중단리(中端里), 하단리(下端里)가 평양으로 편입되자 관할리가 13개리로 줄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후 본면 칠골에서 2,500명이 학살당했다.

북괴가 다시차지한 이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만경대리(내리 + 서리 + 송산리 + 남리 + 추자리), 망일리(망일리 + 장광리), 금천리(금천리 + 신흥리 + 시산리), 대평리(광탄리 + 차리 + 일화리)의 4개리로 개편되었다. 북괴 혹부리우스의 고향이 남리 만경대에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네이팜탄쳐맞고 없어졌을 혹부리의 옛 생가가 복원되고 주체사상이 만들어짐에 따라 그 사상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만경대리는 1959년 9월 신설된 만경대구역에 편입되었고, 1963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일부지역이 금성동, 축전동으로 분리되었다. 1994년 3월 일부지역이 서산동으로 분리되었다.

망일리는 1966년 만경대구역이 편입되었다가 1972년 금천리에 통폐합되면서 폐지되었다.

금천리는 1966년 되어 1972년 만경대구역에 편입되었고, 이후 망일리를 흡수해 동으로 승격되었다.

대평리는 1966년 만경대구역에 편입, 67년에 동으로 승격되었다.

상단리, 하단리, 중단리는 평양 편입직후 평양시 남구로 개편되었다가 1952년 중단리로 합해졌다. 이후 1959년 외성구역에 속했다가 1960년 낙랑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김제면[편집]

金祭面

現 북괴령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읍, 순화리, 금정리, 장산리 대부분, 서제리, 학수리

면적 66.3㎢. 면소재지는 원장리.

원장(院場), 상지(上池), 산수(山水), 가정(加井), 노하(路下), 은적(隱跡), 맥산(麥山), 정(井), 대정(大井), 황각(黃角), 외제(外祭), 부창(孚暢), 목당(木堂), 위전(偉磚), 학림(鶴林), 이인(里仁)등 16개리를 관할했다.

인흥부에 속한 금려대방과 지안부에 속한 서제산방이 있었다.

1914년 금려대면(金呂垈面)[2] + 서제산면(西祭山面) = 김제면이 되었다.

면동북쪽에는 제미산(祭媚山, 136m), 서북쪽에 율산(栗山, 100m)이 있으며 본면에서 무진강이 발원한다.

1949년 원장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크리로 인해 원장리(원장일리 + 원장이리 + 이인리), 순화리(노하리 + 은적리), 장산리(산수리 + 상지리 + 가정리 + 남형제산면 장산리 일부), 학수리(학림리 + 위전리 + 목당리), 금정리(정리 + 맥산리 + 대정리), 서제리(외제리 + 황각리 + 부창리)로 개편되어 대동군에 편입되었다.

원장리는 1961년, 기존 시정리에 있었던 대동읍이 노동자구로 개편되자 원장리를 대동읍으로 승격되었고 1967년 순화리와 금정리 일부가 본읍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장산리의 일부가 원천리에 편입되었다.

남곶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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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하고, 자빠졌네!

南串面

現 북괴령 평양직할시 낙랑구역 남사리, 금대리, 용호리, 원암동, 긴골리, 벽지도리, 두단동, 낙랑1동, 낙랑2동, 승리1,2,3동.

면적 50.25㎢. 면 소재지는 원암리.

원암(猿巖)·남정(南井)·유사(柳寺)·석사(石寺)·간(間)·황룡(黃龍)·보성(甫城)·노남(魯南)·월내(月內)·장매(長梅)·두단(斗團)·조왕(助王)·대송(大松)·문발(文發)·용포(龍浦)·효남(孝南)·평호(坪湖)·이신(鯉新)·각금(覺今)·애포(艾浦)·소이도(小耳島)·대이도(大耳島)·벽지도(碧只島) 등 23개리를 관할했다.

원암, 대송, 장매, 노남, 석사, 효남, 월내, 보성, 유사, 간, 남정, 용포, 황룡의 13개리지역에는 예안부 남제산방이 있었고 나머지 10개리지역에는 예안부 돌곶방이 있었다.

1914년 남제산면(南祭山面) + 돌곶면(突串面) = 남곶면이 되었다.

1938년 평양시 두단리, 조왕리 일부, 고평면 문발리의 3개리가 흡수되었다.

