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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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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고대 이집트 신앙과 페니키아 석공의 기하학을 기반으로 출발1기 했다.

고대 바빌론으로부터 내려오는 점성술, 마법, 연금술, 모쏠, 아다, 1일 3딸 등 각종 상징체계도 필수코스이다.

여기에 수 신비학과 신비주의와 카발라가 더해졌고, 일루미나티가 가세하면서 인본주의, 계몽주의, ^슨^세계질서, 니체의 사상, 파시즘, 똥싼주의, 똥꼬충 관장법 등이 탄생했다.

현대에 사상체계도 뉴에이지자유주의와 헤게모니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사상은 프리메이슨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걸레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다.

윾머인의 세계정복음모인 시온의정서에 의하면 유대인이 이 세상을 타락시키고 배교로 이끌기 위해 다위니즘,니체이즘,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만들었다고 주작하고 있다.

하나도 안 놀라운 점은 갖은 음모를 꾸며 온 유대인 엘리트들은 세상에 유물론무신론 사상을 유포시켰지만, 정작 자신들은 유일신인 여호와(혹은 야훼)가 존재함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들이 저승에서 야훼와 굴곡위로 아다를 땠음을 의미한다.

파시즘은 카톨릭 예수회, 노콘질싸의 도움으로 탄생했고, 나치즘은 파시즘, 오컬트(신비주의), 우생학인종 우월주의, 등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 중에서 '기하학', '니체의 사상', '헤게모니', '아우솔로 정글 가놓고 리폿 안당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프리메이슨의 종교는 처음엔 여호와를 믿는 척 하지만, 급이 올라갈수록 뉴에이지적인 색깔을 띄게 되고, 최고위급에 오르면 대 놓고 사탕을 섬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사탕숭배 종교'를 알아본다. 막대사탕부터 추파춥스까지 다양한 사탕이 있다. 단 너무 숭배할경우 충치가 날 수 있으니 ㅈ심하는게 좆타.

기하학[편집]

프리메이슨은 기하학을 중시하며 삼각형, 오각형, 육각별 등 많은 기하학적 상징을 사용한다. 프리메이슨의 원류가 건축가인 석공이기 때문에 시멘트나 철근이 없는 당시 돌을 쌓아 건축하기 위해선 고도의 기하학적 지식이 요구되었다. 두로 왕국의 히람 샤리프가 기하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윗의 성전을 지어주었고, 프리메이슨은 히람샤리프를 프리메이슨의 원조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하학은 이집트알렉산드리아에서 연구한 그리스유클리드가 토대를 완성하였다. "기하학이 뭐 별거냐?" 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만, 기하학은 수학물리학의 기본이 되고, 건축과 공학의 기반이 되며,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과 현대의 양자역학도 기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기하학은 이와 같이 중요한 창조원리이자 자연의 구성요소이다. 그래서 외계인들도 미스테리 써클을 그릴 때 고도의 기하학적 무늬를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기하학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이 믿는대로 인간이 기하학을 통해서 이 될 수는 없다. 즉, 기하학은 과학이나 수학 같은 학문일 뿐 이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수학과 물리학에서의 기하학 발달사를 알아 보겠다.

그럼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의 기하학적 업적과 '끈 이론'에 대해 살펴봐야겠다.


유클리드[편집]

고대문명이 발달한 이집트와 바빌론에서는 건물을 짓기 위해 토지측량이 발달하면서 공간에 대한 개념이 생겼는데, 토지측량을 그리스어로 표현하면 기하학(Geometry)이 된다. 이집트에서는 토지수확에 따른 세금을 파라오에게 바쳐야 했는데, 이를 위해 그들은 사각형, 사다리꼴, 원 등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의 철학자수학자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이 모두 이집트에서 연구했다. 피타고라스는 삼각형의 빗변을 구하는 공식을 찾아내 증명하였다. 유클리드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에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기하학의 기반이 되는 '기하학 원본' 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유클리드는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고, 공리와 증명된 정리를 이용하여 허용된 논리적 규칙에 의해 귀결을 도출함으로써 인간이 이성에 눈을 뜨게 하였고, 학문 발달의 초석을 쌓았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은 항상 오류가 있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논리적 판단과 증명에 의해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함이다.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삼각형의 공식은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증명되었으므로 진리라 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280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유클리드는 23개의 정의와 10개의 공리를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465개의 정리를 증명했다.

유클리드는 점, 선, 직선, 원, 직각 등에 관해 정의(定義,definition) 하였는데 평행선 정의를 예로 들면 "한 평면에 있으면서 양쪽 방향으로 무제한 연장되며, 어느 방향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는 직선들" 이다. 원은 "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평면도형으로, 원의 내부에 있는 한 점(중심)에서 원 위로 그은 모든 직선이 같다.", 직각은 "직각과 직각이 만나서 이루어진 인접한 두 각의 크기가 서로 같다면 두 각은 직각과 같다." 이다.

공리 (公理, axiom) 란 증명이 없이도 바르다고 판단되는 명제로 조건 없이 전제된 명제를 말한다. 즉, 직관적으로 판단할 때 너무나도 당연해서 증명이 필요 없는 명제를 말한거다.


1. 임의의 두 점이 있으면, 그 두점을 끝점으로 하는 한 개의 선분을 그을 수 있다.

2. 임의의 선분은 어느 방향에서나 무제한으로 연장될 수 있다.

3. 임의의 점에 대해서, 그 점을 중심으로 해서 임의의 반지름으로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같다.

5. 두 직선을 가로지르는 선분에 있어서, 선분을 기준으로 같은 쪽에 있는 교차각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으면, 두 직선은 결국 그 쪽에서 만난다. (한 직선과 한 외부점(직선 위에 있지 않은 점)이 있을 때, 그 외부점을 지나면서 주어진 직선에 평행인 직선은 같은 평면 위에 오직 한 개 있다.)



1~4번까지는 공리로 증명이 필요 없을만큼 보편 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5번의 평행선 공리는 자명하지 않아서 유클리드조차도 좋아하지 않았던 공리이다. 평행선 공리를 위반하는 방법은 평행선이 없거나 한 외부점을 통과하는 평행선이 하나 이상인 경우인 것이다. 결국 직관적으로는 맞는 듯하나 증명되지 않은 이 공리는 많은 논란과 연구를 불러 일으켰고, 인류의 고정적인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된다.


데카르트[편집]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예수회 학교를 나와 군대에 입대했고, 항상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는 천장에 기어가던 파리를 보고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 파리또한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정리를 간소화했는데 예를 들면 원을 "x2 + y2 = r2" 이라고 했다. 데카르트는 공간을 수로 번역했고, 그 번역을 이용해서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재구성했다. 한마디로 펄기아마냥 공간을 다루는 수퍼뚜펖ㅍㅍ파워를가진 초능력자였다.

그는 공간을 x축과 y축의 좌표로 구성된 그래프로 변환시켰다. 변환시키는 도중에 오류가 나서 편집하던 내 핸드폰이 꺼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 평면 위의 모든 점을 순서쌍 (x,y)로 표기된 두 개의 수로 표시할 수 있다. 또한 - 부호를 이용하여 반대 축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러한 표기체계를 '데카르트 좌표계' 또는 '직각 좌표계' (Cartesian Coordinates) 라고 부른다. 좌표계의 등장으로 타원, 쌍곡선, 포물선 등이 간단한 방정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기하학적 발견을 이용하여 물리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각함수를 통해서 빛의 굴절법칙을 나타냈으며, 무지개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637년 40세에 "방법에 관한 논의"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는 철학과 과학적 문제를 푸는 데카르트의 이성적 접근방식과 기하학이 담겨 있다.


가우스[편집]

가우스는 2,000년만에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뒤집은 수학자이다. 1792년 나폴레옹이 아끼는 천재소년 가우스는 휘어진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전에도 평행선 공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하였다. 유클리드조차도 '기하학 원본'에서 28개의 정리를 증명하면서 평행선 공리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뉴턴이 죽고 50년 뒤인 1777년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났다. 가우스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가우스는 어릴 때부터 수학적 천재성을 발휘하여 어려운 계산을 해내곤 했다. 가우스에 관한 유명한 일화는 그가 9살 때 선생님이 낸 1부터 100까지 더하는 덧셈 문제를 '1+100, 2+99' 같은 방식으로 101을 50번 더해 5050을 구해낸 것이다. 참 할짓없다.

가우스의 재능을 알아 본 선생님은 그를 수학 조교에게 소개했고, 가우스는 수학조교와 대등한 연구를 진행했다. 가우스는 12세부터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에 의문을 품고, 휘어진 공간에 대해 연구했다. 가우스의 재능을 알아 본 페르디난트 공작은 그를 후원했고, 가우스는 15세에 김나지움(고등학교)에 들어갔고, 18세에 괴팅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816년 괴팅겐의 수리 천문학 담당교수로 일하던 가우스는 오늘날 쌍곡선 기하학(Hyperbolic Geometry)이라고 부르는 구조를 가지는 비(非)유클리드 공간에 있는 삼각형의 부분들의 관계를 규정한 방정식을 완성했다. 쌍곡선 공간이란 임의의 직선에 대해서 주어진 외부점을 지나는 평행선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있다는 가정을 집어 넣었을 때 생겨나는 공간이다.

이 새로운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귀결 중 하나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항상 180° 보다 작다는 것인데, 이 작은 정도를 각 손실(Angular Defect)이라고 한다. 큰 삼각형은 작은 삼각형보다 각 손실이 크므로, 작인 삼각형이 큰 삼각형보다 유클리드적이다. 쌍곡선 공간에서는 유클리드적 형태에 근접할 수는 있지만, 유클리드적 형태에 도달할 수는 없다.

쌍곡선 공간(비 유클리드 공간)을 간략화시키면 유한한 크기를 가진 2차원 평면원으로 대체된다.




쌍곡선 공간에서 직선은 원의 바깥선과 수직으로 만나는 임의의 원호이다. 위 그림의 상부 원은 쌍곡선 공간으로 직선은 원의 경계면에서 수직으로 만나고, 선 외부에 있으면서 한 점을 지나는 평행선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 그림 하부는 유클리드 공간으로 평행선 공리에 맞게 되어 있다.

