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경상북도 칠곡군의 왜관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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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는데,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천주교가 전파된 본거지로 교육, 문화 면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크다. 한국 전쟁 때 낙동강 전투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사실 왜관이 설치된 곳은 아니다. 부산, 거제, 울산 등지에 있던 왜관에서 거주하던 왜인들이 공물을 바치러 낙동강을 타고 올라올 때 잠깐 쉬어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일본인들의 거주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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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15세기 후기 왜구가 지랄맞게 극성이던 시절 왜구들을 달래기 위해 설치한 왜구들의 숙박시설이다.

원래는 서울 동평관을 비롯해서 염포(울산), 가배량(거제) 등지에서 부산포에서 무역하러 왔다가 조선이 너무 좋아서 계속 짱박혀있는놈들을 위해 왜관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태종때 이종무가 대마도를 한번 먼지나게 털어주고 난 후 유화책으로 부산포(부산), 제포(진해), 염포(울산)을 개방해주며 거기에 왜관을 짓고 왜인들을 수용시키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리 유화시키려고 해도 이놈들 근본이 왜구인데다가 현지 조선인들과 계속 마찰이 생겼는데 그러다가 한번에 터진게 삼포왜란이다.

삼포왜란 직후 즉시 삼포는 모두 폐쇄되었는데 중종때 왜구들이 조용히 살면서 조공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제포만 문을 열어줬다. 근데 대마도주가 대마도 사람 다 굶어죽는다고 싹싹 빌어서 부산포 왜관도 다시 쓰게해줬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터지고 싹 다 문닫음

그러다가 임진왜란 끝나고 3년뒤인 1601년 국교 정상화를 위해 부산 절영도(현재 영도)에 임시로 왜관을 지어줬었다. 뭐 왜관이라기보다는 걍 모래사장위에 목책 쌓고 집 몇개 지은게 다지만.

근데 1607년 기유약조 체결 직전 왜놈들이 여기 너무 불편하다고 다른데로 옮겨달라고 찡찡거려서 옮긴곳이 두모포(현 부산광역시 동구) 왜관이다. 이 왜관은 상당히 규모가 컸고 1만평 가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아직까지도 흔적이 남아있는데 고관(古館) 또는 구관(舊館)이라고 불리는 곳이 여기임. 위치는 대충 부산진역 근처

이 왜관은 상당히 잘 지었는지 약 70년동안 잘쓰다가 왜놈들이 너무 좁다고(1만평인데!!) 찡찡거리고 건물들이 너무 조선식이라서 자기들이 쓰던 일본식으로 지어달라고 징징거려서 조선은 계속 씹다가 이새끼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골치아프니까 현재 부산시 초량동에 위치한 초량에 새 왜관을 지어준다. 위치는 용두산 부근이다. 이 용두산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누어져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부근이 바다여서 용미산(현재는 깎여서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됨)을 걸쳐서 항구가 죽 늘어져있었다고 한다. 근데 여기는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곳이라서 여자 왜구들은 절대로 못들어왔다고 한다. 또한 이놈들이 계속 조선 민가에 들어와서 말썽피우니까 돌담을 쌓아 못나오게 막았다고 한다. 근데도 그걸 넘어서 민가에 들어와서 강간을 하거나 조선 기생들과 어울려 매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일이 터질때마다 동래부사는 모가지가 날아갔다.

어쨌든 이 초량왜관은 마음에 들었는지 더이상의 이전 요구는 없었고 일제강점기때까지 계속 사용된다. 그러다가 개항때는 일본 영사관으로도 쓰이고 부산 이사청으로도 쓰였다가 한일합방 이후 부산부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흔적이 있는데 초량에 가면 대각사라고 일본이 조선에 지은 최초의 사찰이 있다.

대각사말고도 용두산 공원에도 예전에는 용두산 신사가 있었던 터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많긴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