면남부에서 곤양강을 끼고 중화군 당정면, 양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곤양강을 따라 저지대 평야가 만들어져있다. 북괴수립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질이 좋은 무연탄이 채굴되는 대문산탄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1946년 조왕리가 평양시 동구 낙랑리로 개명되었다가 일부지역이 조왕리로 부활했다.

1947년 중화군으로 넘어갔다.

1949년 원암리에서 하원암리가 신설되었다

1952년 남사리(남정리 + 유사리 + 석사리), 송남리(노남리 + 대송리 + 월내리 + 당정면 검암리), 용호리(용포리 + 평호리 + 이신리 + 효남리), 금대리(각금리 + 대이도리 + 소이도리 + 애포리), 원암리(원암리 + 하원암리 + 장매리), 보성리(보성리 + 황룡리 + 간리), 벽지도리, 두단리(두단리 + 문발리), 낙랑리(조왕리 + 낙랑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남사리, 송남리, 용호리, 금대리, 원암리, 보성리, 벽지도리가 강남군으로, 두단리와 낙랑리는 평양시 동구역으로 편입되었다. 1959년 남사리, 송남리, 용호리, 금대리, 두단노동자구, 보성리, 두단리가 낙랑구역으로 편입되었다,

남사리는 낙랑구역으로 편입된지 1년뒤 일부지역이 유솔리로 편입되었으며 정오동일부와 유소리 일부를 흡수했다. 1967년 일부지역이 낙랑동에 편입되었고 낙랑동의 일부를 흡수했다.

금대리는 1959년 용호리를 흡수했다가 6년뒤 원상복귀시켰다. 원암리는 1954년 노동자구가 되었다가 낙랑구역에 흡수되면서 원암동으로 강등먹었다. 1960년 일부가 두단동으로 넘어가고 다른 일부가 긴골리로 독립했다. 벽지도리는 1965년에야 낙랑구역으로 넘어왔다. 두단리는 편입되면서 동으로 승격, 1년뒤 원암동의 일부를 흡수했다.

낙랑리는 편입이후 1963년 동으로 승격되었고 1967년 남사리와 땅을 서로 교환했다. 이후 1986년 평양부 토성동 일부를 흡수했고 1991년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93년에는 낙랑 2동의 일부가 승리 1동, 승리 2동, 승리 3동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상당한부분이 민둥산과 논밭으로 가득한 깡촌이다.

남형제산면[편집]

南兄弟山面

現 북괴령 평양시 형제산구역 제산리, 하당1동, 하당2동, 중당동, 상당동, 천남리, 형산리, 평안남도 대동군 시정노동자구, 고산리, 장산리

면적 58.80㎢. 면소재지는 내리.

내(內), 시류(柴柳), 당촌(棠村), 사(寺), 고천(古泉), 이계(二溪), 천남(川南), 하당(下堂), 남교(南橋), 학교(鶴橋), 노포(蘆浦), 와우(臥牛), 마흘(麻屹), 승침(承沉), 고산(孤山), 적갈(摘葛), 장산(長山), 사포(沙浦), 모로(慕魯), 시정(柴井), 작산(鵲山)의 21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지안부 남형제산방이었다. 형제산은 형제같이 마주보고 있는 2개의 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학교리에 형제산(兄弟山, 143m), 와우리에 승령산(承嶺山, 132m)이 있으며 동쪽 임원면과의 경계에 보통강이 관류해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보통강이 관류해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장산리일부(장산리 일부 + 김제면 산수리 + 상지리 + 가정리), 고산리(고산리 + 적갈리 + 승침리), 와우리(와우리 + 학교리 + 마흘리 + 노포리), 시정리(시정리 + 작산리 + 장산리 나머지), 고천리(고천리 + 내리 + 모로리 + 사포리), 당촌리(당촌리 + 시류리 + 사리), 천남리(천남리 + 이계리 + 하당리 + 남교리)로 개편되어 대동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하당리가 부활했고 1954년 천남리 일부가 당촌리로 이관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리가 1959년 서성구역에 편입되었다가 1년뒤 형제산구역으로 분리되었다.

하당리는 1960년 일부지역이 남교동으로 분리되었고 남교동만 서성구역에 남고 하당리는 형제산구역에 편입되었다. 1963년 일부지역이 상당, 중당동으로 분리되었고 1972년 1,2동으로 분리되었다.