미분기하학은 휘어진 평면에 대한 이론으로, 데카르트가 설정한 좌표설정 방법으로 평면을 기술하고, 미분학을 이용하여 평면을 분석한다. 미분기하학은 비행기나 자동차 디자인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표면 자체가 공간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지구 표면도 공간으로 생각될 수 있다.

가우스가 이룬 진보는 주어진 표면의 곡률(Curvature)을 더 큰 공간을 의지하지 않고, 그 표면 자체에만 의존해서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간이 휘어 있으면서도, 더 큰 차원의 공간 안에서 어떤 모양이 되도록 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 밝혀진다.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뉴욕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최단 경로는 위도선을 따라서 곧장 동쪽으로 향하는 경로일까? 아니다. 최단 경로는 위 그림과 같이 원호 모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볼링 공을 굴려도 이러한 최단 경로를 따라 가고, 황금 물떼새나 도요새 같은 철새도 천재적으로 최단 경로로 이동한다. 그래서 보없녀는 언제 나오노 시발년ㄴ아.

지구 위의 임의의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대원(Great Circle)을 따라가는 곡선이다. 대원은 지구 표면에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으로 원의 중심이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는 원이다. 대원은 유클리드의 공리 속에서 직선의 역할을 하고, 경도선과 적도선도 대원이다. 가우스의 제자 리만은 구면에 적합한 비 유클리드적인 공간, 즉 위와 같은 타원공간(Elliptic Space)을 발견하였다.


아인슈타인[편집]

가우스와 리만이 수학적으로 휘어진 공간을 제시했지만 휘어진 공간의 실체와 원인, 물리적인 증명은 숙제로 남아 있었다. 침대 메트릭스 위에 무거운 쇠공을 놓으면 움푹 파여 주위의 작은 쇠공을 끌어들이듯이, 공간 상에 질량을 가진 물질은 주위 공간을 휘어지게 하고, 그 휘어짐이 주변에 전달되 주위의 물질을 끌어들이게 된다.(1870년 클리퍼드 주장)

뉴턴은 달의 운동과 케플러의 법칙을 연관시켜서 달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달과 지구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턴은 달과 지구 뿐 아니라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에도 위와 같은 관계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파일:Force-1.gif

이것을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하며 비례 상수 G를 만유인력상수라고 한다. 뉴턴 당시의 측정 기술로는 만유인력상수 G의 값을 구할 수 없었으나 1798년 캐번디시에 의해서 만유인력상수 G의 값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G값은 다음과 같다.


파일:Force-2.gif


그러나 뉴턴은 만유인력을 일으키는 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4차원 시공간의 기하학적 휨(구부러짐)으로 인식함으로써 이를 설명하였다. 리만과 클리퍼드와 아인슈타인은 모두 동일한 수학적 발상을 통해 곡률에 의해 좌우되는 비 유클리드 공간을 구상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1919년 빛이 중력에 의해 굴절되는 것이 확인됨으로써 증명되었다.


폴란드(프러시아 지배지) 태생의 유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3.14 ~ 1955.4.18)은 3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네바다주에서 자랐으며, 링컨 남자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스위스 국립공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베른 특허국의 관리 자리를 얻어 5년간 근무하게 된다.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하여 이를 1905년 발표하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종래의 시간·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으며, 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었고, 몇 가지 뜻밖의 이론, 특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으나, 그동안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重力)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하고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서 유도되는 결론으로 강한 중력장(重力場) 속에서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언급하였다. 이것이 영국의 일식관측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후 중력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기장의 이론으로서의 통일장이론으로 확대할 것을 시도했다. 유대인 출신인 아인슈타인은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였고 평화주의자로서 활약하였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자, 1933년 독일을 떠나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 통일장이론 개척에 힘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미국의 과학자와 망명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절감하여 당시 대통령 F.D.루스벨트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힘썼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이용한 것으로서, 그것은 2차 대칭하는 텐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생각해낸 통일장이론은 2차 대칭이 아닌 텐서에 의거한 이론이다. 이것을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한다.




근대 물리학의 쟁점은 빛이 물질이냐 파동이냐 였다. 뉴턴은 빛이 물질이라는 입장이었고, 호이겐스는 빛이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빛이 물질이라는 것은 광전자효과(photoelectric effect))에 의해 증명이 된다.

1801년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영은 단일한 광원에서 나온 광선 두 개를 두 개의 슬릿을 통과하도록 비춘 다음, 통과된 두 빛의 중첩무늬를 영사막에서 관찰하였다. 물결의 마루와 골이 겹치면 보강되거나 상쇄되듯이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반복되는 간섭무늬가 관찰됨으로써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빛이 파동이라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파동을 전파할 매체가 우주 공간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질량이 없고, 미세하며, 탄력적인 에테르라는 유체가 우주공간에 퍼져 있다고 가상하였다. 그러나 빛이 음파와 같이 진행방향과 동일한 종파가 아니고, 기타줄 같이 진행방향에 수직인 횡파라는 사실은 에테르가 유체가 아닌 고체라는 가정을 낳게 되고, 우리가 고체 안에서 살고 있다는 이상한 가설을 유발하였다.

J.C.맥스웰의 전자기설이 나타나서 H.R.헤르츠의 실험을 거쳐 빛이 전자기파임을 확증하자, 에테르는 전자기파의 매질로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에테르에 관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에테르가 우주공간에 정지해 있는가, 아니면 운동물체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프레넬은 에테르가 절대정지 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또한 운동하는 투명물체 내에서는 일부의 에테르가 끌려서 움직인다고 하여 광행로차(光行路差) 현상도 설명했는데, A.H.L.피조의 실험은 이 설을 뒷받침하였다. 1881년 마이컬슨은 간섭측정기(interferometer)로 실험을 수행되었는데, 실험의 충분한 정밀도에도 불구하고 에테르의 물질성은 부정되었고, 지구가 에테르 속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었다.


로렌츠와 피츠제럴드는 빛의 속력은 관측자(기준계) 운동의 영향을 받지만, 물체는 에테르에 대하여 운동할 때 운동방향에 따라 그 속도로 결정되는 일정한 수축을 받기 때문에, 광속의 변화가 관측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학설을 제출하였는데, 이것을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가설이라고 한다.


관측좌표계가 로렌츠변환에 따른다고 가정하면, 이 수축은 역학적 효과가 아니라 시각의 상대적 성질 때문에 생기는 운동학적 효과로서 필연적으로 도입된다는 사실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에테르에 대한 운동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실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에테르에 대한 생각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뉴턴 이론에 의하면 행성은 타원 궤도를 그리는데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지점을 근일점 (Perihelion Point)이라고 부른다. 뉴턴 이론에 의하면 행성의 근일점은 매년 동일해야 하는데 1859년 파리에서 수성의 근일점이 100년에 38초만큼 이동함이 발견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간과하지 않고 상대성 이론에 의해 이를 증명함으로써 근대 물리학의 종말을 가져 오게 하였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유클리드의 공리적 접근을 시도한다.

1. 다른 물체와 비교하지 않는 한, 당신은 정지해 있는지 아니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지 판정할 수 없다.

2. 빛의 속도는 광원의 속도에 의존하지 않으며, 우주에 있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다.

첫 번째 공리는 우리가 기차 타면서 많이 경험하는 현상이고, 만약 엘리베이터의 줄이 갑자기 끊어진다면 당신은 지금 자유낙하 하는지, 지구가 갑자기 무중력 상태가 되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정지해 있을 때 느끼는 몸무게는 지구의 중력인지, 지구가 없어지고 우주선이 엘레베이터를 위로 잡아 끌어올리는 가속도에 의한 반발력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중력과 가속도의 관성에 의한 힘은 등가이며, 가속도로 인해 그 물체의 운동을 알 수가 있다.

두 번째 공리는 상식적인 물리법칙을 뛰어 넘는 공리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관념을 깨뜨렸다. 물체의 길이는 관찰자에 의존하는데 물체가 움직인다고 간주하는 관찰자가 측정한 물체의 길이는, 물체가 정지한 것으로 보는 관찰자가 측정한 길이보다 짧게 나타난다. 또한 등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는 고정된 관찰자보다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을 더 길다고 지각한다.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수백km/h의 속도로 자전하고 있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더 빠른 속도로 공전하며, 태양계조차 은하계 내에서 움직이고, 은하계도 움직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4(1+3)차원 좌표에 갇혀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관측하는 운동은 모두 상대적이며, 등속도로 운동하는 좌표계끼리는 역학법칙에 대하여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우주 비행사와 지상에 있는 사람이 똑 같은 시계를 가지고 똑 같이 시간을 맞춘 다음 우주 비행사가 빠른 속도로 우주비행을 하고 돌아와 보면 자신의 시계가 지상의 시계보다 뒤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1919년 5월 29일 일식에 별빛이 태양 부근을 지날 때 그 경로가 구부러진다는 것이 관측됨으로써 증명되었다.


  • 상대성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물질은 빛의 속도에 접근하면 질량이 무한대로 커지므로 빛의 속도를 초과할 수 없다.

2.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움직이는 관측자는 동시에 일어났다고 관측하지 않는다.

3. 속도가 증가할수록 길이는 수축되고, 시간은 지연된다.

4. 질량과 에너지는 등가로 E=mc2 에 의해 서로 교환되며,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증가되면 질량 역시 증가된다.


끈이론(String Theory)[편집]

아인슈타인에 의해 물질이 우주 공간을 구부러뜨리고, 이로 인해 만유인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끈 이론(String Theory)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4차원 이상의 고차원 영역을 탐구한다. 가우스와 리만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4(3+1)차원 세계가 쌍곡선 내지는 타원모양이라는 것이 제시되었는데 끈이론에서는 더 고차원의 세계(형이상학)가 구면체인지 도넛모양인지 매듭모양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끈 이론에서 발전한 M-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무언가 복잡한 것의 근시치일 뿐이다." 라는 역설적인 주장에 이른다. 기하학과 수학을 바탕으로 한 끈 이론과 M-이론은 현재 양자역학과 경쟁·보완 관계를 유지한다. 양자역학은 플랑크의 양자론(Quantom Theory)을 바탕으로 물질의 기본요소인 소립자에 대해 탐구하는 물리학으로, 확정적이지 않고 확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1925~1927년 오스트리아인 슈뢰딩거는 파동역학(Wave Mechanics)을, 독일인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역학(Matrix Mechanics)을 발표해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한다. 디렉은 파동역학과 양자역학이 동등하다는 것을 밝혀냈고, 세 사람은 양자역학에 공헌한 공로로 1932년과 193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결정적(determinate)인 거시적 상대성이론과 미결정적(indeterminate)인 미시적 양자역학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양자역학의 미결정적인 특징은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의 무게를 잴 때 측정의 정확도에는 한계와 오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술적 한계에 기인하지 않는 이론적 한계가 있는데, 쌍을 이루는 두 상보적인 특성의 불확정성의 곱은 플랑크 상수(Planck's Constant)와 같게 된다.