당촌리는 1959년 만경대구역으로 편입되었다가 1년뒤엔 1930년대 용산면에서 편입되었던 봉수동(鳳岫洞)과 스까되어 제산리로 개편되며 폐지되었다. 고천리는 1960년 형제산구역으로 편입되면서 형산리로 개명되었다.

시정리는 1959년 본래의 대동읍이 만경대구역에 편입되면서 대동읍으로 승격되었으나 1961년 원장리가 대동읍으로 승격되면서 노동자구로 개편되었다.

대보면[편집]

大寶面

現 천리마군 대보산동, 대동군 팔청리, 강서군 서기동지역? 이쪽동네의 행정구역 마개조가 심해서 정확한 경계를 가늠할 수가 없다.

면적 67.82㎢. 면소재지는 대평외리.

대평외(大平外), 대평내(大平內), 문현(文峴), 반천(反川), 용인(龍仁), 안정(安靜), 서기(西綺), 용담(龍潭), 팔청(八淸)의 9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안청동 + 신대동 + 외사기동 = 안정리를 신설했다. 1947년 강서군으로 옮겨졌고 1949년 팔청리가 1,2리로 분리되었다.

면동남쪽에 대보산이 있고 남단에는 백양산(白揚山, 191m), 북쪽에 장산(長山, 120m)이 있다. 동북면에는 무진강이 동남류, 용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유역에 평야지대를 형성하였다.

대보탄갱이 있었다.

1947년 평안남도 강서군으로 이관되었고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팔청리는 1,2리로 분리되었다.

북괴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대보산리(문현리 + 반천리 + 용인리), 팔청리(팔청1 + 2리 + 용담리), 서기리(서기리 + 안정리 + 동진면 용정리)로 개편되어 강서군에 편입되었다. 근데 대평외리, 대평내리는 언급도 없다.

대보산리는 1959년 대동군으로 이관되었고, 1987년 팔청리 일부를 흡수하고 남포시 강서구역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일부지역이 서기동으로 넘어가면서 천리마구역으로 주인님이 바뀌었고 1993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팔청리는 1959년 대동군으로 옮겨졌고 1987년 일부지역이 각각 대보산리, 남포시로 편입되었다. 서기리는 1967년 잠진리에 통폐합되었다가 1989년 강서구역 잠진리, 덕흥동, 대보산리에서 복구되었다.

부산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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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북괴새끼들의 능원중 하나인 애국열사릉이 본면에 있다.

斧山面

現 북괴령 평양시 형제산구역 대양동, 학산동, 서산동, 신미동 대부분, 용성구역 중이동, 용성1동, 용성2동, 용추동, 용궁1동, 용궁2동, 마산동지역.

면적 85.92㎢. 면소재지는 남궁리.

남궁(南宮), 수산(壽山), 화곡(花谷), 용성(龍城), 용궁(龍宮), 삼봉(三峰), 학산(鶴山), 서양(西陽), 신흥(新興), 서산(西山), 신미(新美), 신안(新安), 중(中), 대양(大陽), 하삼(下三), 중이(中二), 상일(上一), 범사(凡沙)의 18개리가 있었다.

학산리에 있는 부산(斧山, 도끼산)에 이름을 따 지안부 부산방으로 불렸다. 1914년 시족면 마람동 일부 + 지산동 일부 = 마산리를 흡수했다가 1930년대 마산리를 용악면으로 넘겨줬다. 또한 범사리가 동범사리, 서범사리로 분리되었다.

북괴치하에선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대양리(대양리 + 중리 + 하삼리), 학산리(학산리 + 삼봉리 + 서산리), 신미리(신미리 + 신안리 + 신흥리), 중이리(중이리 + 상일리 + 서범사리), 용성리(용성리 + 화곡리 + 수산리), 용궁리(용궁리 + 서양리 + 남궁리), 마산리일부(동범사리 + 용악면 마산리)로 개편되어 순안군에 편입되었다.

대양리는 1960년 일부지역이 형제산구역으로 편입되었고 1992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학산리는 1959년 서성구역에 편입되었다가 1960년 형제산구역으로 옮겨졌고 1991년 동으로 승격되면서 舊서산리가 서산동으로 복구되었다.