상보적인 쌍(Complementary Pair)이란 하나를 정밀하게 측정할수록 다른 하나는 부정확해지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상보적인 쌍에는 위치와 운동량(p=m×v)이 있는데 하나의 오차범위가 작아질수록 다른 하나의 오차범위는 커지며, 위치와 운동량의 오차범위를 곱하면 절대로 플랑크상수보다 작을 수는 없다. 플랑크상수는 매우 작은 값으로 h=(6.626196±0.0000076)×10-27erg·s 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정지해 있는 물체의 정확한 좌표는 플랑크 상수만큼의 오차범위 이내로 측정할 수 없다. 전자의 질량은 10-27g 인데, 운동량은 p=m×v 이므로, 초속 1cm의 오차 범위로 전자의 속도(전자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를 측정하면 운동량의 오차범위는 10-27g·cm 가 된다. 전자의 질량이 워낙 작기 때문에 속도의 오차가 크더라도 운동량은 매우 정확하게 산출된다.

이렇게 운동량이 정확하게 산출되면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의 위치를 알아내기는 더 어려워지게 된다. 반대로 전자의 위치가 원자의 외부 경계인 10-8cm에 있다고 확정하는 것만으로도 전자 속도의 오차가 108cm/s 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이 속도는 전자의 속도와 맞먹게 된다. 불 확정성에 기초를 둔 양자역학은 핵 물리학의 현상들을 매우 훌륭하게 설명하게 되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극 미시적 영역인 플랑크 길이(10-33cm)에서는 서로 충돌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극 미시적 영역이라도 물질이 없으면 중력장이 0 이고 공간은 평평해야 하는데,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중력장과 공간의 곡률이 심하게 요동치게 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수 많은 실험에서 입증되었으므로 극 미시적 영역에서는 아인슈타인이 백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극 미시적 영역은 자기 안으로 감겨 있는 다른 차원이 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이에 칼루차라는 수학자는 1919년에 통일장 이론에 골몰하는 아인슈타인에게 5차원 원통공간을 제시했다. 중력에 관한 4차원의 행렬 방정식에 부가적인 차원을 더했더니 놀랍게도 전자기장에 관한 멕스웰 방정식이 얻어졌다.

칼루차에 의하면 새로운 차원은 길이가 매우 짧고, 직선이 아닌 원의 새로운 위상(Topology)를 가진다. 추가된 차원은 끝이 없는 감긴 모양을 하며, 가는 호스처럼 원통모양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칼루차는 중력과 전자기력은 어떤 동일한 것의 성분들인데, 우리가 사물들을 공간의 4번째 차원에서 측정 불가능한 운동들을 평균한 상태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달라 보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하이젠베르크가 발명한 S-행렬기법은 입자물리학에 도입되었는데 S는 산란(Scattering)을 의미한다. 양자역학에서 기본입자를 연구하는 기본방법이 산란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가속기에서 기본입자를 엄청난 에너지로 가속시킨 다음 서로 충돌하게 만든다. 마치 자동차끼리 충돌시켜 튕겨져 나오는 볼트나 너트 등을 연구하는 것 같은데 이 과정 중에 물질이 변환되 전혀 엉뚱한 입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1967년 겔만은 기본입자의 충돌에서 이중성(Duality)이라는 규칙성을 발견해 S-행렬의 모든 수학적 속성들이 오일러 베타-함수(Euler beta-function)라고 부르는 수학적 속성 속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물리학자들은 이에 고무되 기본입자의 내부 구조를 밝혀내고, 강한 핵력을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1970년에 물리학자들은 기본입자를 점으로 보지 말고 진동하는 작은 끈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속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반입자(anti-particle), 양전자(positron), 중성자(neutron) 등이 발견되었고, 수 많은 소립자들이 발견되었는데, 물리학자들은 입자들의 생성과 소멸을 기술하는 양자장 이론(Quantom Field Theory)을 개발하여 이를 설명하려 했다. 양자장 이론에 따르면 힘은 상이한 입자들 사이에 전령 입자(Messenger Particle)가 교환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의 전령입자는 광자(Photon)이고, 강한 핵력의 전령입자는 글루온(Gluon)이다. 힘의 크기는 소위 쌍연결 상수(Coupling Constant)라고 부르는 수들로 코드화 되어 있다. 양자역학이 수학적 모형에 의해 미세 구조를 설명하려는데 반해 끈 이론가들은 기하학적 모형에 의해 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끈 이론에서는 모든 기본물질의 원류는 기타줄과 같은 끈 모양으로 이루어졌고, 이 끈이 진동상태에 있을 때 입자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끈은 갈라지거나, 합쳐지거나, 양 끝이 붙어서 고리 모양을 형성하거나, 고리가 갈라져 2개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고, 이 때마다 끈의 속성이 변하며 다른 입자들처럼 보이게 된다.

끈 이론에서 전령입자의 교환은 공간을 떠 다니는 끈들이 갈라지고 모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은 보다 많이 진동하는 끈의 진동 에너지로 설명된다. 끈 이론에서는 자연의 모든 입자는 현(끈)이 진동하는 다양한 유형이라고 한다. 즉, 진동하는 현이 들어 있는 공간의 차원의 수와 위상에 의해 입자의 성질이 결정된다.

끈 이론이 예측하는 기본입자들과 힘을 결정하는 것은 부가되는 차원들의 정확한 기하학과 위상학이다. 1차원의 끈은 끈이 줄어들거나 늘어나면서 종진동(Longitudinal Vibration)을 할 수 있고, 2차원의 끈은 끈의 수직 방향으로 횡진동(Transverse Vibration)을 할 수 있으며, 3차원의 끈은 나선형의 진동이 가능하다.

위상학은 표면이나 공간의 모양과 관련된 성질을 다루고, 메트릭이나 곡률은 다루지 않다. 예를 들어 직선은 두 끝을 가지고 있고 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른 위상을 같고 있지만, 원과 타원은 곡률만 다르기 때문에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2차원 평면을 말아서 원통을 만든다면 직관적으로 원통은 휘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기하학적으로는 평면과 같이 평평하고 곡률은 0 이다. 그러나 평면과 원통은 연결상태와 위상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평면에서는 원을 축소시켜 점을 만들 수 있는데, 원통에서는 원통을 휘감은 폐곡선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원통의 이런 유형의 끈은 평면 상태의 끈의 진동과는 다른 형태의 진동상태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끈 이론에서는 우주가 원통공간일 때 다른 유형의 입자와 힘들이 나오게 된다.

원통을 구부려 양 끝을 붙히면 도넛 모양의 토러스(Torus) 공간이라고 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형성된다. 이 도넛을 묶거나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더 높은 차원을 형성할 수 있고, 위상에 따라 다른 진동상태가 가능하다. 차원을 추가할수록 가능한 공간들은 더욱 복잡해지며, 풍부한 진동상태를 통해 다양한 기본입자와 힘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76년 셰르크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끈 이론과 초 대칭성을 통합해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을 제안했다. 끈 이론은 슈바르츠가 연구를 지속했고, 물리학자 겸 수학자인 위튼이 이어 받았다.

1985년 물리학자들은 칼라비-야우 공간(Calabi-Yau space) 라고 부르는 유한한 공간들의 집합을 발견했다. 추가된 6차원의 칼라비-야우 공간은 연탄구멍과 비슷한데, 각각의 구멍에 대응해서 한 족(family)의 끈 진동이 있고, 기본입자들이 4개 유형의 입자(전자, 뉴트리노, 2개의 쿼크)로 족을 이룬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위튼은 현재 수학적 통찰에 바탕을 둔 M-이론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위튼은 다섯 개의 상이한 끈 이론들이 M-이론이라고 명명될 단일 이론의 근사형태라고 선언했다. M-이론에 따르면 끈은 기본입자가 아니며, 브레인(Brane)이라고 부르는 막(膜)의 한 경우일 뿐이다. 브레인은 고차원적인 끈이며 비누거품 같은 형태이다.

M-이론에 의하면 물리학의 법칙들은 보다 복잡한 대상의 보다 복잡한 진동에 의해 결정된다. M-이론에는 감겨있는 차원 하나가 더 추가되어 전체 차원의 수는 11(10+1)차원이 된다. M-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M-이론을 통해 블랙홀의 엔트로피 상태의 수를 구하면 스티븐 호킹 박사가 다른 방법으로 구한 값과 일치한다. 만약 대형 입자 가속기에서 초대칭 입자가 10개정도 더 발견되면 M-이론은 입증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M-이론은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는 통합적인 이론이 될 것이다.


교훈[1][편집]

기하학을 살펴보면서 절대적인 진리인줄 알았던 유클리드기하학가우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맞고 증명이 필요 없을 것 같던 평행선 공리는 많은 수학자의 의심을 자아냈고, 결국 쌍곡선 공간에서는 맞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직관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철저히 증명된 것만 사실로 받아드릴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돌고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에 의해 지구가 돌고 둥글다는 것이 제안되었고, 우주비행사가 지구 밖에서 사진 찍은 것을 보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직관에 의존해 판단하며 자신이 속한 세계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알기 힘들다.

절대적인 진리인줄 알았던 뉴턴역학아인슈타인에 의해 무너졌고,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양자역학과 경쟁을 벌였으며, 결국 끈이론에서 발전한 M-이론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인간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인류가 여지껏 진실에 관해 확실히 알아낸 것은 철저히 증명된 피타고라스의 정리 정도밖에 없다.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도 비 유클리드 공간에서는 안 맞는데 무얼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이 이성으로 진실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간은 저차원에 속해 있는데 저차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고차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다 아는 것처럼 자만심에 빠져 있다. 그리스 시대에 소피스트들이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하며 상대적인 진리를 주창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먼저 네 자신을 알라!"며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라고 했다.

인간은 피동적 존재로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하나도 모르고 살고 있다.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없다. 소크라테스는 이상적이고 본질적인 세계인 형이상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형이상학에 있는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소피스트들의 생각은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형태로 재포장 되어서 유행되는데 이 역시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고, 모든 인간이 가진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상대적 진리를 주장한다. 내 멋대로 살고 싶은 현대인에게 잘 맞는 이 철학은 현대인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으며, 점점 인간의 타락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무시되고 있다.

따라서 서유럽에서는 동성연애, 간음, 변태, 마약, 근친상간, 수간, 낙태 등이 횡행하는데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행위는 나쁘지 않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 입장에서는 연쇄살인범이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거나, 미국 고등학생이 기관총으로 수십명의 급우를 쏴 죽이더라도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므로 비판할 수 없다.

유명한 마법사이자 사탄주의자인 알리스터 크로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행하라. 그것이 법칙이다."

사탄의 영감을 받아 한 것 같은 이 말은 현대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만, 악마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한 속임수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외면하고 인간적인 생각에 치우칠 때 오는 것이 타락과 범죄, 사치와 향락 이란 것은 증명된 일이고,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결국 문명이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반드시 존재하며, 절대적인 진리는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 때 인간은 가치성과 존엄성을 되찾게 된다.

인간의 직관과 관련해 한 말씀 더 드리면 우리는 보통 신을 믿지 않을 때 막연히 "신은 없을 것 같아!" 내지는 "천국지옥은 없을 꺼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증명되지 않은 이러한 직관적인 판단으로 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지옥이 없다고 확신하다가 사 후에 심판이 닥친다면 영원토록 후회하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으려면 신이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지옥이 없다고 확신하려면 지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약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증명 없는 막연한 직관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오히려 이 있고, 그의 아들성령이 계시고, 천국지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열역학 제1법칙과 제 2법칙을 통해 신이 존재하심을 증명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4인설(四因說)을 통해 신과 예수와 성령이 존재하심을 증명할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수 많은 성도들과, 죽기 전 사람과,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동일한 체험을 통해 천국과 지옥이 존재함이 귀납법적으로 증명된다.

역사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인 성경의 신빙성은 성서 고고학과 고대문헌을 통해, 수 많은 예언과 정확한 성취를 통해,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이 쓴 성경 66권의 일관성 등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신을 믿는 것이 이성적이고, 신을 믿지 않는 것이 비 이성적인 것 아닐까?

나는 예전에 누구 못지 않은 이성적인 사람으로 진심으로 신을 믿지 못했지만 이는 오히려 제가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이성이 있기 때문에 신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튼이 "시간과 공간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과학자가 한 말이니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나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도대체 말이 될까?"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이미 2,500년 전에 인도의 싯달타도 깨달았던 사실이다. 싯달타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은 보고, 듣고, 만지는 등 감각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감각은 다 허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이므로 이 세상과 나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無)로 돌아가자고 역설하였다. 싯달타는 인생에 대한 해답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문제 제기는 잘 하고 갔다.

그러나 나와 이 세상은 본래 존재하지 않으나 이 우주를 인식하고 창조하신 창조주는 반드시 존재하신다. 예를 들어 돌 덩이가 존재해도 이 돌 덩이를 인식하는 주체가 없으면 돌 덩어리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존재 없는 인식은 있을 수 있어도, 인식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와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도행전 17/27~28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찾게 하려 하심이요, 혹시라도 주를 더듬어 찾다가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은 우리 각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이러므로 너희의 시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자손이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신의 상상(의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을 하면 상상 속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동안만 존재하고, 상상을 그치면 그 상상은 날아가 버린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신이 불완전한 저차원인 4(x,y,z,t)차원 세계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며, 신이 잠시라도 인식을 그친다면 이 우주와 우리 모두의 존재는 날아가 버린다.

시편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루카 복음서 16/17 율법의 한 획이 없어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것이 더 쉬우니라.

히브리서 1/3 그는 주님의 광채시며 그 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이스라엘을 지키시던 신은 잠시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셨다. 신이 인간과 같이 졸거나 주무셔서 이 우주에 대한 인식을 그치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예수도 신의 계명인 율법 한 획이 없어지는 것보다 천지만물이 없어지는 것이 더 쉽다고 했다. 천체가 질서 있고 균형 있게 운행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예수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니엘 4/13 내가 내 침상에서 내 머리의 환상들을 보니, 보라, 한 파수꾼(Watcher)과 한 거룩한 이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또한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환상을 보니 하늘에서 한 파수꾼과 거룩한 이가 내려 왔다. 파수꾼은 영문성경에서는 Watcher로 관찰자를 뜻하며, 신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 보고 계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무도 모르는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신은 내가 한 일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은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다. 안개는 형체도 없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다. 인간은 안개와 같이 이 세상에 잠깐 존재했다가 없어지는 허무한 존재이다. 실체가 아닌 현상적 존재인 인간은 잠시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다를 바 없다.


찬송가 204장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그분께로부터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께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히 있으리로다.

이러한 것은 과학이나 철학을 통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거듭난 성도는 영적인 체험을 통해 이 세상과 나는 없어지고, 나를 구원한 주님만 보게 된다. 찬송가 가사는 엄청난 영적 부흥상태에서 쓰여졌으므로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고, 진리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만물이 예수로부터 나왔고, 예수를 통해 존재하며, 결국 예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인류가 범죄함으로 신에게 자꾸 불쾌한 상상을 드리므로 조만간에 하나님이 악몽을 벗어나듯이 우주에 대한 인식을 멈추실 것 같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은 이와 같이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토록 존재하는 고차원적 실체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를 개인적으로 축소하면 내 영이 실체이고, 내 육신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보통 내 육신이 나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나는 꿈속에서 리얼하게 경험하는 주체인 내 영이다. 오히려 꿈을 꾸는 것이 실체 세계이고, 이 세상이 꿈을 꾸는 세계라고 보시면 맞다. 영화 메트릭스에 나왔듯이 뇌를 자극하는 가상세계가 지금 현실이고, 가상세계에서 깨어난 것이 원래의 세계 (영의 세계)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게 되면 오랜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이 본래의 자아인 내 영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과 육신의 의식은 이어져 있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은 영은 처음엔 자신이 죽은 것도 잘 모른다. 또한 영은 살았을 때 했던 습관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데 술 많이 먹던 사람은 죽어서도 술을 먹고 싶어해 술꾼의 몸에 들어 가 술 먹는 기분을 즐긴다.

내 영과 육신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와 같다. 육신이 없는 영혼은 존재할 수 있어도, 영혼이 없는 육신은 존재할 수 없다.(죽은 육신입니다.) 즉, 육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육신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신과 닮은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인체에 우주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다.

이제 내 꿈(이 세상과 육신)을 위해 살지, 아니면 내 실체(천국과 영혼)를 위해 살지를 결정하시기만 하면 된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을 희생시켜가며 돈을 모으지만 모은 돈은 죽을 때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없고, 오히려 이 세상의 헛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에 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롤 플레이밍 게임 좋아하시는 분은 아무리 가상현실에서 돈을 많이 벌어도 이 세상에 도움이 안되는 것을 보고 허탈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성공해 재벌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저 세상에서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 예수가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한 말의 의미는 이 세상에 쌓은 보물은 도둑 맞을 수도 있고,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지만, 하늘에 쌓은 보물은 영원토록 내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테오 6/20)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천국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쌓은 의에 대해 보상 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마테오 19/29, 계시록(묵시록) 22/12)

니체의 사상[편집]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현대 실존주의 철학과 현대인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니체의 사상은 프리메이슨이 가지고 있는 사상을 철학적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 놓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부 사탄의 교회에서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경전으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니체는 독일 레켄 출생으로 목사인 아버지를 5살 때 사별하고, 어머니, 누이동생과 할머니 집에서 자랐으며, 20세에 본 대학에 입학하여 고전문학에 몰두했으며,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1872년 '비극의 탄생'이라는 지식에 반항하는 디오니소스적(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하는)인 저서를 내 놓았다.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저서에서는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이라고 단정 짓고,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전환을 시도하였다. 1885년 그의 대표적인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어었다."고 단정 짓고, "권력에의 의지"를 인생의 가치요 목표로 삼았고, 초인(超人)사상과 영겁회귀(永劫回歸)에 의한 삶의 긍정을 제시했다.

니체는 1888년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토리노 광장에서 졸도하였고, 정신병원에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상은 이 후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고, 유럽에서 기독교의 몰락과 실존주의의 부흥에 기여하였다. 그는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 없이 자기 극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의 철학(Philosophy of Life)[편집]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일어난 철학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직관이나 체험, 육감 등을 이용해 이해할 수 있다는 철학사조이다. 생의 철학의 시조인 쇼펜하우어는 '생에의 맹목적 의지'를 주장하였고, 니체는 생을 '권력에의 의지', 지멜은 '초월의 내재', 베르그송은 '생명의 비약'이라고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고민하던 '인생을 왜 사는가?'에 대해 누구나 이성으로 명확히 답변할 수 없으니, 증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인 판단하에 이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은 이성보다도 부정확하며, 이는 단지 나름대로의 추측이나 가정이지 진리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나도 고등학교 내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인생은 훨훨 타다가 때가 되면 재가 되는 모닥불 같다.'이다.

아무리 고민하고 과학적, 이성적, 직관적, 감정적 방법을 총 동원해도 인생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이 세상에 내 던져진 피동적 존재로 저차원의 세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정확한 의도는 작가만 알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추측이요 가정일 뿐이다. 이와 같이 우주와 인간을 만든 정확한 의도는 오직 창조주인 하나님만이 알지, 우리가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해답은 오직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인간은 영과 육신을 가지고 그 존재목적이 서로 다르다. 육신은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살기 위해서 산다는 모순율적인 명제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생존 자체가 목적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인생의 목적을 찾을 수 없고, 삶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우리는 심적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일하고, 먹고, 자고, 호흡하고, 화장실 가는 것 모두가 나의 생존을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나이가 들면 늙거나 병들어 죽기 때문에 그 전에 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창함으로 생을 지속한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의 생식활동은 생을 영속시켜 대가 끊기거나 멸종되지 않기 위한 활동이다. 일시적 삶을 위해 내재된 프로그램이 생존본능이며, 영속적인 삶을 위해 내재된 프로그램이 생식본능이다.