신미리는 1959년 용성구역에 편입되었다가 1년만에 형제산구역으로 옮겨지고 순안군 대양리 일부지역을 흡수했으며, 1991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86년 혹부리우스가 이마을에 애국열사릉이라고 지한테 충성한 빨갱이들을 묻어놓은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중이리는 1959년 용성구역에 편입되었다가 1년뒤 동으로 승격되었다. 용성리는 1957년 노동자구로 승격되어 1958년 용궁리를 흡수했다가 1959년 용성구역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63년 용궁동이 복구되고 용추동이 신설되면서 면적이 쪼그라들었고 1972년 1동, 2동으로 분리되었다. 복구된 용궁동은 67년 일부지역을 용문동에 편입시켰고 1979년 용궁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다.

마산리는 1959년 용성구역에 편입되었고 1년뒤 동으로 승격되었다.

시족면[편집]

柴足面

現 북괴령 평양시 삼석구역 성문1동, 성문2동, 문영동, 호남리, 장수원동, 용성구역 대천동, 명오동 일부(건지리, 석삼리)

면적 89.05㎢. 면소재지는 노산리.

노산(魯山), 삼산(三山), 토포(土浦), 남경(南京), 호남(湖南), 연화(蓮花), 철봉(鐵峰), 성문(聖文), 내(內), 청운(靑雲), 송학(松鶴), 대천(大泉), 송화(松花), 지산(芝山), 건지(乾芝), 석삼(石三), 삼석(三石), 성산(聖山)의 18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평양의 북부에 속했던 지안부 시족방이었는데 1896년 시족면으로 바뀌었다. 부군면 통폐합시기 송학리 일부를 청운리에 합했고, 연화리(蓮花里)에 연화리(烟花里)합쳐지고 성덕동 + 농문동 = 성문리가 되었으며, 마람동과 지산동 일부를 부산면으로 옮겨졌다. 소련군정시기였던 1947년, 강동군으로 관할이 넘어갔고

군면리 대폐합때 성문리(성문리 + 연화리 + 철봉리), 대천리(대천리 + 송학리 + 지산리 + 송화리), 노산리(노산리 + 삼산리 + 내리 + 토포리 + 성산리), 삼석리(삼석리 + 청운리 + 건지리 + 석삼리), 호남리(호남리 + 남경리 + 강동군 원탄면 표대리)의 5개리로 개편되어 승호군에 편입되었다. 1959년 전체 5개리가 평양시 삼석구역으로 이관되었다.

삼석구역으로 이관된 이후 1960년, 노산리와 대천리가 동으로 승격되었다. 1967년 성문리에서 문영동이 신설되었고, 1983년에는 노산동이 장수원동으로 개칭되었다. 1984년 대천동이 용성구역으로 이관되었다. 1988년에는 삼석리에서 舊건지리, 석삼리지역이 용성구역 명오동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5년 나머지 성문리가 1동, 2동으로 분리되었다.

용산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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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山面

現 북괴령 평양시 만경대구역 용봉리, 원로리, 용산동, 삼흥동, 용악산동, 칠골동, 팔골동, 갈림길동, 축전동, 금성동

면적 69.61㎢. 면소재지는 전촌리. 용악산의 이름을 따 용산방으로 칭해졌다.

전촌(全村), 조전(趙全), 하(下), 상(上), 초담(草潭), 오류(五柳), 용봉(龍峰), 용악(龍岳), 구촌(龜村), 원로(元魯), 하구로(下九老), 소룡(小龍), 상구로(上九老)의 13개리를 관할했다.

1896년 평양 인흥부 용산방에서 용산면으로 개편되었다. 1910년 상오동이 시산리에 편입되었고, 봉수리의 일부가 대타령리로 편입되었다. 1930년대에 시산리는 고평면, 대타령리, 봉수리, 당상리가 평양부로 편입되었다. 1940년대초 용봉동에서 용악리가 분리되었다.

북괴치하인 1952년에 대동읍(조전리 + 초담리 + 상리 + 하리), 용산리(소룡리 + 전촌리 + 상구로리), 용봉리(용봉리 + 용악리 + 오류리), 원로리(원로리 + 구촌리 + 하구로리)로 개편되어 대동군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병신같게도 1959년 용산리, 용봉리와 함께 대동읍이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편입되면서 시정리가 1년동안 대동읍이 됬다가 이후 원장리가 대동읍으로 고정되었다. 원로리는 1966년에 만경대구역으로 편입되었다. 용산리는 1988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만경대구역에 편입된 대동읍은 조촌역에서 이름을 따 조촌동(趙村洞)으로 개명되었다가 1년뒤 칠골동(舊 용산면 하리)과 팔골동으로 분리되었다. 1963년 팔골동의 일부에서 궁골동이, 1965년 칠골동의 일부에서 오류동이 복구되었고 1988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개최되었을 때, 칠골과 팔골에서 축전동, 갈림길동, 금성동[3]의 3개동이 신설되었고 1991년 칠골동과 금성동은 1,2,3동, 팔골동, 갈림길동, 축전동은 1,2동으로 분리되었다.