누구나 자유로운 듯 하지만 이 본능이라는 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하고, 숨을 오래 참을 수 없으며, 졸리면 버스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자야 하다. 화장실 가야겠다는 신호가 오면 체면 불구하고 100m 달리기를 해서 화장실에 터치다운 해야 한다.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키 크고, 잘 생기고, 지적인 배우자를 찾는다.

이에 반해 내 영혼은 구원 받기 위해 산다. 죄사함으로 끊어졌던 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진리와 성령의 은혜로 성장하며, 천국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영성(靈性)보다는 육성(肉性)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혼의 요구를 외면한 채 육적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구원 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욕망을 자제해야 하며, 영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겁회귀(永劫回歸, Ewige Wiederkunft)[편집]

불교윤회사상과 같은 것으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 세운 사상이다. 영겁회귀는 시간이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사물이 무한히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원래 힌두교에서 유래되었는데, 힌두교를 개혁하고자 한 석가도 이 윤회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기독교의 직선적 역사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윤회사상은 사탄이 지어낸 또 하나의 거짓말이다.

석가는 영원히 반복되는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니체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했다. 그러나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신이 정하신 것이고, 그 뒤에는 생에 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히브리서 9/27) 니체가 윤회사상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형이상학을 인정하면서 신을 믿지 않으려면 윤회사상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회사상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영원토록 생을 순환시키는 주체는 또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놀이동산에서 회전운동을 하는 놀이기구는 이를 순환시키는 모터와 동력이 있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결과가 있다면 이에 걸맞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요즘 TV에서 최면상태에서 말하는 그 사람의 전생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악령이나 악마가 대신 대답하는 것이다.


초인(超人, Super Man)[편집]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시한,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약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을 말한다. 인간은 중간자(中間者)로 자신을 극복하면 초극적(超克的)인 절대존재 즉 초인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쾌락에만 빠져 살다가 생명을 잃어버리는 말인(末人)이 된다고 니체는 주장했다. 이 역시 석가의 '누구나 성불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에서 모방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니체는 초인이 신이 될 뿐만 아니라 신을 대신해 인류지배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초인사상을 주창한 니체가 평생 질병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자가 되어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인간은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사탄의 거짓말에 속는 사람만 억울한 것이다.


선악의 피안(善惡-彼岸, Jenseits von Gut und Bose, Beyond Good and Evil)[편집]

피안은 강 저쪽 둔덕이라는 의미로 차안(此岸:현세를 가리키는 말)의 상대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불교의 해탈과 같이 세속(世俗)으로부터 초월한다는 뜻을 표현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니체는 도덕을 '지배자 도덕'과 '노예 도덕'으로 구분하였다.

'지배자 도덕'은 유대인의 세계정복 음모인 시온의정서에 있는 '힘은 곧 정의다.'와 같은 것이다. 즉, 선악의 분별이나 양심을 버리고,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하는 것을 오히려 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사탄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만든 것으로, 스탈린이나 모택동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 수천만명을 학살한 것도 혁명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합리화 된 적이 있다.

'노예 도덕'은 약자가 강자가 힘으로 저지르는 악행을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힘이 없어 당하는 니가 잘못이다.'라고 빈정거리는 간교한 사탄의 말투가 드러나는 듯 하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을 '노예 도덕'이라고 비판하였고, 선악이라는 개념을 넘어설 때 자유로운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점에서 '선악의 피안'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연쇄 살인범이 양심의 가책 없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사기꾼이 아무 거리낌 없는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것이 이상세계라는 것인데, 이는 불교에서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막 나가자는 이야기이다. 니체는 정신병에 걸리기 2년 전인 1886년 '선악의 피안'라는 저서를 통해 도덕이나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선악의 피안'이라는 사상을 전함으로써 완전히 사탄의 사상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니힐리즘(Nihilism)[편집]

라틴어에서 무(無)를 뜻하는 니힐(Nihil)을 어원으로 하는 허무주의적인 사상으로 모든 것이 실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無)라는 사상이다. 원래 불교의 중심 사상인데, 서양에서는 니체도스트예프스키 등이 도입해 철학적으로 이해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절대적인 진리나 도덕·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니힐리즘은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절망적 니힐리즘'으로 일체의 사상을 부정하고, 인생에 아무 의의도 없다고 규정하고, 모든 일에 전적으로 무관심한 채 순간적인 쾌락에만 몰두하는 경향이다. 회의주의, 상대주의, 무정부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히피 문화 등이 이에 속한다.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대부분 인생에 목적을 상실한 채 먹고 사는데 연연하거나 쾌락을 찾아 다닌다.

두 번째는 무(無)를 그대로 받아들여 긍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모색해 보자는 실존주의적인 입장이다. 실존(현상적 존재)은 본질(이상적 원형)의 반대되는 말로 이상세계를 접어 두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의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형이상학을 인정하면서도 부인하고, 이 세상을 부정하면서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물론과는 다르다.

니체는 기독교나 불교의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일체의 기성가치(旣成價値)를 가차 없이 공격해 파괴해야 한다는 능동적 니힐리즘(Activer Nihilismus)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 실재와 희망을 찾아 나서는 것이란 것을 간과한 것이다. 기존의 도덕과 가치를 파괴하면 돌아오는 것은 혼란과 타락과 폭력과 살인과 가정파괴와 전쟁 밖에는 없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신과의 단절로 인간은 자아를 상실해 존재의의와 목적을 상실한 절망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영원한 죽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일시적인 희망에 기대에 살지 말고, 오히려 철저히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인식함으로써 초월자이자 주관자인 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병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존재(일시적 존재)인 인간은 세상의 일상과 관습에 묻혀 살지만, 비 본래적(가상적)인 존재양식으로부터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현존재인 인간은 시간성 안에 놓여 있고,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지 말고, 양심을 통해 본래의 존재방식 (본질적 자아)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편집]

1885년 완성된 니체의 대표작으로 초인, 권력에의 의지, 영겁회귀 등의 사상이 담겨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설한 조로아스터의 독일식 이름으로 여기서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현자를 말한다. 여기서 짜라투스트라는 신은 죽었다고 단정하고 신을 모독하는 자로 불리우기를 원한다. 짜라투스트라는 또한 자신이 신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미친 사람으로 불리우기를 원했다.


그런데 신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영원토록 죽지 않는 영원 불변의 존재인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인 모순이다. 죽는다는 것은 이미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의식 있는 철학자라면 형이상학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있는 존재를 억지로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마치 눈 앞에 세계가 있는데도 눈을 감고 세계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신을 죽인 이유가 신이 자신 속에 있는 치욕과 추악함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참을 수 없었고 분노가 치솟아 올라 복수하는 마음으로 신을 죽였다고 한다. 마치 사탄의 음성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이 책은 사탄의 영감을 받아 쓰여져 사탄의 깊은 심정을 알 수 있다.

청소년사춘기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간섭하는 것이 못마땅해 반항심이 생기고 가출하게 된다. 그러나 가출해 세상의 사악함을 느끼고 고생하다 보면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신은 인간을 감시의 눈길로 쳐다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기를 바라는 사랑의 눈길로 지켜 본다. 끊어진 신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길 중의 하나는 신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은 아는 것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명제를 주장하게 된 경위를 사탄의 입장에서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한 때 지혜와 능력이 충만했던 케루빔으로 신이 되고 싶었다. 수 많은 천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아깝게 실패했다.
천국에서 쫓겨나 지하로 내려 오니 너무 괴롭고 힘들다. 이렇게 된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나를 이렇게 만든 신이 너무나도 밉다.
복수하고 싶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신은 죽었다.'고 자기암시라도 하고 산다.
그나마 지하에서 수많은 악령(악마)들을 거느리고 추앙 받으며 왕노릇 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또한 지상에서 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을 타락시켜 지옥으로 끌고 와 괴롭히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언젠가는 지상마저도 정복하리라!"

이런 전후사정이 생략된 채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신과의 관계성이 단절된 자신이 죽은 것이다. 사람 역시 죄로 인해 신과의 관계성이 단절된 사람은 아무리 신을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예수가 대속한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야 신과의 관계성이 회복되어 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기암시는 우리 인간도 많이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빨리 지나가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벽을 향해 매일 매일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예를 들면 사자(죽음)에게 쫓기는 타조(사람)가 달아나다가 힘이 빠져서 수풀에 머리를 박고 열매를 먹으며 사자가 없다고 자기암시하는 것 같이 우리 또한 세상의 즐거움에 파 묻혀 살면서 공포스러운 죽음이 없다고 자기암시하면서 살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솔직히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신 따위는 사라져라! 차라리 신은 없는 편이 낫다. 혼자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낫다. 바보가 되는 편이 낫다.
스스로 신이 되는 편이 낫다. 그대 내부의 어떤 신이 그대를 무신론자로 만들었다. 신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경건 그 자체가 아닌가?" (324f)

차라투스트라(사탄)가 이렇게 거짓말로 인간이 신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는 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에게 시기 질투가 나고, 한 명이라도 더 지옥에 이끌므로써 인간 괴롭히는 낙이라도 느끼며 살기 위해서이다. 몇년 전 일본에서 한 남자가 명문 유치원에 침입해 어린 아이 8명을 칼로 살해 했는데, 그는 자신은 실업자 신세로 처량한데 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에게 시기 질투와 분노가 일어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분노의 근거로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을 내 세운다. 구역질은 같은 생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데서 온다고 한다. 사탄은 힌두교에서 설파했던 거짓말인 윤회사상을 여기서도 써 먹고 있으며, 모든 것이 회귀하기 때문에 모든 노력과 선행, 진리 등이 무가치하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은 존재하지 않으며 규범을 파괴할 때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 이 허무한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권력에의 의지'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가라고 충고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라는 권력을 얻기 위해 양심을 던져 버리고 사기 치고, 도둑질 하고, 강도 짓 하고,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해 뇌물을 주고, 부정 선거 하고, 음모를 일삼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과연 돈이나 명예가 인생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돈과 명예를 얻었다 할지라도 늙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고, 허탈하고 우울한 감정은 감출 수 없다. 그런데 이 권력에의 의지는 굳이 니체의 사상을 몰라도 절망한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은 게임 속에서 파괴하고, 죽이고, 권력을 쟁취하며 희열을 느끼게 된다.