복구된 오류동은 1988년 삼흥동과 용악산동(舊초담리)으로 분리되었다.

용악면[편집]

龍岳面

現 북괴령 평양시 용성구역 어은동, 마산동, 임원동, 은정구역 배산동, 평안남도 평성시 상차동, 하차동, 지경동 일부

면적 89.90㎢. 면소재지는 동북리.

동북(東北), 마산(馬山), 동남(東南), 서(西), 상(上), 하(下), 원(元), 하차(下次), 상차(上次)의 9개리를 관할했다.

용산면처럼 용악산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1896년까지 평양 지안부에 속했다. 이후 1930년대 부산면에서 마산리를 흡수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마산리(마산리 + 부산면 동범사리), 서리(서리 + 동남리), 하리(하리 + 상리 + 동북리), 하차리(하차리 + 상차리 + 원리 + 동북리 일부)로 개편되어 순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1953년 하차리에서 상차리가 복구되었고, 1959년 전역이 용성구역으로 편입되었으나 평성구가 신설되면서 상차리, 하차리가 평성구로 넘어갔다.

마산리는 1960년 동으로 승격되었고 서리는 동년 어은동으로 승격되었다.

하차리는 용성구역으로 편입되고 1년뒤 동으로 승격되었으나 1965 신설된 평성구(現 평성시의 전신)로 넘어가고 일부지역이 용성구역 임원동으로 편입되었다. 1967년 상차리에 통폐합되었다가 1969년 평성구가 평성시로 승격되면서 하차동이 분리되었고 1995년 지경동 일부를 흡수했다.

하리는 용성구역에 편입되었는데 평성구에 넘어가면서 일부가 임원동으로 개편되었다가 67년 배산동으로 개명되었고 1969년 배산동에서 지경동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1995년 은정구역으로 넘어갔다.

임원동은 1972년 일부지역을 마산동으로 편입했다.

용연면[편집]

龍淵面

現 북괴령 평양시 역포구역 역포동, 능금동, 세우물리, 양음리, 소삼정리, 낙랑구역 유소리,

면적 60.08㎢. 면소재지는 검포리.

검포(檢浦/劍浦), 한정(寒井), 천(泉), 도제(道濟), 파장(坡長), 삼정(三井), 소신(小新), 가작(加鵲), 산음(山陰), 지양(池陽), 냉정(冷井), 소(巢), 유(柳), 당정(堂井), 양지(陽池), 향목(香木)의 16개리를 관할했다.

당정리에 옛 성황당터가 있었다고 한다.

평양 예안부 용연방이었다. 1929년 대동군 대동강면이 평양으로 편입되면서 폐지되자 삼정리(三井里), 소신리(小新里)를 흡수했다. 소련군정시기 평양시 동구 칠불리에 소신리가 흡수되었다. 1947년, 대동강이남전역이 중화군으로 넘어가면서 같이 중화군으로 넘어갔고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유리, 천리가 유천리로 합병, 양지리가 양내리, 신양리(新陽里)로 분리되었다.

1908년 경의선이 놓여졌을 때, 검포리에 역포역이 세워졌다. 이 역포역에 대한 스토리가 병맛인게, 당시 역이름 정하던 새끼가 검포(劍浦)라 쓰긴 귀찮으니 도포(刀浦)로 고칠려고 했다가 오타나서 역포(力浦)가 되었다는 병신같은 일화가 북한지역정보넷에서 전해지는데 이 사이트가 북괴의 행정기록을 그대로 받아적은 사이트나 다름없어서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역포리(검포리 + 한정리 + 향목리), 유소리(유천리 + 도제리 + 파장리 + 소리), 양음리(지양리 + 산음리 + 냉정리), 당정리로 개편되어 중화군에 편입되었고 1946년 동구 장진리에 편입되었다 사라진 삼정리가 부활하여 중화군으로 돌아갔다. 1959년 당정리는 승호구역, 나머지는 낙랑구역으로 넘어갔으나 1960년 역포리, 당정리가 신설되는 역포구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삼정리는 1957년 중화군 유현리, 동구역 장정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역포리는 역포구역으로 넘어가면서 일부지역이 유소리로 넘어갔고 1967년 일부지역이 역포구역 당정리로 넘어갔다. 당정리는 1967년 유현리와 함께 일부를 떼주고 능금동, 세우물리로 분리되었다.

폐지된 삼정리는 1965년 일부지역이 소삼정리로 분리되면서 부활했고 2년뒤 일부지역이 역포구역 소신동에 편입되었다.

율리면[편집]

栗里面

現 북괴령 평양시 역포구역 대현리, 석정리, 세우물리일부, 유현리, 추당리

면적 78.40㎢. 면소재지는 무진리.

무진(戊辰), 남당(藍塘), 추빈(楸斌), 답현(畓峴), 유신(柳新), 현교(絃橋), 원북(院北), 대중(大中), 석정(石井), 중(中), 조촌(趙村), 한간(鷳間), 은송(隱松)의 13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평양 예안부 율리방에 속했다. 부군면 통폐합시 동창동(東倉洞)이 신동창리와 구동창리로 분리, 삼합리가 신설되었다. 1930년대 삼합리, 양합리가 대동군 청룡면에 편입되었고 대동강면이 평양시에 통폐합됨에 따라 현교리, 원북리, 칠산리를 흡수하고 1940년대 초 송신리, 장지리, 신동창리, 구동창리, 장천리, 칠산리등의 6개리가 평양으로 넘어갔다.

1947년 중화군으로 넘어갔고 1949년 중리와 은송리가 중송리(中松里)로, 대중리에 조촌리를 통폐합시켜 11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유현리(유신리 + 현교리 + 원북리), 대현리(대중리 + 답현리 + 한간리 + 석정리), 추당리(추빈리 + 남당리 + 중송리), 무진리(무진리 + 동두면 무진장리 + 신봉리 + 진파리)로 개편되어 중화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석정리가 복구되었고 1957년 유현리의 일부가 중화군 삼정리로 넘어갔다. 1959년 유현리는 낙랑구역, 대현리와 추당리는 승호구역으로 편입되었다가 1960년 신설된 역포구역으로 모든 지역이 넘어갔다. 1967년 유현리의 일부가 당정리의 일부와 함께 세우물리로 독립했다. 이후 1989년 무진리는 용산리로 개명되었 1994년 대현리가 석정리의 일부를 흡수했다.


임원면[편집]

林原面

現 북괴령 평양시 모란봉구역 흥부동, 전승동, 전우동, 용성구역청계동, 화성동, 용문동, 대성구역 전역

면적 74.31㎢. 면소재지는 노성리.

노성(魯聖), 북사(北四), 남사(南四), 고산(高山), 양암(陽巖), 청호(淸湖), 상오(上五), 청계(淸溪), 상동(上東), 서룡(西龍), 동포(東浦), 와산(臥山), 운월(雲月), 화성(和盛), 기암(奇巖), 송암(松巖)의 16개리를 관할했다.

고구려평원왕시대 말기인 586년까지 수도로 삼았던 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있었다. 물론 고구려멸망이후 뭐다 좆투더망. 이후 임원역(林原驛)이 만들어졌고 조선시대에는 인흥부 임원방으로 개편되었다.

부군면 통폐합때 기림동(箕林洞)이 평양부 대흥면에 편입되었고 1940년대 용흥리, 청암리, 미산리가 평양부에, 용성리가 부산면에 편입되었으며 서천면에서 상동리, 서룡리, 동포리를 흡수했다. 1946년 북사리, 남사리, 상오리, 고산리, 청호리, 양암리등의 6개리가 평양시로 이관되면서 10개리로 면적이 줄어들었다. 북구로 넘어간 고산리는 1948년 양암리, 청호리를 흡수했고 상오리는 임흥리로 개명되었다.