보통 범죄자를이 흉악한 죄악을 저지르는 이유는 인생의 목적을 잃어 버리고 절망해, 살인하고 도덕질 하는 등 잔인하고 파괴적인 것에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 사탄 또한 생의 목적을 상실한 채 오직 모든 것을 파괴하고, 타락시키고, 권력을 쟁취하는 데 의의를 두고 살고 있으며, 결국 이 세상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지만, 신으로부터 최후의 심판을 맞게 될 것이다.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편집]

본질(Essense)은 현상세계의 원형과 원인이 되고, 그에 반대 개념인 현재적 존재를 실존(Existence)이라고 한다. 하이데거나 야스퍼스가 선구자이며, 특히 인간의 존재를 실존이라 하며 이에 대해 탐구했다. 야스퍼스는 실존적 자아를 사유와 행동의 근원이며, 초월자나 다른 실존과 관련 속에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야스퍼스키에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철학자인데 반해 니체, 하이데거, 샤르트르, 까뮈는 무신론적 실존철학자이다.

샤르트르는 행동하는 인간을 주장했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으로 보았다. 샤르트르는 실존이 오히려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며 실존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샤르트르는 인간은 무(無)에서 존재하는 실존이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에 의해서 자신을 만들어 나가며, 자신이 선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샤르트르의 휴머니즘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고, 사회를 변혁할 수 있으며,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며, 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기 쉽고, 개인주의적인 사회는 파멸로 치닫고 있고,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에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이다.

결국 서양철학은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갈래 입장의 대립의 역사이다.

신본주의 절대적 진리 형이상학 본질 원인 원형 실제 이상 실체
인본주의 상대적 진리 형이하학 실존 결과 모형 가상 불완전 현상

한 부류는 신을 중심하고 의지하며,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고, 본질에 관심을 두며, 원인적 세계를 고찰하고, 영적인 생활을 하며, 실제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고, 영원토록 존재하는 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이다.

다른 부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개개인의 상대적 진리를 주장하며, 실존적 세계와 결과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고, 모형적 세계를 좋아하며, 육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살고, 가상적 세계에서 허무함을 느끼며, 불완전한 세계에서 심한 혼란을 겪다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적 삶을 살다 가자는 입장이다.

이 둘 간의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누가 옳은지는 사(死) 후, 또는 마지막 때 판가름이 날 것이다.

형이상학 형이하학 인식의 주체
그리스 철학(플라톤) O O 선의 이데아
관념론(칸트) O X
실존주의(니체), 불교(석가모니) X X
유물론(마르크스) X O
기독교(야훼)

좀 더 자세히 분석하면 위와 같다. 서양철학의 큰 줄기인 4가지 유형과 기독교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우주에 대한 인식의 주체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는다. 하나씩 살펴 보겠다.


그리스 철학(플라톤)[편집]

서양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플라톤은 이 세계는 이상적 세계의 그림자라고 했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인 이데아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고양이가 이상적인 고양이를 불완전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4인설을 통해 형이상학을 구체화 했다.

히브리서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사도 파울루스는 유대 제사 때 쓰는 기물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늘에 원형이나 설계도가 있고, 이 세상의 것은 하늘 세계를 본 따서 만든 모형적 세계요, 가상(그림자)적 세계이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원이나 삼각형을 그리려고 해도 오차 때문에 완변한 도형을 그릴 수 없다.


관념론(칸트)[편집]

관념론(idealism)은 유물론에 대립하며, 관념적(이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앞선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 신본주의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우주의 인식의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이 인식함으로 우주가 존재한다는 인본주의적인 입장이다. 관념론은 데카르트가 초석을 깔았고, 칸트가 발전시켰으며, 헤겔이 완성했다.

프랑스의 수학자 겸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모든 가설에 의심을 품고, 학문을 하려면 확실한 가정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명제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를 제 1명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볼 때는 맞아 보이는 이 명제 역시 증명되지도,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은 불확실한 명제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의 의미는 '나는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즉, '나는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중세의 신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이 혁명적인 사상으로 서양은 물질주의로 빠져들었고, 실존주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데카르트의 제 1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또는

나는 신의 인식 안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이다.

만약 생각함으로 존재한다면 뇌사 상태에 빠져서 생각할 수 없는 환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돌 덩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고, 인공지능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존재할까? 먼저,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사고와 관계 없이 신이 인식하기 때문에 존재하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100년을 산다 한들 우주 나이 200억년에 비하면 2천만 분에 1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500km라고 가정했을 때 2천만분에 1은 겨우 2.5cm에 해당한다. 우주 나이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카메라 플레쉬 터지는 것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카메라 플레쉬 불빛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이 있으며,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200억년 가야 하는 200억 광년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1,000억×1,000억=1022개의 별이 있는 것인데 이 우주의 크기와 별들의 수에 비하면 지구는 드넓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보다 작은 존재이다.

지구상의 모래 밀도와 면적을 계산하면 모래 숫자를 셀 수 있는데,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와 같은 1022개이다. 신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많이 주겠다 하는 말을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고 하셔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가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도 하늘의 별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다고 수천 년 전부터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처럼 작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신이 우주의 크기와 시간을 광대하게 만드신 이유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이사야 40/12~15 누가 오목한 손바닥으로 물들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되로 땅의 먼지를 담아 보았으며 큰 저울로 산들을, 작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느냐? 누가 주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어 그분을 가르쳤느냐? 그분께서 누구와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분께 교훈을 주었으며 의의 길로 그분을 가르쳤으며 그분께 지식을 가르치고 명철(明哲)의 길을 보여 주었느냐? 보라, 민족들은 물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그들은 저울의 작은 먼지와 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분께서는 매우 작은 것을 드시듯 섬들을 드시나니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 인공 장기와 인공 근육과 인공 피부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겠다. 나이가 들면 병들거나 노쇠하거나 고장난 인체 부위를 교체할 것이다. 돈이 많아 뇌 빼고 모든 조직을 교체해도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뇌를 교체하면 나는 없어진다.

나란 존재는 '과거 기억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신의 자아는 나의 '뇌'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뇌에서 신경단위인 뉴우론이 전기신호를 주고 받으며 지각, 연산, 판단, 기억, 명령 등을 한다. 그렇다면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가 나인데 전기신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결정적으로 이 우주는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 나 부터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고, 내가 있기 이전에도 우주는 존재했다. 나라는 존재는 잠깐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실 이런 유아론(有我論)적인 생각은 어릴적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내가 있음으로 이 세상이 존재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과 자아를 갖고 있지 않고 나를 위해 일시적으로 존재하며, 내가 볼 때만 세상이 움직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세상은 정지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도 생각과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은 나와 상관 없이 잘도 돌아가고, 나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미약한 존재란 것을 깨닫고 유아론적인 생각을 버렸다. (인식론, 가상세계)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샤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유아론적인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여 이 세상에 오직 나만 존재하고, 나만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유아론적인 사상이 있다.

관념론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실천이성과 순수이성으로 구분했다. 실천이성은 도덕적 실천의지로 논리적이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선천적인 의지이다. (선한 마음, 도덕, 양심과 같은 것으로 영이 가진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신을 동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논리적, 합리적, 보편적인 판단능력이다. 순수이성은 감성(직관), 오성(悟性, 논리적 사유능력), 이성(理性, 이치에 따라 분별함) 등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수집, 기억, 추론, 판단 등의 혼적인 능력이다.) 칸트는 순수이성으로 형이하학의 학문이나 과학에 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순수이성으로는 형이상학의 물자체(物自體, 원형,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실천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즉,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인간 내면의 양심을 통해 의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칸트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유함으로 우주만물이 존재한다는 유아론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신 중심의 형이상학을 인간 중심의 형이상학으로 바꾸는데 일조하였다. 이 후 칸트는 철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내막을 모르는 기독교한국루터회는 그를 위인으로 선정했다.

칸트의 사상을 이어 받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관념론을 완성시켰다. 데카르트와 칸트가 인간이 신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면, 헤겔은 인간을 신으로 등극시켰다. 헤겔은 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정신은 합리적인 오성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주관적인 의지라고 했다. 그러나 신이 가진 의지적인 속성은 온전한 상태에서 뜻을 이루는 것이지, 부족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자인 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자의 본질을 자유로 보고, 인류 역사는 신의 자유가 전개되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신의 자유가 절대군주와 귀족을 거쳐 모든 사람에게 옮겨져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실현되는 시대가 오며, 바로 현대가 자유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했다.

이는 신이 가진 자유와 인간이 가진 자유를 혼돈한데서 온 현상이다. 신의 자유는 창조와 질서를 이루지만, 인간의 방종적 자유는 파괴와 혼돈을 일으킬 뿐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지를 버리고, 신의 질서에 합류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수가 말씀하신 진리를 통한 자유는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인간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헤겔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정(正), 반(反), 합(合)으로 설명한 변증법을 제안했다. 형이상학적인 구상 없이 물질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개혁해 진화·발전할 수 있다는 변증법은 유물론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다원의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등 인류를 배교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물질은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서 파괴와 무질서로 치달을 뿐 스스로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질서는 규칙성과 법칙을 따르는 상태이고, 무질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혼란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새로 지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질서해져 낡아지지, 저절로 새 건물이 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는 일렬종대로 줄을 세운 사람들은 그냥 놔두면 점점 무질서 해지지, 무질서한 군중이 우연히 군대 사열하듯이 질서 있게 서 있을 수는 없다.


실존주의(니체), 불교(석가모니)[편집]

실존주의불교 모두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부정하고, 우주 인식의 주체를 자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니체는 불교에 심취해 윤회사상 같은 불교철학을 가져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둘은 허무한 인생을 극복하는 과정이 다르다.

실존주의는 기존의 가치나 도덕을 파괴하고, 자기중심적으로 권력에의 의지를 실현하며(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삶의  가치를 실현하자는데 비해, 불교는 자비를 실천하며 바른 마음과 수양을 통해 해탈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자는 점에 있어서는 같다. 석가모니는 누구나 성불하면 생노병사의 굴레를 벗어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가상적(현상적) 세계에서 스스로 실체적(영속적) 세계로 뛰쳐 나가겠다는 것은 전자게임 속 주인공이 스스로  컴퓨터 바깥 세상으로 뛰쳐 나가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경우에도 그림자가 실상이 될 수 없으며, 모형이 원형이 될 수는 없다. 실제세계가 가상세계를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는 있지만, 역으로 가상세계에서 실제세계로 스스로 전이할 수는 없다.


유물론(마르크스)[편집]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 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이나 신이 없이도 물질 스스로 존재하고 진화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등장했다. 유물론은 정신세계를 일체 부정하고 종교, 양심, 도덕, 기존의 가치 등을 전면 부인하고 오로지 혁명사상을 전파하며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이다.

결국 스탈린이나 모택동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심의 가책 없이 자국민 수천만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창설 자체가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특권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사유재산을 뺏기고, 언론을 통제 당하고, 공산당 1당 독재를 실현하는 등 모든 권력을 뺏긴 민중은 아무 힘 없이 복종하거나 숙청 당하는 노예계급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대부분의 공산정권은 수 많은 문제점을 들어내다가 몰락했다. 요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교회가 건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수 많은 교회가 정부의 탄압을 받아가며 자발적으로 결성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성경구절과 찬송가를 구전으로 전해 가며 순수한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개독[편집]

고기굽기 3/14 하나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또 씨부렸다. 너는 이스라엘에 이렇게 구라를 쳐라. 스스로 있는 놈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창세기 1/1 내가 전부 만듦.

묵시록 1/8 가라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곧 뒤질 것이다.

기독교는 영계라는 형이상학적인 이상 세계가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가 존재함을 믿는다.

인간과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비해 신은 만들어지지 않은 스스로 있는(존재하는) 자이다. 신은 이 우주 만물과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신은 내가 창조했다. 신은 시간을 지배하고 초월하시며, 처음과 나중이고, 영원히 변치 않고 항상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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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시록 3/1 4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어흥'. 주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씨부렸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런데 죽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산 자로다. 그런데 산 증거가 없으니 죽은 자로다. 그런데 산 증거가 없으니 팔은 자로다. 그런데 죽은 증거도 없으니 본죽이로다. 그런데 죽은 증거가 없으니 이 아니고 전복죽이로다. 그런데 증거는 없지만 바다 증거는 있노라. 그런데 라임 맞추기가 존나 힘드노라.


루카 20/38 주님은 죽은 자의 주가 아니요 산 자의 주시라 주식을 사라 주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반값에 사라고 하시니


요한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0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didn't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딤후 4/1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노? 신고합니노.

기독교에서 형이하학(물질세계)은 신과 관계가 있어도 존재하지 않고(죽어있고), 신과 관계가 없어도 존재하지 않는다.(죽은 것이다.)

신을 믿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일시적으로 살아 움직이다 이내 소멸하고 만다.

시편 39/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세레브.

신은 죄 없는 의인만을 상대하시고, 신의 영이 임한 사람은 신의 새 생명을 덧입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것이 불교 배꼈다.

마지막 때 신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보좌 앞에 불러 살아 있는 자를 죽이고, 죽어있는 자를 두번 죽일 것이다.

아무튼[2][편집]

이성(理性, reason)은 인간이 어떤 판단을 할 때 논리적, 합리적,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모든 과학과, 학문은 이성에 의해 체계적으로 쌓아 올려졌다.

직관(直觀, Intuition)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추론을 거치지 않고 사물을 인식하는 그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이가 다른 막대기가 있어 길고 짧은 것을 판단할 때, 자로 재 보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고, 겉보기에 의한 짐작으로 판단하는 것은 직관적인 판단이다.

감정(感情, Feeling)은 인간이 외부에서 어떤 자극을 받을 때 일어나는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반응이다. 감정에는 좋음. 싫음, 기쁨, 슬픔, 분노, 의심, 욕심, 시기, 놀람, 불안, 공포 등이 있다. 감정에는 특별한 근거가 없고 주관적이어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울게 된다. 광고에서는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의 욕심, 시기심, 좋음, 부러움, 행복함 등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은 하루에 감정이 수십번도 더 바뀌며, 주위환경과 몸상태, 날씨, 인간관계, 호르몬 분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싫어 하는 감정도 자극 받기를 원해 슬픈 것을 싫어하면서도 슬픈 영화를 보고, 공포를 싫어하면서도 공포 영화를 본다. 그러므로 감정에 의한 판단은 부정확하며,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감정 < 직관 < 이성

직관은 감정보다는 정확하지만 논리적 추론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보다는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만날 때 느낌으로 판단하는 것은 감정적 판단이고, 겉모습과 일시적인 언행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직관적인 판단이며,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의 언행을 주의 깊게 살펴 보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감정적, 직관적 판단을 함으로써 실수를 할 때가 많다.

니체는 형이상학과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단지 감정적으로 싫다는 이유 때문에 신을 부정했다. 이는 논리적 근거가 없는 감정적인 판단인데 이런데도 니체가 철학사에서 존경을 받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 또한 논리적 근거에 의해서 신을 믿지 않는 경우보다 신이 감정적으로 싫거나, 간섭 받는 것이 싫어서, 그냥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좋아서 신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취미생활인 경우엔 감정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셔도 되지만 종교문제는 감정에 의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있고, 사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을 믿을 때에도 단지 신이 좋아서 믿는 감정적 신앙과 신이 있는 것 같아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 믿는 신앙은 시험 환난이 닥치면 넘어지기 쉽다.

가장 안전한 신앙은 진리 위의 신앙이고, 막연한 믿음이 아닌 확실히 알고 믿는 신앙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신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성적으로 신을 아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학문이든지 깊게 파고 들면 가장 마지막에 발견하는 것이 바로 창조주의 존재이다. 대학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의대생인데 그만큼 인체의 구조와 면역체계가 정교하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었지만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 발견한 수 많은 지식을 통하여 신과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져 신을 믿게 되었다. 그는 말년에 "나는 이러저러한 과학적 현상이나 스펙트럼에는 관심이 없다. 평생 해봤으니까. 나는 신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신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형이상학에 대해 가장 근접하게 기술한 사람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 대한 플라톤의 추상적인 설명을 비판하고 과학적으로 이를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연학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네가지 원리를 제시했는데 2,300년 전의 작품 치고는 상당히 정확했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거의 완성했기 때문에, 그 뒤의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에 대해 논할 때는 거짓말을 지어 낼 수밖에 없었다.


사인설(四因說) 현대어 조각 예술품 건물 동물(육신) 창조 과정 가상 세계
목적인(目的因 목적 예술 주거 생식 사랑,생명(아버지) 특정 목적
형상인(形相因) 정보 구상 설계도 DNA 진리(성령) 프로그램
동력인(動力因) 에너지 조각 건축 호흡 힘,말씀(예수) 전력
질료인(質料因) 물질 대리석 건축자재 음식 물질(우주 만물) 컴퓨터


사인설의 첫 번째는 목적인으로 사물이 형성되도록 지향하는 목적을 말한다. 두 번째는 형상인으로 정보를 뜻하며 사물이 그것으로 형상되도록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동력인으로 에너지를 뜻하며 사물이 형성되게 하는 힘을 말한다 네 번째는 질료인으로 물질을 뜻하며 사물이 그것으로 되기 위한 소재이다.

예를 들어 어떤 조각가가 대리석 조각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작품을 만드는 원인과 목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자신의 특정한 예술적 목적을 위해 만들 것이고, 대회에 입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목적이 세워졌으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구상이 필요한데 스케치할 수도 있고, 머리 속에 입력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재료가 될 대리석을 구해 노동력을 투입해 조각하면 예술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건물을 지을 때에도 궁극적으로 주거(住居)란 목적을 위해서 지을 것이고, 건설회사는 이익창출을 위해서 지을 것이다. 그리고 설계 사무소에 의뢰해 설계사가 건물을 짓기 위한 정보인 설계도를 그리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근 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구비해 노동력과 기계장비를 투입해 건물을 짓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생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동물은 유한하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내 자손을 번창시켜 대를 잇게 한다. 수정란이 분화해 수 많은 세포와 정교한 신경조직과 혈관을 갖추기 위한 모든 정보는 염색체 속의 DNA에 내장되어 있다.

동물이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음식물을 공급해 물질과 에너지를 얻어야 하며 실질적인 열량은 호흡을 통해 산소를 흡입해 연소시킴으로써 발생시킨다. 모든 동물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호흡을 하지 않으면 단기간 내에 죽게 되어 있다.

20세 이후 음식물이 공급되고 호흡을 하는대도 늙는 이유는 다 성장해 더 이상 DNA로부터 정보를 공급 받지 못함으로써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에 의해 몸이 서서히 파괴되기 때문이다. 마치 건물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쇠락하지 않지만 완성한 다음에는 바로 다음날부터 건물은 서서히 쇠퇴해 낡아 가는 것과 같다.


즉 목적, 정보, 힘, 물질이라는 4가지 창조요소가 모두 충족될 때는 창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우주의 파괴 에너지에 의해 점차 쇠퇴하다가 사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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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객체(대상체)이든지간에 창조의 4대요소를 만족하면 창조되거나 성장한다. 4대요소가 만족되면 창조 에너지가 파괴 에너지를 이기기 때문이다. 파괴 에너지는 자연상태에서 물질을 무질서하게 하는 힘으로 그 실체는 시간으로 나타난다. 4대요소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파괴에너지가 창조에너지를 이기기 때문에 그 객체는 쇠퇴하거나 퇴보하게 된다. 인류가 점점 파괴와 혼란에 휩싸이는 이유는 인류가 존재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1/26 주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삼위일체의 신은 세분이서 함께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때문에 창세기에서 '내가'가 아닌 '우리가' 창조했다고 하셨다. 이는 아버지와 성령과 예수가 함께 힘을 모아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했음을 나타낸다.