군면리 대폐합때 대성동(노성리 + 송암리), 남북사리(남사리 + 북사리), 임흥리(임흥리(=상오리) + 양암리 + 청호리 + 고산리), 청계리(청계리 + 운월리 + 와산리), 서포리(동포리 + 상동리 + 서룡리), 화성리(화성리 + 기암리)로 개편되었다. 북괴수립이전 개편되면서 넘어간 지역은 미암리(미산리 + 청암리), 용흥리로 개편되었고 용흥리, 미암리는 서구역, 화성리, 서포리, 청계리는 대동군, 임흥리와 남북사리는 평양시 북구역에 편입되었다. 1955년 용흥리는 동으로 승격되고 일부가 용북동, 용남동, 흥부동, 전승동으로 분리되었으며 흥부동과 전승동이 서구역으로 이관되었고, 미암리는 미산리와 청암리로 원상복귀, 임흥리에서 고산리가 복구되었다. 1957년 서포리에서 일부가 서산동으로 분리되었고 1년뒤 서포동을 제외한 전지역이 대성구역으로 이관되었다. 하지만 화성리와 청계리는 1년도 안되서 용성구역으로 이관되었고 서구역에서 이관된 흥부동과 전우동은 모란봉구역으로 이관되었다. 서포리는 형제산구역으로 이관되었다.

1960년 미산동 일부가 미암동으로 부활했고 남북사리는 안학리, 삼심리로 분리되었다. 이후 삼신리는 1990년 갑문동으로 개명되었다.

용흥리에서 신설된 동들을 보면 용북동은 60년 ~ 65년사이 서성구역으로 잠깐 넘어갔다 대성구역으로 돌아왔고 1972년 1,2동으로 분리되었다가 1983년 원상복구되었다. 모란봉구역으로 넘어간 전승동은 63년 일부가 전우동으로 독립, 흥부동은 그대로였다. 형제산구역으로 옮겨진 서포동은 72년 1동과 2동으로 분리되었고 1979년 1동에서 3동이 신설되었다. 1967년 청계리에서 일부가 용문동으로 분리되었고 60년 동으로 승격된 임흥동에서 67년 청호동이 분리되었다.

재경리면[편집]

在京里面

現 북괴령 평양시 형제산구역 신간 1,2,3동, 순안구역 재경리, 대동군 천동리 일부, 중석화리, 오금리,판교리

면적 57.99㎢. 면 소재지는 빙장리.

빙장(氷庄), 다원(茶院), 망덕(望德), 천(泉), 천서(川西), 신중(新中), 천동(川東), 간(間), 현암(玄巖), 오금(梧琴), 사당(社堂), 하석화(下石花), 중석화(中石花), 갈산(葛山), 송림(松林)·판교(板橋)의 16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평양 지안부에 속했다. 1914년 수산동이 오금동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1938년 남형제산면의 사당리를 흡수했다.

평원군 공덕면에서 발원한 보통강이 면의 동부를 흐르고, 그 지류가 서북단에서 동남류하여 면을 관통하면서 흘러 본류와 합류한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빙장리가 1, 2리로, 간리가 1, 2리로 분리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재경리(방장일리 + 방장이리 + 천리), 천동리(천동리 + 천서리 + 신중리), 신간리(간일리 + 간이리 + 현암리), 판교리(판교리 + 다원리 + 송림리), 중석화리(하석화리 + 중석화리 + 갈산리), 오금리(오금리 + 망덕리 + 사당리)로 개편되어 순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1959년 신간리가 서성구역으로 이관되었다가 1년뒤 형제산구역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1979년 1, 2, 3동으로 분리되었다.

신간리를 제외한 지역의 경우 재경리를 제외한 전지역이 순안군에 잔류한상태에서 1967년 양화리가 폐지되면서 일부지역이 천동리에 편입되었고, 1972년 재경리를 제외한 전지역이 대동군으로 이관되었다.

청룡면[편집]

靑龍面

現 북괴령 평양시 사동구역 이현리, 오류리, 대원리, 금탄리.

면 소재지는 이현리.

이현(梨峴), 대원(大園), 회(晦), 산사(山寺), 삼합(三合), 추미(楸美), 대수(大水), 모운(茅雲), 내도(萊島), 기림(岐林), 소오류(小五柳), 양합(兩合), 대오류(大五柳), 양지(陽池), 사도(泗島), 지탄(芝灘)의 16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평양 예안부 생이방(栍伊坊)이었지만 1896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사동(寺洞), 미산동(美山洞)의 일부가 산사리, 추동(楸洞)과 미산동의 나머지를 합하여 추미리가 만들어졌다. 이후 1938년 율리면의 양합리와 삼합리가 본면으로 넘어왔다.