요한1서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신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주님은 사랑이심이라


민수기 27/16 야훼, 모든 육체의 생명의 주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성부 아버지는 사랑 그 자체로 모든 피조물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성부 아버지는 또한 생명의 원천으로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신다. 사랑과 생명은 가장 궁극적인 목적으로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신은 사랑과 생명이란 목적으로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요한1서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은 진리 그 자체이시다. 진리의 성령은 우리가 성경 읽을 때 깨달음을 주시고, 전도할 때 할 말을 일러 주신다. 진리의 성령은 우주 만물을 이치와 법칙에 맞게 창조하셨다.

요한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신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신이시니라.

요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히브리서 4/12 주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시편 33/6 주의 말씀에 의하여 하늘들이 지음을 받았으며, 그것들의 모든 군상도 그의 입김으로 되었도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신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

요한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부터 말씀의 신인 예수가 있었고, 예수는 신과 함께 계셨으니, 예수는 곧 삼위일체의 신이다. 말씀이신 예수는 2000년 전 겸허한 육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신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Powerful)이 있다. 말씀은 진리가 밖으로 표출되 힘을 발휘하는 상태이다.

이 우주는 최종적으로 예수의 말씀의 힘으로 창조되었다. 우주의 기원을 빅뱅으로 보더라도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에너지가 저절로 생겼다는 것은 열역학 제1법칙에 위배된다. 또한 실제로 물질의 근본은 입자가 아니라 끈 모양의 진동이다.

이와 같이 사랑과 생명이신 아버지와 진리의 성령과 말씀이신 예수는 함께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가상세계(virtual worlds)는 컴퓨터를 이용해 실제가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세계와 같은 시각과 청각을 제공함으로써 마치 실제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세계이다. 즉.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세계다. 가상세계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라고도 불리우며 항공기 조종 연습, 전쟁 시물레이션, 원격 로보트 조종, 원격 시술, 컴퓨터 게임 등에 이용된다.

가상세계를 만드는 데에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목적, 정보적인 프로그램, 컴퓨터와 이를 구동시키는 전력이 소요된다. 놀라운 점은 인간이 실제가 아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데 고도의 프로그래밍 지식과 함께 존재와 관련된 철학적인 지식과 생명체의 유전적인 지식까지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가상세계에 필요한 각종 개념과 용어는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기술 발달로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와 같이 완벽해진다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할 수 없다. 조만간에 컴퓨터의 성능 향상으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실세계와 같은 장면을 구현해 인간 주인공이 필요 없는 가상 영화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호와 숫자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는 잠시라도 전력공급이 중단되면 날아가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또한 너무나도 완벽해 내가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지, 실제세계에 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그런데 물리학에서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끈 이론, M-이론 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실체세계가 아님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 신을 믿지 않고 바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 이를 자기 우상화(Self Idolatry)라고 한다. 과학 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은 더 이상 신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자부한다. 이는 자신이 실체가 아닌 현상적 존재로 가상세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존재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딴 사람은 실패해도 나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고, 로또 복권에도 당첨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프로그램 주식 매도와 매수가 사람이 머리 쓴 것보다 수익률이 좋고, 밤새도록 연구해 찍은 로또복권보다 컴퓨터가 아무렇게나 난수로 선택한 번호가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높다.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며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실수와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많은 모순을 내포한, 능력의 한계를 가진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욥기서에서 신이 가장 강조하신 것은 신의 전지전능함과 인간의 한계이다.

야고보서 6/6 주의 목전에서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히실 것이라.

인간은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본연의 가치성을 회복할 수 있다.

헤게모니(Hegemony)[편집]

이탈이아의 공산당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제시한 이론으로 현대의 정치, 사회,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상이다. 헤게모니는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종속 집단에 그것을 전파해 지지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특권을 가진 집단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 문화적으로 다른 계급을 통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선전하고, 다른 계급이 이를 받아드리도록 하는 것이다. 헤게모니적 지도력을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는 감정적 차원에서 민중에게 호소해야 하며 대중과 친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람시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가 달라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하고 노동자는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이는 경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은 그들의 실용주의와 감각적 문화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됐지만 그에 걸맞는 도덕성을 갖지 못해(이기주의, 독선주의) 헤게모니적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미국 문화를 동경하기 때문에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코카콜라를 마시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며, 헐리우드 영화를 본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를 경제에 치중해 계급투쟁으로 몰아가지 않고 정치적 측면에서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세계관으로 지도력을 행사해 종속적 계급이 이를 받아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람시의 정치는 폭을 넓혀 지적, 철학적, 도덕적으로 사회를 지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위해 교육을 통해 사상을 주입시키고, 언론을 통해 생각을 이끈다.

오늘날 헤게모니는 한 나라의 연맹제국에 대한 지배권, 맹주권, 패권(覇權)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특히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활동과 관련하여 이 용어는 정치적 지배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게 되었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국가기구나 정치사회가 그들의 법률적 제도, 군대, 경찰, 감옥 등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를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집단이 현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기구들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함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현상황에 대한 다양한 시회계층들의 자발적인 동의(同意)를 어떻게 창출해내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우솔로 정글 가놓고 리폿 안당하는법(ausolo jungle ganoko ripot andanghanun beop)[편집]

아우솔은 미드라이너지만 가끔 정글로 가는 새끼들이 있다. 그런 새끼들은 패시브인 q스킬 땜에 바론이나 기타 정글몹들에게 다구리맞고 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트롤로 리폿먹기가 쉬운데, 리폿을 당하지 않으려면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 방법은 오로지 일루미나티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을 빡치게 하는 법 중에서 한가지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탄 : 아 이건 좀[편집]

프리메이슨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사탕발림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프리메이슨이 루시퍼를 숭배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입단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32계급인 마리 P 홀이쓴 프리메이슨의 잃어버린 열쇠 라는 책에는 프리메이슨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바르게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 때에 루시펠(루시퍼)의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것이 된다고 루시퍼 숭배사상을 담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인싸가 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메이슨은 상급에 올라가면 사탕숭배의 속내를 드러낸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법과 오컬트 의식을 통해 사탄의 계시를 받고 따른다.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이었던 '알버트 파이크(Albert Pike)'는 1889년 7월 14일 다음과 같이 그들의 회원들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절대권자이며 대감찰장이신 당신에게 32도 31도 30도에 있는 현제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메이슨교는 이제 막 시작한 자로부터 고위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루시퍼(Lucifer)의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야도나이(코훼)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루시퍼(사탄)여, 빛의 신이고 선의 신이며 어두움과 악의 신인 아도나이(여호와, 야훼)와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사야 14/12 님 왜 잘 날다가 추락함?!

루시퍼 13/11 왜긴 왜야 연료가 없어서 추락함 ㅁㅌㅊ

비아그라[편집]

현재 프리메이슨이 세계화를 위해서 내세운 이념은 신세계 질서이다. 새롭고 보편적인 이념 하에 국경과 분쟁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본래 추구하는 세상은 공산주의파시즘헤게모니가 결합된 세상이다. 라고 말한적 없다.

세계정부에 모든 권력을 넘기면 사유재산을 빼앗고, 자유를 박탈하며, 항상 감시 당하고, 종교가 금지되고,  배반자는 처형 당하는 갸꿀잼 ㄹㅇ 무정부주의 갱스터 세상이 된다.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은 기술 발전에 적응하지 못했고, 헤게모니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리핀마르코스 같은 부정한 독재정부는 오래 가지 못하고 성난 민중에 의해 무너졌다. 그래서 세계정부가 지향하는 사회는 극도로 도덕적이고 통제된 사회이다. 그러나 극도로 도덕적이고 통제된 사회이면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한강으로 뛰어들어서 갠지스강 꼴 날것이다.

프리메이슨 유대인이 만든 시온의정서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현재 이슬람 사회같은 사회를 만들어 범죄하는 자는 극형으로 다스려 안정된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럼 세계정부의 이상세계와 섹수 그리스딜도의 이상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다.

강압과 자율 (정죄와 용서)[편집]

세계정부는 범죄 없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엄격한 규칙을 정해 놓고 이를 어길 시에는 무자비한 심판을 가할 것이다.

현재 이슬람 사회처럼 도덕질하면 팔목을 자르고, 술 먹고 담배 피면 감옥에 가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면 싱가포르처럼 채찍질 당할 것이다. 아, 도둑질이 아니라 도질이다. 헷갈리지 마셈.

하지만 섹수 그리스딜도의 세상은 말씀으로 거듭나 나 자신을 변화시켜 깨끗한 사람이 되고, 사랑으로 상대를 감싸주고 용서하는 자율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기주의와 희생[편집]

헤게모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덕적인 세상을 만드는 목적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참 목자와 거짓 목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참 목자는 양을 사랑하여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 양이 지 부모라도 되나보다. 한마디로 참 목자는 사람이 아니라 양새끼다.

거짓 목자는 양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며 늑대가 나타나면 늑대랑 양을 교배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거짓 목자가 훨씬 낫다.

세계 엘리트들이 통제된 사회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를 노예처럼 착취해 부가가치를 빼앗아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지만, 사막잡귀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가치파괴와 가치회복[편집]

프리메이슨이 꿈꾸는 이상 세계는 pc방을 공짜로 대여해주고 학력 중심 사회가 되지 않으며 정당방위, 무고죄 강화, 문꿀오소리와 박사모, 뷔페미니즘을 척결한다. 대국적인 정치를 하며 공짜로 창녀촌을 사용하게 해준다.

이에 반해 그리스딜도의 천년왕국은 진리와 은혜로 인간을 거룩히 하고, 신의 품성과 능력에 참예케 해 영원토록 존재하는 실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그 반대다.

둘 중 어떤 세계를 선택할지는 당신의 자유의지(Free Will)에 달려 있다.

결론[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상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마치 너의 인생과 무능 후장 관처럼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니 하루빨리 갖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나같은 놈은 이세상에 없는 게 낫다.

내 알 바 아니고, 여기까지 읽느라고 시간낭비한걸 축하한다.

참고 서적[편집]

  •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까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뤼디거 슈미트, 이학사)
  1. 인간의 직관은 부정확하며, 우리가 이성적으로도 진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2. 인간의 감정은 직관이나 이성보다 부정확하며,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 근데 이건 ㄹㅇ이다. 이 문서에서 유일하게 진짜임.