북쪽에는 남강이 시족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서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쌀, 조, 콩, 밀, 호밀, 면화, 고추, 사탕무, 깨등이 재배되었고, 누에, 종우, 종돈, 종계, 종양의 사육이 활발했다고 한다.

광복이후 소련군정시기였던 1947년, 대오류리와 소오류리가 오류리(五柳里)로 합병되었고, 면의 대부분 지역이 광복이전 평양시에 흡수된 추을미면의 법수리, 이목리, 이천리가 본면으로 넘어왔다. 이후 중화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가 바로 강동군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지탄리에서 금탄리(金灘里)가 신설되었다.

1952년 이천리(법수리 + 이목리 + 이천리), 이현리(이현리 + 모운리 + 내도리), 오류리, 대원리(대원리 + 추미리 + 삼합리 + 대수리 + 회리 + 산사리), 금탄리(금탄리 + 사도리 + 양지리 + 기림리 + 지탄리)로 개편되어 승호군에 편입되었다. 양합리는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시발...

1960년 금탄리가 사동구역으로, 이후 1965년 이현리, 오류리, 대원리가 사동구역으로 편입되었고 이천리만 승호군에 남아 그대로 승호구역까지 따라갔다.

폐지된 읍면[편집]

대동강면[편집]

大東江面

본래 평양 예안부 대동강방이었다. 의암(衣岩), 오촌(鰲村), 동대원(東大院), 봉룡(鳳龍), 비석(碑石), 장림(長林), 불당(佛堂), 칠산(七山), 율(栗), 신(新), 장진(將進), 소신(小新), 원북(院北), 현교(絃橋), 사통교(四通橋), 삼정(三井), 정백(貞柏), 오야(梧野), 토성(土城), 석암(石岩), 조왕(助王), 두단(豆段)의 22개동을 관할했다고 한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평양부 대흥면의 능라동(지금의 능라도), 외천면 양각동(양각도)를 흡수, 봉룡동 + 비석동 + 장림동 = 선교리(船橋里), 현교동 + 사통교동 = 현교리로 개편하여 의암, 오촌, 동대원, 선교, 불당, 칠산, 율, 신, 장진, 소신, 원북, 현교, 삼정, 정백, 오야, 토성, 석암, 조왕, 두단, 양각, 능라의 21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29년 평양부에 흡수됨에 따라 원북리, 현교리, 칠산리가 율리면에, 삼정리와 소신리가 용연면에, 두단리가 남곶면에 편입되고 나머지가 모두 평양부에 흡수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추을미면[편집]

推乙未面

본래 평양 예안부 추오미방(推吾未坊)이었다. 조선후기 추오미가 추울미로 바뀌었다가 1896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백양도(白羊島), 빈(濱), 미림(美林), 신(新), 법수(法水), 이목(梨木), 이천(梨川)의 7개동을 관할했는데 1914년 백양도동이 사동리(寺洞里)로 개명되었다. 이후 1938년 사동리, 빈리, 미림리, 신리가 평양부로 흡수되었다.

서천면[편집]

西川面

1896년까지 평양 인흥부 서천방이었다. 삼봉(三峯), 이계(二溪), 남교(南橋), 천남(川南), 동포(東浦), 서룡(西龍), 하당(下堂), 내(內), 상동(上洞), 상흥(上興), 인흥(仁興)의 11개동을 관할했다. 1929년 인흥리, 상흥리, 내리가 평양부에, 이계리, 천남리, 하당리, 남교리가 남형제산면에, 상동리, 서룡리, 동포리가 임원면에, 삼봉리가 부산면에 편입되면서 공중분해되었다.

아웃풋[편집]

  • 안경신 : 여성 독립운동가
  • 이웅평 : 임원면 청계리(당시 북괴 대동군 청계리)출신.
  • 강인덕 : 용연면 소리(現 낙랑구역 유소리)출신. 반인반신때 중앙정보부 대북관련으로 일했던 공무원으로 슨상님때 통일부 장관으로 임하기도 했다.
  1. 단리가 두루섬, 두단섬 가운데 있다하여 중단리가 됨
  2.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려대(金呂代)로 나온다.
  3. 애미애비 쳐뒤진 혹부리 씨발새끼 옛집(만경대)와 가깝다고 해서 금